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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이대로 같이 (52/105)


52. 이대로 같이
2022.09.27.


그의 허벅지 위에 내려앉는 순간.

순식간에 하준의 얼굴이 수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겨우 한 뼘 남짓. 서로의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 수아는 긴장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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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여기는 회사야. 신성한 회사에서 이러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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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기는. 연인 사이에 이 정도 스킨십은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은 길거리에서도 잘만하던데.’

잠깐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가던지.

결국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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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아니면 내가 또 언제 하준 씨 허벅지 위에 앉아보겠어. 조금만 이따가 일어나자.’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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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자고 있었어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보려 했는데, 위치가 위치인지라 내뱉는 목소리가 심장 박동을 따라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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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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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자고 있었는데 제가 온 건 어떻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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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 향기가 났으니까요.”

헐. 향기라니. 섬유유연제 광고 찍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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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금 손가락 없어질 뻔했어요.”

수아가 구부린 손가락을 내밀며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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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큰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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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단어는 앞으로 사용하지 않는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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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손가락도 너무 예뻐 보여서 큰일이라고요.”

걱정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그의 입술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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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문에 어제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한 거죠?”

수아는 연신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하준의 손길이 민망해 급히 화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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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하면 믿어는 줄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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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당연히 안 믿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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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묻기는 왜 묻습니까?”

당연히 안 믿는다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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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확인을 위한 질문이었어요.”

그저 확인차 물어본 거라니. 하준은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조용히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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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졸지 말고 잠깐이라도 소파에 누워서 자는 게 어때요?”

수아가 하준의 광대뼈를 콕 찍으며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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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크서클이 광대를 타고 흐르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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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요.”

회사 일로 몇 날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는데 고작 하룻밤 잠을 설친 것으로 다크서클이 생겼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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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수아 씨 괜찮은 거 확인하고 긴장이 풀어져서 잠깐 졸음이 왔던 것 같은데 이제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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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기는요. 아직도 눈에는 피곤이 가득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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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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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박 비서님 말고는 들어올 사람도 없는데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눈 좀 붙여요.”

수아는 소파를 향해 눈짓하며 하준의 허벅지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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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요. 빨리.”

하준은 쏟아지는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소파에 앉아서도 소심한 반항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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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괜찮다니까요. 겨우 하룻밤 차에서 잔 거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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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문인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고요.”

하준의 말을 가로챈 수아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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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도 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말 좀 듣죠.”

그를 눕히려 수아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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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 갑자기 이러면…….”

순간 하준의 입술은 스르륵 벌어졌고, 동시에 수아의 동공에는 지진이 일어났다.

이런 젠장. 하준을 눕히려던 힘에 제 몸도 같이 끌려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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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그러니까.”

수아는 제 밑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이 당황스러워 일어나지도 못한 채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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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서 어떻게 잠을 자라는 겁니까.”

하준은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말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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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서둘러 일어나려는데 하준에게 손목이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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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든 아니든 저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하준은 부드럽게 손목을 당겨 수아를 제 옆에 눕혔다.

금방 벗어나려 할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수아는 얼굴만 붉힐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제 품에 안긴 수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하준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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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대로 같이 자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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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요?”

수아가 눈을 크게 키우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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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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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하는 거 아닌데요?”

그의 말처럼 마주친 눈빛이 진지했다.

장난이 아니면 뭔데? 같이 자자는 게 무슨 뜻인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수아의 귓가로 낮게 가라앉은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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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는 이렇게 넓고…….”

뱉어낸 목소리가 느려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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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외로우니까요.”

눈을 감고 뜨는 속도가 느려졌다.

아. 수아의 입이 스르륵 벌어졌다.

달라진 건 단지 속도 하나뿐인데 주변을 감싸는 공기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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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외로운데…….”

깜박깜박. 원하는 바가 있다는 듯 하준이 눈을 반복적으로 깜박거렸다.

그래. 까짓거 같이 잡시다.

끈적이는 그의 목소리에 순간 그렇게 말할 뻔했다.

안 돼. 정신 차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수아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이내 눈가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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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매일 혼자 있었으면서 새삼 뭐가 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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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왜 그러지? 어제 잠을 설쳐서 그런가?”

헐. 괜찮다더니. 그걸 그렇게 써먹는다고? 어이가 없다며 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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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쪽 소파에 앉아서 하준 씨 자는 거 봐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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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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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러면 불편해서 어떻게 잠을 자려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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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몸보다 마음이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몸은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마음은 분명 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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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아는 더 이상의 거절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그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길 마음이 없는 걸지도.

이렇게 달콤한 목소리로 내가 필요하다는데 이걸 거절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수아는 그의 품에 고개를 묻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불규칙하던 그의 숨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아마 잠이 든 것이리라.

