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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42화 (42/180)

42화

2장로는 바르디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공허한 눈동자가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이제는 자포자기라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난 2장로가 내게 눈을 부라리며 역정을 냈다.

“네놈…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거냐. 대체 무슨 짓거리를 했길래 마계의 대악마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냐! 대?체? 무슨…….”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붉게 충혈 된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더니 이내 흰자까지 전부 검게 물드는 게 아닌가. 말투도 어째서인지 전보다 어눌해진 것 같았고, 머리칼은 점점 색이 바래지고 있었다.

으득. 으득. 으드득.

관절의 마디마디가 꺾이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해? 무#$^슨 짓@^$거리^%$&^를 한%&%7거%$^&냐.”

저 증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과도한 스트레스. 마기오염으로 인한 정신 붕괴. 언어착란.

이것들 모두 이블이 되기 직전 나타나는 대표적인 전조 증상이었다. 육안으로 봐도 진행속도가 상당했다.

허나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만화를 보면서 가장 이해가 안 갔던 장면이 있었다.

그건 바로 주인공이 각성하기 전까지 악역들이 잠자코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로만.”

어둠 속에서 로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저 놈 목 따와. 막는 놈들 있으면 다 죽여도 상관없다.”

“존명(尊命).”

로만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 또한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구체화하며 마기를 끓어 올렸다.

잠시 후.

머리 위로 떠오른 스무 개의 검은 창.

요한이 대련 중에 보여주었던 마법을 모방한 것이었다.

맨드레이크를 복용했다고는 하나 선천적으로 마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 정도 수준의 창을 만드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허나 마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에게는 아스모데우스라는 무한한 연료통이 존재하니까.

내가 작정하고 미친 듯이 사용한다 하여도 그녀가 지닌 방대한 마기의 코딱지만큼도 사용하지 못한 채 죽어버리거나 혹은 폭주하여 이블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개미가 바닷물을 퍼 나른다고 한들 바닷물이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2장로님…? 괜찮으십니까…?”

“여기서 무너지시면 안 됩니다! 저 악귀로부터 저희 교단을 지켜내야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돕겠습니다!”

이미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2장로가 90도로 고개를 꺾으며, 나를 바라봤다.

“@#$^님. 안[email protected]#드#%#로%^&말리?우#%스&@#$%&님.”

마치 랩을 하듯이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발음이 뭉개진 탓에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눈앞에 적을 향한 진득한 살의(殺意).

나는 아무래도 이블 들에게 사랑을 받는 체질인가 보다.

‘장로는 장로인가.’

악마를 소환한 영향 때문인지 등에서 벌써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마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탓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블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서걱!

푸른빛 마나를 두른 단검이 그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깔끔한 절단면을 남긴 채 바닥에 떨어진 그의 머리통을 보며 근처에 있던 교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2장로님!!!”

“2, 2장로님이 살해당했다!”

“장로님들! 이,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로로 보이는 노인들이 패닉에 빠진 교인들을 다독였다.

허나 정작 그들은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는 게 기회를 봐서 탈출할 생각인 듯 했다.

“포, 포기 하지 마라! 교, 교단을 위해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 그래 싸워라! 아직 끝이 아니다!”

내가 손짓을 하자, 공중에 떠 있던 스무 개의 창들이 2장로의 시체를 향해 일제히 낙하했다.

콰과광!

저번 레이첼 사건 이후로 몇 가지 배운 게 있었다.

이블을 상대할 때는 심장을 확실하게 파괴할 것. 그리고 재생할 여지조차 주지 않게 철저히 확인사살을 하는 것이다.

마기로 응축된 칠흑의 창들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근처에 있던 교인들 또한 그 여파에 휩쓸려 몸이 찢겨져 나갔다. 사방으로 살점이 흩뿌려졌다.

“끄아아아아악!! 내 팔, 내 팔이…!”

“형제들이여!! 포기하지 말아라!!”

“아아, 안드로말리우스시여! 우리를 구원해주시옵소서!”

고통에 찬 비명과 선혈이 난무하는 잔혹한 광경.

비처럼 쏟아지는 핏물.

모든 걸 체념한 채 쏟아지는 기도.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사후세계의 모습이 지금 이 광경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옥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낙인, 낙인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

나는 멈추지 않았다. 원본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이 세상의 그 흔적조차 남길 수 없게끔 집요하게 물어뜯는다.

