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숲이었다. 생기(生氣)를 잃어버린, 적막한 그림자가 사방에 내려앉은 공간.
음울하고, 축축한,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접근을 거부하게 만드는 불쾌한 장소.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기괴한 꽃들.
말라비틀어진 팔이 축 늘어져 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갈 때면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창문을 통해 본 바깥에 나무들은 뼈만 남은 인간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처럼 기괴했다. 아이의 상상을 통해서 확대된 풍경은 제멋대로 모습을 바꿨다.
바람 소리가 들린다. 아니, ‘바람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모한다.
―그것은 사람의 울음소리 같다. 아이가 해맑게 웃는 소리 같다가도, 여인이 처절하게 울부짖는 것 같고, 짐승의 울음소리 같다가도, 노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사각. 사각.
후각을 잃었기에 냄새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그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만약 내 코가 멀쩡했더라면 지금 나는 연신 구역질을 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마디 말없이 계속해서 걸었다. 딱히 어떠한 이유가 있어 말을 아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이중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을 뿐이다.
침묵을 깬 것은 이든이었다.
“생각보다 더 으스스한 장소로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각을 금한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는 생각이 드는군.”
이든이 해맑게 웃었다.
“하하하!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맨드레이크(Mandrake)라는 식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가요?”
샬럿이 대답했다.
“물론이지. 너 같은 평민은 모르겠지만, 나는 직접 본 적도 있는 걸.”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 무서운 듯 했다.
“그럼 그게 어디서 자라는지 알고 있나?”
“음…. 축축하고, 습한 곳?”
나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전체가 축축하고, 습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녀도 그 사실을 인지했는지 괜시리 짜증을 내며 말을 돌렸다.
“뭐 어딘가 있겠지! 그보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때, 갑자기 선두에서 걷던 프레이가 멈췄다.
“뭐야, 갑자기 왜 멈춰?”
프레이가 진중한 얼굴로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아무래도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샬럿이 질색하며 물었다.
“프레이, 정말이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기 저 나무 보이십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우측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인간의 얼굴 형태를 띠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게 뭐 어쨌다고?”
“신기하게 생긴 나무군요.”
“인면목(人面木)인가….”
“그렇습니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껴서 저 나무를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숫자를 셌습니다.”
샬럿이 꿀꺽, 침을 삼켰다.
“저희가 저 나무를 마주친 것은 총 7번입니다. 즉 벌써 7번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얘기죠.”
나는 인면목을 바라봤다.
‘뭐지? 착각인가?’
방금 분명 표정이 바뀐 것 같았는데…. 마치 우리를 보고 비웃는 듯한….
“끼야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것은 살럿이었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저, 저기, 저기 좀!”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나무들이 전부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일제히 우리를 바라보던 나무들의 입꼬리가 반달모양으로 찢어졌다.
소름끼치는 광경에 뒷덜미가 서늘했지만,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검을 뽑아든 프레이가 용맹하게 돌진했다. 그 뒤를 이든이 함께했다.
“제가 막겠습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나는 겁에 질려 있는 샬럿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샬럿! 뭐해? 정신 안 차려!”
그렇게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년이 지금은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몸을 덜덜 떨며 내 옷깃을 잡아챘다.
“난 몰라. 모른다고! 너희들이 저, 저것들 좀 어떻게 해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그녀는 가진 재능에 비해 실전경험이 현저히 부족했다.
허나 그 이상으로 공포에 면역이 없는 것 같았다.
“빠, 빨리! 빨리 내 눈앞에서 치우란 말이야!”
문득 짜증이 치솟았다. 이대로라면 시험을 치르는 내내 도움은커녕 걸림돌만 될 터였다.
이럴땐 고전적인 방법이 최고다.
-짝!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나름 힘 조절을 했다 생각했는데, 입술이 터지며 그녀의 고개가 휙 꺾였다.
“―!”
그녀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너, 너 따위가 가, 감히…!”
너무 충격적이라 말도 잘 안 나오는지,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중얼거리는 그녀.
허나 어리광을 받아줄 시간 따위 없었다.
