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차갑게 식은 몸이 서서히 굳어갔다.
나는, 우리는, 결국 도플갱어를 잡지 못했다.
완벽한 패배였다.
도플갱어의 의도대로 완전히 놀아난 것이다.
‘시험은 여기서 끝인가….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합격선이겠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지금 내게 벌어진 이 충격적인 상황을 조금 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촉각을 금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검에 목덜미가 뚫리는 고통을 생생하게 느꼈을 것을 상상하니 오금이 저렸다.
‘결국, 진짜 도플갱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건가. 설마 이대로 진짜 죽는 건 아니겠지.’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전부 환상 따위가 아닌 현실이라면?
그럼 나는 이리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건가?
생각해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최상급 마물로 분류되는 환상종, 듀라한.
이곳이 제국 내 최고의 인재들을 양성하는 아카데미라고 한들 이제 갓 입학시험을 치르는 신입생들을 상대로 내보내는 것은 명백한 밸런스 오류였다.
또한, 그녀를 직접 상대해본 나이기에 느끼는 위화감이 있다.
그것이 단순 환상종이 지니고 있는 특성 때문인지 혹은 정말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지만….
근데 왜 아직까지 의식이 끊기지 않는 것일까. 분명 시험은 끝이 났을 텐데,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지만, 의식만은 더욱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희미하게 들리던 일행들에 말소리도 이제는 말끔하게 들렸다.
“이든. 자일은 도플갱어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시간이 급박하다고 하지만 상의도 없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프레이님. 그렇다면 프레이님께서는 다른 방도가 있으셨습니까? 당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인물들 중 가장 수상한 것이 바로 조장이었다는 사실을요.”
“그건….”
“물론, 이해합니다. 프레이님의 입장에서는 제 이러한 행동이 굉장히 당황스러우셨겠죠. 허나 어느 정도 확신이 있기에 한 것입니다. 저기를 한 번 보십쇼.”
프레이의 목소리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저, 저건! 자일 공의 몸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프레이님. 제가 옳았습니다.”
“이든!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자일 공의 몸이 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막아야….”
“진정해, 프레이. 저 평민의 말이 맞아.”
“…네?”
“자일 지그하르트. 저자가 도플갱어였어.”
그 순간,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사내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얇고, 여인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굵은 모호한 목소리.
그렇기에 더욱 이질적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응시자 분들께서는 제한시간 내에 숨겨진 ‘도플갱어’를 찾아내셨습니다.」
‘……뭐? 도플갱어를 찾아냈다고…?’
「‘도플갱어’의 정체는 수험번호 444번, ‘자일 지그하르트’입니다.」
‘내가…. 도플갱어라고…?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수면 위로 떠오르는 봉인된 기억의 파편.
‘나는….’
거울 밖 사내를 바라보고 있는 존재.
‘도플갱어가….’
그것이 나였다.
* * *
사방이 끝없는 어둠으로 둘러싸인 공간.
“미친. 기어코 저걸 찾아낸다고? 대체 뭐하는 놈이지?”
거울을 본 뒤, 의식을 잃은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에 있었다.
처음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는 생각에 막막했으나 이내 눈앞에 놓인 작은 창문만한 크기의 거울을 보고 안심했다.
“감이 좋은 건가? 샬럿 저 망나니야 그렇다 쳐도…. 아무리 봐도 이든 저 놈은 처음부터 나를 의심하고 있던 거 같단 말이지.”
이 거울은 일종의 감시 카메라 같은 것이다. 이 빌어먹을 공간에서 유일하게 외부의 상황을 볼 수 있는 물건. 도플갱어로 선택된 자에게 해주는 최소한의 배려인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모조리 볼 수 있었다.
또한, 어찌 된 영문인지 바깥에서 이야기 하는 대화소리 외에도 나로 위장한 ‘도플갱어’의 마음의 소리까지 들려왔다.
경험과 기억을 완벽히 복제한다고 했던가.
그는 정말 자신이 도플갱어가 아닌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할법한 사고방식과 행동, 대화를 구사하고 있었기에 솔직히 말해 일행들이 도플갱어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가 걸었던 금제는 이 시험에서 가장 최악의 형태로 다가왔다.
후각을 금했기에, 가장 중요한 힌트인 도플갱어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고, 해는 중천에 떠있었으나 울창한 나무들로 인해 그림자를 볼 수가 없었다.
거짓을 말할 수 없다는 규칙 또한 ‘나’의 기억과 경험을 지니고 있는 도플갱어에게 적용되는 기준이 너무도 모호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시험 또한 작정하고 떨어지라고 만든 것 같은 출제자의 ‘악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가진 정보가 너무 제한적이다. 고작 이 따위 정보들을 가지고 대체 어찌 추리를 하란 말인가!
“근데 그걸 해냈지. 이든, 그 실눈 캐가.”
프레이는 끝까지 망설였고, 샬럿은 무지성으로 나를 몰아갈 뿐이었다.
이든.
그 녀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을 의심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목을 찔렀다.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 상황을 꿰뚫는 통찰력,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결단력, 그리고 숨겨진 무력까지.
그 어떤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어쩌면 이 중에서 가장 조장 자리에 잘 어울리는 인물일지도 몰랐다.
그런 인간이 대체 어떤 연유로 본인의 능력을 숨긴 채, 나를 의도적으로 추앙하는 것일까.
“…곧 알게 되겠지.”
눈앞에 있던 거울은 도플갱어의 시체가 사라지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잠시 후.
거울은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문으로 변모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고 나아갔다.
“조장!”
제일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이든이었다. 굉장히 반가운 얼굴로 내 양손을 쥔 채 방방 흔들었다.
