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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빨간 구두 (73/118)


73. 빨간 구두
2022.10.11.


수희는 화끈거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주형에게 진정하라고 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화를 주체 못 해 손을 올리고 말았다.

수희에게 뺨을 얻어맞은 주형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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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뭔데 때려.”

잔뜩 뭉개진 목소리에는 증오가 가득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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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주형아. 때리려던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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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아빠도 나한테 손 한 번 안 댔는데 네가 뭔데 날 때리냐고!”

결국 폭발해 버린 주형이 식탁 위에 놓인 반찬들을 팔로 밀어 바닥으로 던졌다.

수희의 발 앞에 반찬들이 나뒹굴며 흩어졌다.

이어 죽을 들어 수희에게 던지려는데, 승조의 손에 저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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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 놓으라고!”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보지만 승조의 손안에서 팔을 뺄 수가 없었다.

움켜잡힌 팔이 비틀리자 주형은 들고 있던 죽 그릇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죽이 바닥에 철퍼덕 엎어지는 바람에 승조가 손을 놓아주자, 눈이 돌아가 버린 주형은 승조에게도 달려들 듯했다.

혹여 승조까지 싸움에 말려들까 싶어 수희가 주형의 팔을 붙잡았다.

주형은 수희의 손이 닿자마자 멸시의 눈초리를 보내며 수희를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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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야 하는 건 엄마, 아빠가 아니라 누나야. 알아?”

날아온 비수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희의 가슴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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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따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주형이 독이 담긴 악담을 다시금 퍼부으려던 때였다.

벌어지는 주형의 입이 승조의 손에 의해 틀어막혔다.

주형이 발악하며 움직였지만, 승조는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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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를 부리는 건 이 정도에서 그만해.”

눈을 부라리며 주형이 몸을 틀어 승조의 가슴팍을 거칠게 밀어냈다.

격하게 반항하는 힘에 승조가 한발 물러서자 주형이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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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아니면서 함부로 끼어들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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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 일이면 내 일이나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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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형이라고 불러 주니까 진짜 가족이라도 된 것 같아요? 설마, 진짜 누나랑 결혼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죠?”

잔뜩 비꼬던 주형이 하찮다는 시선을 수희에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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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더러운 꼴 다 봐 놓고 누나랑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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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수희가 아니라 너야.”

실소를 흩뿌린 주형이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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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에 틀린 거 하나 없어요. 누나가 엄마 죽였고, 아빠도 죽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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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틀렸다는 건 잘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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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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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여기서 나가. 다른 쪽 얼굴까지 나한테 맞고 싶지 않으면.”

승조가 인내의 한계치에 도달한 지는 이미 오래 지났건만, 수희의 동생이니 한발 물러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수희에게 상처를 낸다면 이번에는 정말 손이 올라갈지도 몰랐다.

주형은 한 치의 거짓도 담기지 않은 진담에 수희에게 하던 것처럼 달려들 수 없었다.

승조와 자신의 힘 차이를 조금 전에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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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내 간은 안 받는다니까 누나가 이식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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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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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죽으면 나 다시는 누나 안 볼 거야.”

자신에게 하는 결심과도 같은 말이었다.

돌아서는 순간까지 수희를 노려보던 주형이 엉망으로 변해 버린 주방을 벗어났다.

현관문이 덜컥 닫히자 수희의 몸이 아래로 주저앉았다.

쑥대밭이 되어 버린 주방처럼 수희 역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승조는 수희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켜 세우며 식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주형을 때린 손바닥이 얼얼해 수희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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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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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한심해.”

한쪽 무릎을 꿇은 승조가 바닥에 꽂힌 수희의 시선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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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곁에 승조가 없었다면 수희는 더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눈앞이 눈물로 얼룩져 눈꺼풀을 빠르게 깜박였다.

꾹꾹 짓눌린 눈물방울들이 다리 위로 툭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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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이 저렇게 만든 거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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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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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날 배우로 만들겠다고 주형이는 없는 자식처럼 키웠어요.”

오디션 때문에 수희는 매번 비싸고 예쁜 옷을 사 입혔지만, 주형은 옷이 작아져 손목이 드러나도 옷 한 벌 제때 사 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축구 경기를 하다 팔이 부러졌을 때도, 수희의 촬영 스케줄 때문에 수술도 하지 못하고 애란을 기다렸다.

수희를 쫓아다니느라 주형의 입학식이나 졸업식은 당연히 불참이었고, 심지어 주형의 생일을 잊고 지나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나마 자신에게 관심을 주었던 승만이 10년 만에 나타났는데, 수희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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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한번 온전히 받아 본 적 없는 애예요. 그래서 저렇게밖에 말 못 하는 걸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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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 때문이 아니잖아. 네가 죄책감 느낄 필요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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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요. 주형이 말대로 나만 없었으면 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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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야.”

승조가 수희의 말을 가로막았다.

푹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자 끝도 없이 차오른 눈물이 아래로 떨어졌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승조가 찬찬히 닦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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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비난하지 마. 누구도 널 비난할 수 없어. 그게 너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말아 물었던 수희가 툭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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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게요. 그렇게 할게요.”

굽혔던 무릎을 세운 승조가 수희의 머리를 감싸 가슴에 품으며 아픈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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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혼자 떠안는 거 못 보겠어. 전부 주형이한테 말해.”

