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 어긋나다 (87/118)


87. 어긋나다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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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요, 누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에게서 듣는 고백에 수희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준영은 자신에게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자, 동생이었다.

준영에게는 미안하지만 고백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걱정이었다.

이 고백으로 인해서 준영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건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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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아.”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수희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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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차마 준영을 이성으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말은 붙이지 못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준영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예상했던 것처럼 준영은 도리어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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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나랑 떡볶이 먹으면서 고백할 줄은 몰랐네요.”

수희를 가진 승조가 부럽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미 승조의 연인인 수희를 빼앗으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도 수희에게 고백을 한 건, 이미 자신의 마음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저 더는 막을 수가 없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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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백해 놓고 이런 말 하는 거 모순적이지만, 저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바심이 나는 목소리였다.

이 관계가 깨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는 건 오히려 준영이었다.

수희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며 멀어지기라도 할까 봐 이 마음을 꼭꼭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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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 마음 접어 보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누나 옆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한숨을 삼킨 준영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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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음이라는 게 억누를수록 더 깊이 자리를 잡더라고요.”

모래에 깊게 박힌 돌처럼 빼내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상처 입는 건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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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좀 후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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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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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제 마음을 밝힐 수가 있어서.”

그제야 준영의 미소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품어 보려 하던 마음을 놓쳤을 때, 준영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한발 늦어 버린 고백을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서 말이다.

수희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던 탓에 준영은 수희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아무리 승조와 연애를 하기 전부터 좋아했다고 하더라도 수희가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지 말아 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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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기적인 걸까.’

자신에게는 작은 바람이 수희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수희와 마주 보며 저녁을 먹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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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따스하게 스며들어 오는 목소리에 준영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수희의 입술이 옆으로 늘어나며 예쁘게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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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좋아하는 건 꼭 설레는 일만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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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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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날 좋아해 줘서 고마워.”

아……. 누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가장 먼저 헤아려 주는 사람.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사람.

웃는 게 예쁜 사람.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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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좋아한 거, 잘한 일 같아요.”

다행이다. 내가 좋아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서.

내가 쏟은 시간과 감정이 조금도 아깝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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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한 일로 만들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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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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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쏠게. 마음껏 먹어.”

씩씩한 수희의 목소리에 준영은 소리 내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깊게 박힌 돌멩이가 빠져나갔다.

허전한 빈자리를 느낄 틈 없이 파도가 밀려왔다.

파도가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단단한 모래알이 깔렸다.

***

준영과 헤어지고 차에 올라탄 수희는 그제야 승조가 전화했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는데 때마침 승조에게서 다시금 전화가 걸려 왔다.

수희는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을까 싶어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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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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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촉식은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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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지는 좀 됐어요. 준영이랑 밥 먹고 이제 집에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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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좀 더 일찍 연락할 걸 그랬네.]

흘러나오는 승조의 음성에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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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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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회의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같이 저녁 먹을까 했거든.]

그러고 보니 승조와 보지 못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수희는 더욱 바빠졌고, 승조 역시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졌다.

얼굴을 보지 못하니 연락이라도 자주 주고받고 싶었지만, 지금처럼 타이밍이 엇나가 연락이 닿지 않은 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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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예요? 내가 갈게요.”

수희가 급하게 안전띠를 매며 휴대폰을 차와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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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시 회의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연락을 기다려도 답이 오질 않자 승조는 근처에서 차 비서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수희에게 다시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싶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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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네요.”

목소리에서 기운이 쭉 빠진 수희가 좌석에 몸을 기댔다.

최대한 빨리 승조를 만나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박나영이라는 여자를 어떻게 아는 건지, 그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었다.

전화로 하기에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수희는 지금 바로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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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금요일에 볼까요? 나 그날 일정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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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는 안 될 것 같은데.]

이미 잡혀 있는 일정이 그의 탓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만 그와 어긋나자 저도 모르게 기분이 아래로 축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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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정은 어떻게 돼? 시간 되면 같이 점심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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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일 돼요. 마침 오후 늦게 일정 있거든요.”

언제 그랬냐는 듯 풀죽은 모습을 말끔히 지운 수희가 눈을 반짝였다.

승조를 만난 지 오래됐으니 이렇게 짧게라도 시간을 내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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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보자. 내가 집으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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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오빠 회사로 갈게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레하는 수희의 들뜬 마음이 전해진 건지 휴대폰 너머로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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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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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일 봐요.”

