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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설레잖아 (17/105)


17. 설레잖아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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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네요. 어제 일.]

끝까지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또 걸려들었다.

황새 놈이 파놓은 함정에 다리 짧은 뱁새처럼 도대체 몇 번이나 걸려드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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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리니까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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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시 화났습니까? 화나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들려온 수아의 목소리에 아차 싶었는지 하준은 재빨리 목소리에 담긴 웃음을 거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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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놀리는데 재미 붙인 누구 덕분에 오랜만에 분노를 느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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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이제 안 그럴 테니까 화내지 말아요.]

하아. 내가 저 말을 또 믿는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한숨 소리가 수아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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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바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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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왜요? 만나서 또 놀리려고요?”

나 뒤끝 있는 여자야. 수아가 뾰족한 말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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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저녁 식사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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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요?”

예상치 못한 단어에 굳어졌던 미간이 순식간에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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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그동안 제대로 된 식사 한 번을 같이 못 한 것 같아서요.]

제대로 된 식사라.

하긴 생각해 보면 편의점에서 먹었던 삼각김밥이 그나마 가장 식사다운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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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면 제가 7시까지 수아 씨 오피스텔 앞으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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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그래요. 그럼 그때 봐요.”

수아는 내일 아무런 약속도 없었지만,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마치 고민하고 대답한 것 같은 분위기를 내비쳤다.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쉬운 여자로 보이기는 싫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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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럼 내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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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끊어요.”

좀 전까지 나쁜 황새 놈이니 뭐니 하던 수아의 분노는 밥 먹자는 한마디에 금세 사그라들었다.

수아는 전화를 끊자마자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며 옷장에 있는 옷들을 죄다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옷 고르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또다시 휴대폰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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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얘기한다는 걸 깜박하고 말 못 했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아가 난리를 피워대는 통에 막상 하려 했던 말을 하지 못한 다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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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말했던 그 영화 말이야. 내일 개봉한다던데. 내일 저녁에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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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내일은 안 될 것 같은데. 모레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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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일 약속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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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갑자기 저녁 약속이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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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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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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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 어떻게 얼굴 보냐고 난리 칠 땐 언제고. 그새 약속을 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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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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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남자친구 만난다는데 솔로인 내가 양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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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남자친구는 무슨 남자친구야!”

생각지도 못했던 호칭에 놀라 수아가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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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설마 너네 아직도 안 사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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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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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연인들이 하는 것들은 죄다 하고 있으면서 정작 사귀지는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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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데, 다은의 말처럼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였으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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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준 씨 좋아하니까 옆에 있어야 되는데.]

비록 술기운에 뱉은 말이긴 해도,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했는데 그는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까.

혹시 부담스러운 건가? 그래서 모른 척하고 싶은 건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수아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설마 나…….

시작하는 게 무섭다고 하면서도, 그 사람이 고백해 주길 기대하고 있는 건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다은의 말 한마디가 잔잔했던 수아의 마음속 물결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

약속 시간을 20분 남긴 시각.

수아는 이미 오피스텔 앞에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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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

그동안은 우연히 마주쳤던 터라 몰랐는데, 막상 이렇게 시간을 정하고 만나려니 긴장되는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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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아직 20분이나 남았어? 뭔 시간이 이렇게 안가!”

수아는 제 마음과는 달리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는 분침이 원망스러워 버럭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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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후아. 진정하자. 진정해.”

미친 듯 널을 뛰는 심장박동에 심호흡하기를 몇 차례.

결국엔 눈을 감고 숫자를 10부터 거꾸로 세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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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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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

헙!

다섯도 채 세지 못한 상태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에 수아의 눈꺼풀이 순식간에 밀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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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준 씨.”

최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려는데 의도와는 달리 그 끝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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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저 비주얼은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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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퇴근길이 분명한데, 그의 모습은 이제 막 세팅을 끝낸 사람처럼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나란 인간이 원래 이렇게 시각적 자극에 약했던가.

그의 등장과 함께 어지러운 상념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발갛게 달아오른 설렘이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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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천천히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저 완벽한 비주얼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만 있다면 그까짓 고백쯤이야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어.’

수아가 속으로 생각하며 하준을 향해 걸음을 떼려는데, 어느새 그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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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하면 나오지 왜 벌써 나와 있습니까?”

뭐야.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씰룩이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누르며 수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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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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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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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기분이라도 좋아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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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녀의 미소에 한 번. 사랑스러운 말에 한 번.

연이은 심장 공격에 하준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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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 지금 엄청 감동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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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너무 감동스러워서 운전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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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러면 안 되는데. 안전 운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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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최선은 다해보겠습니다.”

하준이 환하게 웃으며 조수석 문을 열었고, 수아는 펄럭이는 치마를 붙잡으며 조심스럽게 차에 올랐다.

보닛을 돌아 운전석에 오른 하준이 차를 출발시켰고,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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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식사를 한다는 것만 알았지 목적지는 알지 못했기에 궁금한 마음으로 수아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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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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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숨겨둔 비밀의 장소라도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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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비밀의 장소라기보단, 비장의 장소라고 해두죠.”

비장의 장소?

뜻을 알 수 없는 그의 말이 의아했지만, 수아는 아무렴 어떤가 싶어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다만 그래도 첫 식사이니만큼 이왕이면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얼핏 보기에도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한 고층 빌딩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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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이런 곳도 있었나?’

