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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피할 수 없는 (20/105)


20. 피할 수 없는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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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좀 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훈은 정돈되어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하준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는 흐트러진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주려는데,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하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설마 이렇게 밝혀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고많은 곳 중에서 왜 하필 현성 그룹이었을까.

하고많은 날 중에서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의미 없는 원망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어느 회사에 지원했는지 물어라도 볼걸.

하준이에 대해 나라도 미리 이야기해 줄걸.

의미 없는 후회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훈은 아무 표정 없이 눈을 감고 있는 하준을 빤히 바라보다 불을 끄고 방을 나섰다.

거실로 나온 지훈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서둘러 수아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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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이 꺼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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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이 꺼져 있어…….]

벌써 몇 번째 전화를 걸고 있는데, 여전히 수아의 휴대폰은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다은이!

번뜩 떠오른 생각에 혹시 몰라 저장해두었던 다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Rrr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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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님?]

몇 번의 통화연결음 끝에 다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지훈은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곧장 수아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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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아! 혹시 수아 집에 들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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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요?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평소와는 다른 지훈의 목소리에 다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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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나 좀 잠깐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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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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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한테 일이 좀 생겼는데. 네 도움이 필요해.”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니…….

다은은 수아에게 큰일이라도 난 건가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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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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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지금 가는 길이긴 한데. 혹시 편의점으로 와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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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다은은 서둘러 차 키를 챙겨 들고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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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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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데요?”

다은은 사무실 소파에 앉자마자 급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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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문제가 좀 생겼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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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요? 무슨 문제요?”

다은이 눈을 동그랗게 키우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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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다은이 네 역할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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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역할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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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네가 꼭 도와줘야 돼.”

지훈의 표정에서 다급함이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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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슨 일인지 얘기부터 해보세요.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다음 문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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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게…….”

지훈은 오늘 시상식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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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하준 씨가 현성 그룹 부회장이라고요?”

턱이 빠질 듯 다은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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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속인 건 아닌데. 아무래도 오해를 한 것 같아. 오해를 풀려고 해도 휴대폰 전원이 계속 꺼져 있어서…….”

수아에게 전달되지 못한 변명을 듣는 내내 다은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야 겨우 평범한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왜 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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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힘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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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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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수아는 하준 씨를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

지훈은 다은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키우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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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가 재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어느 기업 회장 아들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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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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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 남자친구 때문에 친구한테도 배신당하고, 그 집 엄마가 찾아와서 돈 봉투도 내밀고. 아무튼 그때 이후로 수아한테 재벌 집 사람들은 트라우마 그 자체예요.”

다은의 말을 모두 들은 지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저 일부러 속인 것이 아니라는 오해만 풀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준의 존재 자체가 문제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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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수아를 설득해 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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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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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아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뭐라고 말하긴 어려운데, 하준이는 다른 재벌가 사람들이랑은 달라. 그건 내가 보장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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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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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바라지 않을게. 그냥 하준이가 변명할 기회라도 좀 줘.”

한참 동안 닫혀 있던 다은의 입술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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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말은 해보겠는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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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탁 좀 할게. 와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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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만 가볼게요.”

다은은 그렇게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짊어진 채로 편의점을 나와 수아의 집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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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다은! 너 어디 갔다 왔어. 전화는 왜 또 안 받고. 나 혼자 벌써 이만큼이나 마셨잖아.”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취한 듯한 말투의 수아가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맥주 빈 캔들을 가리켰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하나.

다은은 굳은 얼굴로 수아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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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너도 마셔.”

수아가 맥주 한 캔을 내밀었고, 받아든 맥주 캔 입구를 만지작거리던 다은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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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이러는 거. 하준 씨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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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무,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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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준 씨가 현성 그룹 부회장인 거 알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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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수아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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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안게 뭐가 중요해. 알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래서?”

다은이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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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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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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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긴. 헤어져야지. 아니! 헤어지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우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수아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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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하준 씨가 사귀자는 말을 안 하는 걸까. 그동안 계속 궁금했거든? 근데. 오늘 보니까 이유가 있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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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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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수준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사귈 수 있었겠어. 그냥 조금 가지고 놀다가 버릴 생각이었겠지.”

민철이가 그랬던 것처럼.

감았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윽고 참았던 눈물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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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아. 내가 오늘 얼마나 한심했는지 알아? 시상식장에서 바로 옆에 서 있는 그 사람한테 말은커녕 얼굴 한 번을 제대로 못 쳐다봤어.”

