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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2화 (12/180)

12화

검은색 말이 콧김을 내뿜는다.

-다그닥. 다그닥.

말굽소리가 울려 퍼진다.

목 없는 기수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살럿?”

그녀는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어쩌면 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저앉은 자세며, 바닥을 적신 정체불명의 액체까지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후각이 없다는 것이 참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든과 프레이도 별반 다를 거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마치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듀라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그럴 만했다.

듀라한은 수많은 마물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환상종(幻想種)이다.

애초에 이런 특수한 공간이 아니면 마주치는 것조차 힘든 놈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탐난다.’

침이 줄줄 흐를 정도로 탐이 났다.

듀라한 정도 되는 마물을 종속시킬 수 있다면 아주 큰 전력이 될 게 분명했다.

‘보는 이들만 없으면 흑마술이라도 사용했을 텐데…. 근데 아무리 깨지 말라고 만들었다 해도 신입생들 상대로 듀라한은 너무한 거 아니야?’

본디 환상종은 물리적으로 타격을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신성력이 깃든 무기로 공격을 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아티팩트가 있어야 한다.

마법으로 상대를 하려고 하여도, 손에 쥐고 있는 머리통이 엔간한 마법은 안티(anti) 스펠(spell)로 무효화 시킨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피해조차 입힐 수 없기에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때, 프레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자일. 저희…를 두고 도망…가십시오.”

듀라한이 뿜어대는 위압은 단순히 버틴다고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겁에 질리게 하여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종의 저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디버프(Debuffs) 같은 것이다.

허나 프레이는 그것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감내하고 있었다.

역시 미래의 소드마스터가 될 재목은 떡잎부터가 남달랐다.

“…미안합니다, 저도 지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거짓말이었다. 아스모데우스의 성흔을 지닌 내게 이 따위 저주가 통할 리 없었다.

그저 이곳에 있을 명분을 만들기 위해 꾸며낸 소리였다.

‘그래야 어떻게든 한 번 기회를 만들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어차피 내게 위협이 되는 존재도 아닌데, 밑져야 본 전 아닌가!

허나 안간힘을 다해 몸을 움직이려는 프레이를 보니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큭…!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움직여라, 움직여…!”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이마에 툭 튀어나온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올라있었다.

안쓰럽기는 했으나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는 편이 내게는 더 나았다.

‘이든은…?’

그는 선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기절한 건지 혹은 기절한 척을 하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분명 하는 행동이나, 언행은 선한 사람인 것 같은데 어째서인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흑색 말이 천천히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검은색 연기로 이루어진 말이었다.

희끄무리한 형체를 지니고 있었지만 붉은 안광만큼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기사의 오른손에 있는 머리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유독 나만 바라보는 것 같은데….’

생긴 것만 보면 꽤 예쁜 얼굴인데, 동공과 찢어진 입 때문에 기괴하게 보였다.

-털썩.

옆을 바라보니, 눈을 뒤집어 깐 샬럿이 거품을 문 채 기절해있었다.

“…살럿. 살럿?”

아무리 불러 봐도 미동조차 없었다. 결국,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놓은 듯 했다.

샬럿 또한 그녀의 언니인 린 메이지에게조차 결코. 꿇리지 않을,

아니 그 이상의 재능을 지닌 인물이지만 아직은 그저 자존심만 강한 머저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꽤 볼만한 얼굴이 되겠네.’

그런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내게는 아벨 크로이의 모든 경험과 기억이 녹여져 있으니, 용사파티에서 린 메이지와 그 일행들에게 어떤 수모와 창피를 겪었는지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 못지않게 핏줄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동생의 얼굴이 수치심과 자괴감으로 물들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푸르릉! 푸르릉!

말이 발을 움직일 때마다 검은 연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잔상을 남겼다.

오른손에 쥐어진 여인의 머리는 여전히 내 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변화가 생겼다.

먹물을 들이부은 듯 흰자마저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던 동공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평범한 인간의 눈동자처럼 변모했다.

…예상대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바다를 담은 듯, 푸른색 보석을 박아 넣은 것 같은 신비로운 눈동자.

―고고하고, 오만하며, 차가운 시선.

그것을 직접 마주하자 알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마성적인 그 시선을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탁.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말이 내 앞에 멈춰 섰다.

그 위에 타고 있던 기사가 오른손을 높게 올려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Aspal an mháthair mhór.”

부드러운 미성(美聲).

정말 모순되게도, 신성하고, 찬란하며, 마치 천사가 찬가를 부르는 듯한 고귀한 음색이었다.

목 없는 기수는 자신의 오른손에 있는 머리통을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놓았다.

방향을 맞추느라 조정하는 모습을 샬럿이 보았더라면 아마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생긴 기사는 말에서 내린 채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으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Tugann Knight Ilina ómós don Apostle.”

의미는 알 수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알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기사로서의 예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니 그에 마땅한 행동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천천히 검을 뽑은 채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서 딱히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행동에 의미를 알 수 없었다.

“Bhí mé ag fanacht anseo le mo thiarna. Ba mhaith liom a thástáil an fiú tú a bheith i mo thiarna.”

언어의 장벽은 높고도 험했다. 분명 무어라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알아듣지를 못하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아스모데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의 쾌활한 목소리와는 달리 장난기를 쏙 뺀 진지한 목소리였다.

-재미있구나. 저 기사는 그대와 겨뤄보고 싶다고 한다.

‘나랑?’

