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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41화 (41/180)

41화

처참한 광경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라칸을 따르던 장로들은 머리통이 사라진 그의 몸통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얼빠진 얼굴들을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나왔다.

“…….”

“…….”

숨 막힐 듯 흐르는 무거운 정적.

마기로 탄생한 거대한 뱀이 입맛을 다시며 갈라진 혀를 낼름 거렸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다섯으로 줄었군.”

그 말에 2장로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제 네가 최고장로인가?”

그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요동쳤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닌가보군.”

내가 걸음을 옮기려 하자, 돌연 무릎을 꿇은 그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 또한 무릎을 구부리며 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살려 달라?”

“모,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시키시는 일은 뭐든 다 하겠습니다!”

뻔한 대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의를 불태우던 놈이 지금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그럼 목숨을 살려 줄 테니 장로 직위를 포기할 텐가?”

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그것만큼은…….”

나는 조소를 머금었다.

“왜? 목숨은 아깝지만 권리는 포기하지 못하겠다. 이 말인가?”

“그, 그것이 아니라……. 1장로도 죽은 마당에 저마저 없어지면 장로회는 필연적으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장로회는 저희 72교단의 탄생을 함께 해온 기둥. 교주님은 아직 젊지 않습니까. 취임 이후 교단을 이끌어 가시는데 있어 저희 장로회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눈앞에서 1장로의 머리통이 뜯겨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느낀 게 없는 걸까.

여전히 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아직 젊은 내가 교단을 이끌어가기에는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뼈가.

은연중에 본심을 내비치는 것이라 하여도 그 뻔뻔한 태도가 결국 명을 재촉하는 것이다.

딱.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2장로.

“근본도 없는 외부인에게 교주 자리를 어떻게 맡기냐고 말 한 것은 네놈 아니었던가? 내가 교주가 된 이후에도 오늘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어떻게 확신하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2장로.

애초에 제사장인 이든의 소집령에 의해 이곳에 모였을 때부터 그들은 나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여차하면 이든 또한 같이 치워버리려고 하였을 테지.

처음 내게 건넨 제안은 사실상 협박과 다름이 없다.

교주 직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

어쩌면 전대 교주를 함정에 빠트린 것도 이들의 계획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가 다시 한 번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미, 믿어주십시오.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네놈 말에도 일리가 있지. 오늘의 실수는 눈감아주겠다.”

급격히 밝아진 얼굴.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든 또한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 하시면…….”

“이곳에 모인 장로회 소속 교인들에게 사자의 맹약을 걸도록 하겠다. 내게도 그 정도 보험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자(死者)의 맹약(盟約).

입학시험 당시, 내가 레이첼에게 사용했던 흑마술이다.

원래는 일정 시간 동안 해주를 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아주 기초적인 형태의 저주이지만, 지금 내가 사용하려는 것은 나만의 방식으로 개량한 것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맹약을 어기면, 사망한다.

원형이 되는 흑마술이 워낙 기초적인 것이기에 해주자체도 크게 어렵지 않다.

다만, 흑마술사인 그들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와 다름없는 성직자를 찾아가 해주를 요청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장로들과 그들을 따라온 교인들을 보며 소리쳤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원래라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들을 모두 죽이려 했다. 내 경고를 무시하고 적의를 드러낸 너희를 살려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너희들을 죽일 이유는 충분하다. 허나 생각이 바뀌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그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내 자비를 베풀어 너희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나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맹약을 받들라.”

서로가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자신 있게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

장로들의 반응이야 예상했던 결과 그대로라지만, 그래도 내심 한 두 명 정도는 자처해서 손을 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차고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으니 거부감이 들 수밖에.’

그때.

가장 뒤편에 있던 교인이 손을 들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성인 듯 했다.

“받겠습니다.”

“앞으로 나오거라.”

그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섣불리 입을 여는 이는 없었지만 수많은 교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단언하건데, 그것은 배신자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차가운 인상의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눈동자. 마치 인형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이름은?”

“데이지입니다.”

데이지의 꽃말은 사랑, 희망.

모순적이게도 눈앞에 여인과 가장 먼 단어들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마기를 일으켰다.

“지금부터 네게 맹약을 걸겠다.”

여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치이익,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녀의 목덜미에 낙인이 새겨졌다.

“옆에 서 있거라.”

“네.”

“더 이상 없는가?”

총 세 명의 지원자가 나왔다. 마지막 지원자는 놀랍게도 막내 장로인 6장로였다.

“…저, 저도 받겠습니다!”

눈치를 보던 그가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결국 참지 못한 장로들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방금까지 목숨을 구걸하던 2장로는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네 이놈 6장로! 부끄럽지도 않으냐! 명색이 장로라는 놈이 평생을 저 젊은 놈의 개가 되어 살겠다는 건가!”