“한 번만 더 징징거리면 그 입을 찢어버릴 테니, 닥치고 들어라.”
이어지는 내 말이 더욱 충격적이었는지 이제는 딸꾹질까지 해대는 그녀.
“끅!”
“너를 제외한 모두가 지금 개 같이 고생하고 있다. 네년이 제안한 빌어먹을 금제를 떡칠하고 말이지. 그런데 네년은 뭐하는 거지? 여기서 계속 겁에 질린 똥개 새끼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을 건가? 수석을 차지하고 싶으면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라.”
그녀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 상당히 수치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너. 두고 봐.”
표독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짓이긴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공포심이 아닌 수침과 분노 때문이었다.
분노의 대상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일단은 그녀를 전력으로 삼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샬럿. 화속성 마법을 사용해라.”
“닥쳐!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명령 하지 마!”
당연하게도 나무는 불에 취약한 법이었다. 젖은 장작이라도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는 그저 잿더미일 뿐.
샬럿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전신에서 붉게 물든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머리 위에 피어나는 4개의 고리.
4서클 마법사의 증표였다.
나는 전방에서 시간을 벌고 있는 이든과 프레이를 향해 소리쳤다.
“이든, 프레이! 이제 됐습니다. 돌아오세요!”
둘은 생각 외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프레이야 그렇다 치지만, 이든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강한 사내였다.
그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으, 인간의 얼굴을 한 나무들이 움직이다니 최악입니다. 징그러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동감입니다. 이든.”
프레이 또한 보기 드물게 질색하는 얼굴이었다.
그때, 모든 준비를 끝마친 살럿이 빠르게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평소에 앙칼진 목소리와 대비되는 진지하고, 근엄한 음성.
“내 의지를 타고 흐르는 바람이여. 지옥의 업화가 내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불태우리라.”
허나 수치심은 나의 몫이었다.
“―풍화(風火).”
그녀의 눈동자가 불꽃이 깃든 것처럼 일렁거렸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요동치는 마나를 붙잡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우아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손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점차 거세지더니 이내 사방을 뒤덮으며 불꽃으로 산화했다.
-화르르르륵!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나무들의 몸에 불이 붙었다.
작은 불씨에 불과하던 불꽃은, 점차 덩치를 키우기 시작하더니 화마(火魔)가 되어 순식간에 그들을 집어삼켰다.
-타닥. 타닥.
그 많던 인면목(人面木)들이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과연 메이지 가문의 핏줄답게 엄청난 재능이었다.
상대적으로 마력이 부족한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신기(神技)였다.
나는 살럿에게 다가갔다. 마력을 많이 소비한 탓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엎어지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괜찮은가? 훌륭한 솜씨였다. 역시 제국 최고의 마도 가문의 핏줄은 다르군.”
샬럿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하긴 방금까지 자신을 매도하던 이가 갑자기 친한 척을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가 거칠게 나를 밀치며 말했다.
“내 몸에서 손 떼! 너…. 여기서 나가면 가만 안 둘 거야.”
나는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거렸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뺨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프레이가 물었다.
“두 분 무슨 일 있으셨나요…?”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샬럿이 선수를 쳤다.
“아,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리고 나를 째려보며 입 모양으로 「말하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는 프레이는 그저 뚱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할 뿐 이었다.
‘본인도 창피한 건 알겠지.’
때마침 이든이 적절하게 끼어들었다.
“샬럿님! 대박입니다! 대체 어떤 식으로 마나 운용을 해야 그 정도로 깔끔하게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죠? 저, 정말 충격 받았습니다! 두 가지 속성을 조합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메이지 가문이 제국 최고의 마도 명문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네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칭찬에 기분이 좀 풀렸는지, 샬럿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크흠. 평민. 너 좀 볼 줄 아는 구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웃음을 주체할 수 없는 입꼬리는 어쩔 수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뭐, 생각해보도록 할게.”
“감사합니다!”
