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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51)화 (51/60)

| 51화

차희원.

그 이름은 술에 취한 지건호가 잠결에 속삭인 여자의 이름이자, 수연의 도움으로 알아낸 ‘그 약’을 처방받은 이의 이름이기도 했다.

오늘 낮, 비행 중인 지건호의 눈을 피해 찾은 곳은 어느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한 약국이었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문을 열었나 싶을 정도의 허름한 약국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방문하지는 않을 듯한 곳이었다.

절차를 보다 확실히 따지자면 처방전을 내린 병원부터 찾아가는 게 먼저였겠으나, 수연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아마 그들 사이에 내부적으로 오갔던 것이 있었을 거라 짐작했다.

나는 정신과 의사에게 그러했듯 그동안 모은 약을 꺼내어 내밀며 무슨 약이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숙면에 도움이 되는 일종의 영양제. 알고 있던 정보였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럼 내가 이곳을 방문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약국에서 내가 약 이외에 구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조제 정보가 적힌 처방전.

‘사실 오늘 김수연 씨를 대리해서 온 건데요.’

나는 김수연의 이름을 잠시 빌리기로 했다. 흔한 이름에 그게 누구냐는 말부터 나올 줄 알았더니 날 훑는 약국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슨 의도로 왔는지 그 속을 읽어내려는 눈이었다.

‘이 약, 처방받은 정보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에 약국장은 환자 조제 정보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며 단번에 내 말을 잘라냈다. 뒷돈을 바라고 입을 다무는 건 아닌 듯했다.

어쩌면 돈보다는 그로 인한 권력이 두려웠던 거겠지.

‘태산건설 지건호. 그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

내 질문을 회피하던 약국장은 역시나 태산 지건호를 넌지시 언급하자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처방전을 하나 뽑아주었다. 애초에 김수연을 대리하여 찾은 거라고 밝혔으니 내 신상에 대한 의심은 따로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의구심은 오히려 내 몫이었다.

차희원. 그 여자의 이름으로 처방받은 약을 왜 내가 먹고 있는 걸까. 아니, 그것보다도 도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지건호가 제 이름을 대며 비호하고 있는 걸까.

“아, 흣.”

상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결합된 부위를 더듬던 손가락은 내 흐트러진 목소리를 붙잡으려는 듯 입 안으로 불쑥 침범해 혀를 지그시 눌렀다. 반사적으로 다물린 입술 옆으로 고여 있던 타액이 흘러내렸다. 그와 맞닿은 모든 곳에서 축축한 소리가 진동하듯 울리는 것 같았다.

이미 사정을 한 번 마치고도 바로 발기한 성기는 날 뒤집어 놓은 채 곧장 안을 꿰뚫고 있는 상태였다.

“제대로 집중 안 하지.”

뒤에서 몸을 겹친 그가 내 귓불을 깨물었다 놓으면서 손을 내렸다. 타액으로 범벅이 된 손으로 가슴을 거세게 움켜쥐었던 그는 제가 어디까지 들어가 있는지 가늠하듯 내 아랫배를 더듬었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맞추어진 아래가 그대로 모양을 굳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노린 게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제 것이 아닌 다른 것은 더 이상 품을 수도 없이 만드는 것.

자칫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곳까지 성의껏 긁어내는 그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아래가 조여들었다.

그에 신음하던 지건호가 뒤로 물렸던 허리를 거세게 치받았다. 그 힘에 그를 붙잡으려 뒤로 뻗었던 손이 다시 마주 보고 서 있던 거울에 붙었다.

습한 열기로 뿌옇게 흐려져서는 그저 두 사람의 나신만 뭉그러진 형태로 비치던 거울 위에 내 손바닥 모양대로 도장이 찍혔다. 그리 선명하지도 않은 그 손 모양 사이로 그에게 박혀 흔들리고 있는 내 얼굴이 드러났다가 금세 사라졌다.

“흐으. 아.”

“하아, 힘을 좀, 푸는 건 어때.”

제안하듯 말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그도 진작 알고 있을 터였다. 음핵을 만지는 손길에 되레 밑을 조여버리자 그가 낮은 욕설과 함께 날 밀어붙였다. 살이 퍽, 퍽 부딪치는 소리가 거세지더니 허리가 그대로 무너졌다.

“으, 응, 아…….”

“저녁이 부실했어?”

“아, 흐읏, 응.”

“그냥, 아주 끊어 버리지, 왜.”

기다릴 새도 없다는 듯 나를 일으켜 세운 그는 뒤에서 날 껴안다시피 하며 움직임을 이어갔다. 그를 머금고 있던 질구는 한계껏 벌어졌다가 곧장 입을 다물며 음탕하기 그지없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의지와 다르게 새어 나가는 내 신음과 땀으로 젖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의 달뜬 숨에도 그 물기 어린 소리는 쉬이 섞이지 못했다.

모든 것이 부조화의 극치였다.

