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3화 (3/180)

3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원래 아벨이 가지고 있었던 전투의 기술과 경험이 빙의된 내 영혼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느낌이었다.

사람을 죽인 것은 처음이었으나 큰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죽어 마땅한 놈들이기도 했고,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각오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정도는 해야 이들이 믿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해야 한다..

“이곳의 관리자가 누구지.”

올빼미 가죽을 뒤집어 쓴 노인이 대답했다.

“접니다, 사도시여.”

나는 엄중하게 말했다.

“그대는 내가 어찌 사도라는 것을 알아봤지?”

“그것은….”

입이 바싹바싹 말랐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72교단.

교단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72계(階),

마신인 안드로말리우스를 숭배하는 추종자들이 모인 일종의 종교 집단이었다.

이 세계에는 수많은 마신 숭배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신도수를 보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주신을 숭배하는 이단심문관들은 제국 내에 종양처럼 퍼져 있는 이들을 색출해내기 위해 상당히 골머리를 썩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이들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어떻게든 이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동굴 안에서 보았던 시체들은 아마 인신공양(人身供養)의 흔적일 것이다.

마신을 숭배하는 이들인 만큼 사람 목숨 따위는 파리처럼 여기는 놈들이다.

만약 내가 마신의 사도 따위가 아닌 한낱 계약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저 시체들 옆에 나란히 눕게 될 게 분명했다.

‘이 늙은이가 아무래도 교주인 것 같은데….’

그의 손을 자세히 보니 커다란 뱀이 감싸고 있었다. 뱀은 안드로말리우스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이다.

“왼쪽 눈동자에 깃든 고귀한 성흔(聖痕) 때문이옵니다. 제 눈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혹 그것은 정욕의 마신께서 내리신 성흔이 아니옵니까?”

다행히도 노인의 반응은 예상했던 범위 내였다.

‘성흔이라….’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성흔 따위가 아닌 일종의 낙인이다.

흑마술을 사용하게 되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발현되는 육망성(六芒星).

내가 마신 숭배자이며, 흑마술을 사용한다고 광고하는 꼴이 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구속구에 불과했다.

불공정계약으로 인해 영혼을 저당 잡힌 시한부 노예라는 낙인.

처음 내가 이 몸에 빙의된 것을 알았을 때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유 중 하나였다.

세계 멸망은 둘째 치고 애초에 이 몸의 영혼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벌레들과 다르게 네놈은 그래도 보는 눈이 있구나. 그래, 나는 마신 ‘아스모데우스’님의 사도이다.”

물론, 나는 사도도 전령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미약한 힘을 얻는 대가로 영혼을 팔아버린 머저리에 불과했다.

노인이 나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오오, 역시 제 눈이 틀리지 않았군요. 헌데 어찌 이리 고귀하신 분께서 호위도 없이 홀로 이 누추한 곳에 행차하셨습니까?”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그 안에 가시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네놈에게 일일이 말해야 하는가?”

나의 단호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평온하게 말을 이어갔다.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이 늙은이가 원체 호기심이 많은지라 한 번 궁금한 것은 꼭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침 저희가 굉장히 중요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기도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여쭙겠습니다만, 정욕의 마신의 사도께서 저희 교단을 방문하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시간을 끌수록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갈게 분명했다. 뭐라고 둘러대야 할까.

그냥 우연히 들렸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그러면 또 꼬투리를 잡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게 뻔했다.

“…안드로말리우스님을 뵙기 위해서다.”

노인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마치 뱀이 먹잇감을 노리는 것 같은 음습한 눈빛이었다.

“안드로말리우스님을 말입니까…?”

“그래. 아스모데우스님에게 신탁을 받았다. 오늘 이곳에 의식을 통해 안드로말리우스님이 강림하실 거라는. 내 말이 틀린가?”

약간 당황한 듯한 어조로 대답하는 노인.

“마, 맞습니다. 그러나….”

노인이 무어라 더 말하려는 듯 했으나 더 이상 들어줄 생각 따위 없었다.

