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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운명이란 이름으로 (7/105)


7. 운명이란 이름으로
2022.04.23.


부회장실.

탁탁 탁탁. 쾅!

분노가 실린 듯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부회장실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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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민하준! 너 나 좀 봐.”

발걸음소리만큼이나 살벌한 표정의 지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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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걱정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하냐? 그렇게 없어져 놓고 전화 한 통을 안 해?”

잠깐 물 사러 간 사이 사라진 하준 걱정에 밤잠을 설친 건 기본이고, 경찰서에 신고까지 하려 했던 지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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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했어.”

슬쩍 지훈을 올려다본 하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온갖 걱정이란 걱정은 다 시켜놓고 뭐? 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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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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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서 미. 안.”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이 실렸다.

이제 그만하라는 무언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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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뭘 잘했다고 저렇게 당당해?

영혼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하준의 사과에 지훈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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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 저런 나쁜 놈 걱정된다고 여기까지 쫓아온 내가 바보지. 내가 바보야!”

언성을 높여 화를 내는데도 상대방이 저 모양이니 쉽사리 분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지훈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씩씩대기 시작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 들어갔을까.

하준은 뭘 저리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쯧쯧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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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께서 반찬 가져다 놓으셨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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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매정한 아들놈 뭐가 예쁘다고 때마다 반찬을 챙겨주시는지.”

툴툴대는 지훈의 말투에 가시가 잔뜩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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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올 거면 가져오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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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안 가져온 거거든? 내가 네 반찬 심부름까지 해야겠냐? 네가 직접 가지러 와!”

상황 파악을 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하준의 모습에 지훈의 얼굴 근육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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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퇴근하고 내가 직접 가지러 갈 테니까 거기까지만 하고 그만 돌아가지?”

계속된 감정싸움에 하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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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거야!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갈 거거든?”

매서운 눈빛으로 하준을 노려보던 지훈은 마지막까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부회장실을 나섰다.

지훈이 부회장실을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박 비서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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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님. 회의실로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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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죠.”

하준이 전체 팀장단 회의를 위해 부회장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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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실.

세로로 긴 회의실 책상 끝에 날카로운 시선의 하준이 앉아 있고, 양옆으로 잔뜩 긴장한 채 연신 마른침을 삼키는 팀장들이 앉아 있다.

막 브리핑을 마친 홍보팀 팀장이 하준의 눈치를 살폈다.

브리핑 내내 시선을 내리깐 채 자료를 살피는 하준의 표정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검은 오로라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으니.

그렇게 얼마간의 정적이 흐른 뒤 하준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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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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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이상입니다.”

브리핑을 마친 직원에게 향해 있던 하준의 시선이 책상에 앉아 있는 팀장들에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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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내용. 여기 앉아계신 팀장님들 모두 확인하신 사항입니까?”

하준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박 비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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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결재를 모두 마친 내용입니다.”

순간. 하준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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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회의 내용과 달라진 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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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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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그럴싸하게 포장만 바꾸려고 합니까? 내용은 전혀 변화가 없는데.”

하준의 눈에 서늘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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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하고 수정하겠습니다.”

다들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동자만 굴리고 있자 브리핑을 진행한 팀장이 용기 내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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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러셔야 할 겁니다. 다음번 회의도 이렇게 시간 낭비만 할 거라면 팀장이란 직책들 내려놓으셔야 할 겁니다. 이만 회의 마치죠.”

하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덩달아 모든 팀장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노가 가득한 발걸음으로 하준이 회의실을 나섰고, 쾅! 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이 닫히자, 팀장들은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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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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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회의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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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님 얼굴만 보면 긴장이 돼서 말이 안 나온다니까요.”

시작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때다 싶었는지 한마디씩 동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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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만하고 이제 야근하러 갑시다. 아! 나는 즐겁다. 야근이 너무 좋다.”

모든 걸 다 내려놓은 듯한 홍보팀 팀장의 말에 다른 팀장들도 낮은 한숨을 내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그 시각 수아의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직장 구인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는데 벨 소리가 울렸다. 다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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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다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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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점은 잘 갔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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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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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안 갔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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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떤 남자 차 타고 오느라 서점가는 걸 잊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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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어떤 남자?]

말투만 듣고도 ‘뭔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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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산에서 만났다고 했던 남자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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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무슨…… 아! 네가 덮쳤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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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덮치긴 누가 덮쳐? 그런 거 아니야!”

순간 ‘한 이불을 덮은 사이’라던 하준의 말이 떠올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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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긴. 근데? 그 사람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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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제 병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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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우연히?]

아니 우리나라 인구가 몇 명인데, 산에서 만났던 사람을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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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사람이 집까지 데려다줬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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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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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말투를 보니 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친절함에 반하기라도 하셨나 봅니다?]

다은이 놀리는 말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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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행동의 친절함보다는 얼굴의 친절함?”