수희가 손을 뻗어 내비게이션 화면 위에 뜬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 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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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수희야.]

밀폐된 공간 안에 가득히 퍼지는 그의 음성은 무척이나 애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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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랑해.

승조는 수희가 잊지 않도록 꽤 많은 시간 공을 들여 사랑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수희는 단 한 번도 제 입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내일 만나면 말해 줘야겠다.

나도 많이 사랑한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고.

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승조는 휴대폰을 한참 바라만 봤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밤이라도 수희의 집으로 찾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뒤에는 밀린 업무들을 처리해야 했다.

게다가 제작사로 들어오는 대본들 중에서 수희와 어울릴 만한 작품들을 검토 중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새벽녘이 돼서야 집으로 갈 수 있을 듯했다.

괜히 인기척을 냈다가 수희의 단잠을 앗아 가고 싶지 않았다.

띵―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서야 승조가 내렸다.

뒤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승조의 옆으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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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 씨.”

앞서 걷고 있던 승조가 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돌렸다.

승조가 눈을 맞추자 나영이 두 손바닥을 모아 입가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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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정 때문에 회의 미뤄 달라고 해서 죄송해요.”

저녁에 있었던 위촉식 때문에 부득이하게 늦은 시간에 회의 일정을 잡게 되었다.

승조는 나영에게서 눈길을 떼어 내며 무미건조한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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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승조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나영이 얼른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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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드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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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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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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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직원이랑요.”

일관된 단답형이었지만 나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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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도 먹어 주면 안 돼요?”

회의실 문을 열려던 승조의 앞을 나영이 막아섰다.

승조가 봐 주질 않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그의 시선을 빼앗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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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말이에요. 저, 승조 씨랑 저녁 먹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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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와 관련돼서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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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말고 개인적으로 밥 먹는 건 안 되는 거예요?”

너무나 순수한 되물음에 승조의 눈썹 사이에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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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인적으로 같이 밥 먹을 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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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승조 씨에 대해 알아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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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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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가게 해 주세요, 승조 씨.”

설렘을 한가득 머금은 나영이 승조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 단정한 입술 밖으로 나올 말이 무엇일지 기대가 돼 가슴이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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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박나영 씨.”

딱딱하고, 차갑고, 거리감마저 느껴지는 어투였다.

그대로 나영을 지나친 승조가 회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홀로 남은 나영은 달달 떨리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승조가 들어간 회의실 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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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 건가?”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떻게 하면 승조와 더 친해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친해지려면 역시 자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프로젝트는 막 초입에 들어섰다. 그러니 아직 승조와 만날 날은 많았다.

그렇다는 건 승조와 친해질 기회가 다분히 열려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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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남자는 없지.”

씨익, 입매를 들어 올린 나영이 다시금 밝아진 얼굴로 문을 열었다.

아홉 번은 더 찍어 봐야 승조가 넘어오지 않을까?

그때까지 열심히 찍어 봐야지.

***

로비로 들어선 수희는 선글라스를 중지로 밀어 올렸다.

그녀의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직 수희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승조가 회사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차 안에서 기다릴 수가 없어 안으로 들어왔다.

집무실이 몇 층에 있는지 모르니 안내 데스크로 가 물어보려 했다.

로비 중앙에 있는 안내 데스크로 걸음을 막 옮기려는데, 우연히 닿은 시선 끝에 승조가 머물렀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한데 그를 부르기도 전에 다른 이 역시 승조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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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 씨.”

승조가 내렸던 엘리베이터 옆에서 그다지 달갑지 않은 나영이 튀어나왔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승조가 돌아보자 나영이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영이 한 걸음 떼려는데, 뒤이어 나오던 직원이 나영의 등을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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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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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숙어지는 몸이 자연스레 승조에게 폭 안겼다.

그의 가슴 위에 얹어진 손끝이 잔잔하게 떨려 왔다.

그에게 안긴 몸을 떼어 내야 했는데, 나영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아니,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승조에게 좀 더 안겨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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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벌어진 일임을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선글라스 너머에 있는 두 눈동자에 저릿한 아픔이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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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희 씨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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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희? 오수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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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너무 잘 보고 있어요. 팬이에요.”

꽃을 발견한 꿀벌들처럼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그러나 수희의 시선은 계속해서 승조와 나영에게 꽂혀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승조와 나영의 고개가 수희에게로 돌아갔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수희는 두 사람을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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