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근데 이거, 아까 저기 앉아 있던 사람들이 먹던 거랑 같은 거 맞아요?”
그의 대각선 뒤, 이제는 비워진 테이블을 흘긋거리며 묻자 내 앞접시에 전골을 덜어주던 지건호가 되물었다.
“왜. 아닌 것 같아?”
“아까 거기 있던 거랑 좀 달라 보이는데요.”
그러자 그가 아까 내게 보인 그 웃음을 입가에 퍼뜨렸다. 날 놀리는 것도 같은 표정에 왜 웃냐며 눈을 치켜뜨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제 얼굴을 애써 굳혔다. 저도 모르게 누그러진 표정을 숨기려는 것이었다.
나는 확신하는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다른 거 맞죠? 아니야. 당신도 잘 모르는 거죠?”
“…….”
“그럴 줄 알았어. 아까 대충 본다 싶더라니만.”
“그런 게 아니고…….”
“아니긴. 예전에 내가 이곳 음식 좋아했다니까 지금은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그는 그냥 안 넘어가면 네가 뭐 어쩔 거냐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보통 이런 식당은 메뉴 고를 때 다른 사람들이 뭐 시키는지 잘 봐야 한단 말이에요. 여기처럼 진짜 손님이 드문 곳은 특히나. 그래서 아까도…….”
“단골손님들이 뭐 시키는지 유심히 지켜본 거라고.”
내 말을 가볍게 끊은 그는 곧장 입을 다문 날 보며 그 뜻 아니냐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도 많이 들어 질린다는 얼굴이었다.
일종의 습관처럼 내뱉은 말에 무안해진 건 나였다. 기억을 다 잃은 주제에, 참견이 지나쳤다.
“전에도 같은 말 했었나 봐요, 내가.”
“여러 번 했지. 처음 여기 왔을 때도 그랬고.”
“그래서 웃었구나. 아까도.”
지건호는 그 말에 얼굴 가득 번졌던 미소를 천천히 지워냈다. 미온적인 변화였다. 내게 덧씌운 지난 기억이 허상에 불과함을 알았다는 듯한 눈빛에 나는 그에게 국자를 건네며 슬그머니 옮겨붙은 웃음을 나누어 주었다.
“좋네요.”
“뭐가.”
“그냥. 뭔가 편해 보여서.”
“…….”
“예전 이야기를 꺼내면 당신은 계속 화만 냈었잖아.”
그런데 어제오늘만큼은 그러지 않는다고, 당신이 나를 통해 떠올리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덕분에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하다고.
나는 못다 전한 말을 밥과 함께 삼켜버렸다. 이어 한 술 뜬 진한 전골 국물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맛있냐고 묻는 눈에 입꼬리만 당겨 보이자 지건호가 그제야 수저를 들었다.
별다른 대화 대신 수저만 오가길 몇 차례, 문득 이는 궁금증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뭘.”
“여기 이 식당 말이에요. 유명한 맛집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근처가 관광지인 것도 아니고.”
숟가락을 몇 번 뜬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새 밥 한 공기를 다 비워내고 목을 축이던 지건호가 창밖 어딘가를 가리켰다. 단단하고도 다부진 턱을 따라 옮긴 시야 끝에는 마치 그를 닮은 듯한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금은 나무 때문에 가려서 잘 안 보일 텐데, 저쯤에 현장이 있었거든. 우리가 직접 수주한 곳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일이 복잡하게 얽혀서.”
한마디로 일 때문에 찾게 된 곳이라는 말이었다. 그럼 이곳도 현장 근처에 왔다가 알게 된 식당이겠거니 싶던 찰나, 그가 내 예상을 깨버렸다.
“여길 소개한 건 너였지만.”
“내가요? 어떻게…….”
“글쎄.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뜬금없는 소리였다. 이 식당뿐만 아니라 적어도 김수연이 내게 알려준, 그래서 억지로 외우다시피 한 내 신상에 따르면 이 지역은 나로서는 연고가 없는 곳이었다.
전혀 모르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소 쓸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와도 기억나는 건 없나 보네.”
명을 다해 떨어진 낙엽처럼 버석한 목소리였다. 바스락거리며 사라진 기억의 잔해를 아무리 긁어보려고 해도 떠오르는 게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는 지난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며 내 앞접시 위로 전골을 한 국자 더 떠주었다. 갖가지 버섯이 고루 담긴 그릇을 보다가 젓가락을 고쳐 쥐었다.
이곳에서의 기억도 내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 아주 지워 버린 걸까.
지건호에게는 잠시 웃음까지 보이게 만든 기억인데, 왜 나는 감히 추억하지도 못하게 지우고 만 건지.
갑자기 속이 불편해졌다. 모든 걸 게워내고 싶어졌다.
“나 잠시만, 화장실 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몸이 알아서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니 내가 한두 번 찾은 식당이 아닌 건 분명했다. 지건호와 함께였든 아니든.
억지로 덧씌운 기억을 뱉어내듯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는 세면대에서 입을 헹구었다. 거울 속 새하얗게 질린 내 모습 어디에서도 예전의 신지원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손등으로 젖은 입술을 훔치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내가 요란을 떤 걸까. 문밖에 있던 식당 아주머니가 걱정이 되는지 옆에 있던 지건호를 팔꿈치로 살짝 쳤다. 날 위해 혀를 끌끌 차는 소리는 동시에 그를 타박하는 것이기도 했다.
“바쁘다고 유세 부리지 말고 새댁 맛있는 거 잘 좀 먹이고 다녀요. 신랑은 몸이 더 좋아졌으면서. 어유, 새댁 저 팔뚝 마른 것 좀 봐. 세상에.”
