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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음이 가는 대로 (8/105)


8. 마음이 가는 대로
2022.04.26.


사무실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나도록 지훈은 팔짱을 낀 채 마주 앉은 하준을 흘겨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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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수아랑 아는 사이라고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마치 바람을 피우다 걸린 애인을 바라보듯 지훈의 눈빛은 한없이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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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가 네 편의점에서 일하는 거 오늘 처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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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게 된 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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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훈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수아에 대해 설명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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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산에서 처음 만났어. 그다음엔 회장님 입원하셨던 병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고, 그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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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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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게 다야.”

지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의 눈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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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생각해. 믿기 싫은 사람한테 변명할 생각 없어.”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믿기 싫은 게 아니라 믿을 수가 없는 거잖아.

민하준이 누구던가.

여자와는 절대 말도 섞지 않을뿐더러 업무상 만나는 여자들에게도 민망할 정도로 딱딱하게 굴던 사람 아니었던가.

그런 민하준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모자라서 웃기까지 했는데. 그저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고?

지금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솔직히 말해보라고 한 번 더 말해보려던 지훈은 싸늘한 하준의 표정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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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꺼내 줄 테니까 잠깐 기다려.”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냉장고 속 반찬을 꺼내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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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생각났어.”

지훈이 번뜩 눈을 키우며 하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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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저럴까.

소파에 앉아 사무실을 살피던 하준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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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이수아가 그 이수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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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설마. 눈치챈 건가? 하준의 동공이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20년 전 병원에서 하준의 곁을 지키던 수아와 여러 번 마주쳤던 지훈이었다.

그 후로도 가끔씩 하준이 아플 때면 수아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수아라는 이름은 흔하디흔하기에 그녀를 채용하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하준이 보이는 반응에 지훈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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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사건. 드디어 만났구나? 민하준 첫사랑!”

흥분을 참지 못하고 지훈이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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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첫사랑이라니! 그런 거 아니거든?”

당황한 하준이 말을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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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알아? 모르지? 하긴 네가 말했을 리가 없지. 지금이라도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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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하준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지훈의 손목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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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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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한테 말하기만 해봐. 그땐 너 진짜…….”

목소리가 서늘했다. 잡힌 손목을 부러뜨리기라도 할 듯 하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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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알겠다고. 이러다 손목 부러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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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하준은 서둘러 손의 힘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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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뭔데?”

빨개진 손목을 문지르며 지훈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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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무슨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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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랑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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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하아. 그럼 그렇지. 연애 한번 못 해본 민하준한테 계획이란 게 있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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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인마. 이런 일이 있었으면 바로 형님한테 말을 했었어야지. 걱정하지 마! 이제부터는 너는 나만 믿어!”

지훈이 여유롭게 웃으며 하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분명 그런 의도는 아니겠지만. 어째서 저 미소가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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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훈. 너 지금 엄청 재미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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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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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런데 왜 나는 네 얼굴에 재미있다고 쓰여있는 것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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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아니라 감동이겠지. 너의 순수했던 첫사랑과의 재회에 대한 감동.”

지훈은 다시 한번 잘 보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감동은커녕 진정성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사악한 얼굴을.

그래.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말을 말아야지.

하준은 보기 싫다며 허공에서 손을 휘휘 내젓고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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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아. 좋은 생각이 났어.”

반찬을 챙기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싶던 지훈이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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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생각하지 마. 그 생각 도로 집어넣어.”

하준이 고개를 잘게 저으며 그의 말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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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인 줄 알고? 들어봐. 내가 자연스럽지만 확실한 방법을 찾아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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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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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박사인 내가 이 정도 일도 해결 못 하겠어? 이 형님만 믿고 따라와.”

어쩐지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하준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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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야. 내가 다음 주 토요일이랑 일요일 이틀 동안 점장 교육이 있어서 못 나올 것 같아.”

사무실을 나온 지훈이 수아를 불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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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 교육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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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교육이 갑자기 잡혔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너 혼자 근무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서 나 대신 도와줄 사람을 한 명 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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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데요? 평일 알바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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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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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예상치 못한 이름에 수아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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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사무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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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좀 더 친해져 봐. 그다음에 밥이든, 술이든 자리 만드는 건 내가 책임질 테니까.”

자연스럽고 확실한 방법이라며 지훈이 권한 방법이었다.

몸 가는 데 마음도 가는 법.

둘만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테니 그사이 마음의 간격을 좁혀보라는 말이었다.

하준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에 솔깃해 일단 따라보기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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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 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주말이라 손님도 별로 없을 텐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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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안 되지. 그렇게 되면 우리 편의점의 운영 방침인 2인 1팀 체제에 어긋나는 건데.”

지훈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미간을 좁힌 채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2인 1팀 체제.

밥 먹기, 화장실 가기, 물건 채우기 등의 일을 할 때 불편하지 말라고 지훈이 직접 만든 방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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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는 이런 일 안 해보셨을 텐데, 괜히 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시는 거 아니에요?”

물론 두 사람이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괜히 하준에게 불편함을 주게 되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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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하준이도 어차피 편의점 하나 오픈하고 싶다고 했었어. 이참에 한번 배워보는 것도 좋지 뭐. 안 그래?”

지훈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하준에게 시선을 맞춰왔다.

