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나는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덤덤한 목소리로 내 임신을 말하던 그는 이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아이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음을 확신한 듯했다. 그가 입술에 겨우 내건 미소가 더없이 쓰게 느껴졌다.
“임신하고는 왜…….”
“네가 입덧이 심했어. 지나가는 차 소리만 들어도 구역질을 하더라고.”
“…….”
“당연히 냄새 심한 음식은 못 먹었고. 그나마 먹는다고 해도 뱉어내는 게 더 많았지.”
아. 아무 말도 못 한 채 입만 벙긋거리는 나를 보고 그가 괜한 소리를 했다는 듯 맥없이 웃었다.
“밥 먹으면서 할 소리는 아니네.”
“나는 괜찮은데.”
“많이 먹어, 그럼.”
내게 고기를 한 점 건네는 손길에 전에 없던 다정함이 찰나 물들었다.
마치 그 시절의 나를 연민하듯이.
그는 그냥 그런 일도 있었다며 먼 과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회상하려는 듯했으나 그에 담긴 동정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너는 아니겠지만 나는 후회 많이 했어.”
“……아이 가진 걸요?”
나는 그가 내게 남긴 옅은 동정을 지워내며 물었다.
그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이렇게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라는 듯 뺨이 굳었다. 어쭙잖은 동정은 내가 아닌 그에게 향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난 처음부터 아이 같은 건 원하지 않았으니까.”
“…….”
“나한테는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고.”
지건호는 제 계획이 어그러지는 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건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찾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며칠 전만 해도 그랬다.
일주일 단위, 길게는 열흘 단위로 방문하는 정원사가 나무를 한번 잘못 건드린 날이 있었다. 원래 나무라는 것이 생물인 만큼 수형조차 마음먹은 대로 되지만은 않을 텐데, 초기 조경 계획과 다르지 않냐며 얼마나 나무라던지. 그 소리를 전해 듣는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나무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아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솔’이라는 팻말이 꽂혀 있던 그 나무 같기도 하고.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그리 사람을 잡았는지. 다 자라지도 않은 나무 하나에.
어쨌거나 제가 설정한 초깃값에 굉장할 정도의 예민을 떠는 지건호에게 아이란,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을 뿐이다. 한때 제게 왔었지만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회는 남되 미련은 없는 것.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미련하게 과거를 붙잡고 거기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내 눈에 비친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지 과거의 인물은 아니었다. 고로 내가 돌이킬 과거의 그도 지금 눈앞의 지건호와는 다른 사람인 것이다.
아이가 사라진 것도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최선의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있다가 갔어요?”
나는 그가 그랬듯 퍽 덤덤한 어조로 아이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내 얼굴을 느릿하게 훑었다. 그래도 쉽게 입이 떨어지진 않는지 말을 골라내는 입술이 작게 달싹거렸다.
“28주 정도 되었다고 그랬던가.”
“그랬구나.”
마치 남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아니, 남보다도 더한 얘기. 누군가 종이에 써서 창조한, 나와는 전혀 엮일 일 없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야기 같았다.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의 옆자리에 놓인 봉투에 눈길이 옮겨 갔다. 상윤에게 들려 보내지 않고 호텔에 올 때까지도 그가 들고 있던 것. 아이의 옷이 든 봉투였다.
“그때쯤이면 성별도 알 수 있을 때였나요?”
“대충은.”
“그럼 우리 아이는…….”
나는 입술을 감쳐물며 뒷말을 고스란히 삼켰다. 내가 내뱉은 말, 아이 앞에 붙인 우리라는 그 말이 얼마나 어색한 말인지가 실감이 났던 탓이다.
우리는 밀도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비어 있는 공간이 대다수라 밀도가 낮고, 지켜야 할 게 많은 지건호는 밀도가 높았다. 그리하여 난 언제나 그의 위에서, 지건호의 표면만 겨우 읽어낼 뿐 그의 가장 깊고 낮은 곳은 알지 못했다. 저변에 깔린 감정은 당연히 존재조차 몰랐다.
영원히 섞이지 않을 사이였다. 가능한 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이. 그런 우리가 아이를 놓친 건 정말이지 다행인…….
“왜 그렇게 된 거예요? 어쩌다가?”
나는 조금은 따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와서 이리 물어본들 무슨 소용 있겠냐만, 과거에 매몰된 자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돌연 화를 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제 얼굴에 어린 당황을 지워냈다.
“그냥 그렇게 될 일이었어.”
“무슨,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그게 사실이니까.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갑자기……. 그렇게.”
