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이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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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이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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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이석진
2023.01.31.
머리를 테이블에 박은 주형은 그 뒤로 일어나질 못했다.
볼일이 끝난 석진은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석진이 소지품을 챙겨 Bar를 나가려 하자, 바텐더가 급하게 따라오며 물었다.
“이 친구 취했는데 안 데리고 가요?”
“걔 제 친구 아니에요.”
테이블에 드러누워 있는 주형에게 하찮은 시선을 던지고는 석진이 Bar를 나갔다.
하는 수 없이 바텐더가 주형의 몸을 흔들며 깨웠지만, 잔뜩 취해 몸을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Bar를 나온 석진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높은 빌딩들을 헤치고 나온 택시가 주택가가 즐비한 곳에 도착했다.
오래된 가로등이 금방이라도 빛을 잃을 것처럼 깜박거렸다.
기사에게 값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린 석진이 낡은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석진은 불이 꺼져 있는 3층 주택이 아닌 그 아래에 있는 지하를 내려다봤다.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지하는 텁텁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끼가 낄 것 같은 눅눅한 계단을 밟고 내려간 석진이 거친 쇳소리를 내는 문을 열어젖혔다.
안은 밖과 다름없이 어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컴퓨터 앞에 앉은 세 명의 남자가 문소리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석진은 고개를 까딱이고 신발을 신은 채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석진이 왔냐.”
그를 반기는 남자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일회용 커피 잔 안에 집어넣었다.
남자의 앞에는 세 개의 모니터가 세팅되어 있었는데, 씨트코인 종목들이 각각 띄워져 있었다.
“돈 받으러 온 거지?”
“네. 내일까지 필요해서요.”
남자는 서랍장 안에 미리 준비해 둔 흰색 봉투를 내밀었다.
“여기 네 몫, 네 친구 돈에서 15% 뗀 거.”
봉투를 받아 들자마자 석진은 각진 곳을 눌러 안을 들여다봤다.
“확인 안 해 봐도 돼. 2,200만 원이야. 네 수수료보다 좀 더 넣었어.”
“감사합니다.”
1억 4,120만 원. 주형이 씨트코인에 넣은 돈의 15%였다.
실수로라도 돈을 흘릴까 싶어 봉투 입구를 꼼꼼하게 접어 청바지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내일 점심 전에 상장 폐지 시킬 거야. 그때까지 못 빼게 입 잘 털어.”
“걔는 아마 안 뺄 거예요. 뺄 생각도 없을 거고.”
“석진이 제대로 호구 잡았네.”
큭큭거리던 남자가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을 손끝으로 긁적였다.
“네가 잡은 호구, 걔 맞지? 배우 오수희 동생.”
“네, 맞아요.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작업 제대로 치지도 않았는데 넘어오더라고요.”
“근데 너 오수희랑 인연이 깊다.”
무슨 뜻인지 알기에 석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가 담배 냄새가 밴 의자에 등을 푹 기대며 석진을 향해 턱짓했다.
“옛날에 오수희 임신했다고 유튜버한테 제보한 거 너였잖아. 제보자로 나가서 얼마나 받았다고 했지?”
“300만 원요.”
“그거 조회 수 겁나 빨았던데, 200만 원은 더 받지.”
별로 달갑지 않은 이야기인 듯 석진이 괜스레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때는 제가 돈이 좀 급했거든요.”
“다음에는 아예 기준을 높여서 불러. 그렇게 해야 네가 원하는 돈이랑 근접하게 받을 수 있어.”
“알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봐.”
가볍게 묵례한 석진이 작업장을 나가자마자, 뒤에 앉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물었다.
“형, 쟤는 나이도 어리면서 왜 벌써 이런 일을 나서서 하는 거야?”
“쟤도 저러고 싶어서 저러는 게 아니야.”
“왜. 뭔 사정이라도 있어?”
끈적거리는 책상 위에 붙어 있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문 남자가 말했다.
“쟤 누나가 5년 전에 백혈병에 걸려서 그때 나온 병원비가 어마어마하더란다.”
“아빠랑 엄마 있을 거잖아.”
“일찍 돌아가셔서 누나랑 둘이서 살아.”
“그러면 그 병원비를 자기 혼자서 갚고 있겠네? 누나는 5년 전부터 쭉 입원 중인 거고?”
고개를 잘래잘래 저은 남자가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완치는 3년 전에 했단다.”
“그럼 쌓인 병원비만 갚으면 되겠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일하면서 그 병원비 갚고 있었지. 갚고 있었는데.”
“갚고 있었는데?”
“작년에 재발하는 바람에 학교도 자퇴하고 돈 벌고 있는 거야.”
“아이고.”
절로 곡소리가 나오는 사연에 안경을 쓴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그래서 저렇게 친구 주머니 털어 가면서 돈 버는 거야?”
“악착같이 벌어야지. 매달 나오는 병원비가 얼만데.”
“안됐네, 저 친구.”
딱히 안타깝지 않다는 눈빛으로 안경 쓴 남자가 값싼 동정을 보냈다.
“병원비만 벌고 이런 일은 더 안 할 거라는데, 여기가 그렇게 되냐. 안 되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남자는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귓가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귀를 손가락으로 후벼 파던 주형은 코를 쑤시는 악취에 눈을 떴다.
흐리멍덩한 시야 안으로 자신을 눈으로 흘기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등 뒤에 쌓여 있는 종량제 봉투들이 보였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주형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면에는 전세금을 뺀 자신의 아파트가 보였고, 뒤편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었다.
Bar에서 술을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아파트까지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술기운이 아직 남은 건지 주형은 비틀거리며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냈다.