문득, 저 손에 쥔 단검으로 나의 얼굴을 한 도플갱어에 목덜미를 뚫던 그의 얼굴이 생각났다.
이게 연기라면,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감이다.
“이번에는 진짜 조장 맞으시죠? 대체 어디 갔다 오신 겁니까!”
나 또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가운 체를 했다.
“네, 저 맞습니다. 다른 공간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든 그대가 제 가죽을 뒤집어쓴 도플갱어의 목덜미에 단검을 꽂아 넣는 것까지도요. 다행히 시험은 무사히 통과한 모양이군요.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일부러 가시가 있는 말을 던졌지만 이든은 미동도 채 하지 않았다.
그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일 뿐.
“하하….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전부 지켜보고 계시고 있었다고 하시니 뭐랄까 조금 부끄러워지는군요! 하하하하!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오해는 하지 마십쇼, 조장. 저는 그 자가 도플갱어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겁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허상이고,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탈락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결코, 조장에게 악감정 따위를 가진 것은 없으니 절대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당연하죠. 그런 생각 안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조장이십니다!”
프레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자일….”
“왜 그러십니까, 프레이?”
“괜찮으십…니까? 어디 아픈 곳은 없습니까…?”
의외에 반응에 내가 더욱 당황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촉촉한 눈동자와 옅은 홍조를 띤 얼굴이 미래의 소드마스터가 아닌, 걱정 많은 소녀로 보이게 했다.
당황한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샬럿이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뭐해? 꿀 먹은 벙어리마냥 빤히 보고만 있을 거야? 대답 안 해?”
엿같은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으나 덕분에 정신을 차린 나는 조만간 살럿의 정신머리를 고쳐주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며, 프레이의 눈을 가리고 있는 머리칼 한 가닥을 조심스레 넘겨주었다.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이.”
아까 내 모습을 한 도플갱어가 잿가루가 되어 사라질 때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의 마음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어쩌면 그녀는 이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를 동료로 인정해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입니다. 자일 공.”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프레이.”
그때, 눈치 없이 끼어든 이든이 넉살 좋게 말했다.
“프레이 님. 얼굴이 붉어지셨습니다. 꼭 사춘기 소녀를 보는 것 같군요. 하하하! 혹시 조장께 반하신 겁니까? 물론, 자일 조장께서 성별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분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사내와 사내간의 사랑은 많이 험난할 겁니다! 허나 저는 두 분을 응원하겠습니다. 이래 봬도 동료니까요.”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이 붉어진 프레이가 손사레를 쳤다.
“그, 그게 무슨! 저, 저, 저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한 명의 동료로서 안위를 걱정하였던 것 뿐이지. 제가 어찌 자일 공자에게 그런 감정을 품겠습니까. 절대! 절대! 아니오니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열이 잔뜩 받은 샬럿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야, 평민! 뚫린 입이라고 아주 막 내뱉지? 입이 아니라 똥구멍인 것 같은데? 말이 아니라 똥만 쳐 내 뱉으니까 말이지! 다시 한번 그딴 소리해봐. 진짜 입이랑 똥꾸멍을 바꿔버릴 테니까. 알겠어?”
“아…. 제가 실언을 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조심해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조장, 프레이 님.”
프레이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이렇게 성격이 좋은 인물이 훗날, 소천마 천악천과 함께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농담 정도야 할 수도 있는 거죠. 괜찮습니다.”
이든이 감격한 얼굴로 90도 인사를 했다.
“역시 두 분은 마음씨도 넓으십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다들 저기 보이십니까?”
내가 손을 가리킨 곳은 나무로 막혀있던 곳이었다. 허나 지금은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도플갱어를 찾아냈기에 막혀있던 길이 뚫린 것이었다. 아마, 저 곳이 이 시험의 최종 목적지 일 것이다.
‘드디어 끝이 보인다. 솔직히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으나 결국에는 성공했다. 오감 중 세 개를 금제로 걸고 이 정도면 상위권 합격도 충분히 노려볼만 할 것이다. 뭐가 됐든 A 클래스에만 배정 받으면 된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아마 저곳에 저희가 그토록 찾던 맨드레이크가 있을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조장?”
“예, 아마 그럴 겁니다.”
샬럿이 물었다.
“너는 그런걸 어째서 알고 있는 거야?”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지.”
“누구한테?”
“그걸 내가 너에게 말해야 할 의무라도 있던가?”
샬럿이 입술을 질끈 물며, 노려봤다. 지켜보던 이든이 눈치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얼른 가시죠! 한시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곳을 빠져나가고 싶지 않습니까?”
“…두고 봐.”
나는 대답 대신 씩 웃어주었다. 우리는 길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차라리 맨드레이크를 보상으로 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맨드레이크는 일종의 영약이다.
쓰임새가 다양하여 마법재료로도 활용하지만, 본래는 복용한 이의 마력을 영구적으로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
그 효과는 맨드레이크가 살아온 세월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0년산 맨드레이크의 효능은 극소량에 불과하지만, 100년 이상을 산 맨드레이크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효능을 자랑한다.
‘상대적으로 마력이 부족한 내게 있어 이만큼 딱 맞는 물건도 없지. 마기는 사용하는 것만으로 몸을 갉아 먹으니….’
“조장!”
선두에서 걷고 있던 이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맨드레이크를 발견한 모양이다. 허나 맨드레이크는 절대 함부로 뽑아선 안 된다.
“이든! 멈춰요! 맨드레이크는 함부로 뽑….”
“그게 아니라.”
나는 이든이 가리킨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텅 비었는데요?”
맨드레이크는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구덩이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