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진짜.”
30회차.
조회수 1만 따리.
쾅!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이제 좀 뜰 때도 되지 않았냐. 아니, 많은 것도 안 바랄 테니까 제발 읽어주기라도 하라고. 클릭이라도 좀 하라고. 댓글이라도 좀 달라고! 아카데미, 후회, 집착, 피폐, 그딴 걸 왜 좋아하는 거야!”
언제나 글에 대한 자신은 있었지만 처참한 지표가 현실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염병. 혼을 갈아 역작을 만들어내면 뭐하나.
유입이 없어 평가조차 받지 못하니 서럽기 짝이 없었다.
무지성으로 인터넷을 킨 뒤, 글 하나를 배설하기 시작했다.
[작성자 : ㅇㅇ(171. 284)]
[제목 : 이 개 같은 아카데미, 후집피 태그 없으면 읽지도 않는 거임?]
[염병! 왜 읽지를 않냐고! 왜! 찍먹이라도 해보라고! 남들은 프롤로그, 1화부터 조회수 백따리가 나오는데 난 왜 이 모양이냐고 개 같은 거!]
[ㅇㅇ(113. 234) : 꼽으면 너도 쓰셈ㅋ]
ㄴ[ㅇㅇ(171. 284) : 너도 아카데미 후피집이냐?]
ㄴ[ㅇㅇ(113. 234) : ㅇㅇ. 3화에 조회수 1만 찍음.]
ㄴ[ㅇㅇ(171. 284) : 지랄.
[ㅇㅇ(124. 112) : 트렌드 따라가는 것도 실력임. 그렇게 계속 고집 부리니까 발전이 없는 거임.]
ㄴ[ㅇㅇ(171. 284) : 어디 사냐.]
[흑화망* : 어쩔 수 없음. 지금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써야함. 후피집 아카데미는 어떻게 버무려도 무조건 평타 이상침.]
ㄴ[ㅇㅇ(171. 284) : 너 그 말 책임 지냐?]
ㄴ[흑화망* : ㅇㅇ. 지금은 네가 톨킨 빙의해서 반지의 제왕을 써도 안 됨. 장담함.]
ㄴ[ㅇㅇ(171. 284) : 내가 썼는데 만약 망하면 어떻게 할래?]
ㄴ[흑화망*) : 너네 집 멍멍이가 써도 평타는 침. 그렇게 했는데도 망하면 1년 동안 월 500씩 보내드림. 인증 가능. ㅇㅋ? 너는 잘되면 어쩔 거임.]
ㄴ[ㅇㅇ(171. 284) : ㅋㅋ그 활자폐기물 덩어리에 빙의라도 하겠음ㅇㅇ.]
ㄴ[흑화망*) : ㅇㅋ.]
댓글창에서 개소리를 여한 없이 쏟아낸 뒤, 한글을 켰다.
“그래, 어디 한 번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
자존심?
그딴 건 이제 개나 줘버릴 것이다. 어디 한 번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마. 너희들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을 넣어줄 것이다.
아카데미. 후회. 집착. 피폐. 추방.
다 쑤셔 박아주마.
그렇게 약 일주일 간 쉬지도 않고, 글을 써내려 갔고.
결국 20화 분량의 활자폐기물들이 완성됐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연재를 시작했고, 그 결과―
“미친······. 이게 된다고···?”
10회 차에 조회수 2만.
신작 랭킹 top 100에 진입했다.
-띠링!
[댓글 알림.]
왠지 모를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하꼬 작가로서 댓글은 결코 참을 수 없었다.
딸칵.
[흑화망: 약속했다.]
그 순간,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함께 나는 의식을 잃었다.
1화
눈을 떴다. 밀려오는 두통을 곱씹으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아오, 머리야. 최근 카페인을 너무 마셨….”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다.
“뭐야, 씨부럴. 여기가 어디야…?”
움직일 때마다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낡은 침대.
헌옷수거함에서 주워온 것 같은 걸레, 아니 이불.
