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4화 (4/180)

4화

한편, 마왕성 인근 숲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용사파티.

일행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말없이 서로를 노려다 봤다.

타닥. 타닥.

불의 정령이 춤이라도 추는 듯 불씨가 사방에 휘날렸으나 분위기는 한없이 냉랭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파티의 리더인 용사 라스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린, 너 대체 뭐가 문제야?”

린이 공격적으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난 그녀였다.

“뭐가?”

“몰라서 묻는 거야? 마법의 위력도 떨어지고, 타이밍도 안 맞고 엉망이잖아!”

“그러는 넌 뭐 잘하고 있는 줄 알아? 파티의 리더라는 놈이 할 줄 아는 게 뭔데? 전술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무투기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솔직히 말해서 너 「가호」빨 아니야? 신들의 가호가 없으면 그냥 무능한 일반인이랑 다를 바가 없는 거 같은데? 내 말 틀려?”

발끈한 라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좋게 말하니까 내가 우습냐?”

린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매일 저 음탕한 수녀 품에 파묻혀 헤롱거리는 게 전부인 무능한 용사가 너 같으면 안 우스울까?”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성녀 리아가 발끈했다.

“으, 음탕이요? 참나! 그런 걸로 따지면 그쪽도 만만치 않지 않나요? 매일 밤마다 무슨짓을 하는지 알고 있거든요?”

“이 년이 어디서 개소리를…!”

점차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온갖 욕설들과 함께 고성이 오갔다.

기사단장 테레사는 깊은 한숨을 쉬며 이 사태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 말싸움을 하던 용사 일행은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지쳐 잠이 들었다.

이것이 최근 그들의 일상이었다.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은 결국 파티의 보조 마법사인 아벨 크로이의 탈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있을 당시 일행들은 딱히 체감을 못 했겠지만, 그의 보조 마법은 파티 전력의 30% 이상을 상승시켜줄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몸의 일부분처럼 당연시 여기던 버프들이 사라지니 예전만큼 힘을 못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것들은 본인의 힘이 아니었기에 당연한 이치였다.

괜히 그가 용사 파티에 뽑힌 것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전술이라던가, 마족들의 생리라던가, 혹은 그 외에 자잘한 정보들도 많이 알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일행들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주어 의도치 않게 파티의 중화제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파티에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밤이 깊었다. 일행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위치한 허름한 침낭은 비어있었다.

침낭의 주인은 달빛을 등불 삼아 가부좌를 튼 채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일행들이 자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죽일까?’

그의 이름은 칼 데미안. 용사 파티에 짐꾼이며―

‘아니.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래, 아직은 말이지….’

―무림 역사상 최초로 중원을 통일한 천마신교(天魔新敎)의 계승자, 소천마(小天魔). 천악천(天惡天)이었다.

그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벨 크로이, 재미있는 놈이란 말이지.’

천악천은 결코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어쩐지 자신의 목표를 따라가다 보면 다시 한 번 그와 마주치게 될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는 내 손으로 죽여주마.’

물론,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 * *

“아, 왜 이렇게 오한이 들지.”

안드로말리우스 덕분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제국의 수도 루살렘에 도착했다.

인간을 단백질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좋은 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내가 아스모데우스의 사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진작 머리통이 뜯겨져 나갔겠지.'

그런 상상을 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많은 이득을 보았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그가 내 요구를 전부 들어준 덕분에 교단에서 돈과 아이템들을 왕창 뜯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쓸만한 것은 바로 이 인장이었다.

내 새로운 신분을 보장해줄 몰락한 백작 가문 지그하르트의 인장.

[지그하르트]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라 했더니, 내가 직접 만든 설정의 가문 중 하나였다.

솔직히 말하면 크게 공을 들여 만든 설정은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의 전개를 위하여 급하게 만든 느낌이었다.

과거에는 위세를 떨치던 변방의 귀족 가문이 몰락하여 마신을 숭배하는 교단과 연루가 되어 있다 정도로만 대충 생각하고 설정한 것이었는데….

