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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40화 (40/180)

40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의 시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간 이외에도 엘프나 드워프 같은 이종족의 시체도 섞여 있었다.

그 옆에는 각종 날붙이와 팔이나 다리 같은 신체의 절단면 일부분, 꼬불꼬불한 장기 등이 정신없이 너부러져 있었다.

사방이 탁 트여 있고 주변에 나무들과 하늘이 보이는 것을 보니 어딘가의 산 정상인 듯 했다.

내가 인상을 구기자, 옆에 있던 이든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저건…. 너희들의 신에게 받치는 제물인가?”

이든이 아름다운 예술품을 바라보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무척 아름답지 않습니까? 안드로말리우스님을 위해 교인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물입니다.”

“그렇군…….”

잠시 잊고 있었다. 흑마술사라는 족속들이 어떤 놈들인지. 마신을 숭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들에게 인신공양이라는 행위는 지극히 당연하고, 또 신성한 것이라는 것을.

자신이 모시는 신을 위해서라면 가족조차 망설임 없이 받치는 이들이다.

죄책감(罪責感)? 죄악감(罪惡感)? 그들이 그런 것을 느낄 거 같은가?

어차피 자신이 모시는 신께서 모든 것을 사해줄 텐데……. 오히려 그 신을 위한 제물이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닌가?

사후에는 그들 또한 게헤나로 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곳이 투쟁과 살육만이 반복되는 진정한 지옥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로.

이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정식으로 교주가 되면 우선 저 개 같은 짓거리부터 그만두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모를까, 아스모데우스와 같은 상위 마신에게 인신 공양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안드로말리우스를 소환한 곳이 본거지가 아니었던 건가?”

“저희도 명색이 교단입니다. 그곳은 제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지부 중 하나에 불과하죠. 때마침 제물을 수급하기 위해 가장 용이한 장소를 골랐을 뿐입니다.”

“장로들은 어디 있지?”

“전령을 보내 났으니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든.

그 웃음이 수많은 가면들 중 하나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내게 단 한 번이라도 가면 속 진정한 얼굴을 보여준 적이 있을까.

그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뿐인 관계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교단의 부흥을 위해, 연합으로부터 교단을 지키기 위해 내 힘을 빌리는 것처럼 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내 본능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그는 나와 동류다.

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가시밭길이라도 담담히 걸을 수 있는 인간이다.

상대를 기만하고, 농락하며, 꾀어내는 데에 망설임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신뢰할 수 없다.

그저 필요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다. 쓰임새를 다하면 버려지는 것은…….

“이든님!”

“해리? 오랜만이군.”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안경을 낀 소년. 어딘가 낯이 익었다.

떠오를 듯 말 듯 미묘한 느낌의 괴로워하고 있던 찰나 그가 나를 바라보며 반갑게 물었다.

“오랜만입니다. 옆에 분은 혹시 자일 지그하르트 님 아니십니까?”

“…나를 알고 있나?”

“물론이죠, 자일 님은 저를 기억하시지 못하겠지만 저는 꽤 예전부터 자일 님을 지켜봐왔답니다.”

“미안하지만 누군지 모르겠군.”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72교단을 위하여.”

그제야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

입학 신청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내 신분을 밝히자, 감독관이 동네방네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폈었다. 그때, 옆에서 지그하르트 가문에 대해 쉴 새 없이 설명하던 소년이 바로 이놈이었다.

“너는 그때 그 설명ㅊ…….”

소년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마신숭배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한 얼굴이었다.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여기 오신 것을 보니 저희 72교단의 지도자가 되시기로 마음을 굳히셨나 보군요? 그간 자일 님의 행보를 보아온 저로서는 이 사실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부디 저희 72교단을 부흥으로 인도하여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 노력해보마.”

“저 위대하신 안드로말리우스님의 석상 앞에 놓인 제물들이 보이십니까? 저는 저들이 부럽습니다. 이제 곧 신의 품으로가 구원을 맞이할 테니까요.”

저 선하게 생긴 놈도 결국에는 마신에게 인신공양(人身供養)이나 하는 놈이라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들중의 너의 가족이 있다면 어떨 거 같은가?”

소년은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올곧은 눈동자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당연히 기쁘지 않겠습니까?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구원을 맞이한 것이니까요.”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그들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종교에 심취해 눈과 귀를 막은 이들에게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내가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신과 계약을 하여 흑마술사가 된 나였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었다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아직은 괴물이 될 자신이 없었다. 시체의 산을 보며 저들처럼 아름다움을 논할 자신이 없었다.

알고 있다.

이 또한 지독한 모순이라는 것을. 가책을 덜어내기 위한 합리화에 불과 하다는 것을.

나는 결코 선한 이가 아니다. 정의를 표방할 수도 없고, 선을 자칭할 수도 없다.

내가 살기 위해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였고, 기만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피해를 봤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중에는 죽어 마땅한 이도, 혹은 억울하게 죽은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재판관이 아니다. 내게는 그것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그들의 자유를 빼앗을 자격도 없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추악한 발버둥이다.

허나 거기엔 최소한 내가 정한 선이 있다.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그것은 내가 정의 내린 인간으로서의 마지노선이고.