수아는 처음 보는 광경에 휘둥그레진 눈동자로 로비 곳곳을 살폈고, 이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레스토랑이 있는 83층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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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예약하신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미술관에서 볼법한 그림들을 지나 레스토랑 앞에 다다르자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를 안내했다.

직원을 따라 걸으며 주변을 살피던 수아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남자가 내민 꽃다발을 받고는 수줍어하고 있는 여자.

한눈에 보아도 이제 막 시작한 연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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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오늘부터 1일 인가 봐. 그래. 고백 장소로 이런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도 괜찮…… 어?’

흐뭇한 미소로 커플을 바라보던 수아의 눈이 순간 번뜩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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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하준 씨도 나한테 고백하려고 여기에 온 건가?’

두근.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심장이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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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괜히 기대하지 말자.’

수아는 금세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한 기대감에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수아는 들썩이는 마음을 애써 내리누르며 걸음을 이었다.

잠시 후. 직원의 안내에 따라 수아와 하준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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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층이라 그런가? 여기 야경이 진짜 멋지네요. 어? 저기 보이는 거 한강 맞죠? 우와 한강 너무 예쁘다.”

좀 전까지 들썩이던 마음은 야경 하나에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고, 수아는 한껏 신이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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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좋을까.’

하준은 마치 뚫고 나갈 듯 창문에 바짝 붙어 있는 수아의 모습을 귀여워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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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머지 감상은 메뉴를 정한 다음에 하는 게 어떨까요?”

하준이 앞에 놓인 메뉴판을 향해 눈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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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네요. 주문을 하는 게 먼저였네요.”

수아는 서둘러 메뉴판을 들어 메뉴를 살폈다.

음…… 뭘 먹지?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수많은 낯선 요리들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하준 씨 먹는 걸로 따라 먹을까?

메뉴판 위로 눈을 빼꼼 내미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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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골랐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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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요. 전부 다 맛있을 것 같아서 하나를 고르기가 힘드네요. 그냥 하준 씨 먹는 거랑 같은 거로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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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래요? 그럼 제가 알아서 시키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주문을 하는데, 그건 또 어찌나 멋진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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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이 돌아가고, 다시 창밖을 향하려던 수아의 시선이 창을 넘지 못하고 멈췄다.

창 안쪽에 비친 하준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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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얼굴로 사귀자고 고백해오면 당장이라도 넘어갈 수밖에 없겠지?’

수아는 이미 뒷전인 야경을 핑계 삼아 창문에 비친 하준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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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하겠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직원이 테이블 위에 음식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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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수아는 말과 동시에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스테이크 조각은 오물오물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사르르 녹더니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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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런 게 진정한 스테이크구나. 그동안 내가 먹었던 건 그냥 고깃덩이였네.’

새삼 깨달으며 두 번째 조각을 먹으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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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괜찮습니까? 입에 맞아요?”

검색창의 추천으로 예약을 하긴 했지만, 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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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엄청 맛있어요. 눈 감고 먹으면 고기인 줄도 모를 만큼 완전 부드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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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고기로 준비하길 잘했네요. 수아 씨가 소고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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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금 칼 들고 있습니다.”

수아는 지난밤 일을 언급하려는 하준을 향해 손에 들린 나이프를 들어 보였다.

눈치는 빨라서 자기 놀리는 말인 줄은 금방도 알아챈다.

아. 진짜. 하루 종일 놀리고 싶게 만드네.

예상했던 수아의 반응에 하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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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안합니다. 실언했어요. 어서 맛있게 드시죠.”

힐끔 수아의 눈치를 보며 하준도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를 하면서 오늘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메뉴의 식사를 했는지에 대한 소소한 대화들이 오고 갔다.

특별할 것 없는 사소한 대화일 뿐이었지만, 어느새 두 사람을 감싸는 공기는 핑크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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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짜 너무 맛있었어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아가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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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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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부른데, 소화 시킬 겸 산책 어때요?”

자동차를 향해 돌아갔던 하준의 몸이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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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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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위에서 보니까 여기 산책로가 잘 되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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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럴까요?”

하준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져 망설였던 말을 수아가 먼저 꺼내주니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수아와 하준은 산책로 입구로 들어섰다.

헐…….

몇 걸음 채 걷지도 않았는데, 신세계를 발견한 듯 수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 시간의 공원이란 게 원래 이런 분위기인 건가?

공원은 그야말로 커플들의 모임과도 같았다.

서로 손을 잡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저기에서 쪽쪽거리는 소리는 왜 이리도 잘 들리는 건지.

수아는 긴장되는 마음에 마른침을 연신 삼켜대다 혹시 나만 이런 건가 싶어 고개를 들어 하준을 바라보는데.

하준은 어느 커플들에게도 시선을 빼앗기지 않은 채 본연의 목적인 ‘산책’ 하나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뭐지? 이 사람은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부럽거나, 나도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시작하자는 말도 하지 않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수아의 눈썹이 저도 모르는 사이 팔자로 축 처졌다.

시작하자는 말 한마디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수아는 입술 끝에 걸린 아쉬움을 차마 내뱉지 못한 채 그저 쓴웃음만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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