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남편의 이름은 지건호. ‘세울 건’에 ‘호수 호’를 쓴다고. 요즘은 한자 이름까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큰일 앞두고 역술가를 찾는 건 내로라하는 재벌가도 별수 없는 일이란다.
물론 지건호라는 이름은 대단한 역술가가 아닌, 그의 어머니 손에서 탄생한 이름이긴 하지만.
추측하건대 건설업을 모체로 성장한 집안임을 염두에 둔 이름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의 할아버지, 지태강 회장이 열을 올리던 사업도 인공 해변과 호수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을 마주한 순간,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호수라니. 차라리 ‘범 호’ 자를 썼다면 모를까.
존재 자체만으로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는 범처럼 지건호,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집으로 들어왔다. 구태여 시끄럽게 제 존재를 자랑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공기가 무겁게 짓눌리는 기분에 포식자를 눈앞에 둔 것처럼 숨통이 조여들었다. 괜히 입술만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긴장한 건 나뿐만은 아닌 듯, 집에 있던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현관으로부터 이어진 복도에 줄지어 섰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게도 보였으나 굳은 얼굴에 차마 미소를 피우진 못했다.
그를 마중 나간 건 나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이었다. 창원댁과 다른 도우미 둘이 현관 앞에 섰고, 뒤늦게 방을 나선 나는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남편을 지켜봤다.
김수연과 신상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내 곁에 있을 거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동안 수연에게 의지를 많이 했던 걸까. 막상 수연이 내 눈앞에 안 보이자 분리불안이라도 생긴 양 초조해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겹쳐 잡았다가 풀었다. 긴장한 티를 내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남편 앞에서 지나치게 공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지난 2년간 결혼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오셨어요? 저녁은 아직이죠, 지 본부장.”
창원댁은 내 남편을 두고 본부장님이라고 높여 부르다가도 때에 따라서는 지 본부장이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그가 제 할아버지 집에 당당하게 입성할 때부터 봐 왔으니 어쩌면 본인이 키운 아들 같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만큼의 애정은 없는 듯, 무심히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굳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도 연일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추측 보도에 그도 지쳤으리라 생각되었다.
그가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있는 태산건설은 요즘같이 언론의 땔감이 된 적도 없었으니까.
잊었다 싶으면 뉴스에 등장하는 태산건설 현장 사고 소식에 최근 주가도 같이 곤두박질쳤다고. 잇단 사망 사고에 그 책임 소재를 두고도 말이 많다고 했다.
최근에는 재벌 테마주 주가 조작 사건에 그의 형제 이름도 거론된다나. 김수연은 어쩌면 지건호도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었다.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고 했는데 회사 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지건호는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먼저 그에게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그 탓이었다. 지건호를 막상 마주하고 있으니 화면상으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는 어딘가 텅 빈 껍데기 같았다.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린 나보다도 더.
“사모님 오셨어요, 본부장님.”
어서 인사하라고 내게 몇 번이나 눈짓을 하던 창원댁이 참다못해 말을 꺼냈다. 그 소리에 관성적으로 옮기던 그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마치 내 존재 같은 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했다.
그는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내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윽고 허공에서 시선이 맞부딪쳤다. 나는 마른 입술 안쪽을 잘근거리며 그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인사는 딱히 없었다.
“지 본부장도 반갑지요? 아유,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거래요. 사모님 오시니까 이제 사람 사는 집 같네.”
내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건 우리 사이에 어떠한 감정이 남아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이었다. 그게 애정이든 애증이든.
하나 지건호의 무감한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대단한 착각 속에서 그를 기다려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니, 어떤 감정도 없다는 게 정확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원피스 옷자락을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어쩌면 그가 준비했다는 이 원피스도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자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는지 창원댁이 먼저 말을 붙였다.
“사모님도 아직 저녁 식사 전이에요. 같이 차려드릴게. 얼른 옷부터 갈아입고 나와요.”
그녀는 눈치껏 다른 도우미들을 데리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 듯 지건호는 한숨을 작게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린 방향 그대로 나를 지나쳐갔다.
내게 닿았던 시선은 고작 몇 초였을 뿐. 그야말로 완벽한 무시였다.
허, 뭐야. 다소 황당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아내가, 그것도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갔다가 겨우 살아난 사람이 돌아왔는데, 반갑다는 인사는커녕 어떠한 인사도 없다니.
나는 어쩐지 울컥한 마음을 억누르며 그를 뒤따랐다. 침실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에 등을 돌린 지건호가 나라는 걸 확인하고는 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고 보니 제 공간에 다른 사람 들이는 걸 싫어한다고 했던가. 그로서는 나 또한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었던 건지, 지건호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는 그저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는 침실과 연결된 욕실로 들어갔다. 연이어 들리는 물소리에 비에 젖은 양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꼭 주인에게 버림받은 무언가가 된 기분이었다.
