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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좋아하는 건가 (11/105)

11. 좋아하는 건가 2022.05.07.

16551770674405.jpg “다쳤잖아요! 아까 경찰관이 물어봤을 때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의 상처에 놀란 수아가 언성을 높였다.

16551770674412.jpg “살짝 긁힌 겁니다. 별로 안 다쳤어요.”

16551770674405.jpg “별로 안 다친 게 아니잖…….”

수아가 다시 말을 하려는데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16551770674421.jpg [수아야!]

16551770674405.jpg “점장님”

지훈이었다.

16551770674421.jpg [지금 경찰서에서 편의점 CCTV 확인하러 조만간 방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무슨 일이야?]

경찰관을 통해 대충의 상황은 들었으나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함이었다.

16551770674405.jpg “그러니까 그게.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막 때리려고 해서 말리는데 그 남자가 칼을 들고서는…….”

시선 끝에 닿은 하준의 상처를 신경 쓰느라 제대로 된 설명을 이어가지 못했다.

16551770674421.jpg [그래. 너도 많이 놀랐을 텐데 그 얘긴 나중에 다시 하자.]

수아의 두서없는 말에 그저 놀라서 그럴 거라는 생각으로 지훈이 통화를 마무리하려는데.

16551770674405.jpg “그런데 하준 씨가 많이 다쳐서…….”

16551770674421.jpg [뭐? 하준이가 다쳤다고?]

하준이 다쳤다는 소리에 순간 지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6551770674405.jpg “네……. 칼에, 칼에 많이 베였는데 아까 구급차를 타고 갔어야 했는데, 괜찮다고 해서…….”

16551770674412.jpg “저 진짜 괜찮다니까요. 살짝 긁힌 거예요.”

수아의 목소리 사이로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긁혔다는 걸 보니 다치긴 다쳤나 보네. 순간 지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16551770674421.jpg [수아야.]

16551770674405.jpg “네?”

16551770674421.jpg [내가 지금 좀 멀리 와 있어서 바로 가지는 못할 것 같아.]

별일이야 있겠냐는 생각에 드라이브나 할까 싶어 실외로 나왔는데 하필 이때.

16551770674405.jpg “네. 알아요. 교육 가셨잖아요.”

16551770674421.jpg [그, 그래. 교육. 그래서 말인데 수아 네가 하준이 좀 집에 데려다줄 수 있을까?]

16551770674405.jpg “네? 집이요?”

16551770674421.jpg [응. 지금 자세한 말을 할 수는 없는데, 사정이 있어서 하준이가 병원을 못 가.]

16551770674405.jpg “…….”

16551770674421.jpg [그래서 수술이 아니고서는 웬만하면 집으로 의사분이 오셔서 해결해 주시거든.]

아. 병원 공포증. 지훈의 말에 며칠 전 병원에서 보았던 하준의 모습을 떠올렸다.

16551770674421.jpg [미안한데, 병원에는 내가 연락할 테니까 내가 갈 때까지만 하준이 부탁 좀 하자.]

방법이 없었다. 민하준 성격에 집에서 얌전히 의사를 기다릴 리 만무하고, 녀석을 붙잡아놓을 사람이 필요했다. 수아라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해줄 거란 확신도 있었고.

16551770674405.jpg “미안하긴요. 당연히 제가 해야죠.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16551770674421.jpg [그래. 고맙다. 최대한 서둘러 갈게.]

16551770674405.jpg “걱정하지 마시고, 조심해서 오세요.”

지훈과의 통화를 마무리한 수아는 손에 들린 휴대폰을 주머니 속 깊이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곧장 고개를 들어 하준과 시선을 맞추고는 입을 열었다.

16551770674405.jpg “가요. 하준 씨 집으로.”

16551770674412.jpg “네?”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듯 하준이 눈을 키웠다.

16551770674405.jpg “하준 씨 병원 못 가는 거 알아요. 그래서 이런 일 있으면 집에서 치료받는 것도. 그러니까 가자고요. 하준 씨 집.”

민지훈 또 쓸데없는 말을…….

16551770674412.jpg “저 혼자 가도 괜찮습니다.”

16551770674405.jpg “아니요. 그건 안돼요.”

예상했던 그의 반응을 수아는 단호하게 잘라냈다. 잘 보고 있어 달라는 지훈의 부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다친 남자를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16551770674405.jpg “무조건. 저랑 같이 가야 돼요. 점장님이 도착하시기 전까지는 무조건 저랑 같이 있어야 돼요.”

이미 결심을 굳힌 듯한 수아의 눈빛과 목소리에 하준은 생각했다. 그날 펜션에서처럼 나는 이번에도 그녀를 이길 수가 없겠구나. 결국 하준은 수아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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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택시 안 공기는 무거웠다. 들리는 소리라곤 하준이 가끔씩 내뱉는 한숨 소리뿐.