수아는 고개를 살짝 들어 하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

존재만으로 불안함을 안겨주다가도 말 한마디로 그 모든 것을 거둬가 주는 사람.

이런 사람과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니. 그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마치 꿈인 듯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수아는 좀 더 하준을 바라보다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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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속삭이듯 전한 뒤 발소리를 죽이며 부회장실을 나섰다.

박 비서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돌아서던 그때. 어느새 올라온 지수와 눈이 마주쳤다.

또 너냐. 반갑지도 않은 얼굴은 왜 자꾸 마주치는 건지.

수아가 미간을 구기자 마주 선 지수 또한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왔다.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 더는 과거에 얽매여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수아는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지수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코너를 돌아 수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수는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더 기다리기 싫었던 걸까. 지수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박 비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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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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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하준 오빠 있죠? 하준 오빠 만나려고요.”

오빠라니. 순간 박 비서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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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님께서는 별도의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연락을 주시고 다시 방문하시죠.”

박 비서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반박할 수 없게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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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 씨가 부회장실에서 나오는 걸 봤는데요?”

쟤는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야?

지수가 미간을 좁히며 따지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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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저 부회장님의 지시를 전달할 뿐입니다. 그만 돌아가 주시죠.”

말을 마친 박 비서가 시선을 거두며 자리에 앉았다.

더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지수는 말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박 비서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박 비서는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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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비서 따위가 건방지게. 여기가 우리 회사였으면 당신은 지금 바로 해고야.’

지수는 두고 보자며 이를 악문 채로 발길을 돌렸다.

*

부회장실을 나온 수아는 멍하니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지수는 여기에 왜 온 걸까. 오빠라고 부를 정도면 많이 친하다는 뜻이겠지. 가끔은 단둘이 만나기도 하는 걸까.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물음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갈 때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수아의 시선이 또다시 허공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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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힙니다.]

탁! 엘리베이터 문이 거의 닫힐 때쯤 손 하나가 불쑥 들어오더니 문이 다시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모습을 확인한 수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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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 씨. 잠깐 얘기 좀 하죠.”

하루에 두 번은 좀 아니지 않나?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는 말은 대체 어디로 들은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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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할 말 없는데요. 문 좀 놔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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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제가 있어서요. 잠깐이면 됩니다.”

표정을 보니 자신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까지 저러고 있을 작정인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빨리 얘기하고 끝내는 게 낫겠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확실하게 말해야겠어.

결국 수아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근처 회의실로 장소를 옮겼다.

회의실 문이 닫히고 기다렸다는 듯 지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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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하준 오빠 방에서 나와? 네까짓 게 왜 하준 오빠랑 단둘이 만났느냐고!”

이게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수아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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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까짓 게라고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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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랬다. 왜? 너 같이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개 사원이 하준 오빠랑 단둘이 만날 일이 뭐가 있냐고!”

하찮고 보잘것없어? 하아. 인내심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수아는 들썩이는 속을 애써 내리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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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내가 너의 물음에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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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는 말해야 해. 왜냐하면 나는 그걸 알아야 할 이유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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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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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유.”

도대체 무슨 이유이길래 저렇게 당당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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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 잘난 이유가 뭔지 들어나 보자.”

네가 또 얼마나 뻔뻔스럽고 가증스러운 말을 뱉어낼지. 아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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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준 오빠를 좋아하니까. 이제 고백도 할 계획이고.”

응? 내가 잘못 들었나?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뭘 한다고?

지진이 일어난 듯 순식간에 수아의 동공이 요동쳤고, 손잡이를 붙잡은 손도 경련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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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빠를 좋아하니까.]

순간 유나가 지훈에게 했던 고백이 떠올랐다.

분명 같은 말인데. 그의 이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클 수 있는 건가.

그저 아름답게만 들리던 고백의 말이 순식간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고, 그 칼날에 온몸이 베인 듯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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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면 네가 하준 오빠랑 단둘이 뭘 했는지에 대해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겠어?”

지수가 고개를 쳐들며 한쪽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하. 어쩐지 너무 굴곡 없이 행복하다 했어.

저리도 완벽한 남자를 반지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가 한심해 미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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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말을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야?”

수아가 간신히 입술을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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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설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건 아닌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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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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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 씨 때도 겪어봤잖아. 수준 차이 나는 사람 욕심냈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너 설마 벌써 잊은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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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너…….”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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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준 오빠한테 마음이 있다면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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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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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 씨를 빼앗겼던 그때처럼 또다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기 싫다면 말이야.”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꽉 다문 수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 지수의 말보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를 향한 믿음이 고작 말 몇 마디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흔들리지 않도록. 금이 가지 않도록. 깨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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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네가 부회장님을 좋아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다신 이런 일로 불러내지 마. 다시는 엮이지 말자던 내 말 명심해.”

수아는 무너지지 않으려 온몸에 힘을 주며 겨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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