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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0화 (10/180)

10화

‘하마터면 골로 갈 뻔 했네. 저 미친놈. 분명 무투기(武鬪技)까지 쓰려고 했던 거 같은데….’

적절한 타이밍의 기권을 해서 다행이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시험이고, 나발이고 전신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거기에 권능의 지속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처음 사용하는 것이기에 예상과는 다르게 5분도 채 버티지 못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시합에서 이기는 게 아닌 적당히 패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승패 따위는 상관없었다.

물론, 사딘 본인은 이따위 형태의 승리는 원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나에겐 별 상관 없다.

‘아마 이제부터 나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지.’

허나 그 덕에 계획에도 없던 고급 정보를 얻었다.

제국 최고의 권력을 지닌 ‘룬델 공작가’가 단탈리안의 계약자라는 것.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에 프레이 칼리고의 호감 또한 얻었을 터이니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근처 대기석에 앉은 나는 쏟아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상념에 잠겼다.

‘이제 마지막 시험만 남았나. 이번 시험만 무사히 치루면 입학은 문제없겠지.’

최종 시험에서 낙제를 하지 않는 이상, 아마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허나 조금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번 시험의 테마는 개인이 아닌 협동, 즉 조별 시험이라는 것이다.

네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정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조별 과제의 악몽이 떠오르는 끔찍한 시험.

팀원이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그저 좋은 팀원이 뽑히기를 기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연달아 치러지는 시험으로 인해 조금 지친 감이 들지만, 몸 상태는 문제없었다.

다음 시험을 기다리는 동안 치료를 담당하는 교관이 몸을 말끔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최종 시험의 총 책임자로 보이는 교관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주목.”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단 한 마디로 좌중을 압도한 것이다.

“모두 반갑다. 나는 이번 시험의 총 감독관인 벨라 트레이라고 한다.”

태양처럼 붉은 머리칼, 뺨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칼자국, 여인임에도 보기 드문 탄탄한 근육.

붉은 사자, 벨라 트레이. 아카데미 내에서도 손꼽히는 기사 중 한 명이었다.

“지금부터 이번 시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녀의 설명은 무척 간단했다.

배정된 팀원과 한 조를 이루어 시험장소인 ‘금제(禁制)의 숲’으로 향한다. 각 조는 그곳에서 지정해준 물건을 가지고 귀환한다.

“이상이다. 질문이 있는 이는 손을 들도록.”

너무나도 불친절한 설명에 상당수가 불만을 표했다.

사딘을 따르는 추종자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역시나 고위 귀족답게 상당히 거만한 태도였다.

“질문 있습니다.”

“말해라.”

“단순히 지정해준 물건만 가지고 귀환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

“최종 시험의 난이도 치고 너무 쉽지 않습니까?”

“그건 네깟 놈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가서 바지에 오줌이나 지리지 말도록.”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 질문한 놈의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졌다.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놈이 씩씩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웃은 놈들 얼굴 전부 기억했다.”

그 말 한 마디에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카데미가 아무리 평등을 추구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계급 체계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질문 있습니다.”

“하도록.”

이번에 손을 든 것은 용사 파티의 마법사, ‘린 메이지’의 여동생인 ‘샬럿 메이지’였다.

그녀는 특유의 도도하고 오만한 눈빛으로 감독관을 바라봤다.

“금제(禁制)의 종류는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상관없다. 단, 조원 모두가 같은 금제를 걸어야 한다.”

많은 것을 내포한 대답이었다. 샬럿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제의 숲은 이사장님이 직접 창조하신 마법적 공간이다. 그곳에서 등장하는 모든 존재들은 전부 실체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허상에 불과하니, 생명에 위협은 전혀 없다. 또한, 모든 조의 시험을 감독관들이 감시하고 있을 것이니 안심하고 임하도록 해라.”

간단히 얘기하면 모두 환상이니 걱정 말라는 뜻이었다.

“이상. 더 이상 질문이 없다면 지금부터 조를 발표하도록 하겠다.”

조 발표가 시작되었다.

1조부터 9조까지 차례대로 호명되었으나 아직까지도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조를 발표하겠다. 수험 번호 10번. 프레이 칼리고.”

프레이 칼리고가 힘차게 소리쳤다.

“예!”

“수험 번호 66번. 이든.”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색 머리칼을 묶어 올린 사내가 조용히 대답했다.

“예.”

성이 없는 것을 보니 평민인 듯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수험번호 400번. 샬럿 메이지.”

“…….”

그녀는 불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만 주억거렸다.

“수험번호 444번. 자일 지그하르트.”

내가 손을 들었다.

“네.”

“너희들이 마지막 조다.”

사딘과 그의 추종자들과 같은 조가 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으나 이 멤버는… 이 멤버대로 문제였다.

저 멀리서 짜증 가득한 샬럿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나보고 하등한 평민 따위랑 같은 조를 하라고!”

벌써부터 앞길이 막막했다.

* * *

자신을 이든이라고 소개한 사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이든이라고 합니다.”

나는 잠시 그 손을 쳐다보다, 이내 맞잡았다.

“자일 지그하르트 입니다.”

분명 친절하기 그지없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위화감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애써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실눈이라 그런가….’

내가 괜히 예민한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실눈 캐는 흑막이라는 선입견이 머리를 지배한지 오래였기에 반사적으로 의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시합 잘 봤습니다. 아주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계시더군요. 무려 제국 최고의 기재라 불리는 사딘 공자님과 엄청난 접전을 펼치다니!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같은 조로서 저도 자일 님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칭찬을 해주니 의심한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저 멀리서 프레이 칼리고와 샬럿 메이지가 걸어왔다.

