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27화 (27/180)

27화

주변 곳곳에서 당황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환상마법?”

“분명 방금까지 건물 안이었는데…. 여…기 우리가 시험 쳤던 장소 아니야…?”

“그게 무슨. 아무리 대마도사라고 해도 어떻게 공간 전체를 바꿔? 마법으로 그런 게 가능하다고? 영창도 안했잖아!”

“…하하, 아니지? 설마 또 여기서 뭘 해야 하거나 그런 거 아니지? 그치? 응? 그치?”

제각기 다른 반응이었지만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공포.

대부분의 아이들이 겁을 먹고 있었다. 그만큼 금제의 숲에서 겪었던 시험이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노리고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악질임에는 틀림없었다.

‘…PTSD 오지네.’

탁!

다시금 주변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시 금제의 숲을 본 것보다, 손짓 한번으로 공간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욱 소름 돋았다.

“여러분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제가 준비한 시험이 꽤 만족스러웠던거 같군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을 것이다.

역시 악질이 틀림없다.

“보셨나요? 저는 손짓 한번으로 이 자리에 있는 공간 전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죠.”

저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저런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는 걸 보니 제정신은 아닌 듯 했다.

“농담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은 그런 제가 만든 시험을 통과한 우수한 인재들이지 않습니까? 모두 자신감을 가지세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린 마법. 그것이 곧 여러분들의 미래입니다. 불가능해 보이시나요? 두려우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뒤돌아서 이곳을 나가시면 됩니다.”

한 명쯤은 나가는 학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이곳 살로몬 아카데미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시게 될 겁니다. 그 중 가장 첫 번째로 배우게 될 것은 바로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황된 꿈? 희망고문? 망상? 전부 다 옳은 얘기입니다. 여러분들도 익히 아는 것처럼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노력을 해도, 지니고 있는 재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겠죠. 현실적으로 저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 얘기를 듣고 저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하셨나요?”

정확하다. 독심술이라도 쓰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됐다.

“마법은 불가능하다 여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학문입니다. 꿈을 꾸지 않는 자는, 평생 꿈에서 깨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능성을 포기하는 그 순간부터 당신은 꿈에서 깨어난 겁니다. 비록 그것이 망상이라도, 허황된 꿈이라도, 희망고문일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도 어엿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건물이 떠내려갈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사장의 연설을 상당히 감명 깊게 들은 모양이다.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소신 발언 한 번 하자면 약간 사이비 같았다. 그리고 너무 마법에 대한 얘기만 가득했다.

기사를 꿈꾸고 온 애들은 차별하는 거 아니야?

“기사를 꿈꾸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아카데미, 나아가 제국의 미래입니다. 모두 입학 축하드립니다.”

맞네. 독심술.

이사장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중에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까지 있었다.

하긴 대륙에 하나 뿐인 대마도사께서 하신 말씀인데, 갑자기 똥을 싸재껴도 박수갈채가 쏟아질 게 당연했다.

그때였다.

A 클래스 쪽에서 한 학생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사장님! 질문 있습니다!”

이사장이 걸음을 멈췄다. 주위에 있던 교직원들이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저 싸가지 없는 자식이.”

“어이, 신입생! 누가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질문을 하라고 했지? 이사장님이 네놈 질문이나 받자고 이 자리에 오신 줄 아냐?”

교직원들의 호통에 당황한 학생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마 본인의 의지로 질문을 한 게 아닐 것이다. 누가 이런 짓을 시켰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호기심이 많은 건 좋은 일이죠. 괜찮습니다. 질문 하세요. 딱 두 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학생이 안심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사, 살로몬 아카데미의 창설 이래 단 한 번도 새로운 클래스가 생겼던 적은 없던 것으로 압니다. 갑작스레 새로운 클래스를 창설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궁금해 하던 질문이었다.

“이유라…. 음……. 굳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

“재, 재미요?”

“네.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재밌을 거 같더라고요. 오래간만에 저도 호기심이란 게 생겼거든요.”

웅성웅성.

이사장의 답변에 학생들이 그게 동요했다.

“어…. 그, 그러면…. 아카데미의 반 배정은 철저하게 성적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마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명실상부 최고의 클래스인 A 클래스에 드는 것을 목표로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클래스에 등장으로 저희는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S 클래스가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번에는 S 클래스에 소속된 이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말씀하신대로 저희 살로몬 아카데미는 철저한 실력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대대로 A 클래스는 입학시험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낸 학생들이 배정되었죠. 그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하위 클래스에 배정된 학생들은 A 클래스에 갈 수 있게 노력해야겠지요.”

A 클래스 학생들에 얼굴이 밝아졌다. 어찌나 의기양양한지 한껏 올라간 어깨가 천장을 뚫을 기세였다.

S 클래스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지금 여기서 이사장이 그들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S 클래스는…. 백지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그들의 가치는 앞으로 그들이 직접 증명해나갈 것입니다. 가장 우수한 클래스가 될지, 가장 무능한 클래스가 될지는 전부 그들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지요.”

“그, 그렇다면 S 클래스 인원을 선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기회는 두 번이라 말했습니다. 정 궁금하다면 스스로 맞춰보세요.”

또각. 또각.

말을 마친 이사장이 건물을 빠져나갔다.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공자님! 역시! 저희 생각이 맞았습니다! 당연히 공자님이 소속된 A 클래스가 최강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거야 당연한 거지 않습니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문제였습니다. S 클래스 떨거지들 따위 신경 쓸 필요도 없지요.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표정이 어두우십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사딘의 추종자들이 기쁨에 취해 떠들어댔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별 거 아니다.”

