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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일한 약점 (12/105)


12. 유일한 약점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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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하…….”

다급한 걸음으로 하준의 침실로 들어서던 지훈이 걸음을 멈췄다.

잠든 하준의 옆에서 엎드린 채로 잠들어 있는 수아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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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필요가 없었던 건가?”

피식 웃음을 흘린 지훈이 수아의 어깨 위에 얇은 담요를 덮어주고는 조심스럽게 침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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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누가 먼저 일어나든 당황 좀 하겠네.”

좀 더 당황하는 쪽이 민하준이기를.

지훈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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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에서 쏟아지는 아침햇살에 감겨 있던 하준의 눈꺼풀이 열렸다.

가느다란 시야 사이로 익숙한 풍경이 들어왔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하준이 기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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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자신을 품에 안으며 괜찮다 말해주던 수아의 목소리.

자신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수아의 손길.

그 이후의 기억은 없는 걸 보면 수아의 품에 안긴 채로 잠이 들은 듯했다.

……?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이불 끝이 무거웠다.

내린 시선 끝에 수아의 잠든 얼굴이 담겼다.

왜 여기서…….

치료 중에 잠들었으니 왜 그녀가 이곳에서 잠들어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하준은 지훈에게 물어볼 요량으로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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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안 온 거야?”

지훈이 올 때까지만 함께 있겠다던 수아가 돌아가지 않았다는 건 그가 오지 않았다는 뜻.

하준이 뾰족한 말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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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기는. 나 그런 사람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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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수아 씨가 왜 여기에서 자고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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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갔을 때 이미 수아는 잠들어 있었어.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도 뭐하고 그래서 그냥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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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래 알았다.”

게스트 룸으로라도 옮기지 그랬냐고 하려다 말을 삼켰다.

그러려면 수아를 안아야 했으니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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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번 일로 확실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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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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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말이야.]

건너편에서 들려온 이름 하나에 하준의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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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가 네 유일한 약점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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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 침묵 속에 얼핏 지훈의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지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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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피우는 민하준에게는 이수아가 특효약이라는 걸 이번 일로 확실하게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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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꾸 수아 씨한테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이번 일도 그래. 왜 그런 부탁을 해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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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난처할 게 뭐야?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덕에 수아랑 같이 밤을 보냈잖아.]

하. 내가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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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끊어. 출근 준비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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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잠깐만. 원장님께서 전화하셨는데, 염증 생기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시더라. 특히 물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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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퉁명스러운 한마디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하준은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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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얕은 신음과 함께 수아의 몸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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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아오. 허리야.”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상체를 세우려는데 밤새 엎드려 있던 탓인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응? 여기가 어디지?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수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지금 아침?

분명 어제 점장님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머! 그러다가 그냥 자버린 거야? 아으 이수아 진짜.

창피함에 아랫입술을 잘근대던 수아의 시야에 비어 있는 침대가 들어왔다.

어? 하준 씨는 어디 갔지?

수아가 서둘러 방을 나섰다.

거실에도 없고, 주방에도 없고, 혹시 여기 있나?

그녀가 드레스 룸 문을 여는 순간.

상의를 탈의한 채로 와이셔츠에 팔을 끼우려던 하준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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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수아의 몸이 빠르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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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미안해요. 옷 갈아입는 줄 모르고 들어왔어요. 지, 지금 바로 나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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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가.”

새빨개진 얼굴로 드레스 룸을 나서려던 수아의 걸음이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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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단추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하준의 말을 반복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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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 힘이 안 들어가서 단추를 끼우기가 힘드네요.”

하준이 수아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반 발짝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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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도와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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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그, 그럼요. 도와드려야죠.”

도와달라는 말에 수아가 다시 몸을 돌려왔다. 바닥으로 떨군 시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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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말과 함께 하준이 거리를 좁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침내 수아의 떨군 시야 안에 하준의 발이 들어왔다.

차마 마주치지 못한 시선을 허공에 둔 채로 두 손만 뻗어 단추를 잡으려는데.

뜨헉.

길을 잃은 수아의 손이 그의 맨살에 닿는 순간.

허공을 맴돌던 시선이 빠르게 하준의 가슴팍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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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미안. 미안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아우 진짜 미치겠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얼굴로 버벅대며 변명의 말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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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계속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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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뭘 계속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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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요. 계속 채워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아……. 난 또 더듬는 걸 계속하라는 줄.

어머!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하준 씨가 계속 더듬어달라는 말을 했겠어? 미쳤다. 미쳤어.

이런 수아의 속마음이 들릴 리가 없었지만, 하준은 알 것도 같았다. 저렇게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

참 투명하기도 하네. 귀엽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붙잡았다.

또 장난치느냐며 화를 낼 수아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뭐 그것도 귀여운 건 마찬가지겠지만.