본인이 말하고도 우스웠는지 수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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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네가 그 사람을 못 봐서 그래. 진짜 이 세상 비주얼이 아니라니까?”

천상계야. 천상계. 끓어오르는 분노도 사라지게 해주는 천상계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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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모지상주의자 같으니라고. 외모가 뭐 별거냐? 사람 됨됨이를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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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됨됨이는 무슨. 어차피 또 볼 사람도 아닌데, 눈 힐링만 하면 그만이지.”

그 힐링 어제 맘껏 했으니 그걸로 만족이라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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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혹시 아냐? 병원에서처럼 또 우연히 만나게 될지. 너도 알지? 우연이 3번이면 운명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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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운명은 무슨. 그런 거 아니거든?”

허공에서 손을 내젓던 수아의 입꼬리가 위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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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긴. 딱 보니까 조만간 한 번 더 마주치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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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긴 뭘 마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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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네. 이 언니가 또 세 번째 만남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주러 가야겠네. 너 집에 있을 거지?]

다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 키를 챙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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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평일 오후 알바생이 갑자기 펑크 냈다고 하루만 봐달라고 부탁하셔서 지금 편의점 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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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럼 몇 시에 끝나는데?]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차키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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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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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너 끝날 시간 맞춰서 집으로 갈게. 내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 주마. 하핫.]

우쭐대는 다은의 웃음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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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세 번이면 운명이라고?”

수아는 소파에 놓인 펭돌이 쿠션을 끌어안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

퇴근길에 오른 하준은 곧장 지훈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마치고 걸음을 옮기던 그의 시선이 한적한 골목길 위에 닿았다.

다들 약속들이 있는 건지, 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신기했다.

그녀도 외출했을까. 예쁘게 차려입고 누군가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수아씨 집 앞에 가볼까? 어쩌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 끝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껏 회사일 외에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변한 자신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퍽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사람 달라지는 건 한순간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지훈의 편의점 앞에 다다랐다.

안으로 들어갈까. 전화해 나오라고 할까.

고민 끝에 하준은 유리문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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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열린 문틈 사이로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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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매장으로 들어서던 하준의 눈꺼풀이 활짝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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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

수아는 혹시나 잘못 본 건가 싶어 미간을 좁히며 문 앞에 서 있던 남자의 모습을 다시 살폈다.

말끔하게 정돈된 머리카락과 조각 같은 이목구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완벽한 신체 비율까지. 분명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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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계산대에서 나온 수아가 서둘러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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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는 여기서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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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요? 여기 편의점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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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민지훈이라고 여기 있는 거로 아는데요.”

민지훈? 민지훈이라면 점장님 이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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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저희 점장님이랑 친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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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마 그럴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친구가 아니라 친척이긴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할까 싶어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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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셨구나. 점장님 금방 오실 거예요. 잠깐 집에 올라가셨거든요.”

수아가 검지를 들어 하늘을 콕콕 찔렀다.

편의점 위에 마련해둔 세컨드하우스를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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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간단한 하준의 대답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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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몸은 괜찮으세요?”

수아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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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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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날 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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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괜찮습니다. 그날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설마 지훈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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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는 여기에서 일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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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원래는 주말에만 일하는데, 알바생이 갑자기 못 나오게 되는 바람에 오늘 하루만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무슨 요일에 일하는지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알아서 대답해 주니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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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제가 내일 왔으면 못 만날 뻔했네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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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 그렇죠.”

아니 무슨 질문을 그렇게 달콤하게 하시나요.

빤히 바라보며 묻는 그의 눈빛에 수아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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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두 사람 원래 아는 사이였어?”

때마침 내려온 지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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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아니고요. 그냥 우연히 알게 된 사이에요.”

수아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그냥……. 우연히…….

그 말이 왜 이리 서운하게 들리는지 하준의 눈썹이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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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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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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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는 내가 가지러 온다고 했으면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어야지. 왜 기다리게 만들어.”

하준은 서둘러 수아의 말을 가로챘다.

수아만큼이나 왕성한 호기심을 자랑하는 지훈의 눈빛이 궁금증으로 이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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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은 사무실에 잘 가져다 놨거든? 뭔데? 산에서 뭐?”

어쩐지 티 나게 화제를 돌리려는 하준의 행동이 수상했다.

지훈은 수아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계속 캐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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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있다고? 사무실이 어딘데? 저기야?”

티가 나든지 말든지. 하준은 어떻게든 지훈을 막아보려 사무실 방향을 향해 그의 등을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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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뭔데? 무슨 사인데? 수아야! 산에서 무슨…….”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그는 사무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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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다은. 돗자리 펴야겠네.”

매장에 홀로 남겨진 수아는 멍하니 사무실 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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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만날 것 같다더니. 진짜로 만났어.”

수아는 둥근 눈을 연신 깜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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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만남 대처법. 전화로라도 듣고 올걸.”

아쉬움이 담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수아는 이내 샌드위치 유통기한을 살피러 진열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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