수상할 정도로 붙임성이 좋고, 수상할 정도로 강력한 놈.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이든이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자! 적들도 해치웠으니 다시 힘차게 가보죠! 이번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선두에 선 이든을 따라 우리는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끝도 없이 펼쳐진 숲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인면목이 사라지니 더 이상 길을 헤매지 않는 군요!”
그의 말대로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장소를 맴돌지 않았다. 다만, 주변 풍경이 워낙 비슷했기에 제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때,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프레이가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신기하군요. 촉각을 금하니, 통각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샬럿의 뺨을 때렸을 때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샬럿 또한 그 사실을 인지했는지 부어오른 자신의 뺨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맞아요. 저도 아까 인면목의 가지에 긁혔는데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촉각을 금한 것이 오히려 이득이 아닌가 싶다니까요…. 잠깐…. 자일! 설마 이것까지 전부 계산하여 촉각을 선택하신 겁니까? 또 한 번 감탄했습니다! 무력 뿐 만이 아니라 지혜까지 지니고 있다니, 이것이 영웅의 핏줄!”
이제 보니 그냥 호들갑 떠는 게 취미인 놈이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이것까지 계산해서 촉각을 고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청각이나 시각보다는 촉각을 제외하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 생각했을 뿐.
허나 다른 이들은 이미 내가 이 모든 걸 계산하고 선택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아주 바람잡이가 따로 없었다.
“자일. 그대의 혜안(慧眼)은 실로 대단하군요.”
고집불통인 샬럿마저도 인정하는 눈치였다.
“……나쁘지 않네.”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기도 모양이 빠지니, 그냥 그런 척 분위기를 잡고 말했다.
“가장 효율이 좋을 거라 생각해서 촉각을 선택한 건 맞습니다만, 마냥 이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통각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위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하기에 자신이 부상을 입은 줄도 모른 채 죽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겠군요! 명심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은 하나였기에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한참을 걷는 와중에도 이든은 수다에 미친놈처럼 한시도 입을 멈추지를 않았다.
오죽하면 차라리 청각을 금제로 거는 것이 나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슬슬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이든이 멈춰 섰다.
“평민. 왜 그래?”
이든이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좀 보십시오.”
[이 앞 말, 머리, 여자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익은 문구.
‘이런 문구에 낚여서 개고생 한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
샬럿이 얼굴을 찡그리며 땅에 새겨진 문구를 소리 내어 읽었다.
“이 앞. 말. 머리. 여자. 있다? 이게 뭔 말이야?”
“경고의 문구일까요?”
나는 앞을 바라봤다. 뿌연 안개가 짙게 깔린 것이 척 봐도 불길한 기운을 풍겼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구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흑. 흑. 흑. 흑.
여인이 통곡을 하는 듯한 소리.
이에 샬럿이 기겁을 하며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 이번에는 또 뭐야!”
소리가 점차 커졌다. 처음에는 저 멀리에서 들리던 소리가 점점 가깝게 느껴졌다.
마치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곡소리.
계속 듣고 있자니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불쾌한 감각에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언제나 쾌활하던 이든도 지금은 평정심을 잃은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잠시 고민하던 내가 말했다.
“앞으로 가시죠.”
어차피 그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는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사방을 뒤덮은 안개가 어찌나 짙은지 앞 사람의 모습만이 겨우 희끗희끗 보였다. 다행히 소름끼치는 곡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뒤편에서 내 옷소매를 붙잡고 따라오는 샬럿이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어, 어, 언제까지 가야 돼.”
“다 왔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사방이 트이기 시작했다. 앞장 서서 걷고 있던 프레이와 이든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멈추었다.
그들의 시선은 앞쪽을 향해 있었는데,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나와 샬럿도 시선을 옮겼다.
“…말?”
검은색 말과 그 위에 올라탄 검은 갑주의 기사.
기사에게는 목이 없었다.
그럼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것은 무엇일까. 아니, 애초에 저걸 눈알이라고 봐야 할까.
기사의 오른손에는 머리가 쥐어져 있었다. 온통 검게 칠해진 동공과 귀 옆까지 찢어진 입.
―목 없는 기수(騎手).
다리에 힘이 풀린 샬럿이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말했다.
“…듀라한(Dulla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