‘분위기 맞춰 대답해라.’ 무언의 눈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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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응. 그, 그랬지.”

하준의 대답에 수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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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주말인데 저 때문에 억지로 끌려 나오시는 걸까 봐 걱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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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잡아끈다고 끌려 나올 인간이 아니란다.’

지훈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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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이틀 동안 잘 부탁드려요.”

수아가 하준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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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 나 왔어.”

퇴근 후 출출함에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다은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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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 한번 귀신같네. 마침 딱 라면 완성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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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라면. 내가 이럴 줄 알고 이걸 사 왔지.”

손목에 걸려 있는 비닐 봉투 안에서 부스럭대던 다은이 수아를 향해 맥주 한 캔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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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맥주다! 안 그래도 다 떨어져서 사러 나갈까 하다가 말았는데. 역시 정다은. 뭔가 통하는 게 있다니까.”

수아가 테이블 위에 냄비를 내려놓고 앉자 다은이 맞은편으로 걸어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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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맥. 진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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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가 끓였지만, 완전히 꼬들꼬들하게 잘 끓여졌어.”

수아와 다은은 동시에 맥주를 땄다.

치익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밀려 올라왔고, 두 사람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술을 쭉 내밀며 넘실거리는 거품을 빨아들였다.

라면 한 젓가락에 맥주 한 모금.

소박한 듯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이야말로 오늘 하루 중 가장 황홀한 순간이 아닌가 싶었다.

다은이 새 맥주 캔을 따려던 그때. 수아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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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은 너 돗자리 펴도 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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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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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했던 세 번째 만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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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벌써 만났어? 어디에서?”

화들짝 놀란 다은이 손에 있던 맥주 캔을 내려놓고는 몸을 기울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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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알고 보니까 우리 점장님 친구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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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님 친구? 어머. 웬일이니. 이정도면 그 사람이랑 너, 진짜 운명 뭐 그런 거 아니야?”

다은이 호들갑스럽게 손뼉을 치며 두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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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운명은 무슨. 그런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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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맞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주 마주칠 수는 없는 거지. 암. 그렇고말고.”

대단한 운명론자인 것처럼 말하는 다은의 모습이 재미있는 건지, 아니면, 자신과 하준이 운명이라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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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그러고 보니 다음 주 주말은 같이 일하게 됐어.”

운명의 편을 들고 싶었을까. 묻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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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주말 동안 교육 가신 점장님 대타로 와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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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럼 다음 주 주말 내내 같이 있는 거네?”

표정을 보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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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도와주려고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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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무렴 어때. 어쨌든 이틀 동안은 눈 호강 제대로 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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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건 그렇지.”

그 말엔 동의하는지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와 함께하는 이틀에 대해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다은의 말을 듣고 나니 신기하게도 다음 주 주말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

어느새 찾아온 토요일.

소파에 앉아 있는 하준의 표정이 어두웠다.

지금이라도 못 가겠다고 할까?

아니야. 이틀만 같이 있는 건데 괜찮지 않을까?

아니야. 이러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

초 단위로 변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던 그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지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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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안 가는 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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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지훈이 동그랗게 눈을 키우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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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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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아니라는 거야?”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르자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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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하준. 너는 그게 문제야. 생각이 너무 많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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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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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만하면 이제 충분해.”

충분하다고? 뭐가 충분하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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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 말이야. 20년째 아무 데도 못 가게 붙잡고 있는 네 마음. 이제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그냥 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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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붙잡았다고…….”

하준은 말끝을 흐리며 드레스 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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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설마 그러고 가려고?”

준비를 마치고 나온 하준의 모습에 지훈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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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왜? 이상해?”

칼같이 각이 잡혀 있는 양복을 빼입고 나와서는 이상하냐고?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갈 길이 멀다. 갈 길이 멀어. 지훈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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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꾸안꾸가 대세야. 꾸민 듯 안 꾸민 듯.”

아. 꾸안꾸. 하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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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넌 꾸꾸꾸잖아. 꾸민 듯. 꾸민 듯. 꾸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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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소 입던 대로 입은 건데.”

후우. 지훈은 대답 대신 서둘러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걸려 있는 옷들을 살폈다.

어찌 이리 죄다 똑같은 옷들뿐인지. 지훈의 손길이 그의 마음을 따라 다급해졌고, 그러다 제일 끝 쪽에 소외된 듯 걸려 있는 바지와 셔츠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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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옷으로 갈아입어.”

도대체 저 옷은 왜 저기에 걸려 있는 거지? 산 기억이 없는데…….

하준은 평소 입어보지 않았던 스타일의 옷이 어색한지 선뜻 받아들지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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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 빨리 입어! 늦었어.”

지훈의 재촉으로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은 하준이 거울 앞에 섰다.

세팅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머리 스타일과 파란색 스트라이프 셔츠. 마무리로 복숭아뼈가 살짝 보이는 길이의 슬랙스 바지.

편안하면서도 너무 흐트러지지 않은. 지훈이 얘기했던 꾸안꾸 그 자체였다.

하준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지 미간을 좁힌 채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뒷모습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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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발하자. 수아 기다리겠다. 가자. 가자.”

자신의 코디가 만족스러웠는지 지훈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앞서 걸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하준은 밀려오는 긴장감에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며 지훈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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