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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5화 (15/180)

15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왜 늦은 것인지 설명해 달라는 물음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대답한다. 하여도 나를 향한 의심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증폭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왜 이 정도로 시간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거울에 비친 ‘나’와 고작 한 마디를 나눈 것이 전부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유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조정해 놓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곳은 상식에 얽매이면 안 되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추론이다.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조장?”

“흥! 할 말이 없나 보지. 애초에 그렇게 늦게 온 것부터 수상했다니까?”

가느다란 눈동자가 내 얼굴을 살피고 있다.

프레이 또한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내가 도플갱어로 몰리고 말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도플갱어는 거짓을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만약 도플갱어라면 지금 하는 말은 전부 진실인 셈이죠. 저는 그저 거울에 비친 제 자신과 한 마디를 나누었을 뿐이고, 이후 곧장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이든이 되물었다.

“거울에 비친 조장과 대화를 나누었다고요?”

옆에서 샬럿이 거들었다.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나랑 평민은 거울에 비친 자신과 대화 따위 나눈 적 없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손을 들어 머리를 뒤쪽으로 쓸어 넘긴 뒤 샬럿을 응시했다.

“그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의심은 할 수 있지. 그렇다 쳐. 허나 그렇게 상대를 몰아붙이고 싶다면 그럴싸한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하지 않겠어? 샬럿. 네가 내게 앙금을 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무작정 나를 도플갱어로 몰아가려고 한다면 나도 더 이상 가만있지 않겠다.”

샬럿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 입장에서는 그들 또한 도플갱어 용의자에 불과했다.

“하? 그렇게 발끈하는 걸 보니까 더 수상한데? 당신이 도플갱어가 아니라면 증명하면 되는 거잖아? 평소에 당신답지 않은 걸?”

“입에서 나온다고 전부 말이 아니다. 만약 네가 나를 도플갱어로 몰아 우리 모두가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그 책임은 네가 질 것인가? 내가 도플갱어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거지?”

이든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장. 답지 않게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조금 진정하시죠.”

그러나 샬럿은 과열된 분위기에 한술 더 떠 기름을 부었다.

“책임? 그래. 내가 책임지도록 할게. 만약 당신이 도플갱어가 아니라면 당신이 말하는 그 어떠한 부탁이라도 들어주지. 메이지 공작가의 이름에 걸고 맹세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토록 귀족의 명예와 권위를 중시하는 샬럿 메이지가 가문의 이름까지 걸 정도로 내가 도플갱어라고 확신한다고? 대체 어떤 이유에서?

“대체 뭘 믿고 내가 도플갱어라고 확신하는 거지, 샬럿 메이지?”

딱히 의식하지는 않았으나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당사자인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서늘했다.

“감이야.”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고작 감 따위에 의존해서 저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

“감…이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 순간.

“그만!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여태껏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던 프레이가 엄청난 성량으로 소리쳤다.

“의미 없는 말다툼은 그만들 하시지요. 저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해가 지기 전까지였다.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아무리 길게 봐도 6시간도 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프레이 말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으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도플갱어를 색출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도 숲은 저희에게 몇 가지 힌트를 주었습니다.”

이든이 끼어들며 말했다.

“아! 그림자! 도플갱어는 그림자가 없다고 했지요. 그럼 이중에서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

이든이 한 명, 한 명 시선을 옮겼다.

“안타깝지만 그 방법은 안 될 것 같습니다.”

하늘 위에 해는 아주 강렬하게 떠 있었다. 그 존재감을 과시하듯이.

그러나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숲이, 나무들이 워낙 울창했기에 개개인의 그림자는 확인할 수 없었다.

마치 일부러 농락이라도 하는 것처럼.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이든이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림의 떡이었군요.”

프레이가 말했다.

“어릴 적 아버님께 도플갱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외형은 물론, 경험과 기억까지 복제하는 최악의 마물. 원본을 복제하는 그 성질로 인해 대규모 토벌대에 섞여 들어가 수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빼앗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라고 하셨죠. 허나 도플갱어에게는 인간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반색하며 물었다.

“역시! 할튼 경이시라면 실제로 도플갱어를 경험해보셨을 테지요.”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외적인 부분으로 도플갱어와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시더군요. 이미 한 번 원본을 복제한 그들은 이미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도플갱어의 피 또한 저희와 같은 붉은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든이 소름 돋는다는 얼굴로 몸을 떨었다.

“으, 한낱 마물 주제에 어찌 그럴 수가 있는 거죠? 무섭습니다.”

“마물학자들도 아직까지 그것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아, 예외적으로 어떠한 경지에 이른 존재들은 외형과 기억 등을 복사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들이 가진 능력은 전부 흉내낼 수 없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그것이 종의 한계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찌됐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얘기하면 도플갱어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냄새라고 합니다.”

“냄새요?”

“네. 도플갱어의 전신에서는 시체 썩은 내가 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냄새를 숨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하더군요.”

“호오! 그럼 이 중에서 썩은 내가 나는 사람을 찾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보다 못한 샬럿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이든을 바라봤다.

“쯧. 멍청한 평민. 우리가 금제로 건 게 뭔지 잊은 거야?”

그제야 깨달은 이든이 넉살 좋게 웃었다.

“아…! 저희 후각을 제한하고 있었죠? 지금껏 잊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냄새를 못 맡는 삶에 적응해버린 거 같군요. 하하하!”

“지금이 팔자 좋게 웃을 때야? 프레이가 알려준 정보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적용할 수가 없잖아.”

“…미안합니다.”

