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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애매한 관계 (16/105)


16. 애매한 관계
2022.05.24.


……하준 씨?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수아의 눈이 느리게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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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습니까?”

다가와 묻는 그의 질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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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준 씨가 저희 집엔 어떻게…….”

겨우 입을 열어 묻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더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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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저희 집인데요.”

말도 안 돼. 어떻게 여기가 하준 씨 집…….

수아는 급히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채워진 것 없이 깔끔한 공간.

그의 말처럼 여기는 분명 그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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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놀라 붙들고 있을 힘이 사라졌는지 수아의 아래턱이 스르륵 벌어졌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왜 하준 씨 집에…….

수아는 본능적으로 어제의 기억을 더듬었다.

서류접수 기념으로 다은이랑 술을 마셨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뭐지……? 가위로 잘라낸 듯 그다음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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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 혹시 어제 일. 기억 안 나는 겁니까?”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요동치는 수아의 동공을 빤히 바라보던 하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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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기억 안 나기는요! 다 기억하는데요.”

차마 마주치지 못한 수아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던 그때.

하준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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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그럼 어제 소고깃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것도 기억하고 있겠네요?”

가게 앞에서 우연히? 그랬었나?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봐도 기억나는 건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조절 못 하고 술을 먹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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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그러고 보면 세상이 참 좁아요. 어떻게 거기서 그렇게 딱 마주칠 수가 있는지…….”

흐려진 말끝 뒤로 수아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기억 못 하는구나.

확신이 선 순간 하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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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 맨날 맨날 보고 싶은데. 못 만나면 너무 슬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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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준 씨 좋아하니까 옆에 있어야 되는데.]

취중 진담이라고 했던가.

술에 취한 채 중얼거리던 그녀의 말들이 떠올랐다.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더 좋았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 또한 그녀의 고백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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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준 씨 좋아하니까. 내가 하준 씨 좋아하니까.]

귓가를 맴도는 한 문장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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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아는 데려다준다는 하준에게 다은과 해장국집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치듯 그의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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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볼 아파.”

과한 억지웃음 때문인지 광대뼈 부근이 뻐근했다.

한참을 손가락으로 볼을 문지르는데, 문득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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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도대체 나는 왜 그 집에서 자게 된 거야?”

하준에게 차마 묻지를 못했으니 여전히 궁금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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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자마자 다은이한테 물어봐야겠네.”

길거리 한복판에서 ‘누구네 집에서 잤네. 안 잤네’를 따져 물을 수는 없으니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잠시 후.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려던 수아의 시야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다은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평소에도 수아가 집에 있으나 없으나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다은이었기에 놀랄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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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다은. 어제 너랑 나랑 둘이서 술 마신 거 아니었어? 내가 어쩌다가 하준 씨 집에 가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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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내가 적당히 마시라고 했지!”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로 참았던 질문들을 쏟아내는데, 고개를 획 돌린 다은이 매서운 눈빛을 쏘며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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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뭔데? 나 사고 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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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려면 곱게 취하던가. 하준 씨는 왜 불러서 문제를 만드냐고!”

하준 씨를 불러? 누가?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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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우연히 만난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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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는 개뿔. 네가 오라고 불렀잖아. 우리 하준 씨. 우리 하준 씨. 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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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가게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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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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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가.”

수아의 말에 다은이 한심스럽다는 듯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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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멍충아. 어제 일 기억하나 못 하나 시험해 본 거잖아.”

그게 함정이었다고? 이런 나쁜 황새 놈을 봤나.

입술을 씰룩이며 미간을 좁히던 수아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다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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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 치고. 근데 왜 우리 집으로 안 오고, 하준 씨 집으로 간 건데? 설마 너! 취했다고 나 버렸냐?”

원망 섞인 수아의 말투에 다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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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은혜도 모르는 진상을 봤나. 그럼 하준 씨가 여기에 들어오게 그냥 뒀어야 했다는 거야? 지금 네 방 꼬락서니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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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방이 어때서…….”

빠르게 주변을 살피는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과 서류들.

먹다 남은 음식물들과 닦이지 않은 그릇들.

이것은 방인가. 쓰레기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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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꼴은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대충 핑계 대고 호텔로 간다는 걸 게스트 룸인가 뭔가가 있다고 집으로 데려간다는데 어떻게 해? 그래도 그냥 여기로 오는 게 맞는 거였지? 응?”

다은의 말에 먼지 하나 없던 하준의 거실 모습이 떠오르며 식은땀 한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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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세. 고맙네 친구. 자네의 현명한 판단이 친구의 인생을 살렸다네.”

빠른 태세 전환과 함께 수아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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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건 친구가 아니라 웬수야 웬수.”

