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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39화 (39/180)

39화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한 내가 되물었다.

“…교주? 갑자기?”

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교주라면 이미 있잖아?”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안드로말리우스를 영접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린 노인.

‘아…. 갠 죽었지.’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하늘나라로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 옆에 있던 놈도 말을 더듬었다는 이유로 곧장 죽었고.

어부지리로 그 옆에 있던 놈이 교주가 되었었지 아마.

선별 과정이 꽤 다이나믹하긴 했지만 내 기억 상 교주는 확실히 존재했다. 운이 좋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직접 선택을 받은 인물이 아닌가.

“죽었습니다.”

나는 얼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죽었다고? 왜?”

이든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교주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안들로말리우스님의 화신체를 뵙겠다고 인근 마을의 주민들을 납치했거든요. 결국 이단심문관 놈들에게 꼬리를 밟혀 처형당했습니다. 그 덕분에 지부 하나가 통째로 박살 났었죠. 뭐, 뻔한 결과였습니다. 특출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흑마술의 재능이 있는 편도 아니었거든요. 교단 내부에서도 꽤 불만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단심문관이라……. 이교도 사냥에 이골이 난 그들에게 덜미를 잡혔다면 아마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상황은 알겠어. 근데 왜 하필 나한테 그런 제안을 하는 거지? 그렇게 따지면 그냥 네가 교주가 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럴 자격은 이미 차고 넘치는 거 같은데.”

그 또한 안드로말리우스의 사도.

거래를 통해 사도가 된 나와는 다르게 아마 꽤 오랜 시간 교단에 몸을 담은 것으로 추측된다.

교단 내에 정세에도 해박하고, 그럴만한 능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놈이 구태여 내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는 안 됩니다. 그럴 능력이 없거든요. 이번 사태를 보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안 그래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해오던 교단이 현재는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뛰어난 지도자입니다. 압도적인 무력과 교인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겸비한 그런 지도자 말입니다.”

“그게 나라고?”

“그렇습니다. 이 이상 적합한 인물이 형님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형님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태생이 게으른 저 따위는 지도자의 그릇이 못 됩니다. 부디 교주가 되어 저희 교단을 부흥시켜주십시오. 비록 과거에 비해 세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다른 교단들과의 연결고리는 건재하니 아직까지 그 이용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72교단이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단 것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덕분에 위장신분을 얻어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고, 지그하르트 가문의 보구 또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사도의 신분만으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다른 교단들이라고 해봤자 안드로말리우스와 비슷한 급의 마신들을 숭배하는 이들일 터. 세력 자체는 크지 않다.’

이단심문관들에게 꼬리가 밟힌 마당에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교주가 되어 교단을 부흥해야 할 만한 이득이 내게 있을까?

아무리 봐도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사실상 무너지기 직전인 교단의 교주가 되어 달라…….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클 거 같은데?”

“이대로 72교단이 멸망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지그하르트 가문이 저희와 엮여 있었다는 사실 또한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냄새를 맡은 교단의 사냥개들이 새로운 먹잇감을 노릴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가 잊혀 지지 않는다.

‘…청십자회(靑十字會) 차기 대주교(大主敎). 크리스 발렌타인.’

이미 나는 한 번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는 몸이었다.

나는 살기(殺氣)를 끌어올리며 그를 노려봤다. 과장되게 몸을 떨던 이든의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협박으로 들리는데?”

“그거야 결국 해석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저는 형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서 꼬리를 자를 것인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도 안고 가야할 것인지 확실히 결정해야 했다.

“이든. 숨기는 게 있다면 지금 다 털어놔야 할 거다. 이 정도 패로는 날 설득할 수 없어.”

멍하니 날 바라보던 이든이 한 박자 느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형님이십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안드로말리우스님에게 신탁이 전혀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도 소통이 활발하신 분은 아니셨지만…….”

내 눈치를 한 번 살핀 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전혀 신탁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분명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드디어 단탈리온을 제치고 상위 서열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매우 기뻐하셨다는 신탁을 받았는데…. 혹시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불현 듯 떠오르는 아스모데우스와의 대화.

-별거 없다. 내게 군단을 달라고 요구하던 안드로말리우스의 팔다리를 잘라다가 친히 입에 넣어주었지.

-걱정할 거 없다. 원만한 합의를 끝마쳤으니. 이외에도 할파스와 라움의 머리통을 전시해두었다. 전쟁을 틈타 겁도 없이 내 영역을 침범하더군. 새 대가리라 그런지 장식용으로 딱이니라.

원만한 합의…….

크흠.

“…잘 모르겠군.”

“그렇습니까. 아무튼 교주까지 처형당한 마당에 안드로말리우스님에게도 신탁이 내려오지 않자 교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이단심문관 놈들에게 척살당하기도 전에 연합 놈들에게 흡수당하게 생겼습니다.”

“…연합?”

“예. ‘게티아(GOETIA)’라고 불리는 마신숭배자들의 연합입니다."

“마신숭배자들이 연합을 만들었다고…?”

마신숭배자들은 본래 하나로 뭉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애초에 그들이 숭배하는 마신들부터가 지극히 독립적인 개체. 제각기 성향은 다를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강자존(强者尊)의 이념 아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강한 자는 군림하고, 약한 자는 투쟁한다.

끊임없이 투쟁과 살육을 반복하며, 오로지 상대를 짓밟고 올라서는 것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마귀(魔鬼)들.

