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방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곱씹었다.
‘분명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인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려면 원인이 있어야 하건만 전조조차 느끼지 못했다.
마치 마법처럼.
“두 번 남았습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걸까. 어떤 마법이었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다시금 자세를 잡은 나는 천천히 상대를 살폈다. 한 번 실패를 겪고 나니 섣불리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구.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 뿐 인데 틈이 보이지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금 창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허초를 섞었다.
방금 전과 같이 가슴 상단을 노리는 척 하며, 공중에서 궤도를 바꿔 다리를 노렸다.
무리하게 궤도를 바꾼 탓에 팔이 저렸지만, 이번에는 분명 소득이 있었다.
퉁!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막힌 창이 반발력을 일으키며 튕겨져 나갔다.
창을 쥐고 있던 나 또한 바닥을 굴렀다.
다시 몸을 일으켰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체력의 소모가 상당했다.
맞은편에 있던 요한이 지루하다는 듯 따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역장(力場)이었군.’
이제야 대충 감이 잡혔다.
공간 계열 5서클 마법 중 하나인 역장(力場)은 물리적인 힘을 반사시키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시전자의 능력에 따라 그 위력 또한 천차만별이며, 응용하기에 따라서는 공격 마법보다도 더욱 강력한 쓰임새를 지닌 마법이었다.
순식간에 마법을 발동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다행히 페이크를 섞은 탓인지 전보다 반응이 느렸다.
허나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 짧은 사이에 영창도 하지 않고 역장을 펼쳐냈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생각할 수 있어도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일이다.
그것을 해내는 것이 바로.
‘경험의 차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대인전의 프로라는 사실을.
마법을 시전 하는 속도. 응용하는 방식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그렇다면 본 실력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내가 과연 그의 실력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까.
승부욕이 끓었다.
어떻게 하면 저 자의 얼굴에서 여유를 없앨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정면 돌파.’
요행은 소용없다. 어차피 흑마술을 사용할 수 없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우직하게 부딪치는 것 뿐.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알고 있음에도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한방을 선사해주겠다.
나는 창을 꽉 쥔 채 그를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그 모습을 본 요한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뭡니까? 설마 벌써 포기하신 겁니까?”
싸늘한 말투에서 전해져 오는 실망감. 동전 뒤집듯 확확 바뀌는 태도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이중내구강화(二重耐久銳氣).”
한 걸음.
“마력전도율강화(魔力傳導率强化).”
두 걸음.
“절삭력강화(切削力强化).”
세 걸음.
“―강화(强化). 강화.(强化). 강화(强化). 강화(强化). 강화(强化).”
마나가 깃든 창이 내 의지에 반응이라도 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각.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은 나는.
처음 마창 악시온을 쥐었을 때의 그 감각을 떠올리며.
“대체 지금 뭐하자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쾅!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주변 일대의 거센 바람이 불었다.
충격의 여파로 인해 연무장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흙먼지로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창끝에서 느껴지는 떨림은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확신의 미소를 지었다.
“아깝네요.”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요한 또한 나를 바라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훌륭합니다.”
뚝. 뚝.
바닥에 떨어지는 붉은 물방울. 그의 뺨에서 흘러내린 것이었다.
요한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뒤이어 자신의 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 피를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요. 설마 학생과의 대련에서 피를 보게 될 줄은…….”
그러더니 손에 끼고 있던 반지 하나를 빼내었다. 그 순간, 그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다섯 겹이나 되는 역장을 단번에 부숴버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더군요. 덕분에 새로운 걸 배웠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오늘 이 대련은 차후 자일 군에 대한 평가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죠.”
그의 금색 눈동자에 이채가 깃들었다. 뒤이어 손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색 마나가 순식간에 연무장 전체를 뒤덮었다.
“공간 구속.”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이었다. 갑자기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며, 온몸이 쇠를 짊어진 것처럼 무거워졌다.
뒤늦게 요한이 차고 있던 반지가 어떤 종류의 아티팩트인지 깨달았다.
대체 어떤 연유로 저런 아티팩트를 찾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반지는 마력을 억제하는 능력을 지닌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게 반지를 뺀 지금 이 연무장 전체에는 그의 마나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농도가 얼마나 짙은지 호흡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였다.
“다중강화(多重强化).”
예상치 못한 강화마법에 당황함도 잠시.
눈을 깜빡임과 동시에 요한의 주먹이 안면을 가격했다. 코가 뭉개지는 듯한 충격에 머리가 하얘졌다.
후속타를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랐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한 방! 한 방만 제대로 먹이면 가능성 있다!’
원거리에서 대응해봤자 손해 보는 것은 나였다. 무영창을 밥 먹듯이 하는 괴물이지만 마법사라는 특성상 근접전은 떨어질 것이다.
‘쉴 틈을 주면 안 돼. 계속해서 몰아붙여야 한다.’
그러나 먼저 접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그는 마치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쉴 새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경지에 이른 기사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은 육체를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쏟아지는 연타에 정신이 혼미했다.
나름 반격을 한답시고 열심히 창을 휘둘렀지만 애꿎은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데다 헛손질만 하고 있으니 체력이 남아나지를 않았다.
그 순간, 균형을 잃은 나를 향해 요한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미쳐 막아낼 틈도 없이 턱을 가격 당했다. 정신이 멍해지며 저절로 눈이 감겼다.
“컥.”
의식을 잃고 비틀거리던 나는 창대를 지팡이 삼아 겨우 몸을 지지했다.
“제 아무리 단단한 육체를 지니고 있어도 급소는 단련할 수 없죠.”