“이 자식은 비싼 술 얻어먹어 놓고 날 쓰레기장에 두고 가?”
자신이 쓰레기장에 버려진 걸 모두 석진의 탓으로 돌리며 전화를 걸었다.
받으면 욕을 퍼부을 심산이었는데, 석진은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짜증스레 중얼거리고는 메시지를 보내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래도 이석진 때문에 2천만 원을 벌었는데 참아야지. 그래, 참자.”
휴대폰을 고이 주머니 안에 넣어 둔 주형이 쓰린 속을 부여잡았다.
그러면서 해장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근처 국밥집으로 향했다.
뜨끈한 콩나물국밥을 한 그릇 비운 주형은 그제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아우. 살 것 같네.”
주형은 의자에 기대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무심결에 TV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아나운서 아래에 뜬 자막에 몸이 점차 앞으로 기울어졌다.
‘가상 화폐 열풍…… 사기로 이어져.’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뉴스라고 믿고 싶었지만, 기분 나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아직도 식지 않은 씨트코인 열풍에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씨트코인과 비슷한 가상 화폐인 ‘제로 코인’은 처음에는 높은 수익률을 올려 피해자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제로 코인’은 가상 화폐가 아닌 어디서도 쓸 수 없는 가짜 화폐였습니다. 천여 명으로부터 39억을 챙긴 일당은 현재 자취를 감춰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주형은 심장이 쪼그라들다 못해 사라지는 듯했다.
‘제로 코인’, 석진에게 비밀스레 소개받은 코인이었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씨트코인 앱에 로그인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산봉우리처럼 높게 솟아올랐던 제로 코인이 바닥을 찍고 있었다.
허겁지겁 남은 돈을 빼 보려 했지만, 이미 –99%에 달해 있었다.
도저히 보고도 믿기지 않아 휴대폰 전원을 껐다 켜기도 했다.
휴대폰 전원을 수십 번 껐다 켜던 주형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1억 4,120만 원. 등록금, 전세금, 친구들의 돈까지 전부 사기당한 것이다.
“망할!”
버럭 소리를 내지른 주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던 손님들이 주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형은 다른 손님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발로 바닥을 뻥뻥 차며 석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신호음도 가지 않고 아예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주형은 제자리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망할, 망할, 망할. 이석진, X새끼.”
망나니처럼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는 주형에게 남자 사장이 다가왔다.
“손님, 조금 조용히 해 주시겠습니까? 다른 손님들께서 불편해하세요.”
“내가 내 돈 주고 밥 먹는데 말도 못 해요?”
엄한 곳에 화풀이하며 주형이 소리를 지르자 사장이 굽신거리며 부탁했다.
“죄송합니다. 나가 주세요.”
“와, 진짜. 돌아 버리겠네.”
입으로 욕을 짓이기며 주형이 신경질적으로 의자에 걸어 둔 겉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제 주변에 앉은 손님들을 날 선 눈초리로 훑어 내리며 계산대로 걸어갔다.
주형은 겉옷 안에 있던 지갑을 찾아 손을 휘저었다.
그런데 주머니가 구멍이 난 것도 아닌데 안에 있어야 할 지갑이 잡히지 않았다.
주머니를 바깥으로 꺼내 보아도 먼지만 폴폴 날릴 뿐이었다.
적잖게 당황한 주형이 허둥거리자 사장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설마, 돈 없어요?”
어투에 가소로운 느낌이 잔뜩 묻어나 있자 주형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사장의 예측대로 주형은 지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상당히 다소곳해진 주형이 벼처럼 고개를 수그리며 연락처를 뒤졌다.
대학교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보지만 하나같이 주형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장의 한숨 소리에 주형은 급하게 연락처를 뒤지다 제 누나의 번호 위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저기요, 다른 분들 계산해야 하니까 옆으로 비켜서세요.”
까칠한 사장의 말투에 주형이 순순히 계산대에서 물러섰다.
잠시 망설이던 주형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받지 않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이번 사람은 금방 연락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매형.”
주형은 식당을 빠져나오며 뒤이어 나오는 승조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본 주형의 예의 바른 모습에 승조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에 갑자기 걸려 온 주형의 전화에 승조는 이유도 묻지 않고 달려왔다.
주형을 아껴서가 아니라 단지 수희의 동생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때 지갑을 잃어버렸나 봐요.”
“집에 갈 차비는 있어?”
승조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주형이 한 발짝 다가섰다.
“아뇨, 없어요.”
지갑을 펼친 승조가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택시 타고 들어가.”
“감사합니다, 매형.”
5만 원짜리 한 장에 헤실거리며 웃다가 주형이 슬쩍 물음을 던졌다.
“누나가 제 욕 많이 하죠?”
“수희는 네 욕 한 적 한 번도 없어.”
“에이. 누나 때문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주형은 이게 전부 수희 탓이라 여겼다.
누나가 자신을 도발하지만 않았어도 그 큰돈을 코인에 쏟아붓지는 않았을 테니까.
“무슨 짓을 했는데?”
승조의 물음에 주형이 고개를 크게 저어 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제까지만 해도 2천만 원이 넘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는데 고작 5만 원에 기뻐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이 돈으로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친구들 돈도 갚아야 했고, 언제까지 친구 집에 얹혀살 수도 없었다.
“매형. 저 부탁할 거 있는데.”
“부탁?”
“어려운 건 아니고요. 매형한테는 별거 아니에요.”
승조는 지그시 주형을 보다가 무미건조하게 입술을 떨어트렸다.
“뭐야, 그 부탁이.”
바짝 마른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문 주형이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승조를 올려다봤다.
“저……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