B 클래스의 여학생들도 저들끼리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봐봐, 내 말이 맞지? S 클래스는 그냥 별종들만 모아둔 반 같은 거야. 별 거 없다니까?”

“에이, 그래도 칼리고 가문의 프레이랑 메이지 공작가의 샬럿님이 있는데…. 그리고 그 사람도 있잖아. 전설적인 영웅 가문의 후예, 자일 지그하르트!”

“환상 좀 갖지 마. 쟤네도 어차피 우리랑 별반 다를 거 없는 신입생이야. 쟤네라고 뭐 다를 거 같아? 다~ 똑같아. 어디까지나 소문은 부풀려지기 마련이라니까? 이미 이사장님 입으로 직접 말했잖아. A 클래스가 가장 뛰어난 클래스라고. 쟤네가 그만큼 뛰어난 인재들이면 왜 A 클래스에 배정받지 않고, S 클래스에 배정받았겠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지. 이유가.”

“그런 가…? 의외네. 솔직히 S 클래스에 소속된 애들 대부분이 입학시험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같은데. 오히려 저렇게 모아놓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난 저 애들이 이 학교에 큰 변화를 불러올 거 같아.”

“변화는 무슨. 그거 다 환상이야, 환상.”

시간이 지나도 학생들의 열기는 쉽게 가실 줄을 몰랐다.

그만큼 S 클래스라는 존재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아놓았으면 모를까 제국 최고의 마도 명문인 메이지 가문의 차녀와 소드 마스터를 배출한 검술 가문의 장녀가 소속되어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이어서 제논 카이사르 학생회장에 축사(祝辭)가 있겠습니다.”

조각 같은 외모의 남성이 단상 위에 올라왔다.

“후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사장의 연설이 끝난 직후라 긴장이 될 법도 하건만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열띤 토론으로 인해 과열되어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저는 학생회장인 제논 카이사르라고 합니다. 살로몬 아카데미에 입학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기품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억지로 쥐어짜내 연기하는 것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고귀함. 저것은 흉내 낸다고 따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태생부터 선택을 받은 이만 지니고 있는 달란트.

황가의 핏줄을 상징하는 십자동공.

제국의 제 1황자이며, 차기 황제로 가장 유력한 인물.

그가 바로 학생회장 제논 카이사르였다.

완벽한 외모. 고귀한 핏줄. 뛰어난 인망. 문무(文武)겸비.

그야말로 팔방미인(八方美人)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인물로서 천악천과는 또 다른 의미의 괴물이었다.

‘애초에 그 놈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인물이긴 한데… 저놈도 얼마나 뒤틀려 버렸을지 상상을 못하겠네

그가 매고 있는 새하얀 넥타이는 학생회 소속임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제국을 지배하는 게 황실이라면, 아카데미를 지배하는 것은 학생회라고 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 그 집단의 수장이 바로 저 1황자였다.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황실과 연을 쌓을 수 있고, 졸업 후에도 미래가 보장되니 아카데미 재학생이라면 학년과 클래스를 막론하고 탐을 낼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가 성공이 보장된 지름길이라면, 학생회는 하이패스였다.

“…이상으로 축사를 끝마치겠습니다. 아, 혹시라도 학생회에 관심이 있으신 학우 여러분들이 계시다면 서기인 캐럿 양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

축사를 끝마친 1황자가 기품 있는 발걸음으로 단상을 내려갔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음은 신입생 수석인 사딘 룬델 학생에 상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대체 이 지루한 입학식은 언제 끝나는 건지 슬슬 잠이 올 지경이었다.

사딘 저 새끼가 상을 수여 받는 광경을 보는 데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부터 프레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 전에는 샬럿과 이든이 자리를 비웠던 거 같은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프레이도 양반은 못 되는 듯 했다.

누구를 찾는 것인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프레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무래도 찾는 사람이 나였나 보다.

“자일. 이사장님 호출입니다.”

“이사장님이요?”

“네, 저희는 이미 다녀왔습니다. 아마 자일이 마지막인 듯 싶네요.”

“무슨 애기를 했는지 귀띔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가보시면 아실 겁니다.”

어차피 이사장과의 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시험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았고. 무엇보다 이 지루한 입학식을 더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프레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교관 한 명이 서 있었다.

나는 교관의 안내를 따라 건물 뒤편으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수정구가 보였다.

‘오, 전이장치인가?’

“손을 대고, 마나를 일으켜라.”

수정에 손을 대고 마나를 일으키자 눈앞이 환해지더니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었다. 눈앞에 커다란 문이 보인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자일 지그하르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사장이 책상 위에 턱을 괸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적인 외모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제부터 많은 얘기를 하게 될 텐데, 벌써부터 페이스를 뺏기면 곤란했다.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주시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사장이 손짓하자, 허공에 뜬 주전자가 내 앞에 놓아진 찻잔에 물을 따랐다.

“드세요.”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따뜻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맛있군요.”

“다행이네요. 그 차에는 진실을 말하게 하는 독을 넣었답니다.”

“네?”

“농담입니다.”

순간, 손가락을 넣어 토를 할까 고민했었다.

이사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어떤 행동을 해도, 우아하고 지적인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꽤 할 말이 많을 거 같죠, 자일 지그하르트 군?”

“그렇습니다, 이사장님.”

푸른 호수를 떠올리게 하는 고요한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자일 지그하르트.”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네.”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었다. 부담스럽게 빤히 바라보기만 하니 괜히 긴장이 됐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당신….”

그녀의 눈동자를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했던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흑마술을 언제부터 익히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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