요한의 손아귀에서 푸른색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지 마나만으로 이루어진 창이었다.
“그거 아십니까? 저도 무기 중에는 창을 가장 좋아합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창이 쇄도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피했으나 왼쪽 뺨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일부러 뺨을 노린 게 틀림없다.
시간이 흐르며 적응한 것일까. 전보다 몸이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복부를 향해 쇄도하는 요한의 창을 쳐낸 뒤, 왼발을 주축삼아 반원을 그렸다.
후웅!
“동작이 너무 뻔합니다.”
오히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요한의 창끝이 왼쪽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동작.
마치 고명한 창술가를 보는 듯 했다.
나는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내며 다시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창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마치 내가 어디로 휘두를지, 어떻게 휘두를지 전부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힘만 믿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면 적에게 약점만 노출할 뿐입니다.”
나도 안다.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현대에 살던 내가 살면서 창을 잡아볼 일이 뭐가 있겠는가.
스승이 없는 게 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창술 교본이라도 한 번 읽어볼 걸 그랬다.
‘독학인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그의 손에서 창이 사라졌다.
“마투사를 지망한다면 이러한 단점들을 고쳐야 할 겁니다.”
잠시 후.
그의 머리 위로 16개의 창이 떠올랐다. 하늘을 수놓은 16개의 푸른 창. 하나, 하나가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요한이 가볍게 손짓 하자 16개의 창은 처음부터 한 몸인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창들이 동시에 멈췄다.
실로 놀라운 마나 운용이었다.
손짓 한번으로 창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제 수족처럼 부린다.
방금까지는 마투사처럼 치고받던 이가, 지금은 마법사로서의 위엄을 연신 뽐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것이 마법사의 전투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그리고 마법사를 지망한다면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죠.”
나는 그 충격적인 광경에 감탄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교수님. 저거 설마….”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하늘에서 추락하는 창들이었다.
콰과광!
마력으로 만든 창들이 연무장에 떨어질 때마다 폭발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떨어진 장소에 생긴 구멍을 바라보니 사람 한 명이 들어가도 충분할 것 같았다.
저걸 정통으로 맞는다면 백 프로 즉사다.
‘저 미친 새끼가!’
나는 온힘을 다해 달렸다. 뒤쪽에서 들리는 폭발음이 가까워질 때마다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교수님! 이거 지도 대련이라면서요. 저 죽습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창들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나, 죽는다고! 이 새끼야!”
가까스로 연무장 끝부분에 도착했다. 장외로 탈출하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는 장막에 막혀 불가능했다.
남은 창은 2개.
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 씨X!"
투창. 그리고 연무장 바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던져 창 하나를 격추시켰다. 이어서 바닥을 내리친 뒤, 타일을 뜯어내 방패로 삼았다.
“삼중내구강화(三重耐久强化)!”
아슬아슬하게 강화를 끝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창이 돌진했다.
가까스로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충격을 전부 상회하지 못한 탓에 전신이 너덜너덜했다. 방패 대용으로 사용한 타일이 흔적도 없이 소멸한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살았다.”
저 멀리서 요한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훌륭합니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것 또한 마법사로서의 필수요소죠.”
나는 가슴 깊숙이 부터 끓어오르는 욕설을 참아낸 뒤,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도대련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런 마법에 맞으면 치료마법이고 뭐고, 그냥 죽는 거 아닙니까?”
“그럼 안 맞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네?”
이 씨X 놈이.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뱉네?
“그럼 2차전 시작할까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수십 개의 검. 어림잡아도 30개는 족히 넘어보였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나를 죽일 셈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연무장 구석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걸어왔다.
“그쯤에서 끝내는 게 어떻겠나. 요한 크루이프 교수.”
그를 본 요한의 얼굴이 팍 식었다. 아까 전 보였던 호기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평소에 따분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맥도웰 학장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일단 저것부터 치우는 게 어떤가.”
요한이 손짓하자 허공을 수놓았던 검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래서 왜 오신 겁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은 평소에 내가 수련장으로 애용하던 곳이었다네.”
“아…. 그랬지요….”
저 새끼. 분명 모르고 있었다에 손모가지 건다. 그건 그렇고 학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이런 구석진 곳에 왜 온 걸까.
“그렇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평소처럼 수련을 하러 왔네만 뒤늦게 새로 신설된 S 클래스가 이곳에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지. 결과적으로 수업을 방해하게 됐으니 미안하네.”
“그렇군요…. 아뇨, 뭐 괜찮습니다.”
“근데 자네 뺨은 어쩌다 그런 건가?”
“지도 대련 중에 조금 다쳤습니다.”
맥도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뭐? 자네가 다쳤단 말인가? 그것도 학생과 대련을 하다가?”
요한이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맥도웰은 그런 요한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자네 정도 되는 사람이 대체 어찌…. 이 학생인가?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자일 지그하르트라고 합니다.”
내 이름을 듣자 맥도웰이 눈을 빛냈다.
“자일 지그하르트…. 그렇군…. 자네가 그 지그하르트로군.”
“네.”
그의 눈동자가 내 몸을 훑기 시작했다. 어찌 된 게 교수라는 작자들의 행동이 하나 같이 똑같았다.
어차피 너덜너덜해진 몸 보고 싶으면 맘껏 봐라. 지금 내게는 무어라 따질 힘조차 없었다.
스캔을 끝마친 건지, 내 쪽으로 다가온 맥도웰이 덥석 손을 붙잡았다.
“자네. 혹시 내 제자가 될 생각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