당연하게도 그들을 추앙하는 숭배자들 또한 그 성향을 짙게 띈다. 힘의 논리가 법칙이 되는 세계에서, 제각기 다른 신을 숭배하고 있는 이들이 어찌 힘을 합칠 수 있겠는가.

마신숭배자라고 다 같은 마신 숭배자가 아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 그들은 모두 똑같은 놈들로 보이겠지만, 정작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다른 신을 숭배하는 이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

물론,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고 그들 중에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집단들도 존재할 것이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것이지. 역사상 단 한 번도 마신숭배자들의 연합이란 것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내가 만든 설정에서도.

“예. 형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같은 족속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 않습니까? 허나 그놈들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인지, 작은 규모의 교단 서너 개를 흡수하는 걸 시작으로 최근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합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지?”

“듣기로는… 제국 뿐 아니라 아르곤 왕국, 카이시르 공국 등 대륙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외에는 딱히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큰 규모였다. 이 정도 규모라면 단순히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 이외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얘기였다.

“너희도 그들과 접촉한 적이 있나?”

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된 거였군.”

그가 어째서 나를 교주로 추대하려 했던 것인지 이제야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는 안드로말리우스의 사도이기 이전에, 아스모데우스의 사도였다.

7대 죄악을 상징하며, 서열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최상위 마신.

정욕과 격노의 마신 아스모데우스.

그런 내가 교주가 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안드로말리우스가 아닌, 아스모데우스라는 이름 아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영악한 놈. 그들이 어떤 제안을 했지?”

이든이 멋쩍은 듯 웃었다.

“하하…. 그들은 어떤 아티팩트를 찾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걸 찾아내는데 협조하면 그 대가로 저희 교단과 안드로말리우스님을 지원하겠다 하였고, 거부하게 된다면…. 뭐, 그 이후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아직까지 확답을 들려주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입니다.”

정말 눈물겨운 신앙심이다.

“그들이 말한 아티팩트가 무엇인지 들었나?”

“저희도 정확히 들은 건 없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이곳 살로몬 아카데미를 지목해서 말하더군요.”

그래서 아카데미 내부의 72교단 소속 교인들이 존재했던 것인가.

‘마신숭배자 연합…. 살로몬 아카데미. 그리고 아티팩트.’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예감은 어느덧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네가 언급한 다른 마신숭배자들 또한 그 연합 소속일 가능성도 있겠군.”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저희에게 직접 접촉해온 걸로 봐서는 아직은 소수에 불과할 겁니다. 최근 들어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절차가 까다로워지기도 했고요.”

연합의 규모를 따졌을 때 앞으로 얼마나 많은 마신숭배자들이 아카데미에 숨어들어올지 가늠이 안 됐다.

비단 학생이나 교수가 아니더라도 상점주인이나 하녀 등 얼마든지 신분을 바꿔 잠입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아카데미 내부에 72교단 소속 교인들은 몇 명이나 있지?”

“어림잡아 50명 정도 있습니다.”

내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보원이 50명…….

“아티팩트 관련하여 얻은 정보는 좀 있나?”

이든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건 아직 말해드릴 수 없죠. 저희 교단의 명줄이 걸린 문제 아닙니까? 형님이 교주라도 되신다면 모를까…….”

“하겠다.”

“네?”

“교주. 내가 하겠다고.”

“정말입니까?”

“그래. 단 이제부터 모든 정보는 교주인 내가 관리한다. 아티팩트 수색과 연합에 관련된 것들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보고해.”

“물론이고, 말고요. 그럼 취임식은 언제 하시겠습니까? 그 전에 우선 장로들을 만나 이 사실을…….”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오늘부터 이틀간은 주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지, 지금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조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시는 게…….”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지. 금.”

신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이든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장로들도 전부 소집할까요?”

“싹 다 불러. 불만 있는 새끼 있으면 면전에 대고 얘기하라고 하고.”

그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교주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간단한 채비를 마친 뒤, 우리는 곧장 아카데미를 빠져 나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기숙사 사감인 벨라 트레이에게 적당한 변명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웬만한 건 크게 터치를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상하게 같이 아침을 먹는 것만큼은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 번은 늦잠을 잔 이든이 말도 없이 아침을 건너뛰었는데, 그 날 저녁 연무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울려 퍼졌었다. 아마 이틀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룸메이트인 프레이에게도 사정이 있어 오늘 밤은 못 들어올 수도 있다고 얘기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상당히 아쉬운 얼굴로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결국 나는 황급히 얼버무린 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마지막 순간, 초점 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순전히 내 착각이기를 간절히 빌며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카데미에서 10키로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산속이었다.

“아마 이쯤일 텐데……. 그렇지!”

거대한 바위 앞에 선 이든이 주문을 외우자, 사람 한 명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에 작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은 안드로말리우스의 석상과 그 앞에 놓인 짐승의 시체, 공간전이 마법진이 전부였다.

“이런 곳에 잘도 제단을 만들었군.”

“하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습니까.”

석상 앞에 선 이든이 정체모를 기도문을 외우자 그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바닥을 수놓은 마법진이 빛나며, 어둠이 방안을 뒤덮었다.

몸이 붕 뜨는 감각.

잠시 후.

어둠이 걷히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석상과 그 앞에 산처럼 쌓인 인간의 시체였다.

“72교단의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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