단순히 어조만 바뀐 것 뿐 임에도 불구하고, 새삼 그녀가 나 같은 인간 따위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천외천(天外天)의 존재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래.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대가 자신의 주군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다는군. 생전에는 꽤 명망 높은 기사였던 듯 한데…. 모종의 이유로 지금은 이런 꼴이 되어 주인 될 자를 기다리고 있던 거 같구나. 애초에 이 공간에 들어온 것도 그대가 처음일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듀라한을 탐냈던 것은 사실이나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뭘 걱정하느냐. 그대가 누구의 계약자인지를 잊은 것이냐?

‘하긴…. 근데 나 무기 다룰 줄 모르는데 저번처럼 맨손으로 해야 하나? 기사도의 어긋난다고 화내는 거 아니야? 무기도 없이 상대한다고, 자기를 깔보는 거냐고 그럴 거 같은데.’

-창은 어떠냐.

‘창?’

-그래. 어차피 어떤 무기든 못 다루는 것은 매한가지니, 그나마 다루기 좋은 창으로 하거라. 마침 그대가 지니고 있는 유일한 무기가 창이기도 하고.

‘뭐 상관없긴 한데, 창이 어디 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냐?

‘…뭘?’

-……?

어쩐지 묘하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군. 모르고 있었기에 지금껏 쓰지 않은 것인가.

‘뭔데, 왜 너만 아는 얘기를 하고 그래. 나도 알려줘. 우리 동업자잖아.’

-동업자라…. 하하.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는 지옥을 다 뒤져도 그대 밖에 없을 것이다. 그대가 지닌 가문의 인장에 마나를 주입해 보거라.

나는 품에 있던 가문의 인장을 꺼내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공기가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인장에서 검게 물든 창이 튀어나왔다.

“…미친. 뭐야, 이게.”

한눈에 봐도 흉흉해 보이는 외관.

흑색으로 물든 창대와 예리하게 날이 선 창날에서는 자색(紫色)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창의 이름은 마창(魔槍), 악시온(axion). 지그하르트가의 초대 가주, 시온 지그하르트가 사용하던 애병(愛兵)이다. 그 인간이 직접 처치한 악룡 파프니르의 뼈로 만든 창이지. 그 정도면 사용하는데 문제없을 거다.

멍하니 창의 수려한 자태를 감상하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니. 그 악룡이라는 게 실존하던 거였어? 지그하르트의 초대 가주가 단신으로 처치했다는 게 전부 다 사실이라고? 부풀려진 소문 따위가 아니라?’

-그렇다.

사실 은연중에 지그하르트 일족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소문이 부풀려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이라기에는 비정상적인 무력과 대충 들어봐도 어린아이들의 흥미를 이끌기 위해 만든 동화의 느낌이 물씬 풍겼으니까.

‘너는 그걸 다 어떻게 알고 있는데? 솔직히 인간계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잖아.’

-네 말이 맞다. 허나 시온 지그하르트라는 인간은 지옥에서도 꽤 유명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놈은 나의 사도였다.

‘……뭐? 지금까지 사도로 계약한 건 한 명 뿐 이라며! 그것도 마신이고! 애초에 지그하르트는….’

-역시 그대라고 전부 다 아는 건 아닌가보군. 나는 그대에게 거짓을 얘기한 적이 없다. 그보다 앞을 봐라.

그 순간, 흑색 검날이 내 얼굴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당황한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반응이 약간만 늦었어도 그대로 머리통이 분리될 뻔 했다.

“아니, 기사라는 양반이 비겁하게 먼저 공격하는 게 어디 있어! 기사도 이런 것도 없냐!”

그런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여인은 피식 웃었다.

“어? 너 내 말 알아듣지? 방금 비웃은 거지?”

허나 다음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여인이 빠르게 다가왔다.

푸른 안광이 섬뜩하게 번뜩임과 동시에 허공을 가르고 쇄도하는 흉흉한 검격.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온갖 보조 마법을 떡칠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겨우 쫓는 것이 전부였다.

‘여기서 내가 지게 되면 시험에 떨어지는 건가?’

그것만은 사절이었다.

‘한 방을 노린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검의 폭격을 안간힘을 다해 피했다.

통각(痛覺)이 느껴지지 않기에 얼마만큼 상처를 입었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아마 상당한 피해가 쌓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반격을 하지 않은 채 최고의 한 방을 위해 묵묵히 감내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제 아무리 완벽한 검술이라도 아주 약간의 빈틈은 존재하는 법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찰나에 순간, 다음으로 이어지는 동작 간에 미세한 틈새가 보였다.

두 발을 지면에 고정한 채 양팔에 힘을 주었다.

근육이 찢어질 듯 팽창하며, 전신의 세포들이 괴성을 질렀다.

‘바로 지금!’

오러를 다룰 줄은 몰랐기에, 보조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하듯 내가 쥐고 있는 창에 마나를 둘렀다.

‘찌르기!’

창술 따위는 모른다. 그저 목표를 향해 있는 힘껏 찌르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콰앙!

고막을 찢을 듯한 파공음(破空音)이 울려 퍼졌다.

공을 가르며 나아간 창끝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었다.

아니, 정확히는 가슴을 가로막던 그녀의 검을 뚫고서, 가슴마저 꿰뚫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그녀의 신형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연기처럼 흩어졌다.

나는 멍하니 그 충격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미친. 이게 뭐야…?”

-무엇이겠느냐. 그대도 잘 알고 있는 [템빨] 이라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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