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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3)화 (23/60)

| 23화

서로를 다시 찾은 입술은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확하게는 지건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는 마치 내가 키스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붙이더니 혀를 넣었다. 자각할 틈도 없었다.

성마르게 침범한 혀는 뿌리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내가 잠시 되찾은 기억까지 흩뜨려 놓았다. 지건호가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을 때와는 또 다른 답답함에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집어삼켜질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웬일인지 내가 미는 그대로 고이 뒤로 밀려난 그는 내 입가에 입술을 붙이고는 호흡을 골랐다. 한숨 같은 그 숨에 채 가시지 않은 정욕이 길게 늘어졌다. 그는 저조차도 용인할 수 없는 그 감정에 분노하는 것 같았다. 날 바라보는 눈에 어린 경멸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지금 이 행동이 단지 내 기억만을 위한 일인 건지, 그것이 옳은 일인 건지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생각이 길어질수록 이 행동에 면벌부는 없어지는 셈이니까. 더는 다른 생각 말라는 식으로 나는 그를 껴안았다. 입술이 다시 맞붙고 토막 난 숨은 다시 그에게로 흘러갔다.

얼핏 첫 키스가 생각나는 것도 같았다. 가볍게 붙이고 떨어질 줄 알았던 입술이 아릿할 정도로 빨리고, 낯선 감각에 놀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들어온 혀는 애를 태우듯이 여린 살을 간지럽혔다. 나도 모르게 흘린 신음에 귓바퀴는 가히 입술보다 더 붉어졌다.

나는 눈을 살짝 떴다가 다시 감았다. 기억 속 지건호와 지금 내 위에서 내 가슴과 그 아래를 더듬고 있는 지건호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그와 나누었던 마음이 지금 그에게 향한 내 마음과 같은 크기일 거라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아아.

소리 없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곧바로 떨어진 입술에서 서로의 타액으로 빚은 은빛 선이 길게 늘어졌다. 그는 그걸 끊을 생각도 없는 듯 내 목덜미에 바로 입술을 내렸다. 팔딱거리는 맥을 따라 붙인 입술에 화인이라도 찍힌 사람처럼 몸이 떨렸다.

쇄골까지 잘게 내리던 입술은 어느새 내 가슴 위로 향했다. 나는 입고 있던 상의를 벗으려고 했지만 그는 그대로가 좋은지 겉에 입은 상의만 턱밑까지 올리고는 브래지어만 아래로 내렸다. 졸지에 옷은 다 입은 채로 가슴만 내놓은 상태가 되었다.

다소 성의 없이 가슴을 만지던 손은 그제야 노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래지어 안쪽으로 가슴을 한 손 가득 넣고 치대는 듯하던 그는 반대쪽 가슴을 입에 물자마자 제 손바닥을 간질이던 유두를 꼬집었다. 읏. 짧게 번지는 통증에 움찔거리며 허리를 비틀자 그가 가슴을 문 채로 웃었다.

“여전하네. 예민한 건.”

나는 대꾸하지 않고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지건호가 눈을 마주치고 섹스하는 걸 좋아한다는 게 뒤늦게 생각났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에 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도 딱히 개의치는 않는지 이미 입에 물고 있던 가슴을 재차 크게 베어 물 뿐이었다.

확실히 그와 몸을 겹칠수록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맞는 것 같았다. 비록 그것이 온전한 기억은 아닐지 몰라도, 그의 말마따나 내가 그의 손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정도는 희미하게 떠올랐으니까.

그럼 앞으로 몇 번 더 몸을 겹치면 기억을 다 찾을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기억을 찾기 위해 지건호에게 섹스를 구걸하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나는 그 사실이 우스워 작게 웃었다. 그 소리에 지건호가 행동을 멈추었다. 툭 내뱉어진 젖꼭지가 쓰라렸다.

“하던 거 계속해요.”

내가 생각해도 썩 달콤한 말은 아니었다. 열에 달뜬 어조도 아니었다. 지극히도 사무적인 태도에 지건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눈을 가리고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던 거, 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시야가 흔들렸다. 지건호가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운 것이었다. 나는 인상을 구기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가리긴 뭘 가려. 눈 뜨고 똑바로 봐.”

“…….”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건데 잘 봐야지.”

그는 마치 내가 그의 몸을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양 굴었다. 기억을 찾기 위해서든, 아님 그냥 몸이 달아서든. 전자가 이유라면 담당의가 제안까지 했던 것이니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지건호가 찾은 이유는 그쪽이 아닌 것 같았다.

