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당연하게도 내가 무투(武鬪)의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그저 보조마법의 산물에 불과하다.
지금 내 전신에는 4개의 복합술식으로 이루어진 다중강화마법 총 3겹이 중첩되어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토록 무지막지한 신체능력을 지니게 된 이유였다.
본래의 허약한 몸은 전속력으로 5분만 뛰어도 미친 듯이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처참하다.
근력. 동체시력. 반응속도. 내구도.
이외에도 다양한 부분에서 강화되어 있기에 지금의 내 몸은 ‘초인(超人)’을 흉내 낼 정도는 되는 것이다.
허나 말 그대로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했다.
교관이나 기사 급의 진정한 초인들의 육체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궤를 달리했다.
“수험번호 444번…. 승!”
나는 파죽지세(破竹之勢)로 3연승을 채웠다.
두 번째, 세 번째 상대 전부 마법사를 지망하는 이들이었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지명권을 사용하겠는가? 아니면 여기서 멈추겠는가.”
나를 제외하고도 몇 개의 경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치러지고 있었지만 유독 나를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다.
내 주변에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은 탓이다.
단 시간에 너무 큰 주목을 받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프레이 또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아직 근심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름의 응원일 것이다. 밝은 소녀였다.
그 옆에는 샬럿 메이지가 특유의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는데….
지 언니랑 똑 닮은 얼굴이었다.
“지명권을 사용하겠습니다.”
“상대는?”
“수험번호 3번. 사딘 룬델입니다.”
내 발언이 미치는 여파는 상당했다.
유년기 때부터 천재로 이름을 떨친 유명인이자, 이번 아카데미 응시생들 중 수석에 가장 가까운 인물답게 순식간에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몰락 귀족 따위가 감히 사딘 공자님을 지목해? 주제를 모르고 설쳐도 유분수지.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리델 공자. 그렇게 분개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잘 된 일 아니겠습니까? 적성검사 때부터 가문의 명성만 믿고 설치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 참에 그게 다 거품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 아닙니까?”
“하긴. 제 따위가 사딘 공자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가면 다행이겠지.”
“그렇습니다. 사딘 공자님의 실력은 여기 있는 저희가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황실을 제외하고, 제국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니고 있는 룬델 공작가인만큼 그 추종자들 또한 상당수였다.
덕분에 나는 그를 따르는 고위 귀족들의 눈 밖에 난 듯 했다.
대부분은 사딘의 승리를 점치는 듯 했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 또한 존재했다.
“…그래도 전설 속 영웅 가문이잖아. 전란의 위기에서 제국을 구한 영웅의 핏줄인데 혹시 모르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사딘 공자님은 벌써 5서클의 경지에 오른 기사인걸. 어렵지 않을까?”
“희대의 천재 대 영웅의 일족이라…. 나는 지그하르트 쪽에 걸겠어!”
“그, 그럼…. 나도!”
나를 응원하는 이들은 대부분 평민 출신인 것 같았다.
아마도 신분제가 존재하는 세상이니만큼 귀족에게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이들이 내 승리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일단은 나도 귀족이긴 한데 말이지.’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한 사딘이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그 찬란한 재능만큼이나 당당하고, 위엄 있는 걸음걸이였다.
“입만 산 버러지는 아니었군.”
“입만 놀릴 줄 아는 멍청이도 아니지요.”
방금까지 여유로움이 묻어나던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 입이 네 놈의 명줄을 줄이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가?”
“공자께서도 그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눈치를 보던 교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평등을 표방하는 아카데미에 교관이라 할지라도 공작가 차기 후계자의 눈치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련…을 시작해도 되겠는가?”
나와 사딘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해라.”
교관이 말했다.
“각자 원하는 무기를 고르도록.”
사딘은 대검을 골랐고, 나는 여전히 맨손이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만한 놈…. 네놈의 핏줄을 믿고서 까부는 것이냐?”
물론, 아니었다. 내가 믿는 것은 나의 보조마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용사파티의 일원이었다.