이 지그하르트 가문을 72교단에서 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초대 가주가 안드로말리우스를 극도로 숭배하는 광신도였다나 뭐라나. 초대 가주에 대한 설정은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지만, 덕분에 나는 몰락한 가문의 후계자라는 위장신분으로 당당히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안 그래도 어떤 신분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가야 할지 난감했던 찰나, 적당히 눈에 띄지 않는 배경을 얻게 되었다.

‘시골 변방 몰락한 가문의 후계자라니. 설정만 보면 내 쪽이 주인공 같은데 말이지.’

거기에 더해 안드로말리우스의 사도가 되었다. 이 또한 엄청난 수확이었다.

비록 임시직이기는 하나 ‘사도’는 교단의 교주와도 맞먹는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창고를 뒤지며 알게 된 정보에 의하면 아카데미 내에도 신분을 위장한 교인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을 잘만 이용한다면 암암리에 세력을 키우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거기! 비키십쇼!”

길 한복판에서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그대로 나자빠졌다.

보조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나는 행사장 인형과 다름없는 내구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평소에도 신체 강화를 유지하고 있지 않으면 돌연사하기 십상이겠군.’

덕분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내게 들이박은 소년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괜찮습니다.”

소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예. 뭐, 괜찮습니다.”

소년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내 손에 쥐어준 채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혹시라도 어디 아프신 곳이 있다면 이걸로 치료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손을 확인해보니 금화 1개가 놓아져 있었다.

길가다 부딪친 행인의 치료비라는 명목으로 금화 1개를 줄 정도면 상당한 부자인 게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낯이 익었다. 남자치고는 호리호리한 몸매와 얇은 목소리….

잠깐만.

‘설마….’

급하게 뒤를 돌아봤지만, 소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착각인가…?’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멀지 않은 시일 내에 다시금 조우할 게 분명했다.

‘우선은 좀 쉬자.’

어차피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내일이었다.

돌이켜보니 이 세계에 빙의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었다.

누적된 피로로 인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근처 여관으로 향했다.

계산을 마친 뒤 방으로 향한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졌다.

비록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이불과 낡아빠진 침대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최고의 잠자리였다.

‘반드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졸음을 거부하지 않고,

‘살아남는다.’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

.

.

―쾅!

아이고, 어머니!

…깜짝 놀랐네.

“왜 읽어주지를 않는 거야. 왜…. 뭐가 문제지? 제목? 전개? 소재? 아니면 전부 다?”

뭐야, 저 새끼 왜 저래.

“…읽어줘. 제발. 나도 뜨고 싶어. 나도 할 수 있다고….”

격분을 넘어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울부짖는 남성.

자세히 보니 나였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에휴, 수염이라도 좀 깎지…. 아주 거지새끼가 따로 없네.’

과거의 나라는 것을 깨닫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조한 작품 성적으로 인해 자신을 비관하며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시기였다.

“재미있네.”

…뭐야?

책상에 앉아있던 ‘나’에게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라움도 잠시 방금까지 있던 거지꼴의 사내는 온데간데없고, 안경을 낀 지적인 외모의 여성이 책상에 앉아있었다.

“웹소설이라….”

흰색 셔츠에 쫙 달라붙는 검정 스커트. 몸매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복장이었다.

마치 내가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이상적인 오피스 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 했다.

‘역시 꿈은 꿈인가…? 그래도 이런 꿈이라면 나쁘지 않을 지도….’

여인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지적인 분위기 속에서 은은하게 피어나는 색기가 꿈인데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된 건가….”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너, 아벨 크로이가 아니구나?”

심장이 멎는 듯 했다.

탁!

여인이 손가락을 부딪치자, 책상이 사라지고 주변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였다.

신기하게도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감각이 느껴졌다. 이제는 더 이상 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자 두려움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내가 무섭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냉랭한 음성만이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저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 뇌리에 박혀진 그녀의 이름.

‘…아스모데우스.’

그녀의 이름을 팔고 다닌 이상 언젠가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조우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녀가 몸을 돌리자 여성의 모습이 아닌 눈이 세 개 달린 노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녹슨 쇳덩어리를 긁는 듯한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이렇게 무서워하면서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하였는가?”