그마저 넘어버린다면, 나는 더 이상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다시금 실감하고 있었다.

이든이 내게 물었다. 그는 이미 처음부터 내 감정의 동요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표정이 어둡습니다. 혹시 저것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저희가 괜히 저 많은 시체들을 모은 것이 아닙니다. 안들로말리우스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바로 갓 죽은 인간의 시체기 때문이지요.”

“고약한 식성을 가졌군.”

“…아무리 교주가 되실 분이라고 하지만 불경한 말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그 또한 신의 일부가 되는 것이오니 축복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제 곧 장로들이 도착할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상 앞에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검은 로브를 입은 6명의 노인과 수 십 명의 교인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들인가?”

“양반은 못 되는 군요.”

하나 같이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네들이었다. 가장 선두에 선 노인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 전체에는 안드로말리우스를 상징하는 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제사장! 상황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소집령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새로운 교주는 또 무슨 얘기고. 입이 있으면 말을 한 번 해보게나!”

‘제사장…?’

어이가 없는 눈빛으로 이든을 바라보자, ‘그렇게 됐습니다!’라는 얼굴로 이든이 미소를 지었다.

“하하! 당대 교주가 처형당했으니 이제 슬슬 새로운 교주를 뽑아야지 않겠습니까?”

노인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새로운 교주? 지금 우리 장로회에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멋대로 새 교주를 뽑겠다는 것인가?”

뒤편에 있던 다른 장로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나 때는 말이야. 이런 일은 꿈도 못 꿨어!”

“그러게 말입니다, 2장로님.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아무리 제사장이라지만 이건 도가 지나칩니다.”

“1장로님. 차기 교주는 당연히 1장로님이 맡으셔야 합니다. 이번 사태를 생각해보십시오. 젊은 것들에게 맡겨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노인이 지면을 향해 지팡이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크흠! 다들 조용히 하게나!”

노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위아래로 나를 훑어본 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자네가 아스모데우스의 사도인가? 나는 72교단의 최고장로를 맡고 있는 1장로 라칸이라 하네. 보아하니 운 좋게 사도가 되어 꽤나 기고만장 한 것 같은데 교주 자리는 이만 포기하는 게 어떻겠는가. 자네 같이 새파랗게 젊은이가 맡기에는 교주라는 자리가 만만치 않네. 이게 다 자네를 위해서 하는 얘기일세.”

“근본도 없는 외부인에게 어찌 교주 자리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옳은 말씀이십니다. 2장로! 72교단을 이끌어 가실 분은 오로지 1장로님 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무시한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장로가 6명이라……. 쓸데없이 인원만 차지하는군. 이참에 5명, 아니 4명으로 줄이는 게 좋겠어.”

1장로 라칸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네 지금 뭐라고 했는가?”

“…첫 번째를 누구로 할까.”

흥분한 장로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저, 저놈이 감히! 네가 지금 누구 앞에서 그런 소리를 지껄인 것인지 아는 것이냐!”

“1장로님. 제가 저놈의 팔다리를 잘라 안드로말리우스님께 받치겠습니다!”

라칸이 그들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금 물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거라. 방금 무어라 했느냐?”

“늙어서 귀가 먹은 건가?”

그의 목덜미에 뱀 문양이 꿈틀거리며,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걸 맞는 상당한 마기였다.

“상위 마신의 사도가 되었다고 네가 신이라도 된 것 같더냐? 착각하지 말거라, 애송아. 넌 그저 좀 더 탐스러운 먹잇감일 뿐이니라.”

그의 뒤편에 있던 교인들 또한 나를 둘러쌌다. 아마 장로회 직속의 교인들인 듯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지금 물러서면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

1장로 뿐 아니라, 저들 모두에게 하는 경고였다.

그는 내가 아스모데우스의 사도임을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도 내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교단의 최고 장로쯤이나 되는 인물이 그 정도로 무지하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까지 목숨을 걸만큼 교주라는 자리가 탐이 나는 것인가?

뭐가 됐든,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고? 크하하하하! 기껏해야 20년 남짓 산 핏덩이가 사도가 되었다고 까부는 것이냐? 내가 10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네놈 같은 것들을 보지 못했을 것 같더냐?”

그의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검은 연기가 꾸물꾸물 피어오르더니 이내 뱀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성인 남성의 다 여섯 배는 될법한 크기였다.

“죽어라!”

순식간에 다가온 뱀이 아가리를 쩍 벌린 채 그대로 나를 집어삼켰다.

꿀꺽.

한참 웃음을 터트리던 라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크하하하하! 꼴이 좋구…….”

방금까지 뱀에게 잡아먹혔던 내가 그의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머, 멀쩡한 것이냐?”

딱히 뭘 한 거는 아니었다. 그저 살짝 힘을 주어 뱀의 몸통을 뜯어냈을 뿐인데 그대로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나는 마기를 끌어올려 방금 전 라칸이 사용했던 흑마술을 흉내냈다.

“이렇게 하는 건가…?”

잠시 후.

내 뒤에서 등장한 건 라칸이 소환했던 뱀보다 몇 배는 커다란 크기의 뱀이었다.

콰직.

머리통이 떨어져 나간 라칸의 하반신이 힘없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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