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불륜의 증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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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불륜의 증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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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불륜의 증거물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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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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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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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잡으러 가면 되니까.”
집요하리만큼 입술을 바라보고 있던 승조가 제 위에 앉아 있는 수희에게 입을 맞췄다.
방금 마신 와인 때문인지 다물려 있던 수희의 입술이 벌어지자 달뜬 열기가 흘러나왔다.
벌어진 입술을 한 입 베어 물자 진득한 포도 향이 입 안에 퍼졌다.
아랫배를 맞붙인 승조가 더욱 깊게 숨결을 밀어 넣었다.
수희는 다리 사이가 저릿한 감각을 느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입 밖으로 나온 자신의 소리가 낯설어 수희의 얼굴에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허리를 짚고 있는 그의 손이 너무나 뜨거워 닿아 있는 부분에 땀이 배어날 것만 같았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 승조의 손이 수희의 뒷덜미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점차 흥분이 더해지는 키스에 수희의 머리가 뒤로 밀리려 했지만, 그의 커다란 손이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머리를 단단하게 받치고 있었다.
맞닿은 몸에 전해지는 체온을 통해 그가 얼마나 절제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와인만큼이나 붉어진 입술을 떼어 낸 수희가 그를 바라봤다.
알코올을 마신 건 수희인데 도리어 그의 두 눈이 취한 것같이 보였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식혀 보려 수희가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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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에 엄마 돌아가시고 첫 생신이라 간단하게 제사 지내려고 하거든요. 승조 씨도 시간 되면 엄마 집으로 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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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라고 불러 주면 갈게.”
짓궂게 구는 승조에게 수희가 인심 썼다는 듯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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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도 우리 집으로 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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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갈게.”
냉큼 대답하는 그가 귀엽게 느껴져 수희는 푸스스 웃음이 흘러나왔다.
승조의 아래에서 내려온 수희가 테이블에 있던 대본을 뒤늦게 확인했다.
대본을 훑어보는 수희를 보고 승조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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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본 읽을 수 있는 거야?”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수희가 고개를 저으며 대본을 제자리에 내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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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직 읽을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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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면 약은 내가 받아다 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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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끊은 지 오래됐는데도 상태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활자를 봐도 울렁거리거나 어지럽지도 않고요.”
수희만큼이나 승조가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본을 보낸 메일을 확인해 보면 매번 새벽에 발송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곁에는 항상 승조가 있어 주겠지만, 언제나 그에게만 의지한 채 살아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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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대본 읽는 연습을 꾸준히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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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때문에 힘들 텐데 무리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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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겨 내야죠. 언제까지나 오빠한테 기댈 수만은 없으니까.”
수희가 자신의 도움 없이 스스로 트라우마를 이겨 내는 걸 승조 역시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내심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나 보다.
그녀가 자신에게 기대어 의지하는 지금이 수희 옆에 있는 이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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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기대도 돼. 네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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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어 줘요. 손이 닿을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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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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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요할 때마다 당신을 찾아갈 수 있게.”
고개를 숙인 수희가 그의 어깨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이렇게 따뜻한 품을 왜 그간 모르고 살았을까.
좀 더 빨리 승조를 알았더라면 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어쩌면 엄마가 떠난 후부터 생긴 이 지옥 같은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놓아주지 말아야지. 아무에게도 뺏기지 말아야지.
수희는 승조를 꽉 끌어안으며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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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가 빠르게 흘러가고, 애란의 생일인 토요일이 되었다.
일찍이 촬영을 끝낸 수희가 스튜디오를 나오는데, 근처에 익숙한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승조가 밖으로 나오자 수희가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러다 뒤늦게 주변에 있는 스태프들과 조연 배우를 의식하고 올라가는 텐션을 잠재웠다.
승조의 곁에서 살짝 떨어진 수희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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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집에서 보기로 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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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보고 싶어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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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서 음식 준비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텐데. 맞춰서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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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같이 하지, 뭐.”
소리 없이 미소 지은 승조가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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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까?”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을 뒤로하고 조수석에 몸을 실으려고 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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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트니 방금까지 함께 촬영했던 화정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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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받아.”
화정은 들고 있던 노란 장미 꽃다발을 수희에게 내밀었다.
화사하게 피어 있는 꽃다발에 수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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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웬 꽃다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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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희 어머님 생신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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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셨어요?”
동그랗게 눈을 뜬 수희를 보고 화정이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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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김시운 작가님한테 들었어. 오늘이 너희 어머님 생신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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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랑 김시운 작가님 관계에 대해서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화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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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들었어.”
역시, 승만이 화정에게 전부 말을 한 건가 싶었다.
화정은 스태프들의 눈과 귀를 의식하며 더욱 작게 소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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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의 딸이라며. 작가님이 너 곤란할까 봐 사람들한테도 비밀로 하고 싶다더라.”
익명 뒤에 숨어 있는 승만이 오래 알고 지낸 화정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숨긴 듯했다.
화정은 자신이 승만의 딸이라는 걸 안다 해도 별달리 신경 쓰지 않을 걸 알고 있었지만, 애초에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는 없는 게 낫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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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른 분들께는 비밀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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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 내 입이 정말 무겁거든.”
수희를 가볍게 끌어안은 화정이 따듯한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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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쁜 딸 낳아 줘서 고맙다고 내가 직접 인사드리고 싶은데, 수희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어.”
화정이 세심하게 자신을 신경 써 주는 마음이 고마워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무래도 오늘이 애란의 생일이다 보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엄마 역할을 맡은 화정이 축하해 주니 우울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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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도 선배님 이야기 꼭 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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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널 잘 챙겨 주는 엄마 같은 사람 있다고 꼭 말해 줘. 그래야 하늘에 계신 엄마도 안심하고 널 나한테 맡기시지.”
