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신상윤. 병원을 벗어난 이후 공식적으로는 처음 만난 남편의 사람이었다.
신 대리로 불리는 그는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김수연에게 뭔가를 건네고 또 건네받기도 했는데, 남편 밑에서 일하면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도맡고 있는 듯했다. 오늘은 운전이었다.
“이제야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사모님. 신상윤입니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축하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새삼스레 건네는 인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바로 했다.
기억을 잃은 나를 배려한 거겠지. 병원에서 몇 번 마주치긴 했으나 제대로 통성명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뭔가 떠오르는 기억이 있나 싶어 신상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마도 20대 중반. 나와는 네다섯 살 정도 차이 나려나.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은 그 또래와 비교해도 월등했는데, 호기심이 많은 또렷한 눈빛은 어딘가 소년 같은 느낌도 주었다.
말없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자 겁을 먹은 건지 진갈색 눈동자가 잘게 진동했다.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그는 시선을 피하며 귀 끝을 만지작거렸다. 스스로도 귓등을 붉힌 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보기보다 귀엽네.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지만 제법 순진한 모습이 흥미를 끌었다. 어쩌면 내 남자 취향이 이런 쪽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보일 듯 말 듯 미미한 웃음을 머금으며 돌아보자 다소 굳은 얼굴의 수연이 시야에 걸렸다. 그녀는 상윤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내며 차 뒷좌석 문을 열었다. 누가 봐도 상윤과 나를 차단하는 동작이었다.
수연의 눈에서 뭘 읽은 건지 아연한 표정의 상윤이 급히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가 딱히 실수한 건 없어 보이는데. 그러나 어쨌거나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수연의 지시대로 차에 올랐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다른 생각도 금세 차단되었다. 이내 세 사람을 태운 차는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트라우마가 남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차에 대한 거부감은 남지 않은 모양이다. 어차피 운전이야 상윤이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듯도 했다.
사고 전, 외출할 일이 있을 때 나는 대체로 김수연과 동행했으나 가끔씩은 신상윤과 함께하던 날도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인즉, 나 혼자서는 외출을 절대 하지 않았다는 말.
그렇다면 사고가 났던 그날은 이 두 사람을 따돌리고 내가 운전을 했다는 거겠지. 아쉽게도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다.
“그 차는 어떻게 했어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대뜸 던진 질문에 조수석에 있던 수연이 내 쪽으로 고개를 반쯤 돌렸다. 무슨 차를 말하는 거냐고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말을 이었다.
“사고 당시에 내가 운전하던 차 말이에요.”
“사모님.”
“폐차했겠죠? 운전자가 이 모양이니.”
“…….”
갑자기 분위기가 싸하게 내려앉았다. 어쨌든 나는 도망쳐 달아나던 사람이었고, 수행 비서인 김수연이나 신상윤은 날 제대로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을 되짚는 건 그들에게 불편할 만도 했다.
앞좌석의 두 사람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을 골라내는 듯했다. 긴장했는지 핸들을 고쳐 잡은 상윤의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우물쭈물 뭐라고 대답하려던 상윤을 저지한 채로 수연이 입술을 뗐다.
“차는, 폐차했습니다.”
아, 역시. 당연하겠지. 운전자는 거의 죽다 살아났는데 차가 멀쩡하다는 것도 이상하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더 이상 궁금한 것도, 기대할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수연은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사고 당시 운전자는 즉사했고요.”
심드렁하게 차창 밖을 내다보다가 그녀의 목소리를 급히 쫓았다. 즉사라니,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라고요?”
“안타깝게도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내가 이렇게 뻔히 살아 있는데.”
“운전자는 다른 사람이었어요. 사모님은 동승자였고요.”
“그게 무슨, 아니에요. 그날 운전은 내가…… 윽!”
