소설리스트

21. 최대의 관심사 = 오수희 (21/118)


21. 최대의 관심사 = 오수희
2022.04.12.


자신의 이야기를 승조에게 털어놓은 덕분일까.

수희는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치다 만 암막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왔지만, 수희의 잠을 깨우지는 못했다.

그간의 축적된 피로를 풀어내듯 수희는 뒤척임 한 번을 보이지 않았다.

Rrrrr―

쌕쌕대는 수희의 숨소리로 가득했던 방 안에 시끄러운 벨 소리가 덮였다.

숙면을 방해하는 휴대폰에 수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끝까지 이불을 둘러썼다.

아직 수면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수희는 알아서 전화가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한참 울리던 벨 소리가 뚝 끊기고, 마저 잠을 이루려던 순간이었다.

Rrrrr―

마치 수희가 잠들지 않길 바라는 듯 다시 벨 소리가 울렸다.

갑자기 짜증이 솟구치며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이불을 걷어 상체를 벌떡 세운 수희가 휴대폰을 들었다.

―철용 오빠

들뜬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린 수희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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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퉁명스러운 수희의 어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철용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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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 너 어떻게 된 거야?]

다짜고짜 어떻게 된 거냐니.

바깥 상황을 모르는 수희가 귀찮다는 듯 입술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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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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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기사 안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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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방금 전화받고 일어났어. 무슨 일인데.”

<침수> 인터뷰에서 겪은 일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들을 준비 같은 건 필요 없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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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사 난리 났어! 네 열애설 때문에!]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수희에게 꽤 큰 타격감을 입혔다.

자다가 찬물로 뺨이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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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가? 누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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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조 대표님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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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쩍 벌어진 수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승조와 연애 중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수희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잡은 수희의 눈동자가 지진이 일어난 듯 격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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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한승조 대표님이랑 열애설이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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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말 아닌 거 맞아?]

의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수희는 미쳐서 펄쩍 뛰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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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니라니까.”

진지한 수희의 반응에도 철용은 의구심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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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대표님이랑 저녁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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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는 않았고 식당에 잠깐 있다가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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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랑 바닷가는 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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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긴 했는데 뭘 한 건 아니야. 그냥, 저스트, 이야기만 한 거야.”

형사에게 심문을 당하는 범죄자처럼 수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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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랑 너희 집에 간 것도 맞아?]

어떻게 어제 있었던 일을 전부 알고 있는 걸까.

골치가 아파진 수희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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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으니까 집에 데려다준 거야. 연애는 절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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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네 말은, 같이 식당도 가고, 같이 바다도 보고, 같이 집에도 갔는데 연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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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믿어 달라는 듯 호소했지만, 철용은 오히려 서운한 티를 팍팍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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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 너, 나한테까지 속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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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정말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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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아니면 썸은 맞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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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썸도 아니야. 남이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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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님이 됐다고 나한테 통보하는 거 아니지?]

사실이 아닌데도 인정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통화 중에 진동하는 휴대폰을 보니 모르는 번호로 계속해서 전화가 들어오고 있었다.

전화를 받아 보지 않아도 연예부 기자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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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끊어 봐. 나도 기사 확인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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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너 데리고 회사로 오라고 했어. 30분 뒤에 너희 집으로 출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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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전화를 끊은 수희가 인터넷을 열었다.

자신의 기사를 검색할 필요도 없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떡하니 걸려 있었다.

[[단독] “우리 사랑에 빠졌어요.” …… 배우 오수희는 열애 중.]

[오수희 비연예인과 열애설 제기, 소속사는 “확인 중”]

[오수희 열애설, 정말 사실일까?]

수희는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단독 기사를 눌러 보았다.

굵은 글씨의 첫 줄 아래, 수희와 승조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두 사람이 차 보닛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 아래 마치 소설처럼 이야기들이 꾸며져 있었다.

길게 늘어진 글자들이 순간 구겨진 종이 위 글자처럼 엉망으로 뒤엉켰다.

손바닥으로 눈가를 짓눌렀다 떼어 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곧은 획들이 흰 바탕을 채우고 있었다.

그나마 헛구역질이 올라오지 않는 건 어제 승조에게 받아 온 약 덕분인 듯했다.

[배우 오수희(27)와 비연예인 사업가 H 씨(31)가 사랑에 빠졌다.

<침수> 인터뷰에서 갑자기 쓰러졌던 오수희는 일정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연인인 H 씨에게 위로를 받았다.

두 사람은 오붓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진 뒤, H 씨가 직접 모는 차를 타고 인적 드문 바닷가로 향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두 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의 마지막 목적지는 오수희의 아파트였다.

H 씨는 자상했다. 직접 배웅에 나서는 H 씨의 손에는 죽이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여섯 시간 만에 헤어졌다.]

글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진들이 중간중간 박혀 있었다.

식당에서부터 수희의 아파트까지. 기자가 붙어 있던 걸 수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동안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오지 않아 긴장을 늦추고 있었던 게 탈이었다.

기자들은 수희의 휴대폰을 방전시킬 작정인지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왔다.

모든 전화를 무시한 수희는 연락처에 있는 승조의 번호를 찾았다.

지금쯤 승조도 연예란에 뜬 기사들을 읽었을 것이다.

그녀에겐 난데없는 열애설에 휘말린 승조에게 연락을 취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었다.