쾨쾨한 냄새가 진동하는 방안.
눈을 씻고 봐도 이곳은 내 방이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이 뒤통수를 어루만진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 아닌가.
“미친…….”
모를 리가 없다.
이 방은 내가 쓴 소설 속 풍경 그대로였으니까.
“실화냐. 진짜.”
어이가 없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매번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일이 막상 현실이 되어 다가오니 오히려 이 상황이 더욱 담담하게 느껴졌다.
“빙의라니….”
작가라서 그런 걸까. 어쩌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내 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 이상을 초과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이 정말 내가 쓴 소설 속 세계라고?’
그 순간,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정말 소설 속에 빙의한 게 맞는다면 과연 어떤 인물로 빙의한 것일까.
길게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행동에 옮겼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하아…. 빙의해도 하필 이딴 새끼한테….”
애초에 주인공 따위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게 빙의물의 클리셰니까. 그런데 설마 그 많은 인물들 중에 이 캐릭터에 빙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당연한 것이었다. 애초에 자기 소설에 빙의될 거라는 상상을 하는 것부터가 개소리 중의 개소리다.
망상은 망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주인공이 빙의하는 소설을 쓰는 모든 작가들이 알고 보니 사실 자기가 겪은 일들을 소설로 적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소설은 소설로서 끝나야지, 그게 현실로 이루어지면 그게 무슨 소설이냐고. 예언서지.
차라리 이름 없는 변방의 엑스트라에 빙의되는 편이 백배는 나았다.
“…강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주문을 외워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시동어(始動語)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다만 이 현실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주변을 살핀 뒤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대해(大海)의 흐르는 마나여 너의 주인에게 종속되라. 강화(强化).”
곧이어 전신의 활력이 돌았다. 볼품없이 늘어져 있던 몸의 생기가 가득했다.
“진짜 미치겠네….”
밀려오는 수치심에 얼굴을 감쌌다.
이런 걸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하던가.
나 역시 뻔한 소재의 작품을 쓰고 있다는 자괴감과 반발심 때문에 이 작품의 세계관을 구상 중
‘모든 마법사들은 영창을 할 때 최소 20음절 이상을 외쳐야 한다.’라는 개떡 같은 설정을 추가했었다.
사실 영창을 하며 뭐라고 지껄이던 별 상관은 없다.
그냥 독자들 엿 먹으라고 넣어 놓은 설정이었다.
특히 오글거리면 오글거릴수록 더 확실하고, 뚜렷하게 이미지 되어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설정이었는데….
그 대사를 내 입으로 직접 말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무리 봐도 이거 나 엿 먹이려는 거지…? 일부러 이딴 인물로….”
띠링!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속대로 ‘빙의’시켜드렸습니다^^]
“…당신이지? 흑화망? 고작 그딴 댓글 때문에 날 이딴 세계로 처넣은 거야?”
[이딴 세계라뇨. 작가님께서 공들여 만드신 세계 아닙니까? 그리고 댓글을 쓰실 때도, 말을 하실 때도, 신중하게 하셨어야죠.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되는 대로 지껄였다가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거랍니다 : ) ]
히죽거리는 이모티콘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경솔하게 댓글을 남긴 건 나였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댓글 하나 잘못 남긴 걸로 자신이 쓴 소설 속에 빙의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겠는가.
허나 우선은 빠른 사과다.
상대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나 같은 미물 따위는 가볍게 빙의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초월적인 존재다.
괜히 척을 지어봤자 좋을 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는 심신미약 상태라 헛소리를 지껄였던 거 같습니다. 앞으로는 바르고 고운 말만 하며 착하게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평생 반성하며 살아갈 테니 제가 원래 있던 세계로 다시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저도 그러고는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힘들 것 같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작품의 완결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아져서요. 작가님이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으시다면 작품을 무사히 완결 내는 수밖에 없답니다. 그러니 열심히 이야기를 써주세요. 앞으로도 작가님이 만들어갈 멋진 이야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시스템 메시지는 사라졌다.