이제 갓 재능을 개화한 애송이에게 당할 정도로 녹록치는 않다는 말이다.
“곧 알게 될 것이다. 네놈이 누구를 화나게 했는지 말이다.”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전신에서 진득한 살기가 노골적으로 피어올랐다.
“시합 실시!”
외침과 동시에 사딘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가 딛고 있던 지면의 발자국이 남을 만큼 강렬한 기세였다.
쾅-!
벼락처럼 쇄도하는 검과 내 주먹이 격돌했다. 그 여파로 인해 경기장 전체가 진동했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나불거린 것이냐!”
강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사딘은 맹렬한 기세로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투박하지만, 정갈하고, 힘 있는 공격이었다.
검 끝에서 진심으로 나를 베고자 하는 의지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는 진심을 가득 담아, 나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각오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빈틈이 보였다. 크게 휘두른 동작을 이용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허나 그 찰나의 순간, 사딘은 내 의도를 눈치 채고 거리를 벌렸다.
곧이어 그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옆구리를 향해 쇄도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속도가 느렸다. 나는 좌측으로 몸을 틀었….
“――!”
어찌된 영문인지 갑작스레 궤적을 바꾼 대검이 내 팔을 강타했다.
그대로 날아간 나는 공중에서 겨우 중심을 잡고 착지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경기장 밖으로 떨어질 뻔 했다. 상식을 초월하는 괴력과 반응속도였다.
‘분명 피했을 텐데….’
위화감이 느껴졌다. 마치 내 다음 동작을 읽고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마력이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공기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원천속성 중 수(水) 속성, 그 중에서도 얼음 계열에 특화된 듯 했다.
괜히 역대급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그에게서 묘하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대체 이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일까.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냐!”
냉기를 머금은 마나가 천천히 몸을 파고들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푸르스름한 예기(銳氣)를 발산하는 검날이 호선을 그리며 쇄도했다.
‘이번에는 우측으로….’
이번에도 마치 내 움직임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기형적으로 궤도를 비튼 대검이 옆구리를 베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곳에서 선홍색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사딘이 슬며시 입 꼬리를 올렸다.
‘이상한데…. 아무리 천재라고 하지만 이제 갓 5서클의 도달한 기사가 이 정도 힘을 낸다고?’
뭔가 이상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강해도 너무 강했다.
상정했던 범위를 한참 넘을 만큼, 비상식적으로 강했다.
거기에 그 기묘한 몸놀림. 마치 내 다음 동작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움직이는 그의 검이야 말로 기괴했다.
“그 잘난 입이 이제는 놀랍도록 조용하구나. 왜, 이제야 네놈과 나의 수준 차이라도 깨달은 것이냐?”
벌레를 바라보듯 경멸어린 시선이 이내 의기양양한 얼굴로 바뀌었다. 만면에 가득 찬 고양감.
나는 담담히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정확히는 그의 오른쪽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확신의 미소를 지었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뭐가 웃기지? 미쳐버리기라도 한 건가?”
마치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것 같은 천재적인 재능.
알 수 없는 위화감.
어딘가 익숙한 기운.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습니다."
위화감의 정체는 바로 저 눈 때문이었다.
그가 권능을 사용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마기(魔氣)가 나를 자극한 것이다.
“무엇이 말이냐.”
계약자.
-정답이다, 흑마술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였다.
-어때, 비슷해? 창조주 머릿속에서 본 작품을 한 번 따라해 봤어. 등가교환의 법칙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인간이 있다니…. 창조주가 살던 세계 흥미가 생겼어.
비슷하긴 한데 그보다 왜 내 머릿속에서 당신 목소리가 울리는 건데?
-보고만 있자니 하도 답답해서 말이지. 무려 이 아스모데우스님의 사도라는 인간이 한낱 계약자조차 못 알아보면 어쩌자는 거냐. 나 원 쪽팔려서.
말투가 상당히 현대적으로 패치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내 착각일까.