수아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목에서부터 하나씩 채워가며 시선을 내리는데, 벌어진 셔츠 사이로 외면할 수 없는 근육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으. 이래서 시스루가 더 야하다고 하는 건가? 안 보이는 부분을 자꾸 상상하게 되잖아.

수아가 상상의 유혹을 뿌리쳐가며 단추를 채우는 사이 하준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여전히 발그레한 볼. 살짝 내리깐 눈동자. 그리고 어릴 적부터 무언가에 집중할 때면 늘 앞으로 마중 나오는 입술.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머무르던 그때.

무언가에 홀린 듯 하준이 수아를 향해 상체를 숙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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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됐……!”

마지막 단추가 채워지고, 그녀가 고개를 든 순간.

쪽.

하준의 입술과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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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란 수아가 입술을 말아 물고는 재빠르게 드레스 룸을 빠져나왔다.

*

드레스 룸을 나온 후에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분명 하준이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는데, 하준에게 인사는 하고 나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어지간히 당황했었나 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 위로 엎드린 수아는 발을 동동 구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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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어. 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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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했다는 건데?”

가만히 보고 있던 다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아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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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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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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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하준 씨랑 뽀뽀.”

다시 그때의 장면이 떠올랐는지 수아의 귀 끝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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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도 아니고. 뽀뽀?”

다은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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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7살이냐? 자그마치 27이야. 그런데 키스도 아니고 뽀뽀한 걸로 이렇게 좋아한다고?”

다은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사실 다은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모태솔로도 아니니 뽀뽀며 키스며 경험 못 해 본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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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그런데 진짜 신기한 건 그 짧은 순간에 온몸으로 전기가 통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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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사람 좋아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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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니 뭐 좋아한다기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다은의 물음에 수아는 쉽게 대답을 꺼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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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좋아하는지 아닌지 그것도 확실히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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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모르겠어. 아니. 알 것 같기는 한데…….”

들떠 있던 수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을 발견한 다은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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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게 무서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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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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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민철이랑 헤어지고 누구 좋아한다고 말한 적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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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민철.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함께 꾸었던 사람.

처음으로 배신의 아픔을 느끼게 해주었던 사람.

그를 떠나보내며 추억들과 함께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방법들까지도 모두 가라앉아버렸다고 생각했는데.

하준을 만난 뒤로 가라앉았던 것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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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무서워.”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수아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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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감정을 좋아하는 거라고 정의를 내려버리는 순간 그다음을 기대하고 싶어질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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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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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을 기대하는 거. 미래를 기대하는 거. 그리고 그 기대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거. 난 그게 무서워.”

수아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동안 다은은 쉽사리 그녀에게 조언이나, 충고 따위를 건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 위에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잊혀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번에는 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수아가 더 이상은 다가오는 인연을 놓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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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야. 모든 사람이 민철이 같진 않아. 아닐지도 모르는 일을 그럴 거라고 추측하고 지레 포기하는 거. 그래서 좋은 사람을 놓치는 거. 나는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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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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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어떻게 상처 한 번을 안 받겠어? 중요한 건 상처를 받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상처를 치료해 줄 사람을 만나는 거야. 지금은 네가 그래야 할 때고.”

상처를 치료해 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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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좋아한다. 안 한다. 결론 내라는 소리가 아니야. 단지 그 사람이 한걸음 다가올 때 적어도 뒷걸음질 치지는 말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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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한번 그렇게 해볼게. 고마워 다은아.”

그제야 수아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래. 과거에 얽매여 좋은 사람을 놓치지는 말아야지. 뒷걸음질 치지는 말아야지.

다가와 준다면. 그가 그래 준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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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님?”

오전 일정 브리핑을 하는 내내 딴생각을 하는 것 같은 하준의 모습에 박 비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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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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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브리핑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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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나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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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럼.”

박 비서가 나가고 한참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던 하준이 와이셔츠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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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좀 채워달라니.”

다시 생각해도 자신이 뱉어낸 그 말이 신기했는지,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설마하니 단추 채울 힘이 없었을까.

그저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단추 핑계를 댔을 뿐. 처음부터 입맞춤을 계획하고 그녀를 붙잡았던 건 아니었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그녀의 숨결이 가슴팍에 닿는 순간 저도 모르는 사이 이미 입술은 맞닿아 있었다.

하준의 엄지가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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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랐을까.”

당황해하며 입술을 말아 물던 수아의 얼굴이 떠오르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나 혼자만 마음이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는 걸까.

나는 추억 속 수아를 만났고, 당신은 처음 민하준을 만났으니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문득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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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기억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잖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천천히.”

하준은 애써 붕 뜬 기분을 가라앉히며 마음을 다잡고 박 비서를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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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회장님. 부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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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뒤 공모전 관련 회의 진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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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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