“저기요…? 잠시만요, 선생님…?”
.
.
.
“……서, 선생님?”
묵묵부답(黙黙不答).
“이 미친 새끼야-!!!”
결국 참지 못하고 욕이 튀어나왔다.
“이 엿 같은 새끼-!! 살다 보면 실수 할 수도 있잖아. 사람이 댓글 하나 잘못 썼다고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그렇게 약 5분 여간 쉴 새 없이 욕을 쏟아내고 나니 점차 이성이 돌아왔다.
“하아…. 하아…. 그래, 여기서 욕만 뱉는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 우선 이 빌어먹을 상황부터 정리해보자.”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처한 상황을 하나, 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내가 쓴 소설 속 세계이고, 이곳에서 나가려면 이야기를 무사히 끝마쳐야 한다.
그 말은 즉 소설의 종지부를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지부라······.”
잠깐.
‘나 이거 20화까지 밖에 안 썼는데···?’
순간,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관의 뼈대가 되는 설정이나 주요 인물들의 배경, 그리고 큰 사건이나 결말은 어느 정도 구상해 놨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략적으로 구상한 것일 뿐, 20화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나조차 알지 못했다.
당장 알고 있는 20화마저도 이 세계에 ‘나’라는 변수가 개입 된 순간 본래의 흐름과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즉 내가 알고 있는 ‘설정’으로만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 쓰...벌”
엿됐다.
“그럼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바라봤다.
얼굴의 반을 뒤덮고 있는 가면, 탁한 눈동자. 천천히 가면을 벗자,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한 몰골이 드러났다.
무엇인가에 그을린 것인지 녹아 흘러내린 살점은 역겨움을 넘어서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설정한 거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끔찍하군.’
다시 가면을 썼다.
용사 파티에서 보조 마법을 담당하는 마법사, 아벨 크로이.
그게 바로 나다.
보기만 해도 구토가 치밀어 오르는 외모, 음침한 성격, 말 더듬이. 금기시된 흑마술사. 마신 숭배자.
온갖 부정적인 요소는 다 박아 놓은 인물이 바로 나였다.
속성 마법은 다루지 못하지만, 보조 마법 하나만큼은 일류였기에 용사파티에 뽑히게 됐으나.
끔찍한 외모와 절망적인 사회능력으로 파티 내에서도 왕따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짝사랑하던 여인에게 경멸에 가득 찬 말을 들으며 결국에 흑화하는 인물.
즉, 이야기의 흐름상 어떻게든 죽게 되는 인물이란 것이다.
허나 더 중요한 건 내 죽음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죽든 안 죽든 어차피 이 세계에 멸망은 확정되어 있다.
똑똑.
“아벨님. 일행분들이 부르십니다.”
바로 저 놈으로 인해서.
이제 갓 상경한 시골 청년처럼 순박한 미소를 짓는 사내, 칼 데미안.
그는 용사파티에서 짐꾼을 담당하는 이였다. 나는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아벨님…? 왜 그러시나요…?”
살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해맑은 얼굴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을까?’
데미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벨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다정함과 걱정스러움이 공존하는 순박한 얼굴.
나는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했어.”
데미안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군요. 아벨님께서는 고명한 마법사이시니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영감으로 인해 항상 머릿속이 복잡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일행 분들께는 제가 잘 얘기해 놓을 테니 생각이 전부 정리되시면 편하게 내려오세요.”
문앞에 선 데미안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평소보다 말씀을 잘하시네요. 어떤 변화가 있으신 건가요? 축하드립니다.”
탁.
데미안이 방을 나가자, 다리에 힘이 풀림과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작도 못 하고 뒤질 뻔 했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확실하게 느꼈다.
내가 살의를 품음과 동시에 그 또한 나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명 내공 한 줌 없는 몸일 텐데….’
숨겨왔던 흑마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결코 이기는 모습이 그려지지가 않았다.
“엿됐다, 진짜….”
저런 놈을 대체 어떻게 죽여?
소천마(小天魔) 천악천(天惡天).
