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 또 하나의 과거 (29/118)


29. 또 하나의 과거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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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말 좋아하는구나. 한 대표님을.]

막상 다른 사람 입을 통해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고 들으니 더 충격이 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스물일곱 평생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배우 일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왔었다.

함께 작품을 하는 남배우들과 좋은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그 정도에서 끝이 났다. 상대방이 관계를 깊이 맺으려고 해도 내키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직도 연애 경험이 없는 건 수희의 인생에 늘 애란이 발을 들여놓은 탓도 있었다.

구속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가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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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좋아한다는 건 뜨거워야 하는 거 아냐?”

제대로 된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애란이 사고를 당하게 되자, 연애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됐다.

그렇기에 수희는 승조에 대한 마음을 스스로 받아들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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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으로 이때까지 실컷 좋아한다고 다 말해 놓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수희는 혼란스러워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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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보면 죽고 못 살잖아. 난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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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얼굴이 다른 것처럼, 사랑에도 다른 모습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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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럼 어떤 모습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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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이제 낯간지러운 말 그만할래.]

연애 횟수가 고작 두 번밖에 되지 않는 철용은 으스대듯 말한 것 같아 민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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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을 하다가 말아. 난 어떤 모습인데.”

수희는 가장 중요한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아 끈질기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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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가 한 대표님이랑 연애하면서 알아 가면 되지.]

철용에게 이 열애설이 가짜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친오빠 같은 철용에게만은 숨기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려면 자신의 사정을 다 털어놓아야 했기에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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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지금 데리러 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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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데? 지금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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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승조 대표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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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님 지이이입?]

 

***

철용은 수희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미리 장착해 둔 잔소리들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호텔에 있던 애가 갑자기 승조의 집에 있다고 하니 철용이 얼마나 놀랐을까 싶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30분 동안 잔소리를 들으면 착한 마음도 싹 달아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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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님 집은 어떻게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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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타고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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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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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님 아파서 내가 대신 운전해 준 거야.”

뭐가 그리 탐탁지 않은 건지 철용은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희를 질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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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황에서는 차 비서님을 불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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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차 비서님이 생각이 나겠어?”

차를 끌고 승조의 집으로 출발하고 나서야 차 비서의 존재가 기억났었다.

그러나 이미 업무 시간이 지난 뒤기도 했고, 승조가 정말 쓰러지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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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귀는 사이라지만, 아무리 편한 사이라지만! 집은 그렇게 쉽게 가면 안 되지. 적어도 100일은 네가 시간을 두고 한 대표님을 지켜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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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같은 사람을 사람들이 정의한 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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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다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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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툭 뱉어 낸 말에 철용의 이마 위로 핏줄이 빠직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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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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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갈게.”

수희는 철용이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뒷좌석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열린 문 너머로 철용의 잔소리가 터져 나오기 전에 뒷좌석 문을 닫아 버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온 수희는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뭉친 근육들을 풀고 나니 그나마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얇은 슬립을 입은 수희가 침실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고 누운 수희는 나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잠이 오는 건 아니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더듬어 가던 수희는 손끝으로 목덜미를 짚었다.

분명 물줄기로 온몸을 씻어 내렸는데, 승조의 숨결이 비벼졌던 목덜미는 아직도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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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고마워…… 고마워.”

수희는 승조가 했던 말을 입으로 연이어 중얼거렸다.

그 고생하고 얻어 낸 건 고맙다는 말 한 마디였다.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그 말을 꺼내며 미소를 짓던 그가 떠올랐다.

몸을 모로 돌린 수희가 두 손을 겹쳐 볼 밑으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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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얼굴이 다른 것처럼, 사랑에도 다른 모습이 있는 거야.]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직 사랑은 아니라는 거다.

어쩌면 호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도 있었다.

며칠 지나다 보면 사라질 수도 있는 감정.

몇 번 만나다 보면 쉬이 잊을 수 있는 감정.

그래도 굳이 사랑이라고 정의하자면 풋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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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이라…….”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때때로 사랑에 빠진 연기도 했었다.

가슴이 설레고, 잠 못 이루고, 얼굴만 보면 말문이 턱턱 막히고.

어떨 때는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게 사랑이었다.

정말 승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게 된다면 그런 감정을 다 느끼는 걸까.

일곱 살 아이처럼 수희는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찾아왔다.

생각을 계속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수희는 잠을 청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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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조 대표님이랑 있다 보면 알게 되겠지.’

진짜 드라마 속에 나오는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하게 될지.

이 작은 마음의 크기가 얼마나 빠르게 부풀어 오를지 수희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

수희가 떠난 뒤 승조는 식은땀으로 뒤덮인 몸을 씻고 나왔다.

휴대폰에 쌓여 있는 메일 알람과 메시지들을 확인했지만 답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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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손목을 이마 위에 얹은 승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에 갇힌 건 중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수희가 아니었다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증상이 좋아져 약을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았는데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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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요?”

여전했다, 오수희 너는.

내가 열다섯 살 때도 넌 공포감에 덜덜 떠는 날 그렇게 안심시키려 했다.