일정한 박자도 없이 내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고 빠져나가는 그에게 나는 점차적으로 흥분하고 있었고, 그 고조된 흥분은 거울에 비친 그의 냉담한 얼굴을 보자마자 빠르게 식었다.

지건호에게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렇게 제가 원할 때마다 안을 수 있는, 누군가의 대체품이었던 걸까.

나는 흐려진 거울 속, 내가 겨우 만든 그 틈을 외면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달라붙은 그의 입술이 내 상념까지 앗아갈 듯 진득하게 나를 물었다 놓았다. 다 놓아 버리고 싶지만 놓쳐서는 안 될 기억들이 그와 함께 얽혔다.

질척한 키스 후 벌겋게 달아오른 뺨이 그렇게 서로 맞붙던 순간, 농익은 신음이 탄성과 함께 흩어졌다.

맞붙은 아래로 열이 몰렸다. 진작 그에게 기대어 있었지만 온몸에 나른함이 퍼지며 잠이 몰려들 듯했다.

짧게 호흡을 가다듬던 지건호가 잘게 떨고 있는 내 관자놀이에 입술을 붙였다 떼고는 움직임을 멈춘 성기를 천천히 빼내었다. 빠듯하게 들어차 있던 그것은 제 몸을 물리는 데만 해도 한참이었다. 내벽을 긁고 나가는 감각이 선연했다.

그의 모양대로 벌어진 질구는 쉽사리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저를 막고 있던 것이 빠지자마자 안에 든 것을 흘려보냈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하얀 액체를 습관적으로 쓰윽 닦아내자 지건호가 그 손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뭐 하는 거냐고 미처 묻기도 전에 내 손을 세면대로 끌고 가 물을 틀었다. 미지근한 물줄기에 손에 묻은 점성 있는 액체가 씻겨 내려갔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핸드 워시로 거품까지 내어 씻기는 손길이 꽤 꼼꼼했다.

“됐어요. 내가 할게.”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감각이 자못 간지러워 그에게 잡힌 손을 뺐다. 뜻 모를 눈으로 날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는 알겠다는 듯 옆으로 옮겨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아, 무슨. 잠시만요!”

그가 제 몸을 씻기 위해 튼 줄 알았던 샤워기는 내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날 향했다. 나도 모르게 반 바퀴 돌아버린 몸이 그에게 붙었다.

조금 전 사정할 때도 그러했듯 그는 날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샤워기를 밑으로 내렸다. 음부를 쏘는 물줄기에 흠칫 웅크린 몸을 단단히 고정한 그는 옆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날 바라봤다.

“괜찮아?”

“당신 같으면 괜찮, 흐으, 겠어요?”

“이런 걸로도 쉽게 느끼는 줄은 몰랐는데.”

“그런 게 아니라, 읏…….”

말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흥분이 남아 있던 곳은 약한 물줄기만으로도 금세 달아오르고 말았다. 내 반응을 더 보겠다는 듯 샤워기 헤드를 이리저리 뒤틀어 보는 손이 퍽 얄미웠다. 골반을 붙들고 있는 그의 손등을 꼬집자 그가 알겠다며 웃었다.

“느끼지만 말고 좀 벌려 봐.”

“…….”

“그래야 제대로 씻길 거 아니야.”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마지못해 다리를 조금 더 벌렸다. 그의 손이 감춘 속살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만, 이제 그만요.”

질구를 배회하던 그의 손을 서둘러 붙잡았다.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지건호가 알겠다며 눈을 내렸다. 뻔뻔스러운 손은 아직 내 다리 사이에 멈추어 있었다.

“안 할 거야, 이제.”

“안 한다면서 왜 이러는 건데.”

“남은 건 마저 빼내야지.”

“…….”

“왜, 네가 하려고?”

이어진 침묵을 긍정이라고 느꼈는지 지건호가 피식 웃으며 날 돌려세웠다. 어서 해 보라는 건조한 시선이 약한 샤워기 물줄기와 함께 음부로 향했다. 미지근한 물속에서 아래로 손을 내렸다. 그가 머물다 간 곳은 아직 홧홧하게 열이 올라 있었다.

아주 없던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전에도 얼마든지, 그가 내게 남긴 흔적을 이런 식으로 지웠을 테지.

그런데 오늘따라 비참한 기분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잃어버린 기억을 탓하기엔 그와 내가 새로 쌓은 시간도 제법 길지 않던가.

나는 그 시간을 훔치듯 아직 마르지 않은 질구에 손가락을 하나 밀어 넣었다. 갈고리처럼 굽힌 중지를 내벽이 따뜻하게 감싸왔다. 머리 뒤를 찌릿하게 타고 오르는 오묘한 감각은 손에서 느껴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 손이 긁어대는 질벽이 느끼는 것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자 울컥하고 무언가 흘러나왔다. 이만하면 되었나 싶어 꺼낸 손가락 주위가 흰 액체로 얼룩덜룩했다.

조용히 내가 하는 걸 관찰하던 그의 얼굴이 바뀐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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