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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기다리는 방법 (59/105)


59. 기다리는 방법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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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샤워를 마친 지훈이 소파에 앉았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나름의 휴식을 취하려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김지수였다.

받을까 말까. 그녀가 어떤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지 알 것 같아 지훈은 전화 받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나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에 지훈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호흡을 고른 뒤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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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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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야 지수.]

휴대폰 너머에서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술집에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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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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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얘기가 있어서 전화했어.]

입술에서 뭉개지는 말들이 그녀가 얼마나 많이 취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왜 이 시간에 다른 사람의 술주정을 받아주고 있어야 하는 건지. 지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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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할 얘기 있으면 술 깨고 내일 맨정신으로 해. 너 지금 많이 취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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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 할 거야. 나는 지금 꼭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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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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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회사에서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다른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럴 수가 있어?]

역시나 지훈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왜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았냐는 투정을 부리고 싶겠지. 너는 그게 당연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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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누구의 편을 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지훈은 매정하리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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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개인적으로는 친한 동생이 맞지만, 회사에서는 협력업체 직원일 뿐이야. 너도 이제는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지.”

언제까지나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줄 수는 없기에 지금이라도 확실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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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말할 수가 있어? 그까짓 복사 그냥 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어려운 부탁한 것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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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어렵고 쉽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다는 게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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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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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속상했을 상황이란 거 이해해. 하지만 또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내 행동은 변함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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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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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우리 팀 직원한테 너의 일을 떠넘기지 않았으면 해.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운전 중이라. 그만 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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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지훈은 운전 중이라는 핑계로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외면하며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어려서부터 봐온 지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돈 많은 집에서 오냐오냐 자란 외동딸. 딱 그 수준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도우미나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떠넘기는 아이.

하준의 집에 와서도 가사도우미에게 얼마나 일을 시키던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에 지수가 참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 부분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작은 일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큰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녀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은 손에 들린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댔다.

하아. 역시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나.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며 두통이 찾아왔다.

지훈은 두통약을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선반으로 향했다. 두통약 상자 안에는 빈 껍질만 들어 있었다.

지난번에 먹은 약이 마지막이었나보다. 어쩐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은데. 편의점이라도 가서 사와야 하나.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던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왔다.

지수가 다시 걸었나. 액정으로 시선을 보냈다.

김유나였다. 지훈은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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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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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여보세요 고작 한마디로 아프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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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무슨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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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얼마나? 얼마나 아픈 건데? 약은 먹었고?]

무슨 일이냐는 그의 물음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유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언성을 높이며 쉴 새 없이 질문들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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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좀 낮춰. 머리 울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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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먹었냐고.]

유나는 재빨리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이럴 땐 말을 또 잘 듣는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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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직. 약이 다 떨어진 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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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기다려. 내가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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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긴 어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끊어졌다.

아으 정말. 오긴 어딜 온다는 건지. 온다고 해도 상대해줄 기운도 없는데.

두통은 순식간에 머리 전체로 번졌고 지훈은 잠이라도 들어볼 요량으로 소파에 누웠다.

소파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 도어록 소리가 들려왔다.

응? 벌써 왔다고?

지훈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건 하준과 유나뿐이었기에 지금 들어오는 사람은 유나일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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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 어디 있어?”

머리가 울린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집에 들어서자마자 낮춘 목소리로 연신 오빠를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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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많이 아픈 거야?”

유나는 일어나 앉으려는 지훈을 향해 빠르게 다가와 부축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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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에 있었길래 이렇게 빨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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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앞에서 전화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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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피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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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오빠한테 줄 거 있어서 오는 길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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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평소 같았으면 말을 덧붙였을 테지만 머리가 울려대는 통에 지훈은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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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뭔가가 생각났는지 유나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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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사 왔어. 약 먹고 자.”

지훈은 건네받은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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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가. 난 좀 자야겠다.”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유나가 그 뒤를 따랐다. 눈치채지 못한 지훈은 곧장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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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압해줄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지훈의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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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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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아픈데 어떻게 그냥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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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 걱정하지 말고 가. 자꾸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이번에는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유나는 침대 위로 올라와 그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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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에 좋은 지압법이래. 이것만 해주고 갈게. 응?”