대단한 환대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런 냉대를 예상했던 것도 아니다.
잠시 후 손에 남은 물기를 털어내며 욕실을 나온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나 같은 건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는 투였다.
지건호는 나를 등진 채로 묵묵히 시계를 풀었다. 내가 저를 보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어떠한 말도 없었다. 나가라는 뜻일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의 시중 따위를 들어야 하나.
김수연은 이런 것까지 설명해 주진 않았다. 부부 사이의 사소한 습관까지 그녀가 알 수도 없었을 테지만, 수연이 내게 전해 준 것도 겉으로 드러난 사실에 그쳤을 뿐이다.
그와 내가 이 공간, 지극히 사적인 이 공간에서 나누는 행위까지는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저녁은 혼자 먹어. 난 생각 없으니까.”
나는 그의 널찍한 등을 훑어 내려가던 시선을 재빨리 끌어올렸다. 처음 들어보는 그의 목소리. 피곤에 잠긴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는 탁하게 흩어졌다.
나는 잠깐 동안 멈췄던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같이 먹죠? 그래도 여사님이 준비하신 건데.”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조롱이 담긴 말투였다. 시계에 이어 커프링크스까지 빼놓은 그가 몸을 돌려 날 마주 봤다. 그게 무슨 말인지, 눈을 키운 나를 비웃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착한 척 굴지 마. 기억을 잃은 거지 사람 성격이 바뀐 건 아니잖아.”
그는 날 똑바로 직시하면서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목 단추를 먼저 푼 손은 가슴께를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너무 느리지 않게, 그렇다고 내 마음만큼 성급하지도 않았다. 그의 손이 지나간 드레스 셔츠 사이로 가슴 근육이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내게 열이 옮겨붙었다. 학습된 분노 같기도 했다.
나는 그가 내뱉은 말을 뒤늦게 주워 담으며 그의 손을 응시했다.
그를 닮은 큼지막한 손. 마디가 굵으나 선이 깔끔한 손가락은 그의 서늘한 눈매와도 비슷해 보였다. 그 눈으로 여전히 내 얼굴을 훑어보는 것이 느껴졌으나 한번 떨어진 시선은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과거의 내가 지건호에게 이끌린 건 거짓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의 배경 때문이었는지, 단순히 외모 때문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후자가 그 이유의 전부라고 해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건호의 말마따나 내가 잃은 건 단지 기억일 뿐인 듯했다.
나는 착한 척 굴지 말라는 그의 말이 되레 고마웠다. 힘들게 억지로 연기할 필요는 없다는 그 말에 나는 굴복하듯 내리깔았던 시선을 다시 올렸다.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크게 어렵진 않았다. 차갑기 그지없는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얼음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으니까.
드레스룸의 주광색 조명이 그의 얼굴에 명암을 깊게 만들었다. 그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셔츠를 마저 벗으며 말했다.
“지금처럼 가식 떨지 않아도 된단 소리야. 네 성질머리 모르는 사람 여기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쭉 하던 대로 살아. 편하게.”
“…….”
“그래야 기억을 되찾아도 덜 쪽팔리지. 안 그래?”
나를 의식한 건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셔츠를 벗어 던진 그는 벨트 위로 손을 내렸다. 바지를 갈아입는 모습까지는 차마 볼 수 없어 몸을 돌렸다. 그런 나를 비웃는 듯, 등 뒤로 그의 웃음소리가 낮게 퍼졌다.
“좋아 보이네.”
“…….”
“병원 생활이 체질에 맞았나 봐. 살도 제법 붙은 것 같고.”
누가 들어도 날 걱정했다거나 회복한 지금 내 모습에 안도하는 어조는 아니었다. 이 사람은 내가 이곳에 돌아왔다는 게 거슬리는 것이다.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봤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그가 감평하듯 내 모습을 위아래로 느릿하게 훑었다. 제가 선물한 원피스를 확인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두 다리로 선 나를 확인하는 걸까.
나는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며 입술을 뗐다.
“덕분에요.”
원피스 치마 아래, 무릎께에 머물던 그의 눈이 빠르게 내 입술을 좇았다.
“아마도 신경 쓸 일이 없어서 그렇겠죠? 기억을 잃은 게 어쩌면 더 다행인 것도 같아.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으니까요.”
“…….”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이 제법 만족스럽고 좋네요. 잘난 남편도 생겼고.”
빈정거리는 어조에 그가 같잖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저녁은 먼저 먹을게요. 퇴원하고 온 첫날인데, 소박맞는 아내. 동정표도 얻고 좋겠네. 내가 그쪽 말대로 내 성질껏 살아온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가식적으로 눈을 휘며 웃자 내 입술 끝에 걸린 그의 거만한 시선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 관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찰나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