깊은 한숨을 내쉬던 다은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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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제 별일은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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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무슨 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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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남녀가 한집에 있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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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야! 우리 하준 씨는 그런 사람 아니야!”

다은의 말허리를 잘라낸 수아가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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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 말고. 너 말이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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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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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이수아가 조용히 잠만 잤을 리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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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야? 나 술버릇 없거든? 그냥 조용히 잠만 자는 게 술버릇이라면 술버릇…… 헙!”

말을 마치지 못한 채 수아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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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준 씨 맨날 맨날 보고 싶은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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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만나면 너무 슬픈데.]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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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준 씨 좋아하니까 옆에 있어야 되는데.]

말도 안 돼. 이건 꿈일 거야.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수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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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뭔데? 뭐 기억나는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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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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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무슨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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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고 싶다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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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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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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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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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미쳤다. 미쳤어. 아악! 진짜 미쳤어!”

수아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뱉어내고는 이내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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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준 씨 얼굴을 어떻게 봐. 끝이야! 끝! 끝이라고!”

술주정 고백이라니. 이게 무슨 망신이야!

밀려드는 창피함에 거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발을 파닥거렸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은이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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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끄러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끝까지 모르는 척해. 그 방법밖에 없어.”

수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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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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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그만 마시라고 할 때 멈췄어야지. 이 진상아!”

다은은 더는 꼴 보기 싫었는지 쯧쯧거리며 수아의 등을 사뿐히 지르밟고는 그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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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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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준 씨 좋아하니까.]

회사에 출근한 뒤로도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수아의 목소리에 하준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목소리를 곱씹던 하준이 무언가 생각난 듯 검색창에 검색어를 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는 방법.]

엔터키를 누르려던 순간, 하준의 손이 멈칫했다.

고백이라니.

어젯밤 수아의 고백에 대한 충동적인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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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기로 했는데…….”

하준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는 수아를 처음 만났던 날, 스스로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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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해하지 않기. 서두르지 않기. 수아가 자신을 기억해 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기.’

20년 동안 해왔던 기다림이었기에 분명, 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었다.

분명 그날은 그랬었다.

그런데.

손만 뻗으면 잡힐 듯한 곳에서 자신을 향해 웃어주고,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수아의 모습에 하준의 다짐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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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척하고 조금 더 기다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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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그래도 좋아한다고 먼저 고백해 주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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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김에 한 말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고백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로 인해 하준은 미간을 좁히며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앉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떤 결심이 섰는지 몸을 일으킨 하준이 엔터키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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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기다리기만 하다 놓칠 수는 없지.”

제 눈에도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다른 남자들 눈엔 오죽할까.

결국 하준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키되,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던 다짐을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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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해하지 않기. 서두르지 않기. 수아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기.’

하준은 새로운 다짐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컴퓨터 모니터를 살폈다.

[고백하기 전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장소에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상대방과 가까워지는 게 먼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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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지는 게 먼저라……. 그럼 일단은 만나야겠네.”

하준은 서둘러 휴대폰을 들고는 수아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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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술 먹고 필름이 끊겨본 지가 언제였던가.

어제의 나에 대한 후회와 한탄이 온 거실을 뒤덮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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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깜짝이야!”

유리 테이블 위에서 울리는 요란한 휴대폰 소리에 깜짝 놀란 수아의 몸이 들썩였다.

[하준 씨]

헙. 하준 씨다.

액정 위에 뜬 이름을 확인한 순간.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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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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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 집에는 잘 들어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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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요. 하준 씨는 출근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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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했습니다. 속은 좀 괜찮습니까? 다은 씨랑 해장국 먹는다더니 해장국은 먹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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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이제 먹으러 나가려고요.”

먹긴 뭘 먹어. 욕만 한 사발 들이붓고는 자기네 집으로 벌써 가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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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저는 외근 나가는데, 세상은 좁으니까 어느 식당 앞에서 우리 또 만날 수도 있겠네요. 우. 연. 히.]

응? 지금 ‘우연히’라는 말 강조한 거 맞지?

하! 이 나쁜 황새 놈의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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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러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뭐라 따져 묻지도 못한 채로 그저 어색한 웃음만 흘리는데 건너편에서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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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일 저녁에 시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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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요?”

내일? 왜? 나는 아직 당신 얼굴 볼 준비가 안 되었는데.

당황함에 갈라진 목소리가 곧장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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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만지고 싶다고 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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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뭘요?”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수아가 눈을 번쩍 뜨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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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수아 씨가 그랬잖습니까. 매일매일 만지고 싶다고. 어제는 만졌고, 오늘은 숙취 때문에 힘들 테니까 내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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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가 언제 매일 만지고 싶다고 했어요! 매일 보고 싶다고 했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니 억울한 마음에 말허리를 잘라내며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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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네요. 어제 일.]

느릿한 그의 음성이 그대로 고막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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