나는 전신의 마기를 끓어 올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아스모데우스님의 또 다른 이름은 격노의 마신이다.”

정욕과 격노의 마신, 아스모데우스.

그 위명은 지옥에서도 널리 퍼져있었다.

‘또한 서열의 구애받지 않는 몇 안 되는 마신 중 하나이기도 하지.’

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합니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들어온 쪽은 나이니 더 이상 떠들지 않겠지만 방금이 내가 하는 마지막 경고였다는 것을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꾸물거리지 말고 의식이나 시작해라.”

“이쪽으로 오시지요.”

노인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향하자 거대한 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의 산.

족히 1000명은 될 것 같은 시체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구역질이 났지만, 이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많군.”

노인은 자신들의 업적이 꽤나 자랑스러운 듯 얘기했다.

“이번 의식을 위해 공들여 준비한 제물들입니다. 숫자가 숫자인 만큼 준비 과정에서 꽤나 애를 먹었지만 이렇게 직접 목도하니 감회가 새롭군요. 이제 곧 저희들의 신, 안드로말리우스님을 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두근거림이 멈추지를 않습니다.”

광기(狂氣) 어린 눈을 보고 있자니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모시는 신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지. 이제 시작인가?”

“그렇습니다.”

제단 앞에 무릎을 꿇은 노인이 두 손을 모은 채 영문 모를 언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Andromalius noster. Salva nos de luce. M immolabantur homines. Suscipe cum gaudio eam, et pone coram servo tuo.”

주변의 공기가 요동쳤다. 노인의 뒤편에 수 백 명의 신도들이 줄지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마치 한 몸 인 것처럼 두 손을 모은 채 노인의 말을 따라했다.

처음에는 불협화음에 가까웠지만, 점차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가 되었다.

“Afferte huius mundi tenebras. Servus tuus sincerus enixe rogat.”

수백 명의 인간이 한마음, 한뜻으로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열망하고 있는 광경은 소름과 불쾌함을 넘어, 경건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다만 저 거룩한 신앙의 대상이 1000명의 인간을 제물로 받아먹는 마신이라는 것이고, 그 신을 위해서라면 동족의 목숨 따위는 가차 없이 앗아가는 광신도들이 바로 저들이라는 것.

노인이 고개를 들며 크게 소리쳤다. 그의 눈가에는 붉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Veni huc!”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센 바람이 불었다. 촛불들이 꺼지며 주변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였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이곳에 강림하고 있다는 것을.

뇌가 경종을 울리며,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주변 공기 또한 파르르 떨리는 것이, 마치 꼭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본체가 소환됐을 리는 없을 테고, 이 정도면 화신체가 소환된 건가. 상상 그 이상이군.’

서열 72위라 하여도 무려 마신(魔神)이다. 작은 왕국 정도는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재앙(災殃), 그 자체인 것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 남성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신기하게도 주변은 온통 어둠으로 뒤덮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남성의 형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또렷해져 갔다.

한 쌍의 뿔, 팔에 매달려있는 커다란 뱀.

―안드로말리우스가 분명했다.

-누가 나를 불렀지?

마치 뇌 속에서 중얼거리는 것 같은 감각.

인간의 성대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괴한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던 노인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아…! 안드로말리우스 님…. 저입니다. 제가….”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으드득. 으드득.

….

…….

‘미, 미친 새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맛없군.

안드로말리우스가 노인을 집어삼켰다.

이 충격적인 광경에도 다른 놈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 새끼들 설마 지금 이걸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안드로말리우스는 앞줄부터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으드득. 으드득.

끔찍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났더니 상당히 허기가 지는군.

그렇게 약 50여 명 정도를 먹고 나서야 식사는 끝이 났다.

안드로말리우스는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신도를 향해 말했다.

-흐음. 이제부터는 네가 이곳을 맡아라.

“…제, 제가 말입니까?”

콰직.

그 옆에 있는 신도에게 말했다.

