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취임식을 마치고 곧장 아카데미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은 탓에 오늘은 교단 내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교주랍시고 교단 내에서 가장 좋은 숙소를 제공해주었다.
전 교주가 사용하던 방이 훨씬 더 화려하고, 넓었지만 찝찝했기에 거절했다.
“이 정도면 양반이지.”
침대에 걸터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곳이 교단의 본산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이든에게 물어보니, 제국 남단에 위치한 이름 없는 산이라고 했다.
마족들의 땅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카데미까지의 거리는 최소 300키로 미터 이상. 공간전이 마법진 없이는 도저히 올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신서를 찾아야 했다.
내가 교주가 되기로 결심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나만의 독자적인 세력. 그리고 정보 집단.
넓디넓은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백방 뛰어다녀봤자 큰 소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 더 효율적인 수색을 위해서는 정보 집단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또한.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는 나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뒷받침 해줄 세력을 키우는 것 또한 중요했다.
개인보단 집단이 우월한 법.
때때로 집단에 버금가는, 나아가 집단을 넘어서는 초인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어차피 세상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이레귤러 들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하게 될 존재는 그 이레귤러들 중에서도 가장 이 세상의 법칙에 어긋난 존재였다.
“연합인가 뭔가 하는 놈들도 거슬린단 말이지.”
게티아(Goetia).
최근 엄청난 기세로 세력을 늘리고 있다는 마신숭배자들의 연합.
목적도, 규모도 베일에 싸인 정체불명의 조직. 다른 걸 다 제쳐두고 그 마신숭배자들을 한 곳에 모아 통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을 경계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것이 무력이든, 혹은 대의이든, 어떠한 수단이건 간에 결코, 좋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하다.
대륙 전역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지만 그것은 그들이 가진 세력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빙산의 일각.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을 빙산은 어쩌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머리가 터질 것 같네.”
내가 지닌 가장 큰 무기는 흑마술도, 마력도 아니다.
바로 정보의 독점.
이 세계의 뼈대가 되는 굵직한 설정과, 세계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변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 세계에 나라는 변수가 개입한 영향 때문인지 미약한 날개짓은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이 되어 서서히 북상하고 있었다.
폭풍전야(暴風前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찾고 있다는 아티팩트. 그리고 아카데미.
이 키워드들이 향하는 곳의 끝에는……. 내가 그토록 찾는 물건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필연적으로 그들과 마주칠 것이다.
“로만.”
어둠 속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빤히 그를 바라봤다.
간혹 내가 말도 안 되는 농담을 건넬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그였다. 그런 그가 데이지를 마주쳤을 때 심하게 동요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까 전에 말이야. 데이지를 봤을 때 왜 그렇게 동요한 거지? 숨길 생각은 하지 마. 네가 내 사역마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들킬 테니까.”
“…….”
무엇인가 고민이라도 하는 듯 머뭇거리던 그의 입이 달싹거렸다.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감정이 내게 생생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편하게 말해. 비록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나름 신뢰가 쌓이지 않았어? 내가 말했잖아. 네가 나를 도와준다면, 나도 너를 돕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인지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제 동생과 같은 이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동생? 네게 동생이 있었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에게는 4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로만의 눈동자가 기억 속으로 가라앉았다. 과거,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희는…….”
* * *
로만이 5살이 되던 해, 남매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 자식들까지 키울 여력이 없다는 무책임한 이유였다.
총명했던 소년은 그날, 자신의 이름을 버렸다. 그리고 동생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데이지. 사랑과 희망을 뜻하는 단어였다.
이름 없는 소년은 이제 옹알이를 시작하는 여동생을 품에 안고, 빈민가를 전전했다.
때로는 구걸을, 때로는 도둑질을 하며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하수구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
이러한 삶을 연명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로만은 자신의 손을 꼭 잡은 작은 생명체를 위해 하루를 살아갔다. 남매는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끔찍한 환경 속에서도 늘 자신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주는 여동생을 위해 그는 또 하루를 살아갔다.
그리고 매일 같이 그녀에게 되뇌었다.
살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주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불합리한 운명에 굴복해 삶을 내던지기에는 내가, 그리고 여동생이 너무 가여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지 않은가.
어린 소년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잡초처럼 성장했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
-갈 곳이 없나 보군. 우리 집으로 갈 테냐?
