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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4)화 (24/60)

| 24화

후회는 빠르게 밀려왔다. 그리고 지건호는 그런 내가 후회하기만을 기다리던 사람처럼 굴었다. 내 머릿속까지 헤집는 손길은 집요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쉽게 굴복할 거면서 무슨 자신감이었냐고. 어제 드레스룸에서 날 타박하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 그는 분명 날 다스리려는 것이었다.

“아흐…….”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아보려고 했던 신음은 내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나는 이제 제발 좀 적당히 하라는 의미로 그의 머리채를 낚아채다시피 했다. 그러자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지건호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물기로 얼룩진 그의 입술이 빛을 받아 번쩍였다. 혀끝으로 제 입술을 할짝인 그가 젖어든 음부를 가볍게 두드렸다.

“왜, 이건 예전에도 하던 거라 익숙할 텐데.”

거짓말이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이렇게까지 전희가 길어진 적은 없었다. 차라리 고문이 더 달가울 것 같았다. 채워질 듯 말 듯 안달난 몸에서 단번에 수분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란.

“기억 안 나?”

나는 수치심으로 적신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젖은 손가락을 제 입 안에 넣고 쭉 빨았다가 꺼낼 뿐이었다. 그렇게 쳐다본들 달라지는 건 없다는 투였다. 그 꼴을 보기 싫어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귀에 닿는 노골적인 소리가 더 모욕적이었다.

“적당히 좀, 하읏!”

다시 아래로 손을 내린 그는 이미 부풀 대로 부풀었을 클리토리스를 거칠게 둥글리며 말했다.

“허투루 기억하나 보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는 마치 내가 엄살이라도 부린다는 듯, 달래듯이 내 뺨에 입술을 비볐다. 그러면서도 아래를 헤집는 손에는 변함이 없었다. 뺨을 지나 입술에 닿는 퍽 다정한 키스에 몸이 얼어붙었다. 덩달아 움칠한 곳이 길고 굵은 손가락 두 개를 물고 늘어졌다.

지건호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손목을 살짝 틀었다. 나는 경악에 가까운 신음을 겨우 죽이며 입술을 다물었으나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고 그에게 잡아먹혔다.

그는 도리어 잘되었다는 듯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제 입술로 내 혀를 당겼다 놓았다. 감히 상상도 못 한 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가 내게 건넨 모든 것들의 출처는 전부 나였기에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에 의해 필요한 곳만 적당히 내놓은 상태였고, 그런 진창 속에서 지건호는 나를 정도 이상으로 희롱하고 있었다.

찔걱이는 소리는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음을 달리 하는 것 같았다. 두 개였던 손가락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나 질구를 빠듯하게 채웠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은 것까지 마저 채울 기세였지만 그건 용도가 따로 있다는 듯, 벌겋게 부푼 정점을 매만지는 엄지에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턱이 달달 떨리는 듯했다. 생리적으로 차오른 눈물이 이미 관자놀이까지 길을 튼 자국을 따라 또 한 번 흘러내렸다.

아, 아. 이제는 나도 뭐라고 내뱉는지도 모를 소리들이 그의 입술로 빨려 들어갔다. 허벅지가 잔뜩 긴장되었다. 이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홧홧하게 달아오른 몸은 마치 더운 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그의 손에서 고조된 감정은 흐를 듯 흐르지 않으며 내 안에서 고여만 갔다. 맞붙인 입술 사이로는 열 오른 숨이 흩어지다가 이내 다시 갇히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날 잘 안다고 하던 그의 말은 과연 사실이었다. 그는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다 알고 있다는 양, 말 그대로 손쉽게 움직였다. 엄지로 음핵을 짓이길 듯한 행동은 마치 내가 얼마만큼 흐느끼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음을 뱉었다. 그리고 그는 제가 원하는 게 아니다 싶으면 민감하게 손의 방향을 바꾸거나 깊이감을 조절했다. 내벽을 꾹꾹 누르는 손가락은 지나칠 정도로 섬세했다.

“아, 흐, 응.”

좁은 곳을 푼다는 명목으로 들어찬 손가락은 어쩐지 저를 더 조일 때마다 환호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내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던 질구도 그를 놓을 생각이 없는 듯, 음탕한 소리만 가득 내뱉었다. 젖은 소리가 귓전 가득 울렸다.

파도에 맡긴 몸처럼 너울진 마음이 돌연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이 혼몽해진 가운데, 나도 모르게 턱이 치들렸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모두 빼내며 뻐끔거리는 질구로 시선을 내렸다. 희한한 해방감에 어쩔 줄 모르는 질구는 이미 젖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물기로 얼룩졌다.

그의 손목은 물론이고 팔뚝까지 튄 물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확실한 게 있다면 오늘만 벌써 두 번째였다는 것.

밀려드는 당혹스러움에 입술을 감쳐물었다. 그러나 내 뜻을 배반한 몸이 제멋대로 떠는 바람에 입을 다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다 벗지 않고 허벅지 아래 걸치고만 있던 바지가 시트 위로 비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좀 벗을까.”

