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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나랑 연애하겠습니까? (23/118)


23. 나랑 연애하겠습니까?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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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납니다, 오수희 씨랑.”

거대한 충격이 병호의 뒤통수를 가격한 듯했다.

할 말을 잃은 병호가 얄팍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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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만나는 거냐? 그 딴따라랑.”

귀에 거슬리는 ‘딴따라’ 소리에 승조의 미간이 찌푸려 들었다.

구겨지는 승조의 얼굴에 병호는 차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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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애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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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보니까 제가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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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줄 모르는 병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비참했다.

이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섬겼던 지난날들을 지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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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나 때문에 네가 부족하다는 거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병호에게 승조는 아무런 감정도 던져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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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아셨으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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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자식.”

잔뜩 화가 난 병호를 두고 승조가 지나쳐 가려 했다.

그러자 병호는 승조의 팔뚝을 움켜잡으며 제 옆에 붙잡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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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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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오실 땐 미리 연락하고 오세요.”

승조는 자신의 팔을 붙들고 있는 병호의 손목을 감싸 잡고 떼어 냈다.

너무나 쉽게 승조의 손을 놓친 병호가 소리치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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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 애 만나러 가는 거냐?”

굳이 대답할 필요 없었기에 승조는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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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아버지보다 그 친구가 먼저인 거냐?”

그러나 자신의 등에 꽂힌 말에 우뚝 자리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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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언제나 전 뒷전이셨잖습니까.”

차마 반박할 수 없는 병호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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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새삼스럽긴 하겠네요. 어렸을 땐 제 첫 번째는 늘 아버지였으니까요.”

비웃음이 담긴 것처럼 승조의 어투엔 공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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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옛날 일로 마음이 꽁해 있는 거냐?”

옛날 일, 이라고 했다.

제 삶의 반 이상을 차지하던 그때를.

승조는 대답하지 않은 채 집무실에 병호만 남겨 두고 나왔다.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병호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집무실 문을 열고 차 비서가 들어오자 병호가 엄한 목소리로 일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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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루에 한 번, 승조 일정 나한테 보고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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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에 일정 공유해 드리면 될까요?”

병호는 그나마 차 비서가 말이 잘 통한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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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디서 뭘 하는지 내가 알아야겠어.”

병호는 허리를 숙이는 차 비서를 지나쳐 집무실을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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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지? 한 대표님 집.”

우뚝 솟아오른 빌라 건물에 철용의 시선이 끝도 없이 위를 향해 올라갔다.

서울에서 최고가를 갱신한 빌라가 승조의 집이었다.

빌라로 들어서려 하자 입구에 서 있던 경비원이 차 앞으로 다가왔다.

차를 세우라는 듯 경비원이 손을 뻗자 철용이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창문을 내리자 큰 덩치에 3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경비원이 철용과 눈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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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호로 가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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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승조의 집으로 오기 전, 철용의 차 번호를 그에게 알렸었다.

승조가 미리 경비실에 방문할 차량에 대해 말한 건지, 경비원은 별다른 말 없이 왼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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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쭉 내려가시면 됩니다.”

빌라의 입구는 오른편이었지만, 펜트하우스의 입구는 왼편에 따로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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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짧게 인사한 철용이 핸들을 돌려 경비원이 가르쳐 준 길로 들어섰다.

바닥에 촘촘히 박힌 조명등이 주위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지하로 차가 내려가자 어두웠던 주차장이 한층 밝아졌다.

넓은 주차장 안에는 외제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철용은 스치기만 해도 자신의 중고차 한 대 값이 나올 것 같은 차들을 피해 주차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수희가 안전띠를 풀자 철용이 시동을 끄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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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철용은 당연히 수희와 함께 올라갈 생각으로 운전석 문을 열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수희가 멈칫했다.

별안간 떠오른 승조와의 전화 통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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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이야기라 전화 통화로는 안 될 것 같네요.]

전화로 할 수 없어 수희에게 따로 만나자고 한 건데, 철용이 끼게 된다면 그가 하려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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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올 건데 뭐.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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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가야지.”

