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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욕구불만 (3/105)


3. 욕구불만
2022.04.09.


201호 방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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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이렇게 안 들어가지?”

문 앞에 선 수아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열쇠 하나 밀어 넣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긴장한 표정은 어떻게든 감춰보겠는데, 덜덜 떨리는 손까지 감출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밀어 넣으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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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겠습니다.”

낮게 가라앉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수아의 손 위로 포개졌다.

그러고는 열쇠를 가져가 한 번에 꽂아 돌렸다.

헤맨 사람 민망하게.

문을 연 하준은 수아를 향해 먼저 들어가라 눈짓했고,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방으로 들어섰다.

달칵.

문 닫히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긴장한 수아의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던 수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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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먼저 씻을래요?”

아. 이게 아닌데.

어색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한다는 말이 하필이면…….

민망함에 수아의 시선이 허공을 헤매는 사이.

하준은 욕실 앞에 비치된 수건과 샤워가운을 챙겨들고는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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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큰일 났네.”

문에 기대선 하준이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들어설 때의 표정이 무색하리만큼 하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람인데, 아니 그보다 남자인데. 모르는 여자와 단둘이 한 공간에 있는 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는가.

하준은 처음 겪어보는 당혹스러움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세면대 물을 틀었다.

*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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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긴장감에 참고 있었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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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숨도 제대로 못 쉬겠네. 아니 눈치 없이 심장은 왜 이렇게 빨리 뛰는 거야.”

욕실 문을 바라보던 수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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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 남자는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좀 전까지만 해도 절대 안 된다더니. 연기였네. 연기였어.”

저 혼자만 긴장하는 게 억울했는지 수아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로 툴툴거렸다.

Rrrrr.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수아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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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산의 정기는 제대로 흡수하고 계시는가?]

다은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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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는 무슨 정기야. 그나마 남아 있던 기까지 다 뺏기고 또 엉뚱한 것만 주웠는데.”

수아는 하준을 의식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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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뭘 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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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게…….”

그녀가 이야기를 하려 입을 열려던 순간.

욕실에서 나던 물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그렇다는 건 그가 곧 욕실 밖으로 나온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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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일 얘기하자. 일단 끊어.”

수아는 재빨리 통화를 종료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달칵 소리와 함께 욕실 문이 열렸다.

뜨거운 물로 인해 욕실 안에 가득 찼던 수증기가 한꺼번에 흘러나왔고, 그 수증기 사이로 하준이 모습이 드러냈다.

촉촉하게 젖은 머리칼과 조명을 받은 듯 반짝이는 피부.

그는 갓 샤워를 마쳤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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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아주 그냥.

이 와중에도 본능은 살아 있는지 수아의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이며 그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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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은 안 씻을 겁니까?”

그녀의 음흉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하준은 벌어진 샤워가운을 여미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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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요. 씻을 건데요? 지금 씻으려고 했는데요.”

급하게 시선을 거둔 수아가 허둥대며 욕실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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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자살하려는 사람 몸이 쓸데없이 왜 저렇게 좋아? 심장아 제발 나대지 마라. 아무 남자한테나 이렇게 반응하면 어쩌자는 거야. 없어 보이게!”

수아는 미친 듯 널을 뛰는 심장의 열을 식히려는 듯 서둘러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잠시 후. 욕실을 나서던 수아가 침실을 살피며 하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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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네. 어디 갔지?”

수아는 곧장 거실로 향했다.

입고 왔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은 하준이 거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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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에서 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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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바닥에 재울 정도로 매너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매너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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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힘든 날은 잠을 편하게 자야 하는 거예요.”

말끝에 하준의 손에 들려 있던 이불을 가져와 바닥에 내려놓으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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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마음 힘든 일 없습니다.”

그가 다시 이불을 집어 들면서 당기는 힘에 이불이 팽팽하게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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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이 예약한 방인데 왜 거실에서 자겠다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는 수아의 행동에 나오는 목소리가 자연히 뾰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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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시겠지만 제가 원래 거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늘 거실에서만 자고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수아가 시선을 맞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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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그녀의 빵빵해진 볼을 본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다.

다람쥐 = 귀여움.

지금껏 무언가를 보고 귀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난생처음 보는 여자가 귀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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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구나. 민하준.’

순간적으로 화르륵 얼굴에 열이 올랐다.

하준은 손에 쥐고 있던 이불을 내던지듯 내려놓고는 재빨리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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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했어요.”

그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수아는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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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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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 속에 들어간 수아가 굿나잇 인사를 전하는데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싶어 기분이 나빠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무뚝뚝함에 벌써 익숙해진 듯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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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목. 목말라.”

눈도 채 뜨지 못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선 수아가 더듬더듬 냉장고를 찾기 시작했다.

긴장했던 탓이었을까. 타는 듯한 갈증에 그녀는 벌컥대며 생수 한 병을 금세 비워냈다.

