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묻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 말에 지건호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잠깐 부딪친 그의 시선은 내 밥공기로 떨어졌다가 그와 나 사이, 일렬로 줄지은 반찬 그릇에 닿았다. 그는 가지나물 그릇을 내 쪽으로 살짝 밀어내고는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내 말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속으로 발끈했지만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말을 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봤어요.”
“…….”
“당신 이름, 지건호.”
애초에 그에게 특별한 반응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냥 이 숨 막히는 분위기가 답답해서 꺼낸 말이었지. 그는 여전히 답이 없었고, 나는 눈을 조금 내리깐 채로 가지나물을 집어 입에 넣었다. 체할 것 같은 기분도 익은 가지처럼 물크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기분 탓이었는지, 답답한 속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눈을 들자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지건호가 말했다. 날카로운 눈매만큼이나 차가운 시선은 어느새 날 떠난 뒤였다.
“쓸데없는 짓을 했네.”
“……사람이 갇혀 살다 보니까 쓸데없는 게 궁금해지나 봐요. 별거 아닌 것에 집착하게 되고.”
그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삐딱한 대답에 그제야 내게 관심이 생긴 듯했다. 단정한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저 입으로 지원아, 하고 내 이름을 불렀겠지.
하지만 지건호는 지금 굳이 나와 말 섞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그는 제 시선만 내 입술에 스치듯 두었다.
괜히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시간을 끌었다. 사실은 긴장을 늦춰 보려는 의도였다.
원래 내 성격이 이랬던 건지, 아니면 둘만 남은 곳에서 마주 앉아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떠오르는 남사스러운 기억 때문인지, 그가 평소보다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 이건 부담스럽다고 하는 게 정확한 말이겠지. 천천히 들이켠 물이 가슴을 메웠다가 흩어졌다. 정의 내리지 못했던 감정도 물에 녹아 스르르 풀려버린 듯했다.
나는 물잔을 가볍게 내려놓고 그를 보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유명하더라고요, 내 남편이.”
“별거 아닌 사람한테 관심 갖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특별히, 유난스럽게 많던데.”
나이, 학력, 수상 경력. 이 정도는 다른 기업인들도 포털 사이트에 이름만 검색하면 뜨는 프로필이지만 지건호는 조금 달랐다.
그의 모친이 아나운서인 것을 떠나서 미모로도 유명해서였을까. 전체적인 분위기는 지용현과 비슷하다지만 이목구비 하나씩 따져보면 제 어머니를 빼닮았다는 지건호는 외모로도 적지 않은 유명세를 치른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별 얘기가 다 있던데요. 유학 시절 파티 사진도 몇 개 나오고. 조정인가, 그런 거 하면서 찍힌 사진도 봤어요.”
“조정이 아니라 카누. 잠깐 했던 거야.”
그는 짜증스럽게 말을 정정했다. 아, 카누. 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젓가락을 쥐며 덧붙였다.
“내가 푼 사진은 절대 아니고.”
“알아요.”
“…….”
“수연 씨가 말해 줬어요. 지건호 씨는 사진 찍는 거 싫어한다고요.”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극도로 혐오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내 결혼식 사진도 몇 장 없는 거라고 수연은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웬만해서는 카메라 앞에 나서는 일은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이라는 게 꼭 제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닌 듯하다만.
“포럼 행사 사진 묶어둔 것도 따로 있던데요. 처음엔 나도 얼핏 보고는 배우 사진인 줄 알았어요.”
“…….”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더라고요.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잘생겼다고.”
뭐, 물론 그 밑으로 이를 힐난하는 말도 많았다. 태산에서 알바 풀었냐, 요즘 시대에 무슨 재벌 얼굴 찬양이냐, 본부장님 여기서 이러시는 거 아니다……. 그러나 뭐가 되었든 그의 행보가 매스컴을 타면 화제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대학생들이 뽑은 올해의 경영인. 뭐, 그런 것도 순위권이던데.”
그 순간 쇠젓가락이 식탁 위로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놓였다. 일부러 그의 신경을 긁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조금 화가 났나 보다. 나는 지건호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지건호는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대며 날 가만히 내려다봤다. 앉은키가 차이 날 테니 당연하겠지만 명백히 날 아래로 보는 눈빛이었다. 그는 앞선 대화를 되짚는 듯 손가락으로 식탁을 툭툭 두드렸다.
“지금 겨우 그딴 게 궁금하다는 건 아닐 거고.”
“…….”
“본론부터 말해. 쓸데없는 얘기로 빙빙 돌리지 말고.”
나는 반도 채 비우지 못한 밥공기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눈꺼풀을 접어 올렸다. 식탁을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그는 팔짱을 낀 거만한 자세로, 조금은 느긋하게 눈짓했다. 일단 들어는 줄 테니 어서 말해 보라는 식으로.
그 여유로운 눈짓에 나는 애써 초조함을 덧씌우며 말을 꺼냈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뭐가.”
“우리 결혼 기사.”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은 말이지만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표정을 살폈으나 아직까지 지건호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니 그가 별거 아니라고 취급하면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우 찾은 것도 링크 들어가 보면 삭제됐대요. 언론사 요청으로 삭제된 거라고. 태산에서 일부러 막은 거 맞죠?”
“…….”
“심지어 어디서는 루머 취급 하더라고요. 지건호 아직 미혼이다, 결혼 안 했다. 결혼 기사 캡처한 이미지도 조작한 거라고 하고.”
수선스러운 나에 비해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권태롭게 눈을 감았다 뜰 뿐이었다. 색이 바랜 듯한 눈동자는 내 얼굴을 담으며 한층 짙어졌다. 이어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수연 실장이 보여줬을 텐데. 결혼식 사진은.”