그는 흐무러진 음부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고는 음핵을 살짝 긁었다. 아직 남은 감각에 자지러질 듯 몸을 비틀자 그가 그 틈을 비집고 내 다리에 걸쳐진 바지며 팬티까지 단번에 벗겼다.

그러고는 미처 오므리지도 못한 허벅지를 그러쥐며 제 얼굴 가까이 당겼다. 그의 팔에 오금을 걸친 채 방만하게 다리나 벌리고 있는 자세였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되게 좋아하네. 유난히 요구하는 게 많고.”

꽤 분석적인 평은 당연하게도 내 다리 사이를 향한 것이었다. 물기에 젖은 음모를 다감한 손길로 쓸어 올린 그는 혓바닥으로 그 아래를 길게 핥아 올렸다. 나는 벌써 쉬어버린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했다.

“아, 그만…….”

“가만히.”

정말이지 더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공백과 다름없는 기억을 안고 사는 나는 그에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칫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그야말로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으니까.

“원래 여기까지는 다 했어.”

예를 들면 그가 말하는 ‘원래’라는 걸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일.

그는 여상한 어조로 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취급했지만, 자신이 조금은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는 줄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체념하며 머리를 뒤로 떨구었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껌껌한 시야에 알 수 없는 별자리가 가득했다.

* * *

잠깐 눈을 붙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잠에 빠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꿈이라도 꾼 듯 다급한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을 때 상황은 이미 종료된 뒤였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그러고 그냥…….

나는 손을 내려 아래를 더듬었다. 휑할 거라고 생각했던 곳은 속옷만 안 입었다 뿐이지 이미 뭔가를 입혀 놓은 상태였다. 윗옷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그 이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작게 안도하며 빠르게 주위를 훑던 나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옆자리에 지건호가 눈을 감은 채로 누워 있었다. 샤워를 했는지 머리카락은 내린 상태였다. 베르가못 샤워오일 향이 은근하게 코끝에 맴돌았다. 내게서 나는 향은 아닌 걸로 봐서 난 그냥 닦아주는 걸로 마무리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오늘만큼은 아니지만 공들인 애무나 본격적인 정사 뒤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듯이 넋을 넣고 널브러져 있을 때면 지건호가 손수 내 몸을 닦아주었다.

종종 샤워를 같이 하기도 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가 샤워를 하면서 미처 사출하지 못한 정액을 한 차례 더 뽑아낸다는 걸 알았으니까.

언제나처럼 내게 맞춘 섹스였다. 내가 그만두자고 하면 얼마든지 그만둘 사람이었다. 실제로 두 번 정도는 그러기도 했다. 처음은 내 컨디션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그저 장난이었는데, 깔끔하게 물러나는 게 아쉬워 당신은 나랑 하는 게 기껍지 않냐고, 왜 설득할 시도조차 하지 않냐고 투정부렸더니 뭐라고 했더라.

우리 관계의 주도권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 신지원에게 있으며 내가 하는 일에는 절대 설득이 필요치 않다나. 진중한 얼굴로 뻔뻔스러운 말을 잘도 떠들어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과거 얘기일 뿐. 지금의 지건호는 예전과는 달랐다. 잠든 나를 붙들고 뭔 짓을 하려면 충분히 할 법했다. 그럼에도 하지 않았다는 건.

“…….”

물론 더 짙은 행위를 하긴 했지만 제대로 맞춘 거라고는 기껏해야 서로의 입술이 전부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그동안 어긋나 있던 연결고리가 조금 느슨하게 바뀐 느낌이었다.

“불을 켜 줄까.”

난데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순간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떨어질 뻔한 심장을 붙잡듯 가슴께에 손바닥을 붙이고 놀란 마음을 달래며 얼굴을 돌렸다. 눈에 익은 어둠 속에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놀랐잖아요. 자는 줄 알았는데.”

“방금 깼어. 시끄러워서.”

내가 딱히 시끄럽게 한 건 없는 것 같지만 일단은 사과했다. 먼저 잠든 것에 대한 사과이기도 했다.

“미안, 해요.”

“됐으니까 이만 내려가. 나는 밝은 데서 잠 못 자니까.”

날 위해 불을 켜줄 생각은 없으니 자고 싶으면 1층 침실로 내려가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리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그의 선명한 이목구비 정도는 분별이 가능한 조도였다. 그랬으니 내가 편히 잠들었던 거겠지.

“왜.”

그의 얼굴을 쳐다보느라 별달리 대꾸를 하지 못하고 주춤거리자 그가 물었다. 피곤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모셔다 줘야 해?”

“그게 아니라.”

“아니면 가. 얼른.”

쫓아내는 건가. 불쑥 반발심이 생겼다. 나는 성가시다는 듯이 눈을 감은 지건호를 보며 물었다.

“근데, 희원이가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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