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네…? 제자요…?”
“그렇네.”
갑작스런 제안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제자…? 학장의 제자라고?
‘맥도웰이라면 분명….’
검귀 맥도웰.
북방의 소수 민족 출신 검사로 검에 미쳐 대륙을 떠돌다가 이사장인 아슈타르와의 대결에서 패배해 최연소 학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마법학부 학장인 맥스웰의 쌍둥이 동생으로서 형과는 반대로 기사학부를 책임지고 있는 명실상부(名實相符) 아카데미 최강자 중 한 명.
무력과 권력. 두 가지 모두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내게 제자를 제안했다.
…어째서?
설마, 저 교수 놈 뺨에 상처 하나 낸 거 때문인가? 그게 제자 권유를 할 정도의 업적이라고?
안 그래도 피곤한 탓에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내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 이 제안이 흔치 않은 기회라는 사실 만큼은 분명했다. 그의 제자가 된다면 빠르게 강해지는 것은 물론, 아카데미 내에서 나만의 세력을 만드는 것도 한층 더 수월할 터였다.
허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만약 정말 요한의 뺨에 상처를 낸 것만으로 내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이라면….
반대로 요한이라는 인물은 그의 뺨에 상처를 낸 것만으로 제자 제안을 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지도대련이라는 명목 하에 그에게 된통 당해 봤으니 그가 얼마나 강한 인간인지는 피부로 느꼈다.
허나 그의 평판이나 그에 대한 정보는 아는 것이 없다. 그저 그 스스로가 말한 어린 시절 말도 안 되는 천재였다는 것이 전부.
‘학장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고…?’
요한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학장님. 지금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맥도웰이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뭐가 말인가?”
“자일 군의 담당 교수는 저입니다. 아무리 학장님이라 하여도 담당 교수인 제 앞에서 제 학생에게 그러한 권유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 처음부터 예의가 없던 건 오히려 요한 쪽인 거 같았지만 나는 잠자코 그들의 말을 듣기로 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만 나는 자일 군을 기사학부로 편입시키려는 것이 아니네. 어차피 자일 군은 1학년이지 않는가?”
살로몬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1학년 때는 담당 지도교수에 가르침을 받다가 2학년이 되어서야 자신이 원하는 학부를 고르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직계 제자로 받아들이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아니면 자네가 제자로 들일 텐가? 자네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제자를 들인 적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재능이 넘치는 인재를 묵혀둘 바에 차라리 내가 직접 키우겠다는 애기지. 겸사겸사 다른 교수들이 눈독들이기 전에 먼저 선점하는 것이기도 하고. 뭐든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임자 아니겠는가?”
거 아저씨. 사람을 무슨 물건 다루듯 얘기하지 마십쇼.
뭐, 어찌됐건 결론적으로 내게 좋은 얘기인 건 확실했다.
무려 기사학부의 학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내 재능을 보고 직계 제자 삼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니까.
직계제자는 평범한 교수와 학생의 관계와는 조금 다르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상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이수하는 과목에 따라 여러 명의 교수들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그렇기에 본인이 따로 원하는 교수님이 있다 하여도 수강신청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졸업하기 전까지 그 교수님의 강의를 듣지 못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설령 듣게 됐다. 하여도 교수는 과외 선생이 아닌 만큼 일일이 학생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한다.
당연히 그럴 의무 또한 없고.
그러나 직계 제자는 나를 제자로 받아들인 교수에게 1대1로 가르침을 받는다.
내가 어떤 강의를 신청하였건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흔히 말하는 멘토와 멘티, 스승과 제자의 관계인 것이다.
수업을 듣는 수많은 학생 중 한 명이 아니라, 정식으로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는 사제(師弟) 관계라고 볼 수 있었다.
스승은 자신이 평생을 받쳐 일군 지식과 경험을 고스란히 제자에게 전수해주고, 제자는 대성하여 스승의 명예를 드높인다. 그 정수는 훗날 또 다른 제자에게 전수된다.
스승은 이렇게 자신이 만든 학문, 검술, 마법, 어떠한 업적들의 맥을 이어 후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음을. 물론, 모두가 같은 이유로 제자를 들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개개인마다 지니고 있는 신념이나 사상 따위가 다른 법이었으니까.
아카데미에 교수라 하면 제국에서도 인정받는 유망한 인재들이었으니, 그런 그들의 제자가 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할 수 있었다.
무려 교수씩이나 되는 이들에게 1대1로 가르침을 받는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제가 알기로는 학장님도 벌써 2명의 제자를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자일 군을 제자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더 이상 제자를 받지 못하실 텐데 그래도 상관없다는 얘기입니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으니 그런 제안을 했겠지.”
당연하게도 모든 교수가 제자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맥도웰 학장처럼 여러 명의 제자를 받는 교수가 있는가하면 요한처럼 아예 제자를 받지 않는 교수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제자로 발탁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꿈을 이루는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과거 이러한 제도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항의하는 학생들 또한 여럿 있었지만 이사장이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암묵적인 허락이 떨어진 셈이었다.
“…마음대로 하십쇼.”
맥도웰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 제자가 될 생각이 있는가? 아, 물론 강요는 아니네.”
