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나는 상황을 좀 더 관망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파편 같은 기억이 전부였고, 그것마저도 차마 남들 앞에 내보이기엔 부끄러운 것이었다. 지금은 그저 한 발 떨어져서 내게 무엇이 득이 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군지, 그것부터 확인하는 게 최선이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네요, 사모님.”
내 기분을 살피는 듯 아까부터 룸미러를 힐끔거리던 신상윤이 대뜸 말을 건넸다. 그도 집을 나서면서부터 지금까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정적이 불편했던 것 같았다.
티가 나게 밝게 꾸민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그 의도를 곡해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싫었기에 그냥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차는 어느새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지건호가 내게 약속한 외출은 일주일 중 하루. 그것마저도 병원을 간다는 조건으로 허락한 것이다. 그 외출에는 항상 그랬듯이 김수연이 동행했는데, 오늘은 수연 대신 신상윤이 함께했다.
“수연 씨는 좀 어때요?”
“네?”
한강 위,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던 시선을 옮겼다. 룸미러를 통해 상윤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눈이 퍽 순진해 보여서 말을 덧붙였다.
“아프다면서.”
“아, 어, 김수연 실장님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수연 대신 운전 중인 거 아니던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의아하다는 표정에 나는 눈썹을 세웠다. 뒤늦게 눈치를 읽은 상윤이 재빨리 대답했다.
“어, 네. 맞아요. 그러고 보니 김 실장님 몸이 좀 안 좋으시다고 하셨어요. 맞습니다.”
맞기는. 제 딴에는 기민하게 대답을 한다고 했겠지만 이미 늦은 셈이었다. 그 짧은 찰나에 바뀐 표정만 몇 개였는데. 적어도 거짓말은 제대로 못할 사람 같았다. 저렇게 티가 나서야.
그럼 김수연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어디로 간 걸까. 설마하니 제 개인적인 일을 보려고 그런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지건호가 따로 시킨 일을 처리하려는 것일 게 분명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곰곰이 생각을 더듬다가 연신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상윤을 불렀다.
“상윤 씨.”
“네? 네, 사모님.”
“상윤 씨는 언제부터 태산에서 일했다고 했죠?”
“아, 저는, 그러니까 음, 1년 정도 되었을 겁니다.”
우물쭈물 대답하는 상윤의 목소리에서 안도감이 물씬 느껴졌다. 혹시나 수연의 거짓말이 탄로 날까 긴장하던 중, 제게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뀐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굳이 수연의 진짜 행방을 물을 필요는 없었기에 이쯤에서 말을 돌리는 편이 나았다. 물어본들 상윤은 모른다고 잡아뗄 것이 뻔했고.
“1년?”
“넵. 다음 달이면 딱 1년 됩니다.”
1년. 그렇다면 내가 사고 나기 몇 달 전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소리다. 생각보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결혼 생활을 처음부터 보진 못했어도, 적당히는 알고 있을 사람이었다.
나는 운전석을 향해 몸을 살짝 기울였다. 내 움직임에 상윤이 움찔 놀라는 것이 느껴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만족해요? 태산에서 일하는 거.”
“네? 어우, 당연한 말씀을요. 태산 아닙니까.”
일부러 ‘태산’에 힘을 주어 말하는 태도에서 남다른 자부심이 느껴졌다. 상윤은 제가 비록 대졸 출신의 신입사원은 아니지만 애사심은 그들보다도 더 크다면서, 어쩌면 자신에게 연두색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벌였다. 연두색은 태산을 상징하는 색깔이었다.
“사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 자리도 당시 경쟁률이 엄청났거든요. 저 면접 볼 때 대기자들도 아마 스무 명은 더 넘었을 거예요. 그게 오후 면접조였는데, 오전 면접조까지 합치면 더 많을 거고요. 면접비만 해도 그게 다 얼마랍니까.”
운전 수행 기사 하나 뽑는 데에 그 정도씩이나. 그것도 일종의 낭비 아닌가 싶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상윤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얘기 들어 보니까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해요. 보통 임원 수행 기사는 요즘 전문 업체 통해서 채용하거든요. 워낙 밀접하게 붙어서 이동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이런저런 소리 안 새어 나가게끔 나름 업체 차원에서 교육도 받고…….”
“…….”
“근데 뭐, 저 같은 경우는 좀 많이 달랐죠. 자랑은 아니지만 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운전면허만 있으면 지원 가능하대서 지원했는데, 덥석 최종 합격이 됐으니까요.”
아마 전문 업체를 통한 채용이었으면 저는 서류부터 탈락했을 거라며, 상윤은 저 같은 놈도 공정하게 심사하여 붙여준 태산건설에 다시금 감사해했다.
“아마 제 평생 운을 여기에 다 썼나 봐요. 저희 부모님은 저 태산에 합격했다니까 보이스피싱 당한 거 아니냐고 의심부터 하셨다니까요?”
“보이스피싱?”
“아,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요즘 사기 수법이라는 상윤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불필요한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도 걱정할 거리가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나 같은 처지의 잃을 것 없는 사람들에겐 무용한 것이었다.
“아무튼 저는 평생 태산에 충성할 자신 있습니다. 사모님께서도 저 믿고 맡겨만 주세요!”
패기 넘치는 소리에 그냥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맡기긴 내가 뭘 맡길까. 그래 봤자 결국 지건호 밑에서 일하는 사람을 믿긴 또 어떻게 믿고.
