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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34)화 (34/60)

| 34화

그가 말한 한 시간이 이런 것까지 다 고려한 시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원래 애무에 특히 공들이던 사람이긴 했지만, 이런 거라면 나는.

“아으, 미쳤나 봐.”

나는 내 아래에 개처럼 고개를 처박고 있던 지건호를 급하게 끌어올렸다. 좀 전까지 그가 혀를 쑤셔넣고 있던 곳이 겨우 시름을 놓았다는 듯 잘게 경련했다. 허벅지 사이로 무언가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가 선심껏 뱉어놓은 타액은 아닐 터였다.

순순히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내가 알던 그 모습과는 거리가 상당했다. 기억을 잃기 전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사고 후의 내가 알던 지건호와는 딴판이었다. 그의 손에 꿰뚫려 신음하던 며칠 전과 비교해서도 다른 얼굴이었다.

그 의아한 눈을 읽은 듯, 그는 물기로 얼룩진 입술을 비뚤게 휘며 웃었다. 단정하기만 하던 입술은 오늘따라 요사스러웠다.

“한 시간이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잘 정돈되어 있던 그의 머리카락은 샤워기 물에 맞아 반쯤은 젖어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넘겼다. 이제 와 시간 같은 게 뭐가 대수냐는 투로 말없이 내 얼굴을 응시하던 그는 저보다 더 젖은 상태의 나를 돌려세웠다.

“아, 저기, 늦으면 어떡해.”

고개를 뒤로 돌렸으나 대답 대신 따라붙는 건 그의 상체였다. 등 뒤로 무게감이 더해지자 저절로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반사적으로 벽에 뻗은 손 위로 그의 손이 겹쳐졌다.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것을 얽은 그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영광이네. 내 걱정을 다 해 주고.”

“걱정이 아니라, 분명히 한 시간이라고…….”

“힘들어?”

그럼 안 힘들까. 당연한 걸 물어본다 싶어 말을 삼켰다. 그 역시 내 대답의 진위 여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쯤 되니 차 키고 뭐고 다른 것은 별반 중요하지 않아졌다. 당장은 이 욕실에서 나가는 게 먼저였다.

“좋아하던데, 여기는.”

뒤에서 엉덩이 사이를 벌리고 파고든 손가락이 음부를 두드렸다. 젖은 소리를 들려주려는 듯 노골적으로 아래를 헤집는 손길에 뺨으로 열이 몰렸다. 물기 어린 마찰 소리가 경박했다. 이를 까드득 깨물듯 벽을 짚은 손가락 끝이 하얗게 물들었다.

“너도 이거 들릴 거 아니야.”

“아, 흐응…….”

“그런다고 가려질 소리도 아니고.”

“흐, 읏.”

“잘 좀 버텨봐. 위든 아래든.”

꼭 내가 응석이라도 부린다는 것처럼 달래는 듯한 목소리였다. 퍽 다정한 음성을 내 귓가에 붙였지만 아래를 헤집는 손길에 도의는 없었다.

그는 질구에 손가락을 하나 더 추가했다. 굵다란 손가락을 하나만 물고 있어도 버겁던 곳은 이제 세 개 정도는 거뜬해 보였다. 그 역시 저를 품은 내가 꽤 만족스럽다는 듯 내 뺨에 잘게 키스를 내렸다. 쪽쪽거리며 떨어지는 입술에 마치 우리가 어엿한 연인 행세를 하는 듯한 착각까지 일었다.

……연인 행세. 하, 우리가 연인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자조하던 그 순간 내벽 어딘가를 꾸욱 누르는 손에 등줄기를 타고 쾌감이 번졌다. 그의 손가락을 머금은 곳이 한껏 조여들었다. 시야가 의지와 상관없이 기울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앞으로 고꾸라진 몸을 그가 뒤에서 단단히 옭아맸다.

곧장 뺄 줄 알았던 손가락은 아직도 내 안에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점차 길을 넓히려는 듯한 그 손길에 고조된 흥분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달뜬 숨이 형체도 없이 흩어졌다. 어딘가 고여 있다 떨어지는 물소리는 규칙도 없이 찌걱이는 소리에 금세 묻혀 들었다. 온통 습한 소리로 가득한 이 욕실에서 유일하게 건조한 건 끝이 갈라진 그의 목소리밖에 없을 듯했다.