이번에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까마귀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더라고.”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무어라 대답을 하고 싶었으나 이미 통제권을 상실한 육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 목소리를 내려고 해 쉴 새 없이 떨리는 입에서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초월한 불가해(不可解)의 존재.

그런 존재를 목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실감이 났다.

“나는 아직 네게 궁금한 게 많은데 말이지. 이런 상태라면 대화를 할 수가 없겠네.”

아스모데우스의 형상이 아까 전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방금까지 떨리던 몸이 귀신 같이 멈췄다.

“자, 이제 대화를 나눠볼까. 너는 누구지?”

단순한 질문 따위가 아니었다. 본질을 묻고 있는 것이다.

아까 전 혼잣말로 유추해 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제법 똑똑하네. 껍데기만 같을 뿐 그 속은 다르니까… 아벨 크로이는 아니고, 내가 너를 뭐라 불어야 될까?”

거기에 마음까지 읽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내가 소름이 끼친 건 다른 이유였다.

“음…. 창조주님?”

“…….”

갑자기 실소를 터트리는 아스모데우스.

“꺄하하하하하!”

등줄기의 소름이 돋았다.

"너무 재미있다! 그치! 안 그래?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갇힌 창조주라니. 근데 아무런 힘도 없어. 이런 상황을 당신이 살던 세계에서는 뭐라 하더라? 아!「엿됐다」 라고 하던가? 꺄하하하하하-!”

꿈. 웹소설. 창조주.

이 키워드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봤구나. 내가 쓴 글을.’

뚝, 하고 웃음이 멎었다. 그녀의 눈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그 놈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결코 그런 짓을 할 얘가 아니었거든.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창조주님?”

“…나도 모른다. 갑자기 눈을 떠보니까 이 빌어먹을 몸뚱이에 빙의해있었다.”

“모른다라…. 그래, 좋아. 뭐 그럴 수 있다고 쳐. 그러면 이 세계는 정말 당신이 만든 게 맞아?”

“너도 읽어봤으니 알겠지만, 이 세계는 내가 쓴 소설이 맞다. 그렇지만 내가 만든 건 아니지. 나는 아무런 힘도 뭣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이게 진실이었으니까.

나는 그냥 저조한 성적에 한탄하며 글을 쓰던 작가 지망생 나부랭이 일 뿐이다.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무엇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듯 했다. 그녀 또한 신이고, 이 세계에는 그녀 이외에도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다.

“…그럼 이 세계의 끝에 나는 어떻게 되지?”

“죽는다.”

자신의 죽음을 확정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별로 당황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그렇구나. 결국, 이 몸도 죽는 건가….”

“내가 살려주겠다.”

“응? 당신이 어떻게? 이 세계를 직접 구상하고,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잖아?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걸~?”

“…나라면 할 수 있다. 내가 너를 지옥의 왕으로 만들어주마. 나와 거래하자, 아스모데우스.”

그녀의 얼굴에 흥미로운 기색이 역력했다. 선홍빛 혀를 내밀어 입맛을 다시던 그녀가 되물었다.

“내가 누군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이것은 경고였다. 감히 너 따위가 자신에게 거래를 청하느냐는.

“그렇기에 이런 거래를 하자는 것이다. 너에게는 결코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지. 어차피 밑져야 본 전 아닌가? 이대로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던가, 아니면 미래를 바꾸어 네가 그토록 원하던 지옥의 왕의 자리에 오르던가.”

‘지옥의 왕’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그녀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아스모데우스. 너도 복수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 창조주가 맞네.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조건은?”

“이 말도 안 되는 불공정 계약을 해지하고….”

“불공정 계약이라니! 이게 업계 표준이거든?”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자, 그녀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래. 뭐, 정식 사도로 임명해달라고?”

“아니, 내 사역마가 되어줬으면 한다.”

“뭐―?”

그녀의 전신에서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마기가 일렁거렸다.

나는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오해 하지 마. 어디까지나 동등한 위치에서의 계약이니까. 어차피 사도로 임명된다고 해도 네가 지닌 원대한 힘의 일부분 밖에 사용하지 못하잖아? 내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형태의 계약을 할 수 밖에 없다.”