강요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긴 이때까지 그 어떤 학생이 학장의 제자가 되라는 권유를 거절했을까. 당연한 태도였다.
“제가 신입생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제자가 되면 어떤 혜택이 있는 겁니까?”
그 말에 맥도웰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혜택이라…. 그래. 그럴 수 있겠군. 우선은 내 소개를 먼저 해야겠지. 나는 기사학부의 학장을 맡고 있는 맥도웰일세. 내 제자가 되면 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지. 이 늙은이가 평생을 받쳐 만들어낸 검술 또한 그대에게 전수될 걸세.”
귀검이라 불리었던 맥도웰의 검술.
검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탐이 날만한 제안이었다.
“…그 외에는 요?”
허나 난 검사가 아니다. 물론 이 무자비한 세계에서 살다보면 검을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계획에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맥도웰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요한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음을 참았다.
“또, 또 뭐가 필요한 겐가? 아마 자네가 바라는 게 무엇이든 대부분 얻게 될 걸세. 나의 제자라는 자리는 그런 것이니까.”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조금 더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맥도웰의 눈빛이 변했다.
“확실히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군. 좋네. 얼만큼 시간을 주면 되는가?”
“2주 정도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알겠네. 그럼 2주 후에 찾아오도록 하지. 긍정적인 답변 기대하고 있겠네.”
그 말을 끝으로 맥도웰이 연무장을 걸어 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부여잡고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아까 전 창에 찔린 왼쪽 어깨가 덜렁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였다.
그런 나를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요한이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망가진 육체에 깃든 활력을 일깨워라, 재생(再生).”
잠시 후.
푸른색 마나가 내 몸을 감싸더니 서서히 전신의 격통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 새끼는 회복 마법도 쓸 줄 알아? 지입으로 천재, 천재 거리더니 진짜 천재였다.
“…감사합니다.”
아니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 몸을 이 꼴로 만든 놈은 이 새낀데 내가 왜 감사를 해야 하는 걸까.
“취소하겠습니다.”
요한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속으로 나를 병신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대화 한 마디 없이 연무장 밖을 향해 걸었다.
바깥에 앉아있는 프레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입모양으로 말을 전해왔다.
괜찮아요, 자일?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졌다.
‘솔직히 감동이네.’
그렇게 연무장 끄트머리에 도착했을 때쯤. 요한이 발을 멈춘 채 나를 바라봤다.
나 또한 걸음을 멈추고 그를 응시했다.
“…….”
“…….”
“…뭐 할 말 있으십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요한이 나지막이 말했다.
본인도 말을 꺼낸 게 민망한지 괜시리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반쯤 돌린 채.
“크흠. 자일 군. 정말 그 영감탱…. 아니, 학장님의 제자가 될 생각이십니까?”
“아직 고민 중입니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냥… 물어봤습니다…. 학장님이 마냥 꼬장꼬장한 늙은이처럼 보여도 검을 다루는 솜씨 하나 만큼은 이 아카데미 내에서도 비견될 사람이 없으니까요. 또 본인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내줄 만큼 아껴주기도 하고….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선택일 테죠.”
“교수님은 제가 학장님의 제자로 들어가셨으면 하는 건가요?”
요한이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 잘 고민해보라는 얘기입니다.”
그의 손에 있는 반지가 눈에 띄었다.
“교수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말씀하세요.”
“교수님이 끼고 있던 반지 혹시 마력을 억제하는 아티팩트인 건가요?”
“그렇습니다.”
“왜 그런 걸 끼고 다니시는 겁니까?”
“…….”
“교수님?”
잠시 고민을 하던 요한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주입니다.”
“저주요…?”
“농담입니다.”
그가 먼저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문득, 나는 아까 전 대련에서 그가 뺀 반지가 두 개 중 하나 뿐 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연무장 밖으로 나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실프에게 패배 후 연무장을 박차고 나갔던 살렷도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먼저 도착한 요한은 샬럿과 실프에게 이번 대련에서의 문제점을 알려 줄 테니 나중에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신 쉬는 날에는 절대 찾아오시면 안 됩니다. 아, 차라리 수업 시간에 따로 상담하는 걸로 하시죠. 그게 좋겠습니다….”
반쯤 잠에 취한 나른한 목소리로.
‘저 정도면 기면증 아니냐?’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한 이든이 팔을 흔 들며 크게 외쳤다.
“자일 님! 대체 언제 그렇게 강해진 겁니까? 아니, 원래부터 그렇게 강하셨던 겁니까?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계신 거에요? 저, 이든! 이제부터 자일 님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님!”
뭐라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있던 아리아 또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딱히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지나쳐 프레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자일…. 정말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교수님이 회복 마법을 걸어주셔서 지금은 좀 살만합니다.”
“놀랐습니다. 요한 교수님을 상대로 그 정도로 버티다니…. 자일은 언제나 저를 놀라게 하는 군요. 저는 언제쯤 자일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저 프레이…. 요한 교수님이 그렇게 대단한 분이십니까?”
프레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혹시 모르셨습니까…?”
“네. 그냥 마법학부 소속 교수님 아닌가요?”
그 말을 들은 프레이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요한 크루이프 교수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