입술 끝에 걸린 헛웃음을 마저 지워낸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시계를 확인했다. 덩달아 돌아본 시간은 생각보다 꽤 오래 지나 있었다. 창원댁을 포함한 사용인들은 이미 퇴근하고도 남을 법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길게 한 줄은 몰랐는데. 한 거라고는 겨우 키스에 가슴 애무가 전부인데. 문득 솟구친 민망함에 입술을 꾹 눌러 다물었다. 마치 이제 와 첫 경험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건호는 나를 내려다보며 드레스 셔츠 단추를 하나씩 끌러내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핏줄이 불거진 큰 손이 조금씩 아래로 향할 때마다 내 아랫배에 뭉근한 미열이 번졌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지 않고 그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내게 눈을 고정한 채 단추를 풀던 그의 손은 얼핏 절제된 동작 같았지만,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는 여유를 잃은 것 같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지 힘을 줘 벌린 셔츠에 단추 하나가 허공에 흩날리며 어딘가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알아차리지도 못한 것도 같았다. 아니면 그깟 단추 따위에 허비할 시간이 없었는지도.

셔츠를 벗어 던진 그는 이어 벨트를 풀었다. 나는 그냥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오직 섹스만을 위한 일련의 행위에 어떤 눈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이럴 거면서 어제 지건호는 왜 자극했던 건지. 자조하며 쓰게 웃었다. 그에 지건호가 제 허벅지 사이로 나를 가두며 몸을 낮춰 왔다. 입술을 가볍게 물고 떨어진 그가 서늘하게 웃었다.

“지현민이 공주 대접 잘해 줬나 보지?”

무슨 뜻인지 쳐다보자 그가 날 위아래로 빠르게 훑었다. 뭘 모르는 척 구냐는 눈이었다.

“옷 하나 혼자 못 벗고. 벗겨주길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건…… 하.”

자기가 못 벗게 해놓고 이제 와서 웬 생트집일까. 어이가 없었다. 따지려다가 내 손해일 것 같아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지건호가 내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됐어. 지금처럼 필요한 것만 적당히 내놓으면 되지.”

그는 몸을 움직이느라 흘러내린 내 옷을 다시 위로 올리면서 내 가슴을 한 번 쥐었다 놓았다. 그러고는 이건 없는 게 내게도 더 편하지 않냐며, 내 등 뒤로 손을 넣고는 심상한 어조로 브래지어를 벗겼다. 어쩐지 후련해져 크게 호흡했다.

해방된 가슴은 곧장 그의 손에 다시 갇혔다. 그는 꼿꼿하게 도드라진 정점을 제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멋대로 가슴을 반죽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유두를 때맞춰 비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불규칙적으로 신음하며 입술만 달싹거렸다. 어느새 그에게 맞추어 가슴을 먼저 내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래가 이완되었다가 순식간에 긴장하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는 적당히 내보인 내 가슴에 과도한 애정을 표했다. 이걸 애정이라고 하는 게 맞는가 싶었지만, 어쩌면 제가 평생 가지지 못할 것을 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욕심이 그득한 손 아래 가슴이 형태를 잃을 것 같다 싶으면 다시 입 안 가득 살을 물고는 좀처럼 뱉질 않았다.

아주 변태가 따로 없었다. 예전에도 이랬었나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적어도 기억 속 그는 섹스할 때 늘 다정했다. 이렇게는, 아니, 애초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그만, 그만요.”

나는 내 말에 고개를 든 지건호의 뺨에 손바닥을 대었다가 화들짝 놀라 뗐다. 몸에 밴 익숙함이 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아, 아파요.”

답지도 않게 말을 더듬자 잠시 멍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그가 낮게 욕설을 짓씹었다. 거친 숨을 내뱉는 입술에 다른 말이 고여 있는 것 같았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괜히 시트를 움켜쥐었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말을 돌렸다.

“전에는 이렇게, 안 했던 것 같은데 왜…….”

말끝을 흐리면서 던진 눈길에 그가 피식 웃었다. 조롱의 의미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그랬지.”

“그럼 지금도 그때처럼…….”

“지금은 경우가 다르잖아.”

아. 나는 그가 뜻하는 말이 무엇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 신지원이 지금 네가 아니듯이.”

그러니까 불과 조금 전까지 그의 밑에서 헐떡이며 스스로 가슴을 물리기까지 했던 나는 지금의 지건호에게는 그저 여자에 불과할 뿐. 우리는 지금 사랑을 완벽하게 배제한 관계를 위한 관계를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제 말이 이해가 되냐는 듯 눈으로 물었다. 그 눈에 담긴 냉정함을 마주하자 뒷덜미로 소름이 일었다. 여전히 그의 손은 내 가슴을 감싸고 있었지만 순간 느낀 한기를 모두 덮지는 못했다.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작게 움츠렸던 몸을 펴며 다리를 벌렸다. 어디 원하는 대로 해 보라는 심산이었다.

어차피 나 역시도 그를 이용하는 건 마찬가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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