“재미있네. 근데 내가 사역마가 된다고 해도, 어차피 네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나?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사도로 임명한 건 단 한 명 뿐 이야. 그것도 인간이 아닌 마신이지. 그런데 사도도 아니고, 한낱 인간을 어떻게….”

“강대한 마신인 너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너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힘을 다루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신서 레메게톤을 얻을 계획이니까. 맹세하지. 1년. 그 안에 네가 인정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내 영혼을 가져가도 좋다.”

그녀의 동공이 쭉 찢어졌다.

“…레메게톤이라. 확실한 거야?”

“확실하다.”

“좋아. 창조자의 영혼이라… 짜릿하네, 우선….”

왼쪽 눈동자에서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전 계약은 해지했고… 이리로 와.”

그녀에게 다가가자, 갑자기 목덜미를 안으며 입을 맞췄다.

“읍!”

-가만히 있어.

강제로 입을 벌린 뒤, 혀를 깨물었다. 꿈인데도 불구하고, 지랄 맞게 생생한 통증에 몸부림쳤다.

염병, 이 정도면 잘린 거 아니야?

“임시계약이야. 그 정도면 원하는 만큼은 사용할 수 있을 거야. 나머지는 네가 레메게톤을 찾으면 그때 정식으로 하자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이 존재했다.

“성흔은 어디에 새겨져 있지?”

그녀의 손가락이 내 얼굴을 가리켰다.

“…얼굴이라고?”

그녀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손에 거울을 만들어 내게 보여주었다.

“…미친.”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성흔은 이마에 새겨져 있었다.

이 정도면 ‘내가 마신 숭배자요’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꼴이었다.

“아스모데우스! 이건 아니야. 빨리 바꿔….”

“그럼 다음에 봅시다, 창조주님.”

툭.

“…아. 무슨. 해X포터냐고.”

마지막 말을 끝으로 공간이 무너지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아스모데우스와의 격렬한 대화로 인해 늦잠을 자버린 나는 황급히 여관을 나섰다.

물론, 안드로말리우스의 권능을 이용해 얼굴을 바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 권능을 다루는 것이 미숙한 탓인지, 뱀 대가리가 되는 시행착오를 여러 차례 겪기는 했지만,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흑단처럼 짙은 흑발의 자수정을 연상케 하는 눈동자.

철저히 내 취향이 반영된 외모였다. 다만 본래 있던 흉터를 완전히 가리는 것은 무리였고, 신체 다른 부위로 옮기는 것이 한계였다.

앞으로 있을 아카데미 생활을 위해 얼굴을 바꾸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너무 눈에 띄려나? 뭐, 어때. 쥐 죽은 듯이 살면 되겠지.’

어제의 교훈을 되새기며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전신의 강화 마법을 3겹 이상 둘렀다.

덕분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생선을 훔친 고양이 마냥 지붕 위를 뛰어다녀야만 했다.

“크긴 드럽게 크네.”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라는 설정답게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정문 앞에 선 나는 입학 시험 신청을 하기 위해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입학 시험 신청하러 왔습니다.”

감독관은 무신경한 얼굴로 나를 훑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큰둥하게 말했다.

“평민인가, 귀족인가.”

“…일단은 귀족입니다.”

“추천서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듣자, 감독관의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귀찮다는 얼굴로 얘기하고 있었다.

“가문과 이름.”

“자일 지그하르트 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감독관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지그하르……. 잠깐.”

“왜 그러십니까?”

파랗게 질린 그가 이제는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그 가, 가, 가문의 이, 인장 좀 보여줄 수 있겠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품에 있던 인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지, 지, 지그하르트! 정말 지그하르트라고!?”

뭐야, 왜 이래. 이 아저씨.

어째서인지 반응이 이상했다.

그러더니 이내 환희에 찬 얼굴로 목청 좋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영웅이다! 영웅 가문의 후예가 돌아왔다!”

…네?

……영웅이요?

“제국의 영웅, 지그하르트의 후손이 돌아왔다!”

이게 뭔 미친 소리야.

저 영웅이 아니라 마신 숭배자라니까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