“72교단의 교인들은 들어라! 이대로 평생 저놈의 노예가 되어 가축보다 못한 삶을 살 것인가! 우리가 모시는 것은 안드로말리우스 님이지, 근본도 없는 외부인 따위가 아니다! 모두 힘을 합쳐 저 악귀를 몰아내는 것이다! 장로들을 믿고, 따르라!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신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뭣들 하는가! 어서들 일어나라! 제 아무리 상위 마신의 사도라고 하여도 그만한 힘을 썼으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모두 일어서서 교단을 지켜라!”

그 말을 들은 교인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적의를 불태웠다.

“맞습니다! 형제들이여! 일어나십시오!”

“몰아내라! 저 마귀를 몰아내라!”

“저 마귀 놈에게서 교단을 지켜내야 한다!”

뱀신을 모시는 놈들답게 혓바닥을 놀리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간사한 뱀 새X들.

잠자코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군.”

드디어 물갈이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패닉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는 6장로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아직도 망설이는가? 그렇다면 네 눈으로 확인해라.”

저 무지렁이들이 권력에 눈이 멀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멍청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곧 사랑하는 신의 곁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내게 맹약을 받은 이들을 뒤편으로 물렸다. 이들은 선택을 했다.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해줄 생각이다.

“지금부터 잘 보거라.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순식간에 대열을 갖춘 장로들과 교인들. 2장로를 필두로 원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급조해서 만든 것치고는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제법 흉흉했다.

‘…생명력을 희생해 힘을 몰아줄 생각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2장로의 마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가장 뒤쪽에 자리 잡은 교인 한 명이 픽 쓰러졌다. 생명력을 모조리 소모한 까닭인지 흡사 미라와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맹약을 받아들이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것보다, 흑마술의 제물이 되어 신의 곁으로 가는 걸 택하다니 내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다.

“아아! 느껴진다! 안드로말리우스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모두 경배하라!”

흑마술사들의 힘의 원천인 마기는 어떤 존재와 계약을 맺었느냐에 따라 급이 나뉜다.

일반적인 흑마술사들은 자신이 숭배하는 마신에게 기도를 하는 것으로 흑마술을 사용한다.

신을 숭배함으로서 마기를 얻는 것이기에 간접계약의 형태를 띠며, 힘의 한계가 뚜렷하다.

간혹 신에게 선택을 받아 대가를 지불해 계약을 맺는 이들이 있다.

신과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흑마술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얻는다.

그럼 사도는 무엇이냐. 신에게 권능을 하사받은 이들이다. 그 힘은 자신이 어떤 마신에게 선택받았느냐에 따라 다시 극명하게 나뉜다.

불공평 하다 생각 드는가? 그렇다면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다. 불공평, 불공정, 이치를 거스르는 힘. 그것이 바로 흑마술의 본질이다.

마신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악귀가 되어 도시를 전복시킬 힘을 얻는다.

마법사들이 흑마술사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마법이라는 학문에 평생을 받쳐 성취를 이루는 이들의 눈에 어찌 그들이 혐오스럽지 않을 것인가.

“72계의 군단장, 붉은 칼의 바르디움이여.”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솨아아아.

힘없이 춤을 추는 나무들, 미세하게 떨리는 공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혼탁한 그림자.

“지금 이곳에 현현하라.”

어느새 몰려든 까마귀 수 십 마리가 상공을 헤집으며 비명을 지른다.

까악. 까악.

그 불쾌한 소리가 신경을 더욱 곤두세운다. 예민해진 감각이 내게 무엇인가를 알리려는 것처럼 다급하게 소리친다.

‘……설마.’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짙고 원초적인 마기(魔氣)를 피부로 느꼈을 때, 그들이 생명력까지 받쳐가며 준비하던 흑마술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악마소환의식(惡魔召喚儀式).

주변 일대의 공기가 거칠게 요동쳤다.

쩌저적.

공간의 균열이 생겼다. 그 틈 사이로 붉은 대검을 쥔 악마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대가 나를 불렀는가.]

녹슨 쇠를 긁는 듯한 음성.

“그렇소. 맹약의 부름에 따라 저기 저 괴물을 처치해주시길 바라오! 영혼은 가져가도 상관없소!”

[알겠다.]

붉은 안광이 내게로 향했다. 한 쌍의 검은 날개. 그 거대한 크기와 강대한 마기로 보아 악마들 중에서도 귀족의 작위를 지닌 악마인 듯 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악마는 제자리에 선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서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상하군.]

미묘한 기류.

뭔가 이상함을 느낀 2장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바르디움이여. 왜 가만히 있는 것인가!”

―돌연, 바르디움이 검을 뽑아 들어 그의 머리통을 겨누었다.

[인간. 나를 속였군.]

격분한 목소리.

영문 모를 돌발 행동에 당황한 2장로가 소리쳤다.

“바, 바르디움?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대를 속이다니? 나는 그대를 소환한 계약자라네! 정당한 계약에 응한 것은 그대가 아닌가!”

[닥쳐라. 계약은 파기다.]

“파기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바르디움? 바르디움? 지금 어디 가는 겐가!”

넋이 나간 2장로가 간절하게 소리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바르디움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공간의 틈새로 돌아갔다.

“바르디우우우움!!!”

절규하는 그를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서 이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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