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영문 모를 일이었다. 분명 맨드레이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구덩이 뿐.
누가 봐도 흙을 파헤친 흔적이 역력했다. 심지어 그 구멍의 크기로 보아 이곳에 있던 맨드레이크는 최소 100년 이상을 산 듯 했다.
“…누군가 선수를 친 거 같군요.”
“그러게요. 아무래도 누가 저희보다 먼저 뽑아간 것 같은데요?”
뒤늦게 이 광경을 목격한 살럿이 기가 차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야! 평민!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애초에 이곳은 우리 조 말고 다른 조가 들어올 수가 없다고. 감독관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웬일로 이든이 의견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
“그치만 이걸 한 번 보십쇼. 샬럿님이 보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샬럿의 말이 맞다. 애초에 조를 나눈 것 자체가 시험 장소를 분리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각 조마다 걸어놓은 금제가 다르니 그에 맞는 시험이 필요할 테니까. 그렇기에 우리 조를 제외한 다른 조가 먼저 맨드레이크를 가져갔다는 전제는 성립할 수가 없다.’
허나 그녀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감독관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감독관.
즉, 맨드레이크를 훔친 것이 내부자라면 말이 달라진다. 혹은 내부자의 힘을 빌려 침입한 외부인이라던가.
허나 그렇다 한들 어째서 이러한 짓을 벌였느냐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환상으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맨드레이크를 훔쳐간다고 한들 대체…….
‘잠깐, 환상…? 만약 맨드레이크가 환상이 아니라면…? 실제 맨드레이크를 노린 누군가가 침입한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비약이 심해.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감독관이 진즉에 시험을 중지시켰을 테지…. 그래야 할 터인데…. 왜 아직까지 아무런 공지가 없는 거지?’
그때였다.
“조장! 이리로 와보세요!”
다급하게 부르는 이든의 외침에 상념에서 깬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이것 좀 봐보세요.”
이든이 가리킨 곳은 구덩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살짝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피?”
“그쵸? 제 눈이 틀렸나 했네요.”
지나가는 똥개가 봐도 혈흔(血痕)이 분명했다. 이쯤 되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라진 맨드레이크.
정체불명의 피.
아무런 공지도 하지 않는 감독관.
이 모든 것들을 한낱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이 세계에 빙의한 이후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있다.
바로 불길한 예감은 대체로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미리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총 3개의 복합술식으로 이루어진 다중강화마법이었다.
“대해(大海)를 가르는 파도처럼 강대한 힘을, 창공(蒼空)을 내지르는 독수리처럼 움직일 수 있는 민첩함을, 그 어떤 불의(不義)에 맞서도 쓰러지지 않을 담대함을 원하노니 마나의 대행자가 명한다.”
머리 위에 백색 빛을 뿜어내는 원 형태의 고리가 떠올랐지만 이내 금세 사라졌다.
5개의 마나 고리.
그것은 내가 5서클 마법사라는 것을 의미했다. 통상적으로 마법사는 뇌, 기사는 심장에 마나를 저장하여 서클을 생성한다.
예외적으로 양쪽 모두에 서클을 생성하는 마검사들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는 예외일 뿐이다.
숙련된 마법사들은 영창을 할 때도 서클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곧 자신의 전력을 공개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허나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할 만큼 복잡한 술식 혹은 강대한 마법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클이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물론, 방금은 그저 실수였다. 다행히 서클이 전부 드러나기 전에 모습을 감췄으니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신강화(全身强化).”
빌어먹을 마나 총량으로 인해 고작 강화마법을 몇 번 쓴 것만으로 슬슬 숨이 찼다.
마력을 다루는데 있어 발군의 재능을 보인 아벨 크로이가 5서클에서 멈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원천속성이 ‘강화(强化)’ 하나 뿐인 싱글(single)인 것도 한 몫 했고. 그로 인해 보조마법사에 머물렀지만, 강화 하나만큼은 제국 최고였기에 용사 파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점차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나가 전신을 감쌌다.
심장이 힘차게 펌프질을 할 때마다 근육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핏줄이 곤두섰고 혈류의 순환은 더욱 더 빨라졌다.
몸 곳곳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조장, 강화마법 사용자셨습니까? 의외로군요. 근데 갑자기 왜 마법을 사용하신 겁니까?”
“흥, 고작 강화마법이라니. 역시 별 거 없잖아.”
“샬럿. 동료에게 그런 말은 좋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책에 당황한 샬럿이 풀 죽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였다.
“……응. 미안.”
마치 언니처럼 샬럿을 달래주던 프레이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샬럿.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는 일입니다. 그보다 자일…. 혹시 주변에 적이 있는 겁니까? 제 기감으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역시 미래의 소드마스터가 될 재목이라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방심하지 않고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믿을 건 너밖에 없구나, 프레이.’
이런 전도유망한 인재를 절대 그 살인귀에게 뺏길 수는 없었다.
“저도 확언은 할 수 없겠습니다만….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험의 문제가 좀 생긴 것 같군요. 우선은 이 핏자국을 따라 가보도록 하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일행들도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듯 했다.
우리는 숨죽인 채 천천히 핏자국을 따라갔다.
사박. 사박.
핏자국은 꽤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이 공간에 울려 퍼지는 것이라고는 발자국 소리가 전부였다.
바람조차 불어오지 않았다. 사실 예정대로 맨드레이크가 이곳에 있었다면 나는 추가로 청각을 금할 계획이었다.
맨드레이크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뽑을 수가 없다.