말없이 수아의 말을 듣고 있던 다은이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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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가 너한테 눈도 마주치지 말고 말도 걸지 말라고 한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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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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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의사는 상관없이 그냥 너 스스로 겁먹고 피한 거 아니야?”

이씨.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기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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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 말이 다 맞다! 다 맞아! 아주 판관 포청천이 따로 없네.”

내심 자신의 편에서 이야기해 주길 바랐는데, 왠지 모르게 하준의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아 서운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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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같이 질질 짜면서 울어주리? 이럴 때 나라도 냉정하게 판단해야지. 이러다 좋은 사람 놓치게 생겼는데.”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수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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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거야? 그냥 다른 거 아무것도 보지 말고 하준 씨 하나만 볼 수는 없는 거야?”

다은의 말에 수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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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민철이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수준이 맞는 사람과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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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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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아. 나는 또다시 그런 상처를 받고 싶지도 않고, 다시는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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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철이 때문에 수아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다은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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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평범한 연애를 하고 싶어. 평범하게 만나서, 평범하게 데이트하고, 평범하게 사랑하는. 나한테 어울리는 그런 평범한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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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동안은 평범하지 않았어?”

그동안…….

하긴. 생각해 보면 그동안은 아주 평범했다.

소소하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잠깐이라도 보겠다며 집 앞까지 찾아와주고,

소박한 음식에도 맛있다며 해맑은 얼굴을 보여주던.

떠올리지 않으려 하는데도 하준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멈췄던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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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랑은 이야기해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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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더는 흔들리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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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변명할 기회는 줘야지. 네 트라우마 때문에 이대로 끝낸다면 하준 씨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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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아. 그렇지만 나한테도 시간이 필요해.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정리할 시간이.”

손에 들린 맥주를 만지작거리던 수아는 이내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그를 마주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까.

얼마나 지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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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오지 않았으면 했던 아침이 찾아왔다.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지 오래였지만, 소파에 들러붙은 수아의 몸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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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출근 안 할 거야? 빨리 일어나!”

다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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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안 그래도 우울한데 너는 왜 집에도 안 가고 아침부터 화를 내고 그러냐?”

말끝에 수아의 눈썹 끝이 축 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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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러고 있을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어떻게 집에 가냐? 너 출근하는 거 보고 갈 거니까. 출근 안 할 거 아니면 빨리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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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은 해야지. 해야 되는데. 만약에 마주치면 어떻게 하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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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지금 미리 생각한 들 별수 있어? 직접 부딪혀봐야 알지. 너 설마 입사를 포기할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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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아니지! 내가 얼마나 어렵게 들어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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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게 한심하게 계속 앉아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 이러다 첫날부터 지각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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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저 냉정한 인간. 남의 고통 따위는 생각도 안 하는 차가운 냉혈한!”

수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현관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서운함이 가득 담긴 눈빛을 쏘아대는 건 잊지 않았다.

*

도살장에 끌려가듯 무거운 발걸음의 수아가 현성 그룹 본사 건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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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마주치지 마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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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얏!”

혹시나 하준과 마주칠까 싶어 주변을 살피다 정작 앞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이마를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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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앞을 못 봤어요. 죄송합니다.”

수아는 앞에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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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야말로 괜찮아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수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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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대리님.”

어제 인사를 나누었던 김민준 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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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제가 앞을 제대로 못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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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첫날은 원래 그렇죠. 여기저기 신기한 게 많을 테니까요.”

아니요. 신기한 게 아니라 두려운 거예요.

수아는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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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팀 찾는 거 어려울 것 같아서 마중 나온 거예요. 같이 올라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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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수아는 민준의 뒤를 따르면서도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마케팅팀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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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마케팅팀으로 출근하게 된 이수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아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첫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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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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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요.”

자신을 반겨주는 팀원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쯤. 민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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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께서는 오전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우신 상태라, 아마 이따가 돌아오시는 대로 같이 부회장님께 인사드리러 가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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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 부회장님이요?”

순간 수아의 눈이 터질 듯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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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원래 신입사원들은 출근 첫날 부회장님께 인사를 드리게 되어 있거든요. 그냥 인사만 드리고 오는 거니까 그렇게 긴장할 필요까지는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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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거였군요.”

말을 하면서도 얼굴엔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침 내내 들키지 않겠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제 발로 찾아가게 될 줄이야.

중력을 이기지 못한 수아의 눈썹과 입꼬리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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