16551770674405.jpg “죄송해요.”

그의 눈치를 살피던 수아가 시선을 떨어뜨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16551770674412.jpg “수아 씨가 왜요.”

16551770674405.jpg “하준 씨 말대로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이렇게 다치는 일도 없었을 텐데.”

16551770746876.jpg [다른 사람을 돕는 일도 좋지만, 안전이 보장된 상황일 때 했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을 돕겠다며 앞뒤 생각 없이 뛰어들다가 다쳐오는 날이면 다은이 항상 했던 말이었다. 그때는 이까짓 상처야 금방 나으니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었는데, 그 말의 뜻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런 나로 인해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머리가, 그리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준의 시선이 축 처진 수아의 어깨에 닿았다.

16551770674412.jpg “아까 제가 했던 말은 잊어버려요. 놀란 마음에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니까.”

축 처진 수아의 어깨가 안쓰러워 서둘러 건넨 위로의 말이었다. 하준이 다시 말을 이었다.

16551770674412.jpg “멋있었습니다. 경찰서에서 안 준다고 하면 만들어서라도 용감한 시민상을 주고 싶을 만큼.”

나 원래 이렇게 눈물 많은 사람 아닌데. 저 말이 뭐라고 갑자기 울컥하는 걸까. 위로가 담긴 그의 말에 꾹꾹 눌러 담았던 미안함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16551770674405.jpg “나 때문에 흐읍 다쳐서 미안해요. 흑.”

점점 커지는 수아의 울음소리에 당황한 하준이 어찌할 줄 몰라 허둥거렸다.

16551770674412.jpg “괜찮다니까요. 누가 보면 진짜 크게 다친 줄 알겠네. 저 정말 괜찮아요.”

그렇게 다친 사람이 멀쩡한 사람을 위로하는 사이 택시가 하준의 오피스텔 앞에 이르렀다.

16551770674405.jpg “빨리 들어가요.”

어느새 눈물을 그친 수아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하준의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올라 버튼을 누르려는데.

16551770674405.jpg “제가, 제가 누를게요. 몇 층이에요?”

16551770674412.jpg “괜찮은데……. 23층입니다.”

16551770674405.jpg “23층. 23층. 여기 있다.”

숫자를 훑던 수아의 검지가 23에 닿았고,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라가던 숫자가 23에서 멈추었고, 이내 문이 열렸다. 2301호. 문 앞에 다다르자 수아는 누가 들을 새라 좌우를 열심히 살피더니 입술 끝에 양손을 대고는 속삭였다.

16551770674405.jpg “비밀번호가 뭐예요? 제가 누를 테니까 저 가고 나면 다시 바꾸세요.”

뭐 대단한 말이라도 하나 했네. 하준은 피식 한번 웃어 보이고는 그리 작지 않은 목소리로 비밀번호를 말했다.

16551770674412.jpg “1234”

16551770674405.jpg “……그게 비밀번호라고요?

16551770674412.jpg “네. 1234.”

16551770674405.jpg “에이 설마. 어떤 사람이 비밀번호를 1234로…….”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숫자 4개를 누르는데. 삐리리. 문이 열리고. 동시에 수아의 입도 열렸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어. 비밀번호가 1234라니.

16551770674405.jpg “어머. 웬일이야. 이 사람 진짜 큰일 낼 사람이네. 비밀번호를 1234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것도 집 비밀번호를! 저 가면 바로 바꿔요. 알겠죠?”

16551770674412.jpg “……네. 알겠습니다.”

쏘아붙이듯 말하니 얼결에 대답은 했지만 하준은 뭐가 문제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1234는 처음부터 설정되어 있던 비밀번호였다. 그에게 집이란 그저 잠을 자는 곳일 뿐. 집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에 비밀번호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도 그녀가 그러라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16551770674405.jpg “요즘 같은 세상에 비밀번호가 1234가 뭐야. 1234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서던 수아의 걸음이 멈칫했다. 사람이 사는 집이 맞나? 당황함에 멍하니 눈만 껌뻑였다. 드넓은 거실엔 TV와 소파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얼핏 봐서도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 집안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수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하준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16551770674405.jpg “하준 씨.”

비밀번호에 이어 또 잘못한 게 있는 건가 싶어 하준이 긴장된 표정으로 수아를 바라봤다.

16551770674405.jpg “여기 하준 씨가 지금 살고 있는 집 맞아요? 무슨 모델하우스 그런데 아니에요?”

16551770674412.jpg “모델하우스요?”

16551770674405.jpg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16551770674412.jpg “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수아의 엉뚱한 물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16551770674412.jpg “워낙 퇴근시간이 늦다 보니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잠자는 일뿐이라 그럴 겁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맞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며 돌리려던 시선에 붉게 물든 하준의 팔이 들어왔다.