더는 모르겠다 싶어서 그에게 머리를 기대었다. 그에 의해 흐무러졌던 정신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진작 이러고 있을걸. 신음하던 것도 잊어버릴 만큼 안락함이 느껴졌으나 그것도 찰나였다.

“하, 그만, 건, 아흣.”

그를 찾고 있는 게 어디가 먼저였는지 몰랐다. 순식간에 내 안에서 빠져나간 손가락을 뒤늦게 붙들어보려는 듯이 질구가 뻐금거리며 물을 흘렸다. 미처 토해내지 못한 그의 이름이 혀 위에서 부서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대로 눕고 싶었다. 원하지도 않은 감정이 발끝부터 나를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행여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제 팔로 단단히 날 옭아매고 있는 지건호처럼.

전율하던 것이 조금 사그라들자 그는 내가 제게 더 편히 기댈 수 있게 몸을 낮추었다. 그것은 날 위한 편의인 동시에 저를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그는 자꾸만 내 허리 뒤를 건드리던 페니스를 한 손으로 길게 훑고는 내 허벅지 사이에 그것을 끼웠다. 삽입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상 내 음부에 붙인 것이었다.

예민함으로 똘똘 뭉친 음핵까지 거뜬히 건드린 그의 성기는 그대로 벽에 닿을 듯했다. 시선을 내렸을 때 내 아랫배를 지나 음모를 비집고도 그 선단이 충분히 보일 정도였다. 발기하기 전부터도 워낙 상당한 길이였던 터라 당연한 소리였지만.

나는 갈라진 틈을 느릿하게 오가는 그의 것을 망연하게 내려다봤다. 설핏 분홍빛이 감도는 성기가 날 스치고 지날 때마다 아랫배가 바짝 긴장했다. 애액으로 범벅이 된 질구가 나도 모르게 조여들었다. 그 불규칙적인 호흡에 숨어 있는 감각까지 모두 그곳에서 깨어난 듯, 그의 페니스에 불거진 핏줄까지 세세히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번뜩 스친 생각에 황급히 팔을 뒤로 뻗었다.

“건호 씨, 저기, 그거.”

“뭐.”

“그, 콘돔…… 없어요?”

“아, 그거.”

눈이 마주친 그는 마치 내 말에 그제야 콘돔이 생각났다는 것처럼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고는 놀라 굳은 내 뺨을 살짝 깨물듯이 입술을 붙이며 낮게 웃었다.

“없어. 있어도 안 쓸 거고.”

“아니, 왜…….”

“누구 좋자고.”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어 그의 얼굴을 망연히 쳐다봤다. 이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샤워기에 고여 있던 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적어도 한 사람은 깨끗하면 된 거잖아.”

“…….”

“안 그래, 신지원?”

분명 나를 탓하는 말이었다. 적어도 한 사람이라는 건 본인을 뜻하는 건가. 그렇다면 지건호는 우리 관계에서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는 건가.

적어도.

나는 그 짧은 단어가 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그런 생각은 사치인 것 같았다.

지건호는 한 손으로 날 뒤에서 끌어안은 그대로 발을 하나씩 떼기 시작했다. 무슨 짓인지, 이러고 어딜 가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발이 멈추었다. 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 앞이었다.

날 휘감지 않은 손으로 거울을 대충 두어 번 닦아낸 그는 그 손으로 젖은 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해 주고는 거울 속 내게 시선을 던졌다.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의 눈빛은 턱을 지나 아래로 떨어지며 농도가 짙어졌다.

지난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몸. 그 구석구석 닿는 그의 눈길은 사고 당일의 나를 질타하는 것만 같았다.

어쩐지 그 눈을 마주하기가 낯설어 눈동자를 굴렸으나 쉽지 않았다. 내 의도를 간파한 그가 내 턱을 잡아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기 때문이었다.