안 된다고 해도 어차피 갈 생각 없잖아. 하준은 말싸움할 기운도 없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유나의 손가락이 지훈의 머리칼 사이사이를 파고들었고 천천히 지압을 시작했다.

적당한 압력과 부드러운 움직임이 진짜 어디에서 배워 오기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눈에 보이던 것들이 물에 번진 물감처럼 흐릿해졌고 이내 스르륵 눈이 감겼다.

지훈의 눈이 감기는 것을 바라보던 유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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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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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조금 뒤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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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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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응.”

잠에 빠져드는지 그의 반응이 느려지고 발음이 흐려졌다.

유나는 살며시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들썩이는 입꼬리를 내리누르며 녹음기 어플을 실행시켰다.

한편. 지수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어두운 조명이 내려앉은 바에 친구와 함께 앉아 있었다.

지수의 손에는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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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뭐라는데? 미안하대?”

지수의 통화내용이 궁금한 친구는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대답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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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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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지수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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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나한테 이런 모욕감은 줘? 이게 다 이수아 때문이야. 이수아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두고 봐!”

지수는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거칠게 내려놓고는 술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

수아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좀비 영화였다.

평소 겁이 많아 공포 영화나 좀비 영화는 보지 않던 그녀였지만 배부르게 야식을 먹은 탓에 졸음이 몰려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채널이었다.

이런 영화라도 보지 않으면 하준의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잠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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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머. 꺅!”

이불에 싸인 채로 눈만 내놓고 있는데도 뭐가 그리 무서운지 온갖 비명소리를 쏟아냈다.

그때. 드르르르륵.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불 사이로 팔만 쏙 내밀어 휴대폰을 잡고는 통화버튼을 누르는 순간 좀비 얼굴이 커다란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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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수아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오. 깜짝이야. 무슨 좀비가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냐고.

수아는 화면에서 사라진 좀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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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 휴대폰. 어디에다 떨어뜨렸지?”

바닥에 떨어뜨린 휴대폰을 찾기 위해 허리를 숙이려는데 쾅쾅쾅! 갑자기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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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무섭게 이 시간에 누구야.”

수아는 밀려드는 두려움에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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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 수아 씨! 안에 있습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들려온 건 하준의 목소리였다.

수아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가서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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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그의 이름을 부르던 수아의 목소리가 중간에 멈췄다.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와 자신을 품에 안은 하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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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하준은 품에 안은 수아를 떼어내고는 다급하게 그녀의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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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씨야말로 괜찮은 겁니까? 어디 다친 곳은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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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라니. 무슨 일이요?”

수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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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소리를 냈잖습니까.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서 얼마나 놀란 줄 압니까?”

아. 그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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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 그 비명은 말이죠.”

하준은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수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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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창피한 건 아는지 수아의 목소리가 입속에서 뭉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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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좀 뭐라고요?”

한 번에 바로 알아들으면 안 되나? 수아는 제가 얼버무린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되묻는 하준을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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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요. 좀비 영화를 보는데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수아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 손가락 끝을 따라간 곳엔 아직도 열심히 뛰고 있는 좀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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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준은 허탈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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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보다 보니까 너무 무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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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서워하는 걸 왜 혼자 보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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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야식을 많이 먹어서 자꾸 졸음이 쏟아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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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면 그냥 자면 되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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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 씨 전화 기다리기로 했잖아요.”

아. 하준은 그제야 이토록 무서워하면서도 왜 그녀가 좀비 영화를 보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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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음에는 졸리면 그냥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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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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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잔다고 문자 하나만 보내주면 그걸로 됩니다. 알겠죠? 다음부터는 버티지 말고 바로 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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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해보겠지만 지킬 자신은 없네요.”

수아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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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보다 하준 씨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더 크면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제 맘은 저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말끝에 싱긋 웃는데 그 모습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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