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지나치게 잘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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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지나치게 잘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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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지나치게 잘생긴
2022.04.30.
그 시각.
편의점에 있던 수아도 하준 못지않게 긴장된 모습이었다.
편의점 기둥에 설치된 거울 앞에 서서는 왼쪽 오른쪽 고개를 돌려가며 뭐가 묻지 않았는지 살폈고, 이 사이에 끼어 있는 것까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긴장이 되지?
별거 아니라고 되뇌이며 마음을 진정시켰는데도 막상 그가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긴장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잘해봐. 혹시 알아? 편의점에서 사랑이 싹트게 될지.]
놀리듯 던진 다은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아. 진짜. 걔는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사람 마음을…….
아직 그와 마주한 것도 아닌데, 한 공간에서 함께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손끝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띵동.
벨 소리와 동시에 수아의 시선이 빠르게 앞문을 향했다.
손님이었다. 하…….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
이수아!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 아무것도 아니다. 그 사람은 돌멩이다. 돌멩이.
또다시 띵동.
“어서 오…….”
헉! 돌멩이다. 지나치게 잘생긴 돌멩이.
“수아 안녕.”
수아의 시선이 반갑게 인사하는 지훈의 옆에 서 있는 하준에게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옷차림이었다.
저런 편안한 스타일의 옷도 잘 어울리는구나. 하긴 저 비주얼에 안 어울리는 옷이 있을 리가 없지.
“내가 지난주에 이야기했지? 오늘, 내일 나 대신 도와줄 거라고.”
“네. 알아요. 안녕하세요.”
수아는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하준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흑. 저 목소리. 심장이 녹는 것 같아.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수아가 다시 인사를 건넸다.
“이틀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귀여운 것들…….
서로를 향해 어색한 인사말을 건네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지훈이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럼 나는 교육 때문에 간다. 나 없다고 우리 하준이 구박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
“네. 최선을 다해서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을게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다른 쪽으로도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고.”
“네? 뭐라고 하셨어요?”
지훈의 중얼거림에 수아가 귀를 쫑긋 세우며 되물었다.
“아, 아니. 잘 좀 알려주라고. 워낙 FM인 녀석이라 지금 다니는 회사일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 그래도 구박하지 말고 친절하게 잘 대해줘. 때리면 안 돼! 알겠지?”
“그럴게요. 구박하지 않기. 때리지 않기. 명심할게요.”
지훈의 장난 섞인 농담에 수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의 대화에 하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대화에 한마디도 끼어들 수 없음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다녀올게. 민하준! 너도 수아한테 잘 배워.”
“그래. 잘 갔다 와.”
‘금방 올 거지? 응?’
잘 가라는 말과는 달리 지훈을 바라보는 하준의 눈빛은 아련했고 간절했다.
마치 야생에 홀로 남겨진 아기 사자와도 같았다.
왜 저 뒷모습이 저리도 신나 보이는 걸까. 기분 탓이겠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지훈의 뒷모습에서 어렴풋이 콧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도와주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수아가 말했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도와야죠.”
당연히라는 단어가 두 사람의 친분을 알려주는 듯했다.
“점장님이랑 엄청 친하신가 봐요.”
그쪽이 아닌데. 내가 말한 건 이수아 당신인데.
아무렴 어떤가 싶어 하준은 그냥 슬며시 웃었다.
“어떤 거부터 하면 될까요?”
하준이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물었다.
“아니에요. 일하러 오신 것도 아닌데요.”
“저 일하러 온 거 맞습니다. 지훈이한테 일한 대가도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니 열심히 할 겁니다.”
[이틀 동안 좀 더 친해져 봐. 그다음에 밥이든, 술이든 자리 만드는 건 내가 책임질 테니까.]
하준은 고민과 걱정들을 잠시 내려놓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이틀 동안 최선을 다해 수아를 돕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대가로 수아와의 식사 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아. 알바비 받기로 하셨구나. 그럼 부담 없이 부탁드려도 되겠네요.”
“네. 부담 갖지 말고 맘껏 시키십시오.”
또다시 오해를 한 수아였지만, 하준에겐 그것 또한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럼 일단은 계산하는 방법부터 알려드릴게요.”
수아는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 보이는 하준의 모습을 신기해하며 계산대로 향했다.
“이 기계는 포스라고 하는데, 하준 씨가 여기 2 포스를 사용하시면 돼요. 나중에 정산할 때 가격을 맞춰야 하니까 각자 맡은 포스만 사용해야 돼요.”
포스에 대한 설명을 마친 수아가 옆에 놓인 과자 한 봉지를 집어 들고는 뒷면을 보여주었다.
“여기 바코드 보이죠? 여기를 이 기계로 이렇게 찍으면 돼요.”
수아가 바코드 스캐너를 가져다 대자 ‘삐’ 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과자의 가격이 떴다.
“자. 이제 하준 씨가 해보세요.”
수아가 싱긋 웃으며 바코드 스캐너를 내밀었다.
바코드라…….
하준은 받아든 바코드 스캐너를 그녀의 설명대로 바코드 위에 올렸다.
응……?
무슨 이유에선지 한참이 지나도 기계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인식이 안 되는 건가 싶어 각도를 조금 틀어보려던 그때.
수아의 오른손이 바코드 스캐너를 잡은 하준의 오른손 위에 포개졌다.
“바코드가 잘 안 찍힐 때는 이렇게 과자봉지를 잘 편 다음에…….”