-네가 맡아라.

“예, 맡겨만 주십시오.”

그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재미있는 놈이 섞여있군.

딱!

손가락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바뀌었다.

‘여기는….’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던 안드로말리우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앉아라.”

나는 군말 없이 반대쪽 의자에 앉았다. 그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지고하신 분의 흔적과 아스모데우스님의 낙인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라…. 네 정체가 무엇이냐?”

“…저는 아스모데우스님의 사도입니다.”

“사도…? 그분께서는 인간계에 사도를 들이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예외적으로 제가 선택받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인간을 사도로 선택했단 말이지…. 재미있구나. 그래,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안드로말리우스가 흥미로운 기색으로 말했다.

“어디 한 번 얘기해 보거라.”

“안드로말리우스님의 권능으로 마신서 ‘레메게톤’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신서(魔神書) 레메게톤(Lemegeton).

최초의 초월자, 살몬이 마신들과의 계약을 위해 만든 성물(聖物)로서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마신들을 구속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었다.

허나 내가 구상한 스토리에서 마신서 레메게톤은 등장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세계관의 뼈대를 위한 기초 설정으로 짠 것이기에 그것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나 또한 알 겨를이 없었다.

‘…하긴 내가 직접 레메게톤을 찾게 될 거라고 누군들 알았겠냐만.’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가는?”

“아스모데우스님의 72군단중 3군단을 드리겠습니다.”

“너 따위가 그런 조건을 내걸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것이냐?”

“예, 아스모데우스님도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허락 따위는 받은 적 없었다.

걸리면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좋다. 지금 바로 찾아주지.”

탐지와 변신의 마신.

그것이 그의 이명이었다.

“…이상하군.”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대략적인 위치는 알아냈다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구나.”

마신의 권능으로도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없다니.

“위치가 어디입니까?”

“살로몬 아카데미에 있더군.”

이제야 조금 납득이 갔다. 그곳에 있다면, 그의 권능으로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세계의 주 무대가 되는 장소이니만큼 온갖 종류의 제약이 걸려있을 터.

“곤란하군요. 제가 알기로 살로몬 아카데미는 방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넓은 곳에서 대체 어찌 찾아야 할지….”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그가 물어왔다.

“뭘 원하지?”

“안드로말리우스님의 또 다른 권능인 ‘변신’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한낱 인간이 가지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배짱이 넘치는 구나.”

그의 입장에서는 개미와도 다를 것 없는 놈이 설치는 꼴일 것이다.

그의 손에 있던 뱀이 기어와 내 목덜미를 물었다. 그곳에 그의 상징인 뱀의 문양이 새겨졌다.

“나와의 계약이 유효한 동안 너는 나의 사도다. 만약 약조를 지키지 않는다면 네 영혼은 내게 종속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저 1회 사용을 원했을 뿐인데, 얼떨결에 사도가 되어 권능까지 얻게 되었다.

의도치 않은 수확이었다. 어차피 내 영혼은 아스모데우스에게 종속되어 있었으니 공짜로 얻은 셈이었다.

‘가져가는 건 네 맘이지만 주인은 따로 있다. 이놈아.’

“그럼 가봐라.”

“저 혹시….”

“무엇이냐.”

“살로몬 아카데미로 통하는 포탈 좀 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정녕 죽고 싶은가?”

“명색이 사도 아닙니까. 도와주십쇼.”

잠시 고민하던 안드로말리우스가 눈앞에 포탈을 만들어주었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라.”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포탈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나는 돌연 정지했다.

잊고 온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왜 그러고 있지?”

“저…….”

슬슬 짜증이 난 듯한 안드로말리우스.

“또 무엇이냐.”

나는 최대한 살가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창고에서 필요한 것 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뚝, 무엇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은 내 착각일까.

“사도는 취소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을 죽여야….”

“하하, 농담, 농담입니다!”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각오를 다잡았다.

'우선은 역시…."

아카데미 입학.

그것이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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