“사진이야 봤죠. 그런 것도 없이 무슨 증거로, 뭘 믿고 이 집에 들어왔겠어요? 아무리 내가 갈 곳 없는 처지라고는 해도…….”
남편이라면서 병원에 있는 날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사람 품으로.
그러나 뒷말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그냥 삼켜버렸다.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지. 복에 겨운 투정 같았다. 어딘가 동냥 섞인 애정을 구걸하는 것 같기도 했고.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지건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결혼은 내 사생활이니까. 굳이 알려야 할 의무는 없지. 다른 사람들처럼 언론 플레이까지 하면서 주식 지분이 오가는 결혼도 아니었고.”
“…….”
“여러 말 붙는 거 피곤하기도 하고. 그래서 기사 내리라고 했어, 내가.”
이제 답이 됐냐는 듯, 피곤하다는 기색이 여실히 묻어나는 말투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대외적으로 날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묻는 거예요.”
“숨기다니.”
“날 이 집에만 묶어두는 것도 그렇고. 결혼 기사도 그렇고. 결혼식 사진도, 겨우 세 장? 그것도 대기실 사진이 전부였잖아요. 꼭 형식적으로 찍은 것처럼. 가족관계증명선지 하는 서류 없었으면 우리 결혼도 믿기 힘들었을 거야, 아마.”
그가 차고 있는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가 자꾸만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그 소리에 맞춰 내 숨도 점점 가빠졌다. 피가 다 빠져나가 얼굴이 하얗게 질릴 것 같았다. 그러나 지건호의 무감한 표정을 보아하니 이 역시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묵묵히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냐며 빈정대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고개가 무거워졌다. 비스듬했던 시선은 아래로, 아래로 기울기를 달리했다. 호흡을 고르고 싶었지만 재촉하는 시선에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
“내가 혹시 지건호 씨의 약점이라거나.”
“…….”
“우리 관계가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어서, 아니면 내가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라서.”
“지원아.”
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잘못 들은 걸까. 한껏 키운 눈으로 빠르게 그의 입술을 좇았다. 단편적인 기억 속 그때 그 목소리와 겹쳐 들리자 순간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잠시 동안의 내 착각이었던 듯, 지건호는 짜증이 조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멋대로 해석하지 마.”
“…….”
“함부로 추측하지도 말고. 의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날 사고만 해도 내 기억으로는…….”
“그러니까 그것도 네 기억일 뿐이잖아. 네가 그 잘난 머리로 너 좋을 대로 만들어낸. 그런 건 아무런 증거도 될 수 없어. 설득력도 없고.”
“…….”
“피곤하게 굴지 말자. 기억 찾으라고 강요한 적은 없으니까.”
내가 이대로 영영 기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는 괜찮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이 집에서 내 존재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나는 지건호에게 대체 어떤 사람인가.
“지건호 씨는 이게 더 편한가 봐요.”
“뭐가.”
“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울컥해서 그를 쳐다봤다. 지원아, 지원아. 귀에 맴도는 그의 목소리는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귀를 잡아 뜯고 싶었다.
그는 내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게 아니라 말했대도 나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속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날 기만하는 거 같아.”
“…….”
“이 집 사람들 다 마음에 안 들어. 언제부터 날 알았다고, 알면 얼마나 안다고, 왜 날 자기들 맘대로 조련하려고 해?”
“…….”
“이 반찬만 해도 그래요. 사모님이 좋아하시던 거래. 난 기억에도 없는데 내가 자주 찾던 거라네요. 그런데 웃기죠. 난 그런 기억이 전혀 없어. 좋아했던 거 같지도 않아.”
“…….”
“난 과일 하나를 내 맘대로 못 먹어요. 왜? 그건 또 사모님이 싫어하시던 거래. 말끝마다 사모님이, 사모님이! 아주 지겨워 죽겠어. 정작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집 안이 내 목소리로 가득 찼다. 날 선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나도 모르는 건 아니다. 기억이 불안정하다는 걸 핑계로 다른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걸.
지건호는 그런 날 달래거나 혹은 제압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팔짱을 낀 자세 그대로 날 지켜볼 뿐. 어디까지 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씩씩거렸을까. 호흡이 점점 안정을 찾아가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끝났어?”
대단한 구경이라도 한 듯, 그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휘었다. 웃는 건가. 비웃는 건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람들 바꿔줘요. 바꾸고 싶어. 나 모르는 사람으로 싹 다 바꿔줘요, 당장.”
“그건 안 될 말이고.”
“왜? 불편하다잖아. 내가 싫다잖아!”
“너 말고 내가, 불편하니까.”
그는 이 집에서의 제 위치를 강조하는 것처럼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내 불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사뭇 어이없다는 어조였다.
더 이상 식사를 이어가는 건 글렀다고 판단했는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찾는지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던 그는 이내 등을 돌려 날 마주 봤다. 서늘한 눈동자는 내 성질만 돋우는 기분이었다.
“김수연 실장 괜히 네 옆에 붙인 거 아니야. 김 실장만큼 우리 사이 아는 사람 없어. 궁금한 게 생기면 김 실장 통해서 확인해. 그게 제일 정확하니까.”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내 곁으로 다가온 그가 내 앞에 손을 펼쳐 뭔가를 내려놓았다. 김수연이 항상 챙겨주던 약이었다.
“약 잘 챙겨 먹고.”
그는 그렇게 내 어깨를 살짝 쥐었다가 내게서 멀어졌다. 아악,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술을 짓씹으며 참았다. 그러면 진짜 미친 여자가 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가 날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