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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33)화 (33/60)

| 33화

“지금 뭐 하는, 아…….”

이성적 판단보다 본능적인 감각이 더 빨랐다. 가운 앞섶을 비집고 들어온 그의 손은 곧장 내 한쪽 가슴을 가득 움켜쥐고는 혀로 그 끝을 돋우었다. 겨우 그것만으로도 쉽게 도드라진 붉은 정점은 곧바로 그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 엉망으로 뭉개졌다.

나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에 지건호가 쿠션 하나를 내 등 뒤로 받치고는 그대로 내 위로 몸을 겹쳐 올랐다.

내가 괜찮다고 대답을 했던가. 찰나 의문이 들었으나 구태여 따질 생각은 없었다. 거창한 표현이긴 하나 어차피 여기까지 올라올 때 각오했던 일이기도 했다. 도리어 섹스를 구걸하던 건 나였으니까.

그런 걸 보면 지건호와 몸을 섞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내게 행운이었다. 그것은 단지 내가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는 얄팍한 기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와 얽혔던 과거를 차치하더라도 내게 거부권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라도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재주껏 달아올랐을 게 분명했다.

성감과 맞바꾼 수치심은 금세 몸에 불을 밝혔다. 열기를 품은 아래가 저절로 젖는 게 느껴졌다. 허벅지를 슬쩍 오므려 봤지만 그 사이에 있는 지건호만 죄는 꼴이 되었다. 되레 재촉하는 몸부림 같았다.

사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럼 관계 후 그의 차 키를 빼돌릴 시간 정도는 남을 테니까.

그는 내게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주지 않을 거라는 듯, 반대쪽 가슴을 마저 손에 넣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유두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혀로 핥던 그는 동그랗게 부푼 것을 제가 그러모은 살덩이과 함께 크게 베어 물었다.

아, 달뜬 신음을 입술을 깨물어 삼키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조명을 둘러싼 금속 테두리에 우리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쳤다.

나쁘지는 않았다. 지건호에게 기꺼이 가슴을 내어 물리고 있는 이 상황이. 그리고 겨우 이것만으로 다른 생각 같은 건 지우게끔 하는 그의 입술이.

닿는 족족 열을 옮기던 그 입술은 두 손으로 맞붙인 가슴을 사이좋게 한 번씩 베어 물었다. 제 손아귀 힘에 딸려온 살에 뺨을 비빌 듯하던 그는 마치 제가 부풀려 놓았음을 자랑하듯 젖꼭지를 가볍게 튕겼다. 순간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의 손이 들어오려는 것 같더니 아랫입술만 스치고는 곧장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가슴 아래, 숨을 고를 때마다 드러나는 뼈를 차가운 손끝으로 쓰윽 쓸고는 그곳을 되짚으며 입술을 내렸다. 뒤따른 혀끝이 간질이는 부위는 조금씩 아래로 길을 내리기 시작했다.

끊길 듯 결코 끊어지지 않는 그 올곧은 집요함에 안달이 난 건 오직 한 곳밖에 없었다. 급기야 나는 오금을 더듬다 긴장된 허벅지 사이를 파고드는 그의 손길에 스스럼없이 다리를 벌렸다. 재촉하는 내 눈길에 지건호가 눈을 맞추고는 피식 웃었다. 무릎에서 조금 떨어진 허벅지 안쪽, 그가 입술을 붙이고 있던 살이 잘게 진동하며 굳었다.

“내가 이래서.”

“…….”

“여기를 싫어해. 알아?”

뭔 소리야. 저만 알고 나는 모르는 얘기에 빤히 올려다보기만 하자 그가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있는 뭔가를 확인하는 듯, 왼쪽 눈 아래가 잠시 구겨졌다.

뭐가 있는데 저러나 싶어 그를 따라 얼굴을 돌리려던 것도 잠시, 내 의지와 다르게 몸이 붕 뜨는 바람에 놀라 아무거나 붙들었다. 다급한 동작에 지건호의 셔츠에서 투두둑 하고 뭔가 뜯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나를 안은 채로 성큼성큼 발을 옮기던 그는 날 샤워기 앞에 데려다 놓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묻기도 전에 위에서 물이 떨어졌다. 안 걸치느니만 못한 배스 가운이 등부터 서서히 젖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나 조금 전에 씻고 나왔어요.”

“알아. 너만 씻었지.”

저는 안 씻었으니 또 씻자는 말이었다. 제가 씻는 동안 내가 또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나. 그렇다고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게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럼 혼자 씻을 일이지 이게 무슨 경우 없는 짓이야.”

더 이상 상대도 하기 싫어 그냥 나가려고 했지만 그가 어림도 없다는 듯 제 몸으로 날 구석에 몰며 앞을 막았다. 그는 이미 셔츠 단추를 반 이상 푼 상태로,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도 여유를 잃은 얼굴이었다.

샤워기의 물은 이제 그의 등을 적시고 있었다. 마침내 다 풀어헤친 셔츠를 바닥으로 집어 던진 그가 내 배스 가운까지 벗기며 말했다. 성마른 손길만큼 목소리에도 짜증이 잔뜩 묻어나왔다.

“너한테서 자꾸 다른 냄새가 나잖아.”

“……뭐?”

“기분 나쁘게.”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듯 그의 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냄새가 났으면 제 침 냄새겠지. 가슴이 닳을까 걱정될 만큼 물고 빤 게 누군데. 어이가 없어 내뱉은 한숨 끝이 씁쓸했다.

불현듯 다른 기억이 겹쳐진 건 그때였다.

‘내 취향은 아닌데.’

‘그래요? 난 이거 향이 산뜻해서 좋던데. 진짜 별로야?’

‘별로. 머리 아파.’