그것이 본 작품의 주인공이자 용사 파티의 짐꾼, 칼 데미안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극심한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저런 미친놈을 하필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왜 주인공이 이 세계를 끝장내는 결말로 구상했을까.
하필 주인공을 무협세계 최강의 기재(奇才)로 설정했을까.
‘그놈의 자존심! 그놈의 반발심이 뭐라고! 독창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무난하게 만들걸!’
차라리 아군이 될 수 있는 선택지라도 있다면 바짝 엎드려 발가락이라도 핥을 것이었다. 허나 이야기의 흐름상 이 시점에서 나는 그의 살생부(殺生簿) 명단에 이름 올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한들 바뀌는 건 하나 없었다.
죽기 싫다. 연애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호강시켜 드려야 한다.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내가 만든 소설 속에서 개죽음을 당할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이제야 고생 끝에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상황을 탓하기 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나갈 궁리를 해야 한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아 이야기의 결말을 바꾼다.
그러려면 우선….
저 살인귀가 용사파티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할 시간에 당장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황급히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갔다. 여관 한구석에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상석에 앉아있던 용사 라스가 이죽거렸다.
“우리 굼벵이는 또 늦네, 또 늦어. 아벨. 네가 잘~하는 보조마법으로 일찍일찍 좀 다니면 안 되냐? 맨날 방에서 거기 잡는 데만 사용하니까 늦는 거 아니야~”
‘저 새끼가?’
실제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싸가지가 없었다.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억지 미소를 지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미안. 앞으로는 일찍 다닐게.”
데미안이 미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어차피 연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라스가 혀를 찼다.
“쯧. 그놈의 보조 마법만 아니면 당장 갖다 치우는 건데…. 잠깐, 그러고 보니 너 오늘은 말 안 더듬는다? 웬일이래?”
옆에 있던 붉은 머리의 여성이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용사파티에서 화력을 담당하는 마법사 린 메이지였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래? 하여간. 저 얼간이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
성녀 리아가 거들었고,
“그래도 보조 마법은 꽤 쓸만하잖아요?”
“쓸만하기는! 속성 하나 못 다루는 머저리를 보조로 써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아야지! 안 그래, 테레사?”
기사단장 테레사는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그저 상황을 관망할 뿐이었다.
“······.”
참자, 참아.
참아야 하느니라.
지금은 우선 참아야…. 잠깐. 꼭 참아야 되나?
어차피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앞으로 있을 보상 분배를 위해 짐꾼인 데미안을 추방하기 위한 것이다.
마왕군 간부 대부분이 죽었으니 용사 파티에 승리는 사실상 확정된 상황.
쓸 만큼 써먹었으니 대충 쥐여주고 보내려는 것이었다.
“린 말이 맞지. 안 그래, 아벨? 우리가 아니었으면 넌 평생 빈민가 거지 신세였을 텐데 덕분에 명예로운 용사 파티의 일원이 됐잖아? 어서 고맙다고 해야지.”
파티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 인원은 5명.
이건 황제가 직접 정한 규칙이기에 제 아무리 용사파티라 하여도 거부할 수 없었다.
“고, 고….”
라스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뭐야, 고쳐진 줄 알았더니 다시 더듬는 거야? 그래, 그래야 우리 아벨이지. 넌 그게 잘 어울려."
내가 먼저 나간다면 당장은 데미안이 파티에서 추방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저 새끼들 입장에서도 짐꾼인 데미안보다 더 많은 분배를 해줘야 하는 내가 나가는 편이 좋을 것이고.
탁.
탁자 위에 용사 파티의 일원을 상징하는 금패를 던졌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은 니놈들 모두의 제삿날 뿐 이다.
“고맙기는 개뿔이 고맙냐, 이 무능한 새끼야. 평생 잘 못 먹고, 잘 못 살아라. 이 거지 같은 파티 나는 때려 치련다.”
라스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
그때였다. 데미안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라스의 목덜미에 젓가락을 쑤셔박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