어딜 가든 그의 손바닥 안이라는 생각에 목이 갑갑해졌다. 창문을 살짝 내릴까,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가 룸미러를 바라봤다. 상윤은 여전히 즐거워 보였다.
“태산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건?”
묻는 말에 상윤이 눈썹을 들썩였다. 룸미러에 비친 그의 얼굴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조금은 피곤한 목소리로 설명을 붙였다.
“지건호 말이에요.”
“아, 아! 본부장님! 근데 그게 무슨.”
“상윤 씨는 만족하냐고. 그 사람…… 내 남편 밑에서 일하는 거.”
말을 내뱉고 보니 그리도 적확한 단어가 없었다. 내 유일한 보호자라고 하지만, 내 편은 아닌 사람. 남편. 껄끄러운 그 단어를 주워 담을 수도 없어 혀끝에 고인 쓴맛을 되새기는데 상윤이 작게 탄식했다. 나름대로 적절한 답변을 골라내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해도 돼요. 그 사람한테 말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런 거 하나하나 일러바칠 사이도 아니다. 무심한 어조에 신뢰가 생겼는지 상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투정부리듯 꼬리 내린 눈썹이 귀여웠다.
“사실 요즘은 엄청 힘듭니다.”
“요즘이라면 역시, 나 때문이겠네요.”
“아니, 아니에요. 사모님 때문이 아니고요! 정말입니다.”
“괜찮아요. 내가 생각해도 힘들 것 같으니까. 지금 상윤 씨 얼굴 보면 사실인 것도 같고.”
기억도 없는 사람 모시고 다니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몇 개월간의 병원 생활 동안 함께했던 김수연이야 이미 적응이 될 대로 된 사람이고, 또 워낙 감정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라 이제 나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신상윤은 달랐다.
그의 몸짓과 표정에 담긴 불편함을 못 읽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말은 해 둬야겠네. 상윤 씨 좀 적당히 부려 먹으라고.”
“네? 아니, 괜찮습니다. 어휴, 아닙니다. 진짜로요!”
상윤의 당황한 얼굴을 보는 게 제법 재밌어 몇 번 더 놀리듯 말을 건네다가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난데없는 웃음소리에 상윤이 귀를 쫑긋 세우고는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농담하신, 아…….”
“그 사람이랑 그런 말 할 만큼 아직 친한 사이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그러고는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며 전방을 향해 턱짓했다. 애교스럽게 눈을 찌푸린 상윤의 얼굴 위로 다감한 웃음이 떠올랐다.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언젠가 지건호 밑의 사람을 이용하게 된다면 신상윤이 적합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건호 밑에서 밀접하게 붙어 일하는 사람. 그러나 그와 마냥 가깝지는 않아 적당히 거리감도 있는. 그래서 지건호의 눈을 어느 정도 속일 수 있는.
하지만 그런 날이 과연 오긴 할는지. 어느새 나도 모르게 현실에 안주한 것도 같은데.
“본부장님은 그래도 좋으신 분입니다, 사모님.”
퇴원하는 날, 김수연이 내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어디서 세뇌라도 받았나. 나는 룸미러를 통해 상윤을 바라보던 눈을 밖으로 돌렸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설득될 것만 같았다.
지건호는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거라고.
“저 처음 들어왔을 때 저한테 유일하게 호의적이었던 분도 본부장님이시고요.”
“…….”
“사실 저 김 실장님한테 혼 많이 났었거든요. 이대로 수습 기간에 잘리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 진짜로 잘릴 뻔하기도 했어요. 그때 본부장님이 만류하셨다고 김 실장님이 그러더라고요.”
“…….”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스펙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역시 안 되는구나 자책하고 있었는데, 그때 본부장님께서.”
“왜, 상윤 씨 잘생겼잖아.”
지건호를 향한 과도한 애정이 듣기 거북하여 말을 끊자 상윤이 놀란 듯 눈을 키웠다. 빈정거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진심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기억을 잃기 전 그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는지 나는 알 턱이 없지만, 병원에서 신상윤을 처음 마주쳤을 때를 떠올려본다면 그의 외모는 비누 향이 느껴질 만큼 멀끔했으니까. 그것이 그리 불쾌하다거나 혐오스럽지는 않았으니까.
뭐, 상대가 날 그렇게 느꼈다면 몰라도…….
나는 뻣뻣하게 굳은 상윤의 얼굴에서 순간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삼키고 있는 그를 훑으며 말했다. 어쩐지 실언을 한 것 같았다.
“실례되는 칭찬이라면 미안해요. 실수한 것 같네.”
“아니, 아닙니다, 사모님.”
실례라니, 가당치도 않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인 상윤은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괜한 말을 꺼냈나 싶었다. 거듭 밀려오는 머쓱함에 뭐라고 말을 더 잇지도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찾은 정적이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시트에 등을 붙였다. 밖을 보니 병원까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나는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대중없이 구경하다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하는 바깥 구경도 목적지가 병원이라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그냥 눈을 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귀를 열어두어도 들리는 것은 따로 없었다. 눈을 떠도 제대로 보이는 게 없는 것처럼. 남들 입을 통해 그려보는 신지원의 지난날이 그러하듯이.
신지원, 신지원. 지건호가 애가 닳도록 사랑했다던 그 신지원.
‘희원아.’
나는 문득 귓전을 파고드는 지건호의 목소리에 숨을 잠시 멈추었다가 입술 새로 웃음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희원, 그 낯선 이름은 좀처럼 흐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