승조에게 전화를 걸고 몇 초 흐르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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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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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수희예요. 혹시 오늘 기사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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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희 씨랑 내 열애설 말입니까?]

매끈한 이마를 손끝으로 문지른 수희가 당황하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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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기자가 따라붙었던 것 같아요. 괜히 이런 일에 엮이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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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그날 만나자고 한 것도 나고, 바다로 데려간 것도 나니까.]

인터넷에 한바탕 난리가 났으니, 회사도 떠들썩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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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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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원래 정신없으니까 신경 쓸 거 없습니다.]

그런데도 승조는 수희를 먼저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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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설은 저희 기획사에서 대응할 거예요. 기사도 최대한 빨리 내려갈 수 있게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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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수희 씨 약속 없으면 따로 보죠.]

자연스레 약속을 잡는 승조 때문에 수희는 수락할 뻔했다.

열애설까지 터졌으니 수희는 승조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승조와 개인적으로 만날 필요가 없다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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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나요? 열애설 때문이라도 만나는 건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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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관련된 문제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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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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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이야기라 전화 통화로는 안 될 것 같네요.]

승조가 단호하게 나오자 수희는 고민에 빠졌다.

자신 때문에 열애설까지 터진 마당이라 승조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함께 있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발각된다면, 열애설이 열애 중으로 바뀔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철용에게서 메시지가 들어오자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 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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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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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기다리죠.]

전화를 끊은 수희는 기다란 숨을 내쉬며 이불을 걷고 나왔다.

수희와 통화 중이던 그때, 승조의 옆에는 차 비서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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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그날 만나자고 한 것도 나고, 바다로 데려간 것도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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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그렇게 적극적이었다고?’

차 비서의 눈과 코가 동시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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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원래 정신없으니까 신경 쓸 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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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정신이 없었는데, 덕분에 더 정신이 없어졌죠.’

하도 울려 대는 전화에 비서실 전화기는 모두 코드가 뽑힌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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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수희 씨 약속 없으면 따로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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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난리가 났는데 오늘 또?’

사랑에 빠져도 아주 눈에 보이는 거 없이 푹 빠졌다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금 가장 화젯거리인 여배우와의 열애설이었다.

회사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는데, 승조는 또 수희와 보겠다고 약속을 잡고 있었다.

승조가 전화를 끊자마자 차 비서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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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일보다 사랑이 먼저인 타입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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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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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솔직히 말씀해 주셔야죠. 오수희 씨하고 연애 중인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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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비서, 내가 개인적인 일까지 말해야 하나?”

귀찮다는 투로 승조가 대꾸하자 차 비서가 입을 샐쭉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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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한 지가 몇 년짼데. 서운해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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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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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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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차 비서가 무서워지려고 해.”

냉정히 얼굴을 굳힌 승조가 결재 서류를 펼쳤다.

막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데, 차 비서의 안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기자겠거니 했는데 승조의 아버지인 한병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금세 안색이 하얗게 질린 차 비서가 승조를 바라봤다.

오늘 중으로 한병호로부터 전화가 올 줄은 알고 있었는데도 차 비서는 잔뜩 긴장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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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회장님한테 전화 왔습니다.”

차 비서가 공손하게 두 손으로 휴대폰을 받쳐 내밀었다.

그러자 승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검지 하나로 액정에 뜬 거절 버튼을 밀어냈다.

경악을 금치 못한 차 비서가 끊긴 전화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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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전화 거절하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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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받지 마. 아버지가 무슨 말씀 하실지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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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받으시면 제가 회장님한테 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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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나는 건 아니잖아.”

와. 진짜 개인주의, 이기주의, 정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

실망의 눈초리가 이어졌지만, 승조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결재 서류에 사인을 마친 승조가 모니터에 뜬 기사로 눈길을 돌렸다.

지금 승조의 관심사는 온통 오수희였다.

***

기획사는 그야말로 전쟁 통이 따로 없었다.

사무실 여기저기서 총소리 같은 전화벨 소리가 다다다 울려 댔다.

수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비서가 데스크에서 일어섰다.

비서가 손수 사장실 문을 열어 주자, 수희와 철용이 차례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통화 중이었던 최 사장이 수희를 발견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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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단 다시 전화할게. 알겠으니까, 좀 기다려.”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둔 최 사장이 비지땀을 닦아 내며 소파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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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찍 왔네. 앉아.”

최 사장이 왼편에 있는 소파를 눈짓하자, 수희와 철용이 자리에 앉았다.

어제는 <침수> 인터뷰로, 오늘은 열애설로 면목이 없는 수희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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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문에 회사 정신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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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는 거지.”

분명 호통을 칠 거라 예상했는데, 최 사장은 인자하게 굴었다.

일단 최 사장이 전날 상황을 알 필요가 있으니 수희가 차분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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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소매치기당했던 건 철용 오빠가 말씀드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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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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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승조 대표님한테 신세를 졌어요. 그때 빌린 돈이랑 옷 드리려고 만났던 거예요.”

수희는 사실 관계를 정확히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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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조 대표님이랑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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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거에 대해 내가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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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요?”

숨을 들이켠 최 사장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수희와 진지하게 눈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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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애설, 우리 쪽에서는 대응하지 않기로 했어.”

당연히 강력히 대응할 줄 알았던 최 사장은 아무런 모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입장 발표를 하지 말자고 해 수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최 사장의 말에 수희는 경악을 금치 못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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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설 인정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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