맞잡은 손으로 과자봉지의 바코드 부분을 문질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찍으면…….”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기다리던 ‘삑’ 소리가 들려왔다.
“봐요. 찍혔죠?”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던 수아의 움직임이 멈췄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하준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진 탓이었다.
“이, 이제 하준 씨 혼자 하실 수 있겠죠?”
수아는 포개져있던 자신의 손을 황급히 거둬냈다.
“그럼 저, 저는 창문 닦을 것 좀 가지고 올게요.”
눈치 없이 두근대는 심장소리를 들킬 새라 수아는 재빨리 창고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 큰일 났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하준도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급하게 가렸다.
*
어느새 다가온 점심시간.
“하준 씨. 우리 이거같이 먹어요.”
창가 앞 테이블 위에 여러 가지 먹을 것들을 올려두던 수아가 하준을 향해 손짓했다.
“이거는 유통기한 때문에 폐기로 분류된 거라 공짜로 먹어도 돼요. 그리고 혹시나 폐기 말고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맘껏 먹어도 돼요. 점장님이 먹는 거로는 전혀 터치가 없으시거든요.”
“네. 그렇게 할게요.”
대답하는 하준의 시선이 테이블 위 삼각 김밥에 닿았다.
쓰여 있기는 분명 김밥인데 도통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삼각 김밥 안 좋아하세요?”
먹지는 않고 바라만 보고 있는 하준의 행동에 수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네? 삼각 김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요?”
이게 그 정도로 놀랄 일인가? 하준에겐 지금 수아의 반응이 오히려 더 놀라웠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신기해서요. 워낙에 흔한 음식이니까. 정말 별다른 뜻은 없었어요.”
화들짝 놀란 것이 민망했는지 수아는 서둘러 변명하고는 곧장 말을 덧붙였다.
“괜찮아요. 오늘 먹어보면 되죠. 제가 알려드릴게요. 제가 하는 거 잘 보고 따라 하세요.”
이내 삼각 김밥을 벗기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여기 보면 화살표 있죠? 여기를 잡고 이렇게 아래로 내리는 거예요.”
하준의 시선이 그녀의 손을 따라 이동했다.
“그다음 오른쪽 잡아당기고, 왼쪽 잡아당기면…… 짠! 완성!”
수아가 포장이 벗겨진 삼각 김밥을 하준에게 내밀어 보이며 산뜻한 미소를 보였다.
“자. 이제 하준 씨도 해봐요.”
수아가 앞에 놓인 삼각 김밥을 향해 눈짓하자 하준은 그녀가 알려준 방법대로 포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와. 잘했어요. 금방 배우시네요.”
수아가 가볍게 웃으며 하준의 왼쪽 어깨를 가볍게 톡톡 쳤고, 하준도 덩달아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먹어봐요. 이게 우리 편의점 인기 1순위예요.”
하준이 삼각 김밥을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죠? 맛있죠?”
“네. 맛있네요.”
“그렇다니까요. 1위가 괜히 1위가 아니라고요.”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창가 앞.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지훈도 함께 웃었다.
“자식. 저렇게 웃을 줄도 아네.”
아무래도 하준이 걱정돼 돌아왔던 지훈은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편의점의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
수아는 비어 있는 라면을 채우려 창고로 들어섰다.
라면박스는 창고 선반의 제일 위 칸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수아가 까치발을 힘껏 세워야 겨우 손이 닿을 만큼의 높이였다.
오늘따라 의자가 어딜 간 건지 창고 안에서는 보이질 않았고, 가지러 가자니 귀찮은 마음이 들어 어떻게든 꺼내보자고 생각했다.
까치발을 세우고, 손끝을 버둥거려 겨우 라면박스를 붙잡는 순간. 어딜 잘못 건드린 건지 붙잡은 라면박스가 쏟아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너무 당황하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더니. 수아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려던 그때.
수아의 머리 위를 스친 하준의 손이 라면박스를 붙잡았다.
동시에 뒤돌아 있던 수아의 등엔 하준의 가슴이 맞닿았다.
시간이 멈춘 듯 수아와 하준은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먼저 입을 뗀 것은 하준이었다.
“네? 네. 괜찮아요.”
여전히 그의 손은 라면박스에 닿아 있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어색한 포즈로 대화를 이어갔다.
“라면은 제가 채워 넣겠습니다.”
“아! 그러실래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수아는 기다렸다는 듯 무릎을 구부려 키를 낮춘 뒤 그의 품 안에서 빠져나왔다.
“저, 저는 다른 거 채울 거 없는지 확인하고 올게요.”
황급히 창고를 벗어난 수아는 과자 진열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 뭐야. 심장이 남아나질 않네.”
편의점 알바가 이렇게 심장에 무리를 주는 직업이었던가.
진정하자. 진정. 후후. 후후.
알고 있는 모든 호흡법을 총동원하여 터질 듯 뛰고 있는 심장을 가라앉히는 사이.
달칵 소리와 함께 하준이 창고 문을 열고 나왔다.
“창고에 의자 하나 가져다 놔야겠네요.”
“네. 그, 그래야죠.”
사실 의자는 이미 마련되어 있답니다. 그저 저의 귀차니즘이 이런 사단을 만든 것이지요.
수아는 목구멍을 채 넘지 못한 말들을 애써 삼켜내고는 민망함에 진열된 과자만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