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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15)화 (15/60)

| 15화

“놔!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에요?”

고작 손 하나 잡혔다고 지나치게 발작하는 꼴이었지만, 입으나 마나 한 옷을 걸친 몸으로 그와 살을 맞대기엔 나 역시 심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의 손아귀에 갇힌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으나 소용없었다. 되레 가볍게 내 손을 비틀어 잡은 지건호가 가까이 몸을 맞대어 왔다.

“목소리 낮춰. 밖에 사람들 있어.”

“들으라고 이러는 거야. 당신 정신 나갔어? 미쳤어요?”

잘릴 대로 잘려 토막 난 말은 좀처럼 곱게 나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낚아채듯 가져간 내 손을 수납장 위로 지그시 누른 지건호가 고개를 비딱하게 숙였다. 저를 쏘아보고 있던 내 얼굴을 보다 더 자세히 감상하고자 하는 눈빛이었다.

미친놈. 그는 마치 그 말에 충실하려는 듯했다. 내 얼굴을 더듬던 끈적한 시선은 턱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성을 더했으나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냉랭해졌다. 흥분한 건 나밖에 없는지, 널뛰는 내 가슴 언저리를 무감한 눈으로 훑던 그는 흘러내린 브래지어 끈을 추어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건 너지, 지원아.”

“……뭐?”

“정신 나간 사람은 너라고. 신지원.”

그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냐는 듯한 얼굴을 하며 내 볼을 검지로 툭 쳤다. 퍽 장난스러운 손짓에 치를 떨며 고개를 뒤로 물렸지만 내가 빠져나갈 공간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체념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에게 잡힌 손에서 아릿한 통증이 번졌다.

“용건이 있으면 말로 해요.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아, 이것 좀! 아프다고.”

“나도 가급적이면 말로 하고 싶어. 너만 제대로 협조한다면.”

그는 나무라듯 말하고는 내 손을 떨쳤다. 별로 세게 잡은 것도 아니었을 텐데 악력 차이 때문인지 손가락이 얼얼했다.

사고 후유증이 있었나. 아니, 그것보다는 더 지난 일 같았다. 꽤 오래 묵은 통증. 이것도 내 과거와 관련된 일일까.

“그래서 무슨 허튼수작이야, 또.”

쥐가 내린 듯 약간의 저림이 생긴 손을 주무르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에서는 날 향한 걱정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자칫 속을 뻔했다. 그깟 영양제 따위가 뭐라고.

“수작이라니. 무슨 수작.”

되받아치는 말에 그는 허리를 바로 세웠다. 내게 기울였던 몸이 천천히 멀어지는가 싶었지만 날 눌러 찍듯 내려다보던 눈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더 이상 내 몸에 관심은 없는 듯, 맞부딪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오늘 뭐 했어, 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미 다 알지 않아요? 병원 갔다 왔잖아.”

“내가 그걸 몰라 묻는 거 같아?”

“그럼 뭘 알고 싶은 건데.”

“신지원.”

나는 그가 부르는 내 이름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실은 지건호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심리 상담이 끝난 뒤 신상윤을 따돌렸던 한 시간. 그 공백을 묻는 거였을 테니까.

고작 한 시간이었다. 그래 봐야 같은 건물 안이었고. 상담 센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윤에게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해놓고는 그가 잠시 한눈판 사이 다른 층에 있는 병원을 방문했을 뿐이었다. 뒤늦게 알고 식겁하여 날 찾아다닌 상윤의 앞에 스스로 모습을 보인 것도 나였고.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이대로 잘리는 줄 알았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상윤에게 우리끼리 알고만 있자고 약속한 것 역시 나였다.

그런데 그게 벌써 귀에 들어갔나. 오래갈 약속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참 빠르기도 하다.

“상윤 씨가 말했어요?”

다소 피곤을 담은 눈으로 묻자 그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뒤로 팔을 뻗어 수납장을 짚으며 고개를 들었다.

“안 되겠네, 상윤 씨. 당신한테 잘 좀 봐달라고 부탁할랬더니.”

“부탁?”

“말 그대로예요. 내 밑에서 일하는 거 힘들어 보여서 잘 챙겨 주라고 당신한테 말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뭐, 글렀네.”

“약속했다는 게 그런 거야?”

나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키웠다. 의심 어린 얼굴로 날 지켜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약속하자며. 입 밖으로 새어 나갈 일 없게 단속하고.”

대체 이게 무슨. 지건호가 하는 말은 신상윤에게 들은 내용을 전달하는 투가 아니었다. 게다가 어조로 봤을 때 그 내용까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닌 듯했고.

그렇다면.

“혹시 나 도청해요? 설마 차에서 하는 얘기 다 듣고 있어요?”

“묻는 말에 답이나 해.”

그렇다는 소리였다.

“하, 저기요, 지건호 씨.”

그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이건 다른 경우지 않나. 차 안에서의 대화까지 도청하고 있는 거라면 나는 대체 언제 제대로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 맨살갗에 소름이 도르르 일었다. 싸늘하게 식은 마음은 금세 분노로 휩싸였다.