그는 아이를 두고 떠났다거나 사라졌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죽었다는 말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말을 골라내는 것이 날 위한 배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부러 말을 숨기는 그의 눈은 심연에 가라앉아 있었다.
통상 의학적으로 그 정도 주수는 사산으로 분류하는데 아이가 내 배 속에서 심장을 멈추었다고 해도 분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낳았다고 할지 놓쳤다고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듯, 몇 가지 말을 골라내다가 답을 찾았다.
“우리는 그냥 준비가 덜 됐을 뿐이야.”
우리는.
그래도 이건 내 탓으로 돌리지 않는구나.
서툰 위로에 입에 든 고기만 짓씹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턱이 뻐근할 정도로 목 아래에 얼얼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잠시뿐이었다.
“너는 불안정했고, 나 역시도 그땐.”
“…….”
“오롯이 너만 상대하기엔 나도 불완전한 상태였으니까.”
잠시 끊어간 그 말 속에 담긴 진의는 제 자신을 위한 변명 같기도 했다. 오늘 이후로 다시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하는 것도 같았다.
그 순간 한강 어디쯤에서 불꽃놀이를 하는지 하늘 위로 금화를 뿌린 듯 금빛 불빛이 차르르 흩어졌다.
창밖으로 그 모습을 얼마쯤 감상하다가 다시 지건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는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듯 미온적인 얼굴이었다.
“들어요.”
그의 앞에 놓인 접시를 눈짓하며 식사나 마저 하자고 말하자 그는 말없이 손을 다시 움직였다. 나는 그의 반지 낀 왼손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속으로 웃었다.
이 와중에도 저게 과연 결혼반지는 맞을지 의심이 든다면 내가 비정상인 걸까.
과거 따위는 흘려보낸 걸로 치부한 지건호는 이제 완전한 상태가 되었는데,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나는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전복된 감정의 밀도 차에 오직 나만 저 강 깊숙한 곳을 헤매는 듯했다. 마치 지건호가 뿌린 금화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게 허공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찰나의 반짝임이었대도 말이다.
* * *
호텔 컨시어지 직원은 지건호를 보자마자 빠르게 다가왔다. 레스토랑에서 미리 전달을 받은 건지 식사는 잘하셨냐고 묻는 그의 얼굴 위에는 억지로 누그러뜨린 긴장감이 감돌았다. 불편한 사람을 대할 때 특유의 얼굴이었다.
나로서는 익숙한 표정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날 대하던 의료진들도 하나같이 저런 얼굴이었으니까. 마치 값만 비싼 애물단지에 처치 곤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달까.
“호텔 분위기가 좀 바뀌었네요?”
지건호는 저를 향한 직원의 인사에 무심히 대꾸하고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며 물었다. 덩달아 눈을 돌린 곳에는 샹들리에가 조명을 반사하며 저들끼리 오묘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 네. 이번에 특별히 프랑스에서 공수한 작품입니다. 어떠신가요?”
“글쎄요. 난 이런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그러고는 내가 보기에는 어떠냐는 투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나라고 뭘 알까. 그러나 굳이 말이 길어지는 건 싫어서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끄덕이고는 로비를 돌아봤다. 대중없이 훑어보는 눈길은 무감하기 그지없었다.
“저것도 지현민 전무 취향입니까?”
“하하. 아무래도 전무님 의견이 많이 반영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본사 쪽에서 기획한 프로젝트입니다.”
“그게 그거죠.”
갑자기 지현민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지. 대화를 종잡을 수가 없어 옆에서 눈만 굴리고 있는데 문득 수연이 지나가는 말로 설명했던 게 떠올랐다. 지현민의 약혼 상대.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이 호텔 부사장이 되었다고 했던가. 입원해 있는 동안 수연과 뉴스를 같이 보기도 했었다. 어린 나이에 부사장까지 초고속 승진한 데는 당연히 지주회사 대표가 부친인 뒷배경이 있었다고.
재벌 3세라는 딱지를 붙이고도 파격적인 승진이었는데, 그만큼의 능력이 뒤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현민도 제 약혼 상대를 놓지 않고 있는 거라고.
놓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더니 수연은 잠시 뜸을 들이면서 지현민의 여성 편력을 이유로 들었다.
당시에는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지만, 뉴스를 통해 봤던 지현민을 떠올리며 얼굴값 한번 더럽게 한다 싶었다. 수연은 그 얼굴값, 그냥 더러운 정도가 아니라 시끄럽게도 했다며 무심히 덧붙이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