순간적으로 머리가 쪼개질 듯한 통증이 덮쳤다. 사고를 되짚는 나를 탓하려는 것처럼 뾰족한 것으로 신경을 긁어내는 것 같았다. 머리를 짚은 채로 숨을 몰아쉬자 수연이 뒷좌석을 돌아봤다. 상윤도 놀란 듯 뭐라고 했으나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삐이. 고막을 찢는 듯한 이명까지 겹쳤다. 캄캄하게 변한 눈앞에 사고 당시의 조각난 기억이 흩어졌다.
와이퍼가 빗물을 닦아내기도 전에 새로운 빗물이 시야를 가리던 그때. 정신없는 클랙슨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 그 속에서 핸들을 잡고 차를 꺾은 건 틀림없이 나였는데.
애초에 동승자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내가 운전했다고. 나는 그날 밤, 그러니까 꿈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뭘 떠올리고 있는지, 내 기억이 맞는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그 사고는 꿈이었을 뿐인가. 아닌데, 여전히 생생한데. 담당의와 치료할 때도 사고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
아니, 내가 운전했다는 얘기는 안 했었나. 그렇다면 그 꿈은 대체…….
“사모님, 괜찮으세요?”
“병원으로 다시 돌릴까요?”
“사모님, 사모님!”
수연과 상윤의 목소리가 귓속을 번갈아 파고들었다. 다급한 목소리는 겨우 맞춰 놓은 기억들을 엉망으로 흩뜨렸다. 그나마 기억하고 있던 것도 그럼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난 누구 차에 동승하고 있었던 거지. 누구와 함께 도망치고 있던 거지. 아니, 도망치려던 건 사실일까.
연신 사모님을 외치는 차 안에서 나는 그렇게 정신을 놓아버렸다.
* * *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를 반긴 건 새로운 얼굴이었다. 인자한 표정의 중년 아주머니. 그녀는 내가 눈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눈물을 훔쳐내며 김수연을 불렀다.
덕분에 잠시 소란이 일었다. 남편 집안의 주치의로 보이는 사람이 다녀갔고, 나는 지겹기 그지없는 링거 바늘을 다시 꽂았다 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병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대로 다시 병원에 가 봤자 더 힘들어질 터였다. 이왕 집으로 돌아왔으니 하루라도 빨리 이 삶에 적응하는 게 맞았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낯선 천장을 보며 눈만 천천히 끔뻑였다.
그러니까 이곳이 앞으로 내가 지내야 할 곳이란 말이지.
눈동자를 굴리며 침실을 훑던 것도 잠시,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긴장하여 침을 삼켰다.
침실로 들어온 건 아까 그 아주머니였다. 창원댁으로 불리는 그녀는 이제야 흥분을 가라앉힌 듯 내 곁에 의자를 당겨와 앉으며 살갑게 말을 붙였다.
“내 그동안 사모님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면회를 가볼까 했는데 김 실장이 안 된다고 어찌나 만류하는지, 원. 아무리 내가 남의 살림 봐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간 쌓은 정이라는 게 있는데.”
면회를 거절한 건 나였지만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창원댁이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기 쉽게 거들어줬다.
“……죄송해요.”
“아유, 제가 사모님더러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김수연 실장이 여간 깐깐하게 굴어야 말이지. 내 다 알아요. 병원에서 고생 많았지요?”
창원댁은 오랜 기간 서울 생활로 사투리 억양이 많이 사라진 말투로 나를 다독였다. 그녀는 본인을 편하게 창원댁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본가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부른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천성이 남을 부리는 데 익숙지 않은 건지, 오히려 그녀에게 듣는 사모님 소리가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이런 곳에서 2년을 살았다니. 도통 편해질 것 같지는 않은 예감이 들었다.
“여사님은 그럼 여기에서 지내시는 거예요?”
김수연으로부터 대강 전달받은 내용은 있었지만 달리 대답할 말이 없어 질문을 던졌다. 화제를 자연스레 옮기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아니요. 저는 원래 회장님 소속. 본부장님 결혼하시면서 여기로 같이 따라왔어요.”
“아, 결혼 이후로…….”