걱정돼서 같이 승조의 집까지 와 놓고, 수희 혼자 올려 보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듯 철용이 두꺼운 눈썹을 찌푸렸다.

철용이 수희에게 한 소리 할 것처럼 몸을 들썩이자 수희가 얼른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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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이야기라 따로 보자고 한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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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중요한 이야긴데.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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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좀 그래.”

철용은 도대체 무슨 개인적인 이야기길래 안 된다고 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런 철용의 걱정을 덜어 주듯 수희가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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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 응?”

수희가 한사코 거절을 하니 철용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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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을게. 대표님 낌새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튀어나오고.”

꼭 승조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 같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로 화답하고 수희는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20층에 멈추고 문이 열리자 수희가 밖으로 나왔다.

2002호 앞에 선 수희가 벽에 붙어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싶더니, 도어 록의 겉면이 반짝이고는 문이 열렸다.

현관문을 밖으로 당긴 수희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긴 복도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거실에서 승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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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요?”

자연스레 묻는 말에 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안한 티셔츠에 바지를 입은 승조의 머리카락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바디워시 향인 건지 코언저리에 옅지만 달곰한 향이 머물렀다.

차가운 인상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향이었다.

마치 호랑이가 딸기를 좋아하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향 자체는 수희의 취향과 흡사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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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와요.”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한강을 배경으로 둔 거실이 펼쳐졌다.

수희의 집도 절대 좁은 편은 아니었지만, 승조의 펜트하우스에 비교할 게 못 됐다.

아이 여럿은 뛰어놀 수 있을 것 같은 거실을 둘러보는데 승조가 주방으로 향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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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마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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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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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기다려요.”

승조가 소파를 눈짓하자 수희가 주변을 둘러보다 자리에 앉았다.

천장이 높아서인지 승조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승조는 물컵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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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요.”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 설명하려니 수희는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물컵을 입에 가져다 대 목을 축이고는 수희가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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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열애설 때문에 할 말이 있어요.”

승조가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수희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열애설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말자고 한 건 최 사장이었다.

그러나 그걸 뒤집지 않은 건 수희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수희가 망설이고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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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열애설에 관련된 정정 기사는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더군요.”

수희가 집에 도착하기 전, 승조는 휴대폰으로 연예란에 뜬 기사들을 전부 확인했었다.

곧바로 조치할 줄 알았건만, 새로 올라온 기사는 ‘소속사의 묵묵부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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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정정 기사 내보내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제가 지금 상황이 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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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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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터진 열애설 때문에 제 임신설이랑 인터뷰 태도에 관한 기사가 전부 내려갔어요.”

수희는 승조의 표정을 살폈지만,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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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가 사실이 아니라고 알리면, 금방 임신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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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당장은 열애설에 대해 대응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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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사장님이랑 제가 내린 결론이에요.”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승조는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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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희 씨는 나랑 열애설이 나도 별다른 타격이 없습니까?”

열애설이 난 이후, 수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었다.

갑자기 터져 버린 열애설에 다들 악성 댓글을 던질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모두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 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건 승조의 외모였다.

[둘이 너무 잘 어울려. 저건 인정해 줘야 함.]

[선남선녀다. 오수희 첫 열애설 아님? 스물일곱이면 연애할 때도 됐지.]

[저런 남자면 우리 수희 언니 보내 줌.]

간혹 악성 댓글이 보이긴 했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최 사장까지 연애설이 사실이길 바랐다고 하니 타격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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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께서는 오히려 열애설을 인정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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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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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죠. 사귀지도 않는데 열애설을 인정하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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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까? 열애설을 인정하자고.”

우스갯소리로 뱉어 본 말인데 승조는 꽤 진지하게 굴었다.

괜스레 수희도 입가에 머물렀던 미소를 슬쩍 거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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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죠. 여배우한텐 오히려 임신 스캔들이 더 타격이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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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네요.”

뭐가, 잘돼?

뜬금없는 말에 수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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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설 인정하죠.”

허?

다물었던 입이 스르르 벌어진 수희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도리도리 저은 수희가 겨우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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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설을 인정하자고요?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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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나랑 연애하겠습니까?”

그가 설핏 미소를 보였다.

언제 보아도 사람을 홀릴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였다.