내 손짓 한 번에 수 십 명의 인간들이, 한낱 고깃덩어리가 되어 허무하게 사라지는 광경을 두 눈에 똑똑히 담는다.

“…….”

얼마나 지났을까.

장내를 가득 매운 비명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수북이 쌓인 시체들을 밟고서 로만이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세 개의 머리가 들려져 있었다. 머리가 잘리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였는지 하나 같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했더니 셋 다 장로회의 노인들이었다.

새삼 푸른달 출신의 로만이 얼마나 뛰어난 살수인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말은 결국 하르만 백작가에는 이런 괴물들이 즐비하다는 거지.’

나는 2장로가 있던 장소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포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바닥이 움푹 패어있었다. 성인 남성 세, 네 명은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시체는커녕 먼지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로만.”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태도가 평소답지 않았다.

제자리에 우뚝 선 채 내가 아닌, 뒤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데이지였다. 그의 감정이 내게 전해져 왔다. 언데드가 된 이후로 언제나 한결 같은 태도를 유지하던 그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로만?”

가파르게 떨리는 눈동자.

그에게 새 삶을 부여한 나였기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아이는 분명 죽었을 터인데…….”

그 아이?

“로만. 무슨 일이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로만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잠시 착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데이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산 위에 눈꽃처럼 차가운 외모의 여인. 그녀의 눈 밑에 드리운 그림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언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이름에 걸맞지 않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라 추측할 뿐.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밑도 끝도 없이 던져진 질문에 내가 의문을 표했다.

“강해지고 싶은가?”

“네.”

“어째서?”

“살아야 하니까요. 저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반드시.”

누구보다 삶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녀의 목소리의 살고자 하는 의지는 깃들어있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저 목적을 수행하려는 기계처럼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라고.

“…그것만이 제가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 저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저는….”

“따라와라.”

나는 그녀를 포함해, 맹약을 건 이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데이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원이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간부로 72교단의 장로들은 너희들이다.”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딱 한 명만 빼고.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저희가 정말 장로라고요?”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나는 안절부절 하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아마 다른 장로들이 전부 신의 곁으로 갔으니 같은 장로인 그 또한 생각이 많을 것이다.

“6장로.”

“…예, 예!”

“그대가 지금부터 최고장로다. 다른 장로들을 잘 이끌어 교단에 부흥을 돕도록.”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정말입니까? 저를 최고장로로 임명해주신다고요?”

“싫으면 관두도록.”

그가 손사래를 치며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아, 아닙니다!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의 기대에 부흥할 수 있도록 이 한 몸 받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맹약이 걸려있으니 혹시라도 불순한 생각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궁금하면 실험해 봐도 좋다. 너희들이 모시는 신의 곁으로 가고 싶다면 말이지.”

그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지만 구태여 맹약의 진실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맹약은 보여주기 식에 불과했다. 그들이 내게 살의를 품는다고 하여도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허나 그 사실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마치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차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아직 그들을 신뢰할 수 없으니 심리적인 압박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걱정마라. 너희들이 내게 충분한 신뢰를 보여준다면 맹약을 해주하겠다고 약조하마.”

금세 밝아진 얼굴 된 그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이든에게로 향했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이든이 콧노래를 불렀다.

“휘유~ 물갈이 한 번 제대로 하시더군요.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셨던 겁니까?”

“너야 말로 처음부터 이렇게 되길 의도한 거 아닌가?”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잡담은 됐다. 취임식을 바로 진행하도록 하지.”

“분부대로 합죠.”

가장 큰 장애물인 구 장로회가 사라졌기에 취임식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쓸데없는 과정들은 과감하게 스킵하고, 최소한의 절차만 밟았다.

주관은 제사장인 이든이 맡기로 했다. 평소의 가벼운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진지한 태도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가 지닌 힘을 증명했기 때문인지 더 이상의 잡음은 없었다.

엄숙하고, 고요한 분위기.

어느덧 취임식의 마무리가 다가왔다.

“이쪽으로 올라와주십시오.”

나는 계단을 올라가 안드로말리우스의 석상 앞에 섰다. 이든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교주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돌아선 나는 교인들을 내려다보았다.

수 백 명의 교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이어질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로소 내가 이들의 교주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오늘 부로 인신공양(人身供養)은 금지다.”

어이가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이든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담담히 계단을 내려왔다.

“…….”

상당히 동요하는 기색이 엿보였지만 직접 입을 열어 따지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설령 불만을 제기한다고 하여도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내가 이제부터 교주인데.

꼬우면 교주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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