어찌됐건 내 예상대로 저 놈은 마신의 계약자가 맞았다.
아스모데우스가 직접 공인한 것이기에 이변은 없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제국 최고의 검술명가인 룬델 공작가의 차기 후계자가 마신의 계약자라니.’
만약 이 사실이 황실에 알려지게 된다면, 최소 멸문(滅門)이다. 가문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예지(叡智)와 개화(開化)의 권능을 가진 마신이라면 역시….
‘71계위(繼位) 마신, 단탈리온.’
-단탈리온 그 음흉한 놈 밖에 없지. 대체 무엇을 대가로 계약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어린 인간은 단탈리온의 권능 일부를 사용할 수 있는 듯 한데…. 하필 그놈과 계약을 했으니 파멸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보면 될 거다.
비상식적인 강함의 정체가 밝혀졌다.
개화(開化)의 권능을 통해 본인이 가진 재능의 한계를 뚫고, 미친 듯이 성장한 것이다.
거기에 내 예상이 맞다면 그의 오른쪽 눈동자는 아마 자신에게 일어날 단편적인 미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예지안(叡智眼).
나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같잖네. 고작 단탈리온 따위를 믿고 까부는 꼬라지라니.”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이냐? 겁에 질려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냐?”
“풋. 그 힘이 네 거 같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든 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사딘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미세하게 떨렸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듯 조소를 머금었다.
“위기에 몰리니 세 치 혀를 놀리는 건가? 걱정 말아라. 네놈이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끈질기게 괴롭혀주마.”
저토록 오만한 것도 이해가 간다.
내가 권능의 정체를 눈치 챘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저놈이 사실은 마신의 계약자고, 그 대가로 인간의 목숨을 받치고 있다고 말해봤자, 나 따위가 하는 말을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이단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룬델 공작가라는 거대한 뒷배가 존재하는 한 자신이 무너질 리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토록 당당한 것이다.
“그 말 후회할 텐데.”
허나 안타깝게도 그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스모데우스가 서열의 구애받지 않는 마신으로 불리는 이유이며, 한 때, 그녀가 지옥의 왕에게 도전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근거.
바로 그녀의 권능 중 하나인, 「무(無)의 경계(境界)」 때문이다.
자신이 선포한 영역 내에 모든 마기(魔氣)를 무(無)로 돌리는 치트급 권능으로, 본디 치천사(熾天使)였던 그녀이기에 가능한 모순된 기적.
마(魔)를 상대할 때 비로소 최강의 효율을 발휘하는 궁극의 항마기(降魔技).
아이러니하게도 마신(魔神)인 그녀의 존재 자체가 모든 마신(魔神)들의 카운터인 셈이었다.
-지금 네놈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분이 한계라는 걸 명심해.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영역선포(領域宣布).”
엄청난 탈력감을 느낌과 동시에 이마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통을 인내하며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경기장 전체가 비로소 나의 영역이 되었다는 것이.
‘이것이 아스모데우스의 권능인가…. 마치 신이라도 된 거 같은 기분이군.’
그때,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인지 사딘이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쇄도하는 대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자세.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일격이었다. 그러나 내 반응이 더욱 빨랐다.
우측으로 몸을 튼 뒤, 사딘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원래라면 이마저도 예상해 다음 동작을 취했을 테지만….
“――!”
으드득-!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밀려났다.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딘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포탄처럼 튀어져 나간 나는 그의 머리를 노리며 발차기를 날렸다.
사딘은 다급히 머리를 틀어 간신히 피했으나, 애초부터 그것은 허초(虛招)였다.
처음부터 노리던 건 이어질 두 번째 일격이었다.
첫 번째 일격의 회전력을 이용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뒷발을 뻗었다.
더 이상 미래를 볼 수 없게 된 그는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경기장 바닥을 쓸며 날아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사딘이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오른팔이 덜렁거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부러진 듯 했다. 사딘은 당황과 분노가 공존하는 얼굴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나는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한치 앞도 못 보니 그런 꼴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