“회장님은 내가 여기 입주해서 지 본부장님 살펴보길 바라셨는데, 워낙 그런 거 싫어하거든. 자기 개인 공간에 다른 사람 들이는 거.”
“아…….”
“처음에는 내심 좀 서운했다니까요. 내 지 본부장 어릴 때, 응? 즈그 엄마 손 잡고 회장님 찾아올 때부터 봐 왔는데, 그때 내가…….”
창원댁은 뭐라고 더 말하려다 말고 내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내 남편의 복잡한 가정사를 술술 털어놓기 민망했던 모양이다. 괜찮다고 눈짓하자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 본부장 때문에 쫓겨난 셈이지. 나는 보통 저녁까지만 준비하고 집에 가요. 사고 전에는 두 분이 같이 저녁 하는 날이 드물었는데 이제는 어찌 될지 모르겠네.”
아, 남편과 저녁을 같이 하지는 않았던 건가. 의아한 내 표정에 알 만하다는 듯 창원댁이 덧붙였다.
“지 본부장이 워낙 바쁜 사람이어서 그래요. 사모님도 뭐, 저녁은 안 드시거나 드신다고 해도 밖에서 드시는 편이었고.”
“제가요?”
“그래요. 본부장만큼이나 바쁜 게 사모님이셨다니까?”
창원댁은 가볍게 눈을 흘기면서 내 손을 잡았다. 기억을 잃은 뒤로 의료진들이나 김수연을 제외하면 타인의 손길이 닿은 건 처음이었다.
따뜻하게 퍼지는 낯선 온기에 시선이 저절로 그녀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궂은일을 많이 해서 그럴까, 창원댁의 손등은 자잘한 주름으로 덮여 있었다.
“내 사모님께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주제넘다고 생각할랑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 선배나 큰이모가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들어줘 봐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눈을 맞춘 창원댁은 자못 단단한 시선으로 날 묶어두려는 듯했다.
“난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해요. 이제야 제대로 돌아온 것 같아. 사모님도, 우리 지 본부장님도.”
“…….”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사모님이 지난 일들 다 기억 못 한다는 소리 듣고 난 진짜로 안도했어요.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 이제 힘들었던 기억 싹 다 지우고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요.”
“…….”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난 지 본부장, 태산 쪽 사람이니까. 지 본부장 맘고생 안 시켰으면 좋겠어요, 이제.”
그렇다면 지 본부장, 내 남편이 그동안 나 때문에 앓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애초에 사랑에 기반했던 결혼이 아니었나. 내 추레한 조건도 기꺼이 이겨내고 사랑의 결실을 맺었는데, 남편이 나 때문에 힘들 일이 뭐가 있었을까.
설마 내가 남편에게 큰 실수라도 했던 걸까. 병원에 있는 꼴도 보기 역겨울 만큼?
“여사님, 혹시 제가…….”
나는 창원댁에게 뭔가를 물어보려다가 멈칫했다. 기억을 지운 것이 차라리 나은 방향이라면 굳이 물어볼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녀 말대로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더 낫다면, 굳이 얼룩진 과거를 들춰낼 필요는 없었다.
그나마 갖고 있던 기억도 모두 어긋나버린 지금, 확실한 건 사고가 났고, 난 살아남았다는 사실뿐.
그러나 김수연의 말만으로 내 남은 기억이 조작된 거라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사고에 관한 확실한 증거 또한 경찰이 갖고 있을 터였다.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혼자 움직여야 한다.
김수연도, 신상윤도, 창원댁도, 아직까지는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신뢰할 수 없었다.
다음 말을 기다리던 창원댁은 마침 들려온 벨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실 밖으로 나갔던 그녀가 잰걸음으로 다시 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본부장님 도착하셨네요, 사모님.”
그녀는 나보다도 설레는 얼굴로 남편과 나의 재회를 기다렸다. 좀 전에 내가 하려던 말은 어느새 잊은 듯, 어서 나와보라고 손을 흔드는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과연 남편도 날 저렇게 반기려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분히 마음을 다잡으며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렸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기억 속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