뭐가 진심이고, 농담인지 구별을 할 수 없는 수희는 얼이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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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일 리는 없고, 지금…… 농담하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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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진담이었고, 뒤는 농담입니다.”

그러니까, 열애설을 인정하자는 건 진짜.

연애하자는 건 가짜.

뭐가 됐든 수희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지러운 정신을 다잡아 보려 수희는 대단히 노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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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왜 사귀지도 않는데 열애설을 인정하자는 거예요?”

수희의 말에 승조는 선뜻 대답을 내어놓지 못했다.

원래 필요로 한 건 병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수희와의 열애설이었다.

열애설을 인정한다면 병호는 오늘 하루 찾아온 걸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달달 볶아 대며 헤어지라고 귀찮게 굴 게 분명했다.

그게 승조가 원하던 것이었다. 자신 때문에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아버지.

서른이 넘어서 하는 반항에 펄쩍 뛸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와 그 시절에 간절히 원하던 관심을 받겠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미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시기는 지났고, 더는 아버지에게 바라는 게 없었으니까.

굳이 이 열애설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아버지가 아닌 수희였다.

지금 있는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승조는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었다.

잘못된 소문 하나로 수희의 세상이 무너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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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이 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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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요?”

하지만 승조는 수희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했다.

별다른 이유가 되지 못하는 아버지의 핑계를 댄 건, 아마도 수희가 자신을 부담스레 여길 것 같아서였다.

수희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구구절절하게 과거를 설명한들, 수희에게 자신만큼이나 중요한 기억은 아닐 것이다.

그랬더라면 애초에 자신을 잊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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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자면 깁니다.”

승조의 사정이 궁금했지만, 수희는 다른 물음을 먼저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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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전혀 타격이 없을 수는 없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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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내 영역이니 오수희 씨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수희는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지도 않는 연애를 인정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건 무딘 칼이라 여겼던 사람들의 날 선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당연히 열애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관심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거라는 건 분명했다.

임신한 여배우가 아니라, 연애 중인 여배우로.

물론, 얼마 못 가 그의 아이를 뱄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이건 추측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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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사장님은 임신설보다는 열애설이 낫다고 하지만, 전 생각이 조금 달라요. 지금은 열애설로 뜬소문을 묻어 둘 수 있을지 몰라도, 오히려 나중엔 대표님이랑 엮어서 임신설이 다시 불거질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승조 역시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열애설을 인정했을 때 벌어질 일들을 모두 고려하고 이후 대응을 설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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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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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설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다고요?”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수희는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한승조라면 증명해 낼 수 없는 말은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한승조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건 몇 없지만, 비밀을 털어놓은 후 출처 모를 신뢰 같은 게 생겼다.

다만 정말 이 사람의 말만 믿고 손을 잡아도 될지, 그게 아니라면 이대로 임신설이 덮이기만을 기다릴지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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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고민할 게 있습니까?”

승조의 말 한마디에 생각에 잠겨 있던 수희의 정신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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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요.”

수희는 끝내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승조는 수희를 설득하는 걸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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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게 도움이 되는 거짓말도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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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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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기회라는 걸 알 텐데요. 일단 열애설로 임신 스캔들 잠재운 후에 복귀하고, 열애설도 잠잠해지면 그때 결별 기사 내보내는 거.”

승조가 무심하게 툭툭 뱉어 낸 몇 마디 말은 수희를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하나 승조가 마지막에 한 말이 수희의 가슴에 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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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조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복귀할 수 없는 거. 아니, 하지 못한다는 거.”

잠시 머물던 침묵이 사라지고, 승조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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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문제 때문에 오늘 오수희 씨한테 보자고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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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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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희 씨가 복귀할 방법, 있습니다.”

적잖게 놀란 수희의 두 눈이 커졌다.

방법이 있다는 말에 잔잔하게 뛰고 있던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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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요, 그 방법이.”

승조가 옆에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과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수희는 켜져 있는 태블릿에 박혀 있던 시선을 떼어 내 승조를 바라봤다.

수희의 앞에 놓인 태블릿을 내려다본 승조가 느릿하게 입술을 떼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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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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