프레이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가볍게 눈인사를 하였다. 나 또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 칼리고라고 합니다.”

“저는 이든이라고 합니다. 명망 높은 프레이 가문의 후계자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든. 잘 부탁드립니다.”

프레이와 이든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던 샬럿이 이죽거렸다.

“프레이. 저딴 평민이 뭐라고 인사를 나누고 그래?”

당황한 프레이가 조심스레 말했다.

“샬럿. 아카데미 내에서는 신분의 여하와 관계없이….”

“아, 몰라. 몰라. 그딴 거 나는 모르겠고. 야, 평민.”

“아, 예! 만나서 영광입니다. 살럿 메이지님. 저는 이든이라고 합니다. 메이지 가문의 위상은….”

샬럿이 그의 말을 칼 같이 자르며 말했다.

“네 이름 따위는 안 궁금하고. 평민, 너 잘하는 게 뭐야.”

이든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샬럿의 싸가지에도 굴하지 않는 밝은 녀석이었다.

“저 검과 마법을 조금 다룰 줄 압니다. 원천 속성은 트리플(triple)입니다.”

"뭐, 써줄 만은 하겠네. 너는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알겠어?“

“네!”

샬럿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미리 말하겠지만 나는 이번 시험에서 가장 어려운 금제를 걸 거야. 물론, 이건 부탁이 아닌 통보야. 불만이 있어도 그냥 닥치고 내 말에 따르라는 얘기야. 알아들어?”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

그녀가 기세등등한 얼굴로 물었다. 지 언니와 말투도, 행동도 닮은 것이 싸가지 없는 것 마저 똑같았다.

“왜? 내 말에 못 따르겠어?”

보다 못한 프레이가 중재하려 했으나,

“샬럿….”

“지금은 잠깐 빠져 있어. 프레이. 여기서는 서열 정리를 똑바로 해야 해. 너도 알잖아? 수석에 들려면 이번 시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

그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딱히 불만은 없다만 질문 하나만 하겠다. 가장 어려운 금제를 걸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무엇이지?”

샬럿이 우쭐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좋은 질문이야. 너나 저 평민 놈은 모르겠지. 내가 왜 가장 어려운 금제를 걸려고 하는 것인지. 그건 바로….”

“제약이 많으면 많을수록 최종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이겠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 살럿.

“…마, 맞아. 흥.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네?”

“그래서 대체 무슨 금제를 걸 생각이지?”

샬럿은 다시 의기양양한 얼굴로 대답했다.

“청각, 후각. 미각.”

미친.

오감(五感) 중 세 가지를 통제하겠다는 얘기였다. 저 정신 나간 년은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고 하는 소리인걸까.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물론, 이만한 제약을 걸고 시험에 통과한다면 당연하게도 1등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험에 통과했을 때에 얘기다.

괜히 무리했다가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본말전도(本末顚倒)였다.

“왜? 무서워? 걱정 마. 너 따위 없어도 나랑 프레이가 전부 해결할 테니까.”

제국 최고의 마도명문인 메이지 가문의 순혈로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이해한다. 그녀는 충분히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재니까.

허나 그녀가 지금 내보이는 것은 자신감이 아닌 오만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샬럿 메이지. 이번 시험은 단순히 무력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금제를 건 상황에서 동료들과 함께 얼마나 잘 적응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지를….”

그때, 이든이 활기찬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저는 찬성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제국 최고의 영재들이 이 자리에 다 모여 있지 않습니까! 아, 물론 저는 빼고요. 하하.”

나는 시선을 돌렸다.

“프레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대답했다.

“…이 멤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녀 또한 결국에는 수석 입학이 목적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대답이었다.

“모두가 동의하는 듯 하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만…. 따로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

샬럿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또 뭔데?”

“금제 목록 중에서 청각 대신 촉각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번 시험은 클리어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애초에 아카데미 신입생들의 수준으로는 결코 깰 수 없는 난이도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제의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환영인 것도 이러한 이유다.

본 시험의 숨겨진 테마는 바로 ‘생존’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느냐. 그 외에도 협동심, 정신력, 임기응변, 인성 등 많은 부분을 종합해서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온갖 금제를 떡칠했다가 이틀도 채 버티지 못하면 그야말로 낙제인 셈.

최소한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청각’은 필수였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귀가 안 들리는 것보단 그 편이 나을 듯 하군요!”

“저도 동감입니다.”

샬럿도 마지못해 대답했다.

“하. 귀찮게 하기는. 니들 멋대로 해.”

결국 우리 조가 정한 금제는 총 세 가지.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전대미문의 금제였다.

모든 조가 입장을 끝마쳤다. 남은 조는 우리 뿐 이었다.

“마지막 조. 준비 끝났으면 따라와라.”

우리는 교관을 따라 좁은 통로를 걸었다.

약 10여분 정도를 걷자, 작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관이 물었다.

“금제는 정했나?”

샬럿이 대표로 대답했다.

“후각, 미각, 촉각을 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교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세 개? 입장한 이후부터는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대로 진행할 건가?”

샬럿이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교관이 팔찌를 건넸다.

“착용해라.”

팔찌를 착용하자, 세 가지 감각이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감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교관이 문을 열어주었다.

“너희들이 찾아야 하는 것은 맨드레이크(Mandrake)이다.”

교관의 마지막 말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행운을 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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