다 마신 생수병을 싱크대 위에 대충 올려놓고는 다시 돌아가려는데, 잠이 아직 덜 깬 건지 수아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침대로 향했다.

이윽고 그녀가 침대 바로 앞에 다다르던 순간.

낯선 곳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탓에 눈만 감고 있던 하준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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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저기…….”

그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수아의 몸은 이미 털썩 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떨어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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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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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펭돌이. 좋아. 포근해.”

수아는 평소 끌어안고 자는 인형의 이름을 부르며 팔을 들어 하준을 끌어안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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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돌이 운동하니? 딱딱해. 음냐. 음냐.”

하준은 자신을 안은 채로 비비적대는 수아를 얼떨떨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허공에서 어색하게 멈춰있던 그의 손이 겨우 제자리를 찾아갈 때쯤 귓가에서 일정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새근새근.

하! 사람을 이렇게 놀라게 해놓고 잘도 자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배 위에 얹어진 수아의 팔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옮기던 하준의 시선이 잠든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분명 어딘가에서 만났던 것 같긴 한데. 그게 어디인지는 왜 기억이 나질 않는 걸까.

물끄러미 수아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입술에서 옅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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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래 거실을 좋아합니다. 집에서도 늘 거실에서만 잡니다.]

당당하게 외치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침대에서 잘만 자는구먼. 누가 거실을 좋아한다는 건지.

하준은 다시 잠을 청해볼 요량으로 눈을 감았다.

왜 수아를 거실로 돌려보내지 않았는지.

왜 자신은 수아를 피해 거실로 가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하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

짹짹짹.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밝은 아침 햇살과 상쾌하게 들려오는 새소리.

그래! 역시 숲속의 아침은 새소리지!

두 팔을 위로 뻗어 올리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던 수아의 손끝에 뭔가가 툭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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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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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당 못 할 충격에 수아의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이 사람이 왜 내 옆에 있는 거야?

아니, 아니. 내가 왜 이 사람 옆에 있는 거야?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왜 우리가 한 침대에 있는 거냐고!

머리칼을 움켜쥔 채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던 수아는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번뜩 깨달았다.

그녀는 잠든 그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침대를 벗어났다.

그러고는 책상 위 포스트잇에 급히 몇 글자를 적은 뒤,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방을 빠져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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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빠르기가 국가 대표감이네.”

문이 닫힘과 동시에 눈을 뜬 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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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몸을 움직이던 하준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간밤에 덮쳐온 수아 때문에 불편한 자세로 한참을 누워있었던 탓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화장대 거울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나쁜 생각은 접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어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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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

동글동글 주인을 닮은 귀여운 글씨체에 살며시 올라갔던 입술 끝이 가족이라는 단어 하나에 제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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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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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지? 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거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아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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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 혼자 보기 진짜 아깝네. 아까워.”

소파에 앉아있던 다은은 한심스럽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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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가 내 발로 간 걸까?”

고개를 번뜩 들며 애절한 눈빛으로 다은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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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설마하니 그 남자가 거실에서 곤히 자고 있는 너를 안아다가 침대에 눕혔을까.”

역시. 가능성은 그거 하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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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진짜 미쳤나 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수아는 거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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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이 언니가 진작 연애하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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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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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욕구불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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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말도 안 돼…….”

연애를 몇 년 쉬었기로서니 잠들어있는 남자를 덮칠 정도로 으르렁한 상태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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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제라도 연애를 시작해야 하나.

수아의 입술 사이로 제 복잡한 머릿속과 꼭 닮아 있는 깊은 한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

적막한 공기가 내려앉은 하준의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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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음…….”

간밤에 잠을 설친 탓에 집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하준이 식은땀을 흘리며 무거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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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 안 가면 안 돼요? 저 안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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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미쳤나. 빨리 안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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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못했어요. 제발요.]

아버지에 의해 병원으로 질질 끌려들어 가던 10살짜리 남자아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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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하지 마! 싫어!]

울부짖는 아이의 몸속의 것을 사정없이 뽑아가던 사람들.

헉……!

숨을 조여 오는 고통 속에서 한참을 신음하던 하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헉. 헉.

급히 상체를 세운 하준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20년 동안 계속되는 악몽.

잊고 싶은 기억들은 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는 건지.

벌써 20년도 더 지났지만, 하준에게 그날의 기억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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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

몰아쉬는 호흡 끝에 수아의 이름이 실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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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괜찮아? 무서워? 내가 같이 있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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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한테만 알려주는 비밀 주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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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하준에게 수아는 유일한 숨이었다.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찾으려 든다면 못 찾을 것도 아니었지만, 하준은 그녀를 찾지 않았다.

찾을 방법이 아니라 찾을 용기가 없었기에.

고통스러웠던 과거 따위 잊은 지 오래라며 좀 더 괜찮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마음으로 비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다시 찾아와 달라고.

그래만 준다면 그땐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손을 놓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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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무거운 숨과 함께 하준의 고개가 툭 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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