“날 대체 뭘로 보고 그런 짓까지 해요? 집에 가둔 것까지는 좋아. 이해해요. 그런데 그런 짓은……. 솔직히 숨 막히네요.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당신 손바닥 안에 있어야 하는 건데.”

“네가 신지원인 이상 어쩔 수 없어.”

그는 뭘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식으로 답했다. 미안하다거나 죄스럽다는 감정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할 만하니 한다는, 내가 신지원이고 그가 지건호인 이상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는 당당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병원 생활이 더 나았다.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사람을 남편이랍시고 내심 기다리던,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가 훨씬 편했다. 몸이든 마음이든.

“그래서 무슨 약속을 했는데?”

“글쎄요. 뭘 약속했더라? 생각이 안 나네.”

상담이 끝난 후의 공백을 다른 이들, 특히 지건호에게는 말하지 말자는 약속이었다. 이를 두고 지건호는 다른 쪽으로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가령 내가 상윤과 밀회를 즐겼다는 식의 저속한 오해.

나는 빈정거리면서 웃었다. 지건호의 굵다란 목 가운데, 유난히 툭 불거진 목울대가 여유 없이 꿀렁였다. 제법 볼만했다.

“그런데 당신 그건 아직 모르나 봐요. 나 오늘 한 시간 정도 늦었는데.”

“알아. 상담이 늦게 끝났다며.”

“아닌데. 상담이 늦어지긴 했지만 한 시간까지는 아니었어요.”

담당의는 내게 상담 내용을 발설할 일은 없다고, 그것이 설령 지건호여도 마찬가지라고 날 안심시켰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용은 몰라도 적어도 심리 치료의 방향에 대해선 보고가 들어가겠지. 횟수나 시간도 당연했을 테고.

그러고 보면 오늘 일도 병원 내에서 알게 모르게 소란이 있었을 텐데, 지건호는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

나는 쓸데없는 곳에 보안이 좋다며 속으로 조소했다.

“궁금하지 않아요? 그 빈 시간 동안 뭐 했는지. 난 되게 궁금할 것 같은데.”

“…….”

“음. 이건 어때요? 병원 CCTV를 죄다 확인하는 거지. 이왕이면 비상계단 같은 곳으로. 아, 화장실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거긴 안 되죠?”

내 말을 찬찬히 곱씹는 그의 얼굴에선 좀처럼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이러면 재미없지.

“응? 건호 씨.”

나는 그의 가슴팍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내리깔았던 눈을 치떴다. 굳어 있던 그의 뺨이 잘게 경련하는 것 같았다. 해 볼 테면 계속 해 보라는 눈에 니트 위로 그의 유두를 덧그리던 손을 곧장 허리 아래로 내렸다.

지건호의 숨이 작게 터진 건 그때였다. 그도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제 허벅지 위를 쓰다듬던 내 손을 황급히 붙들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숨이 그의 단정한 입술 사이로 비죽 빠져나왔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꼭 설명이 필요한가요.”

당신 벌써 젖었어. 그에게 속삭이듯 말하고는 그의 왼쪽 허벅지를 더듬었다. 농담 삼아 짐작한 말이지만 그의 성기는 진작부터 발기한 상태였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상당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딱히 웃기지는 않았으나 흘린 웃음에 거짓은 없었다.

“몰랐는데, 지건호 씨는 당신 아내가 다른 남자랑 붙어먹는 상상을 하면 흥분하는 편인가 보죠?”

“…….”

“아, 감청하고 감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내가 못 미더워서 그런 게 아니라. 혹시 일부러 다른 남자들을 붙인 건 아니에요? 순전히 본인 쾌락을 위해서?”

한껏 도발한 것에 비해 지건호는 차분했다. 그는 역치 없는 장난질을 가만히 방관했다.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도를 넘는 짓이라는 건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지건호를 긁어봤자 나로서는 얻을 것도 딱히 없었다. 잃을 게 있다면 몰라도.

그리 생각하자 감흥이 식었다. 누구 좋자고 하는 짓인지. 그의 허벅지를 의도적으로 더듬던 손길을 멈추자 머리 위로 같잖다는 듯한 웃음이 떨어졌다. 흩어진 웃음을 떨쳐내기도 전에 그가 내게 몸을 붙였다.

“아, 무슨…….”

“왜 멈추지?”

지건호는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성기를 훑던 내 손을 다시금 제게 갖다 대었다. 이대로라면 당장이라도 바지를 벗거나 그 안에 내 손을 집어넣을 기세였다.

“먼저 건드렸으면 뭐라도 해야지. 그게 신지원 신조 아니던가.”

그는 내 손을 도구 삼아 고정하고는 허리를 추어올렸다. 의도가 명백한 행동이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노골적인 허리짓에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그럴수록 그를 자극하는 꼴이었다.

“이거 좀, 놔요!”

“왜, 나만 재미 보는 것 같아 아쉬워?”

건조한 웃음을 삼킨 지건호가 다른 손으로 내 허리를 붙잡아 밀착시켰다. 옆구리를 무성의하게 쓰다듬던 커다란 손이 속옷을 비집고 들어온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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