16551770674405.jpg “어머! 나 좀 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미안해요. 빨리 침대에 가서 누워요.”

집 구경에 정신이 팔려 이곳에 온 이유를 망각하고 있었다.

16551770674405.jpg “점장님이 의사 선생님 불러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금방 오실 거예요.”

수아는 하준보다 먼저 침대로 다가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이불을 살짝 걷어냈다.

16551770674405.jpg “여기 등 기대고 앉아서 좀 쉬어요.”

하준이 어색한 움직임으로 걸음을 뗐다. 지금 그녀와 있는 곳이 침실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서 표정부터 움직임까지 어느 것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다가온 하준이 벌어진 이불 틈 사이로 들어가자 다시 이불을 덮어주려는데. 띵동. 때맞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16551770674405.jpg “어? 의사 선생님 오셨나 봐요. 잠깐만 기다려요.”

수아가 서둘러 현관으로 향했다. 잠시 후.

16551770838351.jpg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이 이렇게 다쳐서 보자는 말은 아니었는데. 응?”

농담 섞인 말을 건네는 중년의 남자와 치료 도구를 들고 있는 여자 한 명이 침실로 들어섰다.

16551770674412.jpg “원장님께서 직접 오실 정도의 상처는 아닌데요.”

하준의 말에 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장님이라니? 병원 원장님? 병원 원장님을 개인적으로 연락해 부를 정도라니. 역시 편의점은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16551770838351.jpg “지훈이가 웬일로 연락을 다 했나 했더니만. 안부 물을 새도 없이 다짜고짜 너 부탁한다는 말만 하고 끊더라.”

16551770674412.jpg “지훈이 성격 아시잖습니까. 별일도 아닌 일에 호들갑 떠는 거.”

16551770838351.jpg “별일인지 아닌지 어디 한번 보자.”

원장은 수아가 미리 준비해 놓은 의자에 앉아 하준이 입고 있는 옷의 어깨 부분을 가위로 잘라냈다. 피에 물든 옷자락이 잘려나가자 칼에 베인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6551770838351.jpg “별일 아니기는. 이거 아무래도 꿰매야 할 것 같은데?”

상처를 살피던 의사가 꿰매야 할 것 같다며 마취제가 든 주사기를 집어 들자, 하준이 화들짝 놀라며 기댔던 몸을 급하게 일으켰다.

16551770674412.jpg “그, 그냥 소독만 해주셔도…….”

16551770838351.jpg “상처가 이렇게 벌어져 있는데 어떻게 소독만 하나? 금방 끝나니까 보기 힘들면 눈이라도 감고 있어.”

16551770674412.jpg “그래도…….”

팔을 내어줄 생각이 없는지 말끝을 흐리는 하준의 팔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수아가 살며시 하준의 왼편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그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자신을 향해 조심스럽게 당겼다.

16551770674405.jpg “괜찮아요. 금방 끝날 거예요.”

놀란 하준의 눈이 크게 벌어지며 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틈을 타 치료가 시작되었다.

16551770674405.jpg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수아는 하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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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기댄 하준의 머리가 조금 더 무거워짐을 느꼈다.

16551770674405.jpg “하준 씨. 혹시 잠든 거예요?”

16551770838351.jpg “잠들었을 거예요. 워낙 일 중독인 녀석이라 이참에 좀 자라고 수면제도 같이 처방했거든요.”

잠든 하준을 대신해 의사가 답했다.

16551770674405.jpg “아, 네…….”

잠시 후 치료를 끝낸 의사가 하준의 머리를 받치고는 살며시 베게 위에 내려놓았다.

16551770838351.jpg “당분간은 상처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염증이 생기면 그땐 골치 아파지거든요.”

16551770674405.jpg “네.”

16551770838351.jpg “그리고 되도록이면 다친 팔은 사용하지 않게 옆에서 잘 지켜봐 줘요. 아무래도 오른쪽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자꾸 사용을 하게 될 수 있어서.”

16551770674405.jpg “네. 그렇게 할게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현관까지 나가 의사를 배웅하고 돌아온 수아는 뭔가에 홀린 듯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턱을 괸 채 잠든 하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데. 심장이 간질거리는 게 느낌이 이상했다. 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그와 눈이 마주칠 때면 손끝부터 저릿해지면서 금세 심장이 반응했다. 나…… 이 사람 좋아하나? 연애한 지가 워낙 오래전이라 이 느낌을 좋아하는 거라고 해도 되는 건지 헷갈렸다. 에이 설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시간이 중요한가 깊이가 중요하지. 깊이는 무슨 깊이. 깊어질 일은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이 순식간에 수아의 머릿속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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