내가 그 정도로 걱정할 만한 몸은 아닌데. 게다가 지건호에 의하면 전보다 살이 좀 는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민망함에 애매한 미소를 내걸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죄송하긴요, 그럴 수도 있지. 좋은 소식 또 있는 거 맞죠? 들어올 때부터 내가 입이 근질근질했어. 아유, 두 사람 고루 닮으면 얼마나 예쁠까 그래.”
아. 기억이 버거운 헛구역질이었을 뿐인데 남들에겐 입덧이라고 오해를 샀나 보다.
아니라고 부정할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그 역시 일부러 대화를 끊으며 소란을 피우고 싶지는 않아 보였다.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는 내게 손수건을 건넨 그가 이만 나갈 건지 물어봤다. 나는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주머니께 죄송하다고, 다음에 또 오겠다는 성의 없는 말과 함께 인사를 드렸다. 그는 계산하고 나갈 테니 내게 먼저 차에 가 있으라며 차 키를 손에 쥐여주었다.
이걸 찾겠다고 어제 호텔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이리 쉽게 손에 넣을 줄이야…….
아니, 그렇게 고생이라고 할 건 없긴 했지만.
순간 발갛게 달아오른 귀를 감추며 식당을 벗어났다. 선선한 바람은 열이 오른 뺨까지 식히는 것 같다가도 니트 속을 파고들며 올이 풀린 머릿속을 자유로이 오갔다. 한기가 들자 나는 어깨를 옹송그리며 조수석에 올랐다.
다 먹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가 원하던 바대로 뭘 먹긴 했으니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다. 돌아가면 당장 저 봉투부터 처리해야지 싶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놀라 키운 눈을 소리 나는 방향, 뒷좌석으로 돌렸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이건 분명히 차 안에서 들리는 휴대폰 벨 소리가 분명했다.
당연히 지건호의 것은 아닐 터였다. 아직 손에 주어지지도 않은 내 것은 더더욱 아닐뿐더러 상윤이 가져다 둔 저 많은 봉투에 새 휴대폰을 사서 넣은 기억은 결단코 없었다.
정황상 소리가 날 법한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지현민이 내게 남긴 것.
나는 재빨리 식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산을 마친 지건호는 식당 밖을 나오고 있었다. 벨 소리는 좀처럼 끊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차에 타기도 전에 그에게도 들릴 법한 소리였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좀 해 봐, 신지원.
초조함에 애꿎은 바지만 긁다가 충동적으로 조수석 문을 덜컥 열었다. 열린 틈으로 소리가 새어 나갈까 재빠르게 문을 닫고는 그에게로 걸어갔다.
“왜? 또 속이 안 좋아?”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닌데?”
말꼬리를 잡으며 되묻는 그의 얼굴이 햇빛을 잔뜩 받아 구겨졌다.
“……아무래도 오는 동안 멀미를…… 했나 봐요.”
겨우 만들어낸 핑계는 꽤 그럴듯했다. 나는 그러니 조금 걷는 게 좋을 것 같다며 그를 주차장 반대편으로 이끌었다. 당장 차에서 멀어지는 것에 연연해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그와 손을 잡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뒤늦게 깨달은 나는 말없이 제 손을 내어준 그를 힐끔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굳이 내칠 필요도 없었다.
더한 것도 했는데 이까짓 손이 뭐라고.
그러나 맞닿은 손에서 퍼지는 온기는 어젯밤 그와 나 사이의 축축했던 열기보다 더 뜨거웠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귓불이 간지러웠다.
“안 추워?”
“별로.”
“손이 차, 지원아.”
습관처럼 내뱉은 그의 말에 발을 멈추자 덩달아 우뚝 선 지건호가 날 마주 봤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 그의 눈동자에 빛이 감돌았다. 그 속에 비친 내 모습까지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빛이었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마른침을 삼켰다.
할 말이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물 위에 빛으로 흩뿌린 듯한 크고 작은 금가루는 죄다 모래 알갱이가 되어 머릿속을 뒤덮었다. 뿌옇게 먼지만 날리는 그 속에서 겨우 털어낸 기억의 편린은 더 이상 고여 있지만은 않았다.
“당신은…….”
그는 내 목소리에 고개를 기울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살짝 찌푸린 미간에는 내가 제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은 없어 보였다.
“당신은 내가 기억을 모두 다 되찾는 걸 원하는 건 아니죠?”
침묵으로 대신한 그의 긍정에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물어봐도 돼요?”
“…….”
“왜, 무엇 때문인지.”
“네가 찾아서 마음 편해질 기억이라면 괜찮아.”
연신 머리카락을 흩뜨리던 바람은 나직이 내뱉은 그의 목소리까지 움키며 도망갔다. 그에 한숨을 내쉰 지건호는 조금 더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같이 있어 좋았던 기억이라면 상관없어. 얼마든지.”
“…….”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안 찾느니만 못한 기억이라면. 그래서 좋았던 기억까지도 다 덮어 버릴 거라면.”
“…….”
“묻어두는 게 최선이야. 영원히.”
겨우 되찾은 기억마저 짓눌러 으깨어 버릴 듯한 무거운 목소리였다. 나는 그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그는 이만하면 됐다는 듯이 발을 옮겼다.
나는 귓가에 환청같이 들리는 벨 소리를 외면하며 그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서로에게 얽힌 손가락은 애틋했던 과거를 놓지 못한다기보다는 이대로 흘러가 버릴지도 모를 지금 이 순간을 붙잡고 있는 것에 더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