승조의 허리를 감싸 안은 수희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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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프면 되잖아요. 주형이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승만이 불륜을 저질러 애란이 소송을 건 것을 안다면 주형은 더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동생에게 자신이 받은 상처를 똑같이 새겨 주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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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VTV 드라마 스튜디오.

부은 얼굴에 얼음 팩을 가져다 대고 있던 수희에게 화정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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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제사는 잘 지냈어?”

갑자기 툭 튀어나온 화정 때문에 수희가 깜짝 놀라며 쥐고 있던 얼음 팩을 얼른 떼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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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꽃 엄마한테 보여 드렸어요. 감사합니다.”

수희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은 화정이 수희의 얼굴을 감싸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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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눈 부은 것 좀 봐. 딸, 무슨 일 있었어?”

‘딸’이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수희는 어제의 감정이 다시금 불쑥 솟아올랐다.

화정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튀어나올 것 같아 발치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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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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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데. 많이 안 좋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

잔뜩 걱정이 낀 물음들에 수희는 미소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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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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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촬영 빼 줄까? 엄마가 그 정도 백은 있어.”

이리도 자신을 세심히 챙겨 주는 화정이 승만과 연인 사이일 거라 예측하다니.

수희는 내심 화정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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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괜찮아졌어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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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거 보니까 정말 괜찮은가 보네.”

곧 이어질 촬영을 위해 화정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통화 목록을 확인하던 화정이 고개를 갸웃대며 수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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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작가님이랑 연락이 안 되던데, 수희 너랑은 연락 따로 하진 않지?”

승만의 이야기에 수희가 굳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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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안 좋으면서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화정이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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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김시운 작가님이랑 친하니까 들었지? 김시운 작가 아픈 거.”

머뭇거리던 수희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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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열심히 쓰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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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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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작업하다가 쓰러진 건 아닌지 몰라.”

쯧, 하고 혀를 찬 화정이 촬영 시작을 알리는 임 감독의 목소리에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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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촬영 들어가 볼게.”

빨간 구두가 바닥을 힘차게 짓누르며 또각또각 소리를 냈다.

자신을 우러러보는 수희의 눈빛을 한껏 받으며 화정의 입술이 서서히 올라섰다.

내 남자를 울렸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너한테는 내가 선물을 줄게. 배신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기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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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작업하다가 쓰러진 건 아닌지 몰라.”

화정의 말 한마디가 수희의 발걸음을 작업실까지 닿게 했다.

가정을 깨트린 사람인데, 이젠 아빠라고도 입에 올리기 싫은 사람인데.

그래도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승만이 괜찮은지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일 것만 같았다.

복도에서 서성거리던 수희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승만의 작업실 앞에 섰다.

팔을 들어 올린 수희가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시야 아래에 깔린 빨간 구두에 고개를 떨어트렸다.

닫혀 있어야 하는 문에는 빨간색 구두의 머리 부분이 끼어 있었다.

좁은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빛은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수희가 문고리로 손을 뻗으려던 찰나였다.

Rrrrr―

공허한 복도에 수희의 벨 소리가 소란스레 깔렸다.

―승조 오빠

승조에게서 온 전화에 수희가 작업실에서 한발 물러서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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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야. 지금 어디야?]

수희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승조가 급하게 물음을 건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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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빠 작업실에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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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재차 묻는 말에 수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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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선배님이 아빠랑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 혹시나 쓰러졌을까 봐 와 봤어요.”

휴대폰 너머로 희미하게 승조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의 침묵이 연결되고 나지막한 승조의 음성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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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야, 지금부터 놀라지 말고 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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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해요, 오빠.”

큰일이 아닐 거라.

이 이상 더는 자신을 놀라게 할 일은 없을 거라 여겨서였을까.

수희는 별다른 긴장감 없이 승조의 말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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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에 피고로 적혀 있던 박해숙 기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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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승만과 불륜을 저지른 사람을 어떻게 잊을까.

아마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그 이름은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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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 본명이 박해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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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가 띵 하고 울려 왔다.

금방이라도 몸이 뒤로 넘어갈 것처럼 휘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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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에 적힌 피고 박해숙이, 배우 이화정이라는 거야.]

승조가 박해숙의 이름이 익숙했던 데엔 이유가 있었다.

드라마 <패밀리>의 배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승조는 화정의 프로필을 읽었었다.

그때 이화정의 이름 옆에 적혀 있던 본명을 얼핏 본 기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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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만나서 마저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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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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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집으로 갈게. 너도 지금 집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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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집으로 갈게요.”

분노가 치밀지 않은 건 자신이 들은 말들이 현실감이라고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해숙이 이화정이다. 그것보다 승만의 내연녀가 이화정이라는 게 머리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얼떨떨한 얼굴로 전화를 끊고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작업실 안으로 수희의 말소리가 닿았던 걸까.

닫히다 만 문이 소리도 없이 단번에 활짝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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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야.”

고개를 돌리자 동그란 안경 너머로 적잖게 당황해 흔들리는 두 눈이 고스란히 보였다.

숙였던 허리를 세운 승만이 자꾸만 뒤쪽으로 눈을 돌리며 안절부절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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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왔어요?”

빨간 가운을 입은 채 승만의 뒤에 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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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야.”

자신을 활짝 웃는 낯으로 맞이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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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왔구나?”

이제껏 엄마라고 부르며 믿고 따르던, 이화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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