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 하고 싶어요 (66/118)


66. 하고 싶어요
2022.09.17.


수희의 귓가에 쿵쿵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가슴이 아니라 바로 귀 옆에서 뛰어 대는 것만 같았다.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에 수희는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수희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가 떨어지기만을 반복했다.

침묵 속에서도 대화가 오가듯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현관의 불빛이 한순간에 달아나 버렸다.


“싫으면 거절해도 돼.”

시야가 차단되니 승조의 목소리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가만히 다독거려 주듯 그의 음성은 한없이 온유하기만 했다.


“대신 아무 짓도 안 할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겠지만.”

덧붙는 말에는 그가 설핏 미소를 품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승조는 당장이라도 수희를 침대로 데리고 가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다.

본능적으로 수희의 옷깃 안으로 들어간 두 손을 그녀에게서 떼어 내기 싫었다.

싫다고 하면 여기서 멈출 거라고는 했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입을 맞추는 내내 몰아붙이는 자신을 버거워하는 수희를 보니 너무 이른 건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대고 있던 벽에서 등을 떼어 낸 수희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고는 수줍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겨우 말을 꺼내 놓았다.


“싫을 리가…… 없잖아요.”

“…….”

“나도 그러고 싶은걸요.”

그와 침대에 뒹굴며 입을 맞추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싶었다.

바닥을 기듯 자그마한 목소리인데도 승조의 귀에는 정확히 들어와 꽂혔다.


“수희야.”

“…….”

“나 봐.”

수희의 머리꼭지 위에 승조의 부름이 떨어졌다.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입술이 포개졌다.

순식간이었다. 승조가 수희의 허벅지를 받치고 들어 올리자, 발이 바닥에서 붕 떠올랐다.

아래로 떨어질까 싶어 수희의 가는 다리가 그의 허리에 감겼다.

승조는 수희를 안은 채로 침실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촉, 촉, 촉. 수희의 입술이 참새의 부리처럼 승조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발그스레하게 달아오른 얼굴 때문인지 입술에도 따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달빛에 잠긴 침실로 들어선 승조가 침대에 수희를 눕혔다.

푹신한 침대 위로 쓰러진 수희가 상체를 들어 올리는 사이, 그가 넥타이를 붙잡고 끌어 내렸다.

와이셔츠에 감겨 있던 넥타이가 풀리고, 승조는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어 냈다.

재킷을 벗어 내는 몸짓에 여며져 있는 와이셔츠의 단추 부분이 팽팽히 땅겼다.

작은 몸놀림에도 승조의 움직임에 따라 큰 근육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옷은…… 갑자기 왜 벗는 거예요?”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은 건 알고 있었지만, 돌연 재킷을 벗자 수희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갑자기 더워졌거든.”

와이셔츠 단추를 대충 풀어낸 승조가 상체를 숙여 오자 수희가 뒤로 몸을 눕혔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긴장감에 눈동자가 이리저리 요동쳤다.

곧 이 방에서 일어날 일들이 예측돼 머리가 마비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긴장하니까 건들지를 못하겠는데.”

“거짓말. 지금 손이 어디 있는지 알죠?”

그의 손은 들어 올려진 수희의 셔츠 안에 있었다.

그의 손바닥이 닿아 있는 살결들이 델 것처럼 뜨거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에게 전부 잡아먹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선을 넘을 듯 아슬아슬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은밀히 흘렀다.


“너한테 계속 닿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자신의 것이라고 흔적을 남겨 두고 싶었다.

승조가 허리를 숙여 수희의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췄다.


“지금보다 얼마만큼 더 너한테 닿아도 될까.”

지금까지 참아 내는 데도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했다.

이제 곧 한계에 도달하니 이후에는 멈추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게 분명했다.

대답을 재촉하듯 승조의 눈길이 수희의 얼굴에 오랫동안 달라붙어 있었다.


“얼마만큼 닿고 싶은데요?”

되묻는 말에 승조의 두 시선이 수희의 입술 위로 향했다.


“빈틈없이 전부. 네 전부에 닿고 싶어. 그럼 넌 허락해 줄래?”

다물어져 있던 수희의 입술이 스르르 벌어졌다.

아직 고르지 못한 말들이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소리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귀가 뜨끈하다 못해 떨어져 나갈 만큼 욱신거렸다.

애초에 침실에 그와 함께 들어온 순간부터 마음은 하나만을 가리켰다.

안기고 싶다. 그에게.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그가 닿을 때까지 마음껏, 실컷 그를 안고 싶었다.

그러나 결심이 선 마음과는 달리 확신이 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하면.”

“…….”

“나한테 실망할 거예요?”

침실에서 벌어질 일은 미리 예감했지만, 너무나 빠른 속도에 따라가기 벅찼던 것 같았다.

막상 상황을 직면하고 나니 마음이 너무나 앞서 나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수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승조가 단호하게 일러두었다.


“그런 말 하지 마. 너한테 실망 같은 거 안 하니까.”

아마 수희가 준비되었다고 해도 승조는 그녀를 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불그스레 달아오른 수희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수희가 지금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허락도 없이 수희를 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천천히 해.”

안심시켜 주듯 승조의 어투는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네가 준비됐을 때, 그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그가 끝도 없이 다정하게 구니 수희는 참을 수가 없어졌다.


“다른 건 계속해도 되는데.”

조곤조곤 속삭이는 목소리가 승조의 가슴 위를 간질였다.