16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많이 커 버린 손일까.

그래도 손아귀에 들어오는 손은 여전히 연약하고 작았다.

그 손에 힘들었던 시기를 위로받고 버텨 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네가 내 손을 잡아 줬을 때, 창고에 갇혔던 그날 일이 선명하게 되살아났었다.

그 당시에는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두렵기만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네 생각에 웃음부터 나온다.

그늘진 내 과거조차 네가 존재함으로 인해 어둠이 걷히는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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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널 봐주실 분들이야.”

승조가 자신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를 처음 본 건 열네 살을 막 시작한 첫 달이었다.

등 뒤에 서 있는 병호가 승조의 등을 떠밀자, 승조가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던 걸음을 떼어 냈다.

우물쭈물하던 승조가 머리를 푹 숙이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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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 살 때까지는 친가에서 자랐다고 했지만, 승조의 기억에는 두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친할아버지인 한충섭이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승조의 어깨를 붙잡고 품으로 끌어왔다.

승조의 어깨에 붙어 있는 충섭의 손에는 짭짤한 바다 냄새가 배어 있었다.

부산에 있는 친가로 내려오기 전에 병호에게서 충섭이 어부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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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려요, 어머니, 아버지.”

병호는 뒤에 있던 캐리어를 끌고 와 승조의 옆에 두었다.

어색하게 충섭의 품에 안겨 있던 승조에게 병호가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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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어.”

어쩌면 무심하고, 무미건조한 말에 승조는 울컥 눈물이 나려 했다.

충섭의 품에서 얼른 벗어난 승조가 병호의 손을 붙잡았다.

승조는 뒤에 있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병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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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아빠랑 있으면 안 돼요? 나 친구들 다 서울에 있잖아요. 서울에서 지내고 싶어요.”

이미 승조에게 설명을 했기에 병호의 목소리는 기운이 쭉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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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일부터 중국으로 장기 출장 간다고 말했잖아. 너 혼자서 서울에서 지내는 건 아빠가 못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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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엄마랑 사는 건 안 돼요?”

승조의 발언에 일순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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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애한테 말 안 한 거냐?”

침묵을 깨트린 건 둘을 지켜보던 친할머니 영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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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건지 병호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영순에게 일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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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어머니는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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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말하려고. 너 편할 때 말하겠다는 게야? 애한테도 준비가 필요한 법이야.”

날카로운 영순의 충고에도 병호는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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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영순은 탐탁지 않아 했지만, 병호의 아들이니 더 간섭할 수 없었다.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승조는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한 지는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어머니를 만나고 있었지만, 반년 전부터는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승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했을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아직 자신에게 어머니가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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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자주 연락할게.”

매일 연락하는 게 아니라 ‘자주’라고 말했다.

병호는 못 지킬 약속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병호의 눈에는 씩씩한 아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승조는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애였다.

아쉬움에 승조는 병호의 손을 한참 붙잡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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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신데 오늘은 자고 가. 애도 아빠랑 있고 싶다는데.”

아버지와 떨어지게 될 승조가 걱정됐던 건지 충섭이 제안했다.

잠시 말을 잃었던 병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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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올라갈게요. 하루 더 있는다고 애가 덜 외로운 것도 아니니까요.”

승조는 내심 병호가 하룻밤이라도 옆에서 머물러 주길 바랐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싶지 않아 붙잡고 싶은 마음을 삼켰다.

병호는 승조를 눈으로 한 번 흘기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잠깐 열렸던 문틈 사이로 들어온 시린 바람이 승조의 가슴에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집 안에 도는 노인의 냄새, 오래된 흔적이 묻어나 있는 벽지, 얇은 주황색 장판.

이 모든 게 승조는 낯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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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가 네 집이니까, 편하게 있어.”

친절하게 건네는 영순의 말에도 승조는 반발심이 피어났다.

내게 집이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던 곳뿐이라고.

그렇게 단 한 번도 집으로 느낀 적 없는 곳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현관에 앉아 운동화 끈을 묶고 있는 승조의 곁으로 충섭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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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할미가 아침 차려 놨는데 먹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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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번이라서요.”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승조는 곧 떠날 사람처럼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에게 정을 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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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술이라도 뜨고 가지.”

영순은 된장찌개를 끓인 양은 냄비를 둥근 식탁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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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요, 애 귀찮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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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클 땐데 걱정돼서 그러지.”

두 사람이 자신 때문에 옥신각신하는데도 승조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승조가 운동화 끈을 풀리지 않을 정도로 꽉 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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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

승조가 묵직한 문을 밀고 나가려는데, 뒤에서 충섭의 부름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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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야, 기다려 봐라.”

충섭은 전화가 오는 오래된 폴더 폰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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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한테서 온 전화야.”

아버지라는 말에 승조는 우뚝 멈춰 서더니 충섭에게 돌아섰다.

굵은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 충섭이 휴대폰을 귀에 바짝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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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다.”

승조는 어쩌면 병호가 자신을 데리러 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차올랐다.

아무 말 없이 병호의 말을 듣고 있던 충섭의 주름진 눈이 승조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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