“똑바로 봐야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풀어 내 손등 위로 포개었다. 움츠러든 내 손가락 사이에 제 것을 하나씩 끼운 그는 깍지 낀 손을 들어 그대로 내 가슴 위에 겹쳤다.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고 있자 그의 왼손에 끼운 반지가 내 왼쪽 가슴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둥글게 회전했다. 그에 살을 부풀린 유두가 내 손바닥 아래에서 짓뭉개졌으나 고통은 없었다. 지나친 성감이 고통이 된다면 몰라도.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졸지에 그의 앞에서 내 손으로 자위하고 있는 꼴이었다.

내 손을 빌려 거침없이 가슴을 주무르던 그는 그 생각에 방점을 찍으려는 듯 남은 오른손까지 겹쳐 쥐고는 다리 사이로 내렸다. 음부를 지나던 그의 페니스는 다시 내 둔부를 때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기어이 내 손으로 벌겋게 돋은 음핵을 만지게 한 그가 내 귓가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어때. 너한테 맞춰 준 내 싸구려 취향이.”

“으, 흐.”

손만 내 것이다 뿐이지 사실상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유를 가장한 그 얼굴이 보기 싫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보복이라도 하듯 그의 손이 음핵을 긁었다.

난 거의 경악하며 허리를 뒤틀었다. 암전된 줄만 알았던 시야 속에 웃고 있는 그가 다시 비쳤다. 낙뢰처럼 번쩍이던 조명은 덤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할 건데.”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짜증 어린 눈동자가 거울 속 지건호를 지나 내 옆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그에게로 향했다.

한 시간은 진작 지났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를 찾는 전화가 울리기만을 기다리다가는 그것보다 내 숨이 먼저 끊기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해요. 자꾸 헛짓거리하지 말고.”

“헛짓거리?”

그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할 만큼 했잖아요. 그냥 넣으라고.”

“신지원.”

그렇게 부르면 어쩔 거냐고 쏘아보고는 몸을 틀어 곧장 그의 성기를 덥석 잡았다. 한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성기는 그사이 부피를 더 키운 듯했다.

“아님 나도 입으로 해 줘야 해요?”

“…….”

“알았어요. 그런데 당신만큼 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못 해.”

저게 입에 다 들어가기는 할까. 벌써부터 턱이 얼얼해졌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손에 쥔 것을 밑동까지 길게 훑고는 심호흡하며 입을 벌렸다. 다소 비릿하고 쓴맛이 감도는 귀두를 조심히 입술에 붙일 때였다.

“그만해.”

“…….”

“일어나라고, 신지원.”

그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내 팔을 거세게 잡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손에서 놓쳐버린 거대한 살기둥이 내 뺨을 툭 때렸다. 황당함이 볼에 얼얼하게 번졌다. 내 얼굴을 손으로 감싼 그가 마치 내 입에 담았던 것을 모조리 씻어낼 듯 입술을 짓뭉갰다. 그의 손아귀에 틀어잡힌 턱에 아릿한 통증이 일었다.

“아파요.”

뭉개진 발음에 그제야 얼굴을 놓아준 그를 보며 열 오른 턱을 감쌌다.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그렇게까지 정색할 건 없지 않나…….

“난 너한테 씨발, 이딴 거 시킨 적 없어. 여태 한 번도.”

내 속마음이 들리기라도 했을까. 따라붙는 지건호의 말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내 몸 곳곳 제가 남긴 붉은 흔적을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훑던 그가 내게 말했다.

“어디까지 할 거냐고?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너 어디까지 할 건데.”

“…….”

“네 어쭙잖은 기억을 핑계로 댈 거면 적당히 선은 지켜.”

“…….”

“왜 이렇게 사람을, 저렴하게 만들어.”

냉담하기 그지없는 그 말은 벌거벗은 나를 한 꺼풀 더 벗겨내는 것만 같았다. 가릴 것도 없이 드러난 마음이 모멸감으로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실로 저급한 건 그의 날 선 말이었음에도 밑바닥까지 추락한 건 또 나였다.

“지원아.”

그의 성기는 아직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소하듯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 당신이 기억하는 그 신지원 여기 없으니까.”

때마침 적절하게 그의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괜찮냐고 물었던, 그 한 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소리.

되돌아온 원점 위에서 끝내 고개를 돌렸다. 시야 끝에 무언가가 보란 듯이 걸린 건 그때였다. 끝맺음 없는 이 행위의 발단과도 같은 바로 그것, 그의 차 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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