“하고 싶어요. 승조 씨랑.”

주어가 붙지 않은 말에 승조의 눈에서 별안간 불빛 같은 게 일렁거렸다.

수희가 원하는 게 키스라는 걸 아는데도 승조의 욕구에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참아야 하고, 버텨야 하는 걸 아는데 몸은 너무나도 정직했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하고, 그녀를 원한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립스틱이 번진 수희의 입술을 엄지로 닦아 내며 승조가 말했다.


“널 놓치고 난 후에 내가 가장 후회한 게 뭔지 알아?”

수희가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거.”

“…….”

“그래서 더는 내 감정을 숨기지 않기로 했어.”

“지금은 어떤 감정인데요.”

그의 입매가 보기 좋게 올라섰다.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

“…….”

“그래서 입 맞추고 싶고, 안아 주고 싶고, 사랑해 주고 싶어.”

두근거리는 기분 좋은 떨림이 온몸에 전해졌다.

솜사탕을 머금은 것처럼 입 안이 달곰하고, 구름 속에 퐁당 빠진 듯 몸이 붕 뜬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면 엄청 심장 떨리는 거 알아요?”

“억울할 필요 없어. 넌 날 늘 그렇게 만드니까.”

좋은 말만 골라서 해 주기로 작정한 걸까.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이 가슴에 와닿으니 수희는 가슴에 몽글몽글한 꽃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좋아해요, 승조 씨.”

이미 그가 아는 마음을 다시 한번 전했다.


“정말 너무너무 좋아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말이 있었더라면 그 말을 실컷 해 줬을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로밖에 지금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사랑, 이건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말은 더욱 소중한 순간에 해 주기 위해 참아 두기로 했다.

마음에 품고 있을 때가 오히려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으니까.

***

침대에 혼자가 아닌 승조와 둘이 누워 있어서였을까.

수희는 잠이 오지 않아 달빛이 내려앉은 승조의 얼굴을 조용히 눈에 담고 있었다.

깊이 감겨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린 승조가 나른한 눈빛으로 수희를 바라봤다.


“잠이 안 와?”

잠겨 있는 승조의 목소리가 듣기 좋아 수희는 좀 더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장가라도 불러 줄까?”

풉 하고 웃음이 나온 수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진심이에요?”

“난 매사에 진지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을 보니 정말 진심이었나 보다.


“자장가 들으면 잠이 깰 것 같아요.”

“나 노래 잘 불러.”

“그것도 진심인 거죠?”

덩달아 잠이 깨 버린 승조가 웃음이 터진 수희의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오늘 아버님 만나고 왔다며. 무슨 이야기 했어?”

승만의 이야기에 수희가 잠시 말을 잃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을 한참 정리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사실을 알아 버렸어요.”

수희는 승조의 가슴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떼어 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빠가 간암이래요. 그것도 3기.”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심장은 칼로 쿡쿡 쑤셔 대는 것 같았다.

피가 송골송골 맺힌 심장이 지혈도 하지 못해 욱신거렸다.


“6개월 시한부 선고 받고 날 만나러 온 거래요. 죽기 전에 내 얼굴 보고 싶어서.”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 수희는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했다.


“뇌사자 장기 이식을 신청해 두긴 했지만, 확률적으로 이식받기 어렵다고 해요.”

수희를 따라 상체를 들어 올린 승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식밖에 방법이 없는 거야?”

“이식이 아니라면 언제 다른 곳에 전이돼 퍼질지 모른대요.”

지금도 갖은 시술로 버티고 있을 뿐, 언제 몸 곳곳에 암이 피어날지 모른다.

이미 결정을 내린 수희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

“…….”

“아빠한테 이식해 주려고 해요.”

수희라고 쉽게 꺼내는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배에 큰 상처를 남길 것이고, 어쩌면 공여로 인해 몸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었다.

자신을 무책임하게 내버려 둔 채 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승만을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식을 선택한 건, 이대로 죽어 가는 승만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였다.

무엇보다 승만에게는 자식을 버리고 떠난 이유가 있었다.

애란의 불륜,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평범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네 생각 변하지 않는 거야?”

“지금은 그래요.”

생각에 잠긴 승조는 한참 말이 없었다.

이식하게 된다면 꽤 오랫동안 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몸에는 기다란 상처를 남길 것이고, 그건 거금을 들여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수희가 이 모든 걸 고려하지 않고 결정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승조에게 중요한 건, 이기적일지 몰라도,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승만보다는 수희였다.


“정말 괜찮겠어? 수술 때문에 네가 잃게 될 게 너무 많은데.”

“가족이잖아요. 가족을 잃는 것보다는 내가 쥐고 있는 걸 놓는 게 더 나아요.”

가족을 위해 한 선택에 승조가 반대할 수는 없었다.

수희가 아니라면 승만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수희에게 올 여파가 어쩌면 더 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수희의 동그란 어깨를 감싼 승조가 말을 꺼냈다.


“그렇게 해. 네가 후회가 남지 않는 쪽으로.”

길게 입술을 늘인 수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는 악몽이나 다름없었지만, 승조를 만나고 난 이후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온 수희가 ‘그’라는 안식에 기대어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의 곁에서는 모든 걸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승만을 살려야 했다.

대본을 읽지 못하는 지금도 그의 도움으로 복귀했다.

간 이식을 한 뒤에도 체력만 다시 기른다면 작품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빠는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내 일부를 떼어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