화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승조는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승조의 시선을 느낀 화정이 수희의 등을 두드리며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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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가 봐. 남자친구 기다리는데 내가 오래 잡아 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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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중에 연락 또 드릴게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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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들어가 봐.”
수희가 차에 올라타자 승조도 운전석으로 돌아와 몸을 실었다.
엔진이 달궈진 차가 출발할 때까지 화정은 손을 흔들며 수희를 배웅했다.
사이드 미러로 화정을 바라보고 있는 수희에게 승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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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 씨랑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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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너무 친해 보여서 질투 나요?”
장난스럽게 묻는 말에 승조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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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성한테까지 질투를 느낄 만큼 질투심이 많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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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땐 그런 것 같아요.”
준영에게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로 찔러 대는 것만 봐서는 그랬다.
도로로 들어온 차에서는 화정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수희는 품에 안고 있는 꽃다발을 내려다보다 손으로 꽃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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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최근 들어 오빠보다는 선배님을 더 많이 봤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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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좀 질투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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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까지만 해도 동성한테는 질투 안 한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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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자주 볼 수 있다는 게 부럽잖아.”
정말 같이 살아야 하나. 그럼 매일 헤어지지 않고 볼 수 있을 텐데.
잠시 이성을 잃고 같이 살자는 말이 흘러나올 뻔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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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 잘해 주시는 것 같네.”
상념을 깨트리는 승조의 말에 수희가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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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지도해 주시고, 촬영하기 전에도 미리 리허설 꼼꼼히 맞춰 주세요.”
수희는 승조에게 미처 알리지 않은 사실 하나가 뒤늦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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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아빠랑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시는 사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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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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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 같이 하면서 그 뒤로 일적으로 친하게 지내시게 됐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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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널 잘 챙겨 주시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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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빠랑 선배님 사이 의심했던 거 있죠.”
승조가 궁금하다는 듯 수희에게 시선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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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의심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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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결심하고 아빠 작업실을 찾아갔는데, 거기에 선배님이 신던 구두가 떡하니 있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보조 작가 구두였던 거 있죠.”
그 당시에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아찔했지만, 지나고 나니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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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겠네.”
승조의 손이 수희의 머리 위를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그 손길이 좋아 수희는 그의 손목을 붙잡고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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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나한테 행운 같아요.”
숨을 들이켜자 은은한 꽃 향이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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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으로 아빠랑 좋은 선배님도 만나게 됐고, 무엇보다 오빠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던 첫 작품이잖아요. 그러니까 나한테는 행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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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도 행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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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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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이렇게 다시 웃을 수 있게 만들어 줬으니까.”
그러니까 네 미소가 변하지 않길, 승조는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
애란의 집으로 온 수희는 승조와 부지런히 생신제 준비를 했다.
간단하게 한다는 게 음식을 만들다 보니 상을 가득 채울 만큼 종류가 많아졌다.
제사 준비가 거의 끝나 갈 때쯤 주형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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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주형은 제사 준비를 돕고 있던 승조를 검지로 가리켰다.
수희는 느지막이 나타나 승조에게 손가락질하는 주형의 손을 곱게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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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가 일찍 오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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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덕분에 둘이서 데이트하고 있었구먼.”
능청스럽게 넘어가려는 주형을 뾰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승조가 옆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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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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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편하게 하세요, 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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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편하게 할게, 처남.”
기다렸다는 듯 승조의 말꼬리가 잘렸다.
꽤 잘 어울리는 투 샷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수희가 애란의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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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이 너 엄마 장례식 때 썼던 사진 어디다 놔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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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 나는데? 서랍장이나 이불장 찾아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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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애란의 방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성격이 밝고 붙임성이 좋은 주형은 처음 본 승조와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주형의 말대로 수희는 서랍장을 제일 먼저 찾아보았다.
이곳저곳을 보아도 서랍장 안에는 애란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보이지 않았다.
가장 아래에 있는 서랍장을 닫은 수희가 자리에서 일어서 이불장을 열었다.
이불장 아래에 위치한 서랍장을 열자 액자의 뒷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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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액자를 서랍장에서 꺼낸 수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말고 도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두꺼운 이불들 가장 아래에 짓눌린 종이 끝자락을 발견하고 눈살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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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종이를 붙잡아 당기자 세 장의 종이가 딸려 나왔다.
아무런 생각 없이 종이에 박힌 글자를 읽던 수희의 눈이 한계점까지 키워지기 시작했다.
[소장]
그 두 글자 아래에 적혀 있는 원고는 수희의 어머니 애란이었다.
긴 고소 사실 가장 아랫부분에 적힌 고소 내용은 이러했다.
[피고는 원고의 남편 오승만과 15년간 불륜을 이어 온 것을 원고에게 실토하였습니다. 더불어 원고의 남편 오승만과 함께 호텔에서 찍은 걸로 추정되는 사진도 여러 번 보내왔습니다. 이에 행복했던 가정을 깨트린 피고는 원고에게 정신적인 피해에 따른 위자료로 30,000,000원을 지급함이 마땅하다고 판단됩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장 내용에, 종이에 꽂혀 있는 수희의 시선이 크게 뒤흔들렸다.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 것처럼 일순 숨마저 멈췄다.
이게 사실일 리 없었다. 분명 아버지는 애란이 불륜을 저질렀다 했었다.
그 때문에 상처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수희와 주형을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뒷받침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수희는 10년 만에 나타난 승만의 말을 그저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자신의 불륜을 애란을 팔아 덮은 줄도 모르고.
그때, 문밖으로 자신을 잘도 속인 승만의 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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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아, 아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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