로만은 동아줄을 붙잡았다. 그것이 섞어 문드러진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로.
자신에게 손을 건넨 귀족은 뒷세계에 정보 수집과 암살을 생업으로 삼는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곳에는 그 또래에 많은 아이들이 존재했다. 로만 남매와는 다르게 대부분이 그곳에서 태어나 살수로 길러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름 대신 각자 번호를 부여 받았다. 도구로서 키워진 그들에게 이름 따위는 불필요했다.
혹독한 훈련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받은 훈련은 감정을 거세하는 것이었다.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개인적인 감정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도구.
주어진 명령만 착실하게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세뇌마법이 뇌를 헤집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임무 실패 시 자결할 것.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을시 자결할 것.
효과는 확실했고, 대부분 백작가의 인형이 되었다. 그의 동생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로만은 미약하지만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선천적으로 마법저항력이 뛰어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나, 둘 동기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이 모습을 감췄다.
-121번. 245번. 폐기.
그들은 그것을 폐기됐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로만 남매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고, 또 버텼다.
틈틈이 자신의 동생에게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기계처럼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어느덧 그는 가문 내 최고 살수조직인 푸른달의 조장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자신과 동생의 자유를 찾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고서 수많은 피를 묻혔다.
그의 동생은 성인이 되던 해. 백작가의 차기 가주인 기레스 하르만의 직속 호위로 발탁됐다.
망나니로 유명한 기레스 하르만이라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차기 가주의 호위가 됐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적어도 지금 이 생활보다는 행복할 테니까.
그러나 몇 달 뒤 그의 귀에 들려온 것은 여동생이 임무 중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여기까지입니다. 허나 확실한 건 그 아이는 분명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었습니다.”
그에게 이러한 과거가 있을 거라 생각은 못했다.
그저 단순히 가문의 살수로 키워진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기구한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알던 여동생은 분명 죽었는데, 데이지가 너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당황했다 이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둘 중 하나겠네. 우연히 여동생과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사실 여동생이 죽지 않았거나.”
그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아이가 어째서 이런 이교도 집단에…….”
그 이교도 집단의 교주가 네 주인님이랍니다.
잠시 고민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확인해볼래?”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확인 말입니까…?”
“응. 아니면 아닌 거고, 맞으면 좋은 거 아니야? 너도 이렇게 찝찝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확인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주인님의 마법실력으로서는 기억을 건드는 것은….”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기억을 다루는 것은 정신 계열의 마법이다. 물론. 나는 그쪽에 관련된 원천속성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고, 설령 타고났다고 한들 아마 기억에 관여하는 마법은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내게는.
“평소에는 빠릿빠릿하더니 오늘따라 영 감이 없네. 로만.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흑마술이 있었다.
“사도라고, 사도. 위대한 마신의 사도. 흑마술을 쓰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아.”
“……흑마술로 그런 게 가능 한 겁니까? 기억을 헤집는 대가로 정신이 망가지고 그러면….”
“야. 흑마술이라고 다 사람 죽이고, 시체 터트리고, 악마 소환하고 뭐 이런 거 밖에 없는 줄 알아?”
…대부분이 그런 거긴 하다.
나는 잠시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큼. 아무튼 충분히 할 수 있단…….”
똑똑.
때마침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상황을 파악한 로만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주님.”
“데이지…?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데이지였다. 그녀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시장하실 거 같아 요깃거리를 들고 왔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스튜가 들려져 있었다.
아마 그녀 스스로의 의지로 챙겨준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고마워.”
나는 음식을 받아 탁자에 놓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왜 그러십니까?”
“뭐 좀 물어봐도 될까?”
“네. 말씀하십시오.”
“우선 앉자.”
스스로 찾아온 기회를 놓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가 의자를 꺼내 앉았다.
민망할 정도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
“교단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떻게 지냈지?”
“사창가에서 창부로 지냈었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는 그녀를 보며 잠시 당황해 말을 잃었다.
“어……. 그 전에는?”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럼 가족은?”
“없습니다.”
“…….”
아무런 말이 없자, 데이지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 혹시 밤 시중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려는 그녀를 황급히 말렸다.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찾는 사람과 닮은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였어. 너무 똑같거든.”
“……찾는 사람 말입니까. 죄송하지만 도움이 되어 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데이지. 기억을 찾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