프레이가 풀 죽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자, 당황한 샬럿이 다급하게 말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고압적으로 구는 샬럿이지만 프레이만큼은 진정 소중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아니야! 프레이! 네가 알려준 정보는 정말 좋았어. 다만 운이 없게도 지금 우리 상황에 안 맞았을 뿐이야.”

그림자, 냄새, 전부 도플갱어를 확실하게 특정해낼 수 있는 특징들이지만 운이 없게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전부 적용할 수가 없었다.

‘운’이 없게도 말이다.

이 모든 게 과연 우연일까? 이것들을 전부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처한 이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정중앙에 위치해 있던 해는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있었다.

‘이 중에 대체 누가 도플갱어지?’

억지 논리를 주장하며 계속해서 나를 도플갱어로 몰고 가려고 하는 살럿.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나를 의심하는 이든.

가장 먼저 이곳에서 도착한 프레이까지.

솔직히 말하면 모두가 의심스러웠다.

‘원본의 기억과 경험을 모두 복제한 도플갱어라면 자신이 도플갱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상정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본인은 정말 한 명의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거짓을 말할 수 없다는 규칙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참’과 ‘거짓’의 기준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본인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도플갱어에게 당신이 인간이냐고 질문한다면 그는 맞다고 대답할 것이고, 이 숲은 그것을 ‘참’이라고 인정할지도 모른다.

말장난과도 같은 규칙.

새삼 후회가 되었다. 조금 더 정성을 기울였다면,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면 이렇게 애를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세계의 뼈대를 구축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소한의 정보들을 토대로 추측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저 뼈대를 잡아놨을 뿐인데, 이 세계가 직접 살을 붙이고 진화를 거듭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만든 세계가.

영광스럽고, 황홀하지만 무력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장. 조장?”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불렀습니까?”

“네.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고 계시나요? 혹시 이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라도 찾으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런가요. 조장 아까 쓰여 있던 문구 중에 4번째 문구 혹시 기억하십니까?”

“…도플갱어는 인식에서 자라난다 라는 문구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조장은 그 문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식’에서 자라난다.」 처음 그 문구를 보았을 때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떠올렸지만, 마땅히 이렇다 할만한 것은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난해하더군요.”

“그렇죠. 그래서 저는 조금 더 간단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머리 쓰는 건 제 특기가 아니라서요. 하하.”

“때로는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답에 가까울 때가 있죠.”

순간, 이든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뜩였다.

“예. ‘인식에서 자라난다.’, 그것이 도플갱어의 탄생 기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얘기를 듣던 샬럿이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탄생 기준?”

“네.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순간, 도플갱어가 탄생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희가 공통적으로 마주친 것이 무엇이죠? 거울입니다. 거울이 비추는 것은 바라보고 있는 당사자, 즉 본인이죠. 저와 샬럿님은 거울을 봤을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거울 속에 ‘자신’과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죠. 허나 조장께서는 분명 거울에 비친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셨습니다.”

“…네.”

이든이 프레이를 바라봤다.

“프레이 님.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시죠.”

“프레이님은 그곳에서 거울을 보셨나요?”

“네, 봤습니다.”

“혹시 거울에 비친 자신과 대화를 나누셨나요?”

“아니요…. 거울을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그냥 지나쳐 나왔습니다.”

대답을 들은 이든이 씨익 미소를 짓더니 이내 나를 바라봤다.

“그렇다더군요. 이 중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눈 이는 조장 뿐 입니다. 그리고 가장 늦게 도착한 것도 조장이지요. 저희는 전부 동일한 시기에 진입했지만, 이토록 편차가 큰 것은 오로지 조장 뿐 입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죠.”

샬럿도 이든의 의견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리고 평민이 ‘인식’에 대해서 의견을 냈잖아. 나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무엇인가를 인식함으로서 그 행위가 촉매가 되어 규정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마법이라는 학문을 배우면서 수도 없이 많이 보았으니까.”

함정이다. 이건 함정이 분명하다. 이곳에 섞여있는 도플갱어가 의도적으로 나를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든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제 가설은 이렇습니다. 조장은 거울 속에 자신 혹은 그것을 도플갱어라고 ‘인식’하였고, 그로 인해 조건을 충족시킨 도플갱어가 의태를 한 게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조장께서는 처음부터 이번 시험의 테마가 도플갱어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까?”

…내가? 내가 도플갱어라고?

“…웃기지마. 장난해? 너희들은 정말 내가 도플갱어라고 생각한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도플갱어라니!”

“현 상황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조장이 맞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프레이를 바라봤다.

“프레이! 너도 내가 도플갱어라고 생각하는 거야?”

“저는……. 미안합니다. 이든의 말은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샬럿이 말했다.

“뭐, 이쯤이면 충분히 결정 난 것 같네. 저렇게까지 흥분하는 걸 보니 더 생각할 것도 없어. 확실해. 이대로 어영부영 하다가는 결국에 전부 탈락될 걸?”

“맞는 말입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말이 통하지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나를 도플갱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도플갱어가 아니야. 너희들은 지금 속고 있는 거다. 도플갱어한테. 여기서 나를 죽이게 되면 우리는…….”

푹!

“―!”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입이 다물어졌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목덜미를 타고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선홍빛 액체.

그것은 나의 피였다.

“쿨럭!”

구멍이 뚫린 목덜미에서 바람 소리가 힘없이 새어나왔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이든을 바라봤다. 그의 손에는 붉게 물든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이든?”

“하하, 미안합니다. 조장.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라면 저희 모두 탈락할 판인데. 이해해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전신에 힘이 빠진다. 축 늘어진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엎어졌다.

점차 의식이 흐려진다. 멀어져 가는 의식 사이로 프레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든…. 자일…은 도플… 갱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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