‘그 정도로? 흠…….’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는지 나는 다소 시무룩한 투로 손에 든 것을 내려두었다. 곱게 포장되어 있던 것 위로 상자 뚜껑을 덮으려는데 지건호가 물었다. 지금과는 달리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이 조금 순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었다.

‘왜, 아쉬워?’

‘아쉽지. 근데 할 수 없죠, 뭐. 그냥 다른 사람 줘야겠다.’

‘네가 좋으면 된 거지. 아쉬워하지 말고 그냥 써.’

‘아니에요. 당신 코 예민하잖아.’

그러자 지건호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미련이 넘치는 내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참는 듯했다.

‘내 핑계 대지 말고 그냥 써. 갑자기 왜 내 의사를 묻고 있어. 네가 그런 거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내가 당신 그 촌스럽고 조잡한 취향 맞춰주느라 얼마나 고생 중인데?’

‘촌, 뭐라고, 신지원?’

나는 그를 따라 번진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보던 책은 덮어놓은 채 어느새 침대 위로 올라온 그가 내 목덜미를 이로 살짝 긁으며 말했다.

‘내 취향이 뭐가 어째?’

‘촌스럽고 조잡, 하…….’

그는 내 말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는 듯했다. 잠옷 상의를 들춘 그의 눈이 거만하게 휘었다.

‘그러는 신지원 씨 취향은 참으로 고급스러우신가 봅니다?’

‘아…….’

‘왜, 고급스러움을 다 담기엔 천이 모자랐나 보지? 여길 이렇게 다 뚫어 놓은 걸 보면?’

‘여기만 뚫려 있게요?’

나는 내 가슴 끝을 희롱하는 그의 손을 붙들고는 아래로 끌어당겼다. 가슴을 떠나 배꼽을 지나는 손가락 끝에 열기가 가득했다. 곧장 잠옷 바지까지 벗긴 그가 날 보며 황당하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너는, 지금 이게…….’

‘보시다시피 당신 아내 취향은 저렴한 쪽이라.’

넋이 나간 듯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내 말에 천박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렸다. 가리되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곳은 금세 그가 나눈 물기로 젖어들었다. 그가 깊숙이 들어오기에도 충분할 만큼.

한참 뒤, 그는 제 위에 누워 남은 숨을 고르고 있던 내게 물었다. 물 한 모금으로 겨우 목을 축인 그의 관심이 향한 곳은 섹스 전 그와 얘기를 나누던 그 상자였다.

‘그래서, 저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아, 이제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어차피 선물 받은 거였어.’

‘웬 선물.’

‘그게 호텔에서…….’

호텔. 그때 내가 말하던 곳은 여기였을 터였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욕실에 구비된 어메니티를 바라봤다.

아마 저 어메니티와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선물 받았던 것 같다. 지현민 편으로, 혹은 그의 약혼녀 편으로.

어렴풋한 그 기억을 되삼키며 지건호를 보았다. 진작 벗어 던진 셔츠에 이어 바지까지 탈의한 그의 시선이 뭉근하게 내 뺨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미 내 눈이 조금 전 무엇을 훑고 왔는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지건호는 지금 나를 시험하는 건지도 몰랐다. 제 말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궁금해서. 놓쳐버린 기억을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찾을지를 알고 싶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그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당신 취향은 아니겠지, 그래.”

“……신지원, 너 혹시.”

“당신은 싸구려 같은 취향이라며. 본인 입으로.”

“…….”

“그러니까 나 같은 여자 만난 거고.”

그러지 않냐며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두드렸다. 부드럽던 살이 순간 움찔거리며 단단히 굳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양, 그곳에 가만히 입술을 붙이며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정작 본질은 에둘러 가던 입술 아래로 긴장한 맥이 느껴졌다. 내 것인지 그의 것인지는 몰랐다.

그가 내게 했듯 나는 그의 가슴 곳곳에 잘게 입술을 내렸다. 널찍한 가슴 위로 작게 돋아난 유두를 혀로 둥글리자 머리 위로 불던 바람이 단번에 습기를 머금었다. 내가 베푸는 저렴한 성의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엉거주춤 그의 허리를 껴안고 있던 손을 내렸다. 아직 벗지 않은 드로어즈 위로 손을 갖다 대자 천 아래에 있던 것이 꿈틀거렸다. 거칠게 오르내리는 목울대 안으로 무언가 끓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의 턱 끝을 흘깃 쳐다보고는 드로어즈 사이에 엄지를 끼웠다. 살짝 벌리기만 했을 뿐인데 프리컴으로 젖은 선단이 성급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예의도 없이 배꼽 근처까지 올라붙었다.

놀라 손을 뗐으나 되돌아간 드로어즈는 제가 품고 있던 성기를 채 담지는 못했다. 속옷 위로 비죽 빠져나온 귀두가 음욕으로 번들거렸다. 나도 모르게 그것을 손으로 감쌌다가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뗐다.

“저기, 이거…….”

망측함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더니 지건호가 웃었다. 이번엔 진심이었다.

“너랑 웬만한 건 해 볼 만큼 다 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

“내 착각이었나 보네.”

“…….”

“어디서 이런, 싸구려 짓거리를 배워 왔어.”

그러나 그는 그것이 꽤 제 취향이라는 듯 낮게 웃었다.

“응? 지원아.”

그러고는 내 대답을 차마 기다릴 시간도 없다는 듯 마지막으로 걸치고 있던 옷가지마저 벗어 던졌다. 어디서 재미를 느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정말이지 꽤 흡족하다는 얼굴로 내 귓불을 깨물었다.

흥분에 달뜬 질 낮은 웃음소리가 샤워기 물줄기 소리와 함께 빠르게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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