땅속에서 뽑히는 순간, 고막을 터트릴 정도의 엄청난 굉음을 내지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청각을 금함으로서 시험도 통과하고, 더불어 4가지 감각을 금제함으로서 추가 점수도 받을 생각이었다.
―허나 앞선 누군가로 인해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잠깐.”
나지막이 중얼거린 나는 발을 멈췄다. 핏자국이 끊겼다.
“…….”
뒷목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
동시에 울려 퍼지는 불쾌한 소리.
으드득. 으드득.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청각을 금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말이야. 이야말? 내가 없어. 그…리 럴가. 봤단 분명. 너지 도봤?”
…목소리? 과연, 이걸 목소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따지기 전에 애초에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있는 종류의 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마치 도축장에 끌려가는 짐승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음울하고, 기괴하며, 불안정하다.
감히 언어로 표현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불가해(不可解)한 소리.
으득. 으드득.
마치 맹수가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듯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는나 틀지?리 않다았니까? 정이말야. 짜진야. 줘어믿. 그 놈야 악마은? 사야?라저 돼. 싫?어. 아?니야”
머릿속에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쉴 새 없이 울린다.
본능이 소리친다.
도망치라고.
절대 저걸 마주치면 안 된다고.
원초적 공포가 전신에 엄습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불가해(不可解)한 존재가 무엇인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그녀에게 걸어놓은 ‘사자(死者)의 맹약(盟約)’이 발현되고 있었으니까.
“…레이첼 교관.”
어째서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아니, 이제는 내가 알던 그녀가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흉한 마기(魔氣)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레이첼은 본래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체를 잘근잘근 뜯어먹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머리통은 사라졌고, 사방에는 장기와 팔 다리가 흩뿌려져 있다.
떨어져나간 팔 한쪽에 맨드레이크가 쥐어져 있는 걸 보면 레이첼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저 시체가 맨드레이크를 훔쳐간 범인인 것 같았다.
붉게 물든 눈동자, 산발이 된 머리칼, 뒤틀린 관절, 저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열심히 식사를 하던 레이첼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라면 결코 꺾일 수 없는 형태로.
피와 살점 범벅이 된 얼굴로 날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호선을 그리며 찢어진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왔다.
“엥? 악?마? 다았찾.”
크게 숨을 들이 마신 나는,
“―모두.”
온힘을 다해 소리치며 일행들을 향해 내달렸다.
“도망가―!”
동시에 레이첼 또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양손과 양발을 동시에 움직이며 다가오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은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이성을 놓게 만들 정도로 괴기했다.
마치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대한 거미가 먹잇감을 발견한 듯 한 모습.
“드드?드드드드. 다다다?다다다. 어어어어?어어. 찾찾찾찾찾?찾. 았았았았았았.”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연신 중얼거리고 있는 샬럿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이블(evil)…? 진짜 이블이라고…? 아니야. 아니야.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어차피 다 환상이잖아. 그치? 여기에 있는 것들 다 환상이라고 했잖아. 저것도 어차피 가짜일거야. 그렇지? 그렇다고 해줘. 응? 그렇다고 해줘. 제발.”
“야 이 미친! 뭐하고 있어!”
“하하…. 그래. 여긴 환상이니까. 이건 꿈이지. 이런 곳에서 이블(evil)이 나올 리가 없잖아…? 그치? 언니. 아빠. 어서 내 말이 맞다고 해줘. 나 이제 악몽 꾸기 싫단 말이야. 응? 빨리 깨워줘….”
초점 없는 눈동자로 개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두려움에 아예 넋이 나간 듯 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 괴물에게 먹이로 던져주고 싶었지만, 샬럿 또한 장차 자신의 언니를 뛰어넘을 재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만약 레이첼이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라면, 그녀는 정말로 죽게 될지도 몰랐다.
이 상황이 환상인지, 실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염병.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끝까지 발목만 붙잡네.’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샬럿을 옆구리에 끼웠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든과 프레이는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프레이! 이든! 뒤돌아보지 말고 전력을 다해 뛰어!”
그와 동시에 나 또한 온힘을 다해 발을 움직였다.
앞을 보며 달리던 이든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조장! 저, 저게 뭡니까! 설마 저 괴, 괴물이 레이첼 감독관인 겁니까? 그럼 저것도 시험의 일종이라 봐야 하는 겁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자일!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쿵! 쿵! 쿵!
빠르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신을 강화한 상태로 온힘을 다해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첼은 급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잡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싸워야 하나? 씨X. 감독관들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이든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장! 어떻게 합니까? 어차피 허상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없다. 어서 선택해야 한다.
이쯤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다. 시험의 이변이 생겼다는 것을.
더군다나 레이첼은 감독관의 신분이니 얼마든지 시험에 끼어들 수 있다.
그 말은 내 뒤를 바짝 쫒고 있는 저 괴물이 허상 따위가 아닌 실재하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춘 뒤, 제자리에 살럿을 내려놓았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이든이 의아한 듯 물었다.
“조장…?”
“이든. 저건 허상 따위가 아니야.”
“그, 그럼요…?”
“아마 진짜 레이첼 교관이겠지.”
“그럴 수가!”
더 이상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다. 이대로 도망만 치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개죽음이 될 게 뻔했다.
최대한 힘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죽어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 둘러대는 건 나중 몫이다.’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레이첼이 나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양쪽 입꼬리가 기괴하게 찢어졌다. 문득 자기 딴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드드드드드드디디디디디디어어어어잡았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지그하르트의 인장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 순간, 내 손에 거대한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창(魔槍). 악시온(axion).”
마치 내 부름에 답하듯 창날에 깃든 자색 마나가 파도처럼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