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말을 꺼낸 당사자인 아리아조차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매력적이라고요?”
프레이와 샬럿의 표정 또한 순식간에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금의 발언은 취급하기에 따라 이단 재판에 넘겨질 수도 있을 정도의 수위였다.
만약 이 자리에 이단심문관이 있었다면 요한은 변명할 새도 없이 곧장 교단으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마법 한 번 배운 적 없는 이도 마신을 찬양하기만 한다면 방대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습니까? 힘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만큼 매력적인 수단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
충격적인 발언에 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흥미를 느낀 것인지 아리아는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흑마술을 익히지 않으신 겁니까? 아……. 혹시 이미 익히신 건가요?”
기어코 일을 벌리는 구나.
그녀의 성격이 불같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런 소식을 듣고도 별 반응이 없길래 나름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당장이라도 터지기 직전에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질문이라고 하지만 저건 도를 넘었다.
먼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 것은 요한이었지만 그는 교수였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 뿐 이었다.
그러나 방금 아리아는 학생이 교수에게 흑마술사냐고 묻는 것과 다름없는 질문을 한 것이다. 예의가 없고, 무례하다고 넘어가기에는 그 수위가 지나쳤다.
결국 참다못한 조교가 목청을 키웠다.
“아리아 발렌타인!! 교수님께 이게 무슨……!”
요한이 고개를 젓자, 무명이 한숨을 쉬며 입을 닫았다. 요한의 시선이 아리아에게로 향했다.
처음 보는 눈빛.
“왜 익히지 않았느냐고 물으셨지요?”
평소에 나태함도.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호기심도.
“그 무엇보다 증오하기 때문입니다.”
전혀 서려있지 않았다.
“마신(魔神)이라는 존재를.”
차갑게 가라앉은, 마치 예리하게 날이 선 칼날 같은 눈동자.
“…….”
돌연, 표정을 바꾼 요한이 방긋 웃었다.
“뭐. 농담입니다. 쉽게 얻은 힘은 그만한 대가가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건 제가 추구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저는 결코 넘을 수 없을 거라 여겨지던 벽을 넘어서야 비로소 희열을 느끼거든요.”
아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무례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요한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뭘 그런 거 가지고. 학생이라면 충분히 궁금해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 그럼 말이 나온 김에 흑마술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보도록 할까요?”
그가 칠판으로 향했다.
“흑마술은 대게 자극적이고, 원초적이며, 파괴적이지요. 이만큼 직관적인 마법이 없습니다. 마법과 흑마술이 다른 점은 바로 ‘동력(動力)’입니다. 마법사는 마나를, 흑마법사는 마기를 토대로 현상을 일으키죠.”
마력으로 분필을 만들어낸 그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무리로 육망성(六角星)을 그리고, 그 옆에는 거대한 날개를 달고 있는 알 수 없는 존재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인간을 그렸다.
대충 마신과 인간을 그린 것 같았는데 그 솜씨가 무척 형편없었다.
“자, 여기. 마신이 있습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어떤 형체를 지니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인간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죠. 여기 이 사내는 정체불명의 마신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을 괴롭힌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싶다고 말이죠. 어떻게 될까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요한.
어느새 칠판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수십 명의 시체 위에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가 서있었다.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흑마술 입니다. 간단하죠? 사내는 태어나서 검 한 번 잡아보지 못한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허나 마신에게 기도를 한 번 드렸을 뿐인데,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킬 만한 힘을 얻었지요. 흑마술이란 규격 외에 힘입니다. 마신의 변덕 한 번에 평범한 농부가 살인귀가 되고, 힘없는 아녀자가 전대미문의 학살자가 됩니다.”
내가 물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마신을 숭배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힘을 얻을 수 있나요?”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마기를 다루는 이들의 말로는 대체로 처참하답니다. 아무리 뛰어난 흑마술사라 하여도 결국에는 마기에 침식당해 미쳐버리거나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변모하게 되죠.”
그는 수상할 정도로 흑마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흑마술사는 마신을 숭배하는 것만으로도 마기를 얻지만, 그 윗 단계에 흑마술사들은 마신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혹은 반대로 그들에게 선택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계약의 과정에서 그들은 대가를 지불합니다. 팔이나 다리, 자신의 생명, 혹은 영혼까지 받치는 경우도 흔하죠. 모든 힘에는 그에 맞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프레이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흑마술사들과 싸워보신 적이 있나요?”
“예.”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대처라……. 간단합니다.”
프레이가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도망치면 됩니다.”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도…망… 치라는 말씀이십니까?”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들이 지닌 힘은 불합리 그 자체입니다. 일반 교도급은 마법사 서너 명이 붙으면 어찌저찌 상대할 수는 있겠지만 직접 계약을 맺은 교주급들은 만나는 즉시 도망가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만약 마신의 성흔이 새겨진 사도급을 만났다고 한다면…….”
프레이가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
“신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흑마술사들이… 그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겁니까?”
“위력만을 따졌을 때 일반 교인들의 흑마술은 4서클 마법사들의 마법을 상회합니다. 그 이상의 흑마술사라면 7서클 이상의 마법사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 보고 있습니다. 허나 그것보다 더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상성입니다.”
그가 다시 칠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성직자 > 흑마술사 > 마법사 > 성직자.
“일반적으로 성마술(聖魔術)을 다루는 성직자들은 흑마술사들에게, 흑마술사들은 마법사에게, 마법사들은 성직자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습니다. 상성이고 뭐고, 그냥 강한 사람이 강한 거니까요. 허나 대부분은 이런 양상을 띱니다. 성마술(聖魔術)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고, 왜 흑마술사가 마법사를 상대로 유리한 것인지 말해보겠습니다.”
다시 분필이 움직였다.
조그만 원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주위로 팔 다리가 생겨났다.
톱날 같은 이빨.
누가 봐도 어린아이가 낙서한 것 같이 형편없는 몰골이었지만 나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포식귀(捕食鬼)라 불리는 마물입니다. 마나를 잡아먹는 성질을 지니고 있지요. 이것이 흑마술사들과의 대결에서 마법사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흑마술사들이 이놈을 소환하면 마법을 쓰는 족족 집어삼키게 됩니다. 파훼법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지요.”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이기는 했으나 이제는 슬슬 수업을 끝냈으면 했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이미 예정된 수업시간은 한참 지난 뒤였다.
“이외에도 마기(魔氣)와 마력(魔力)은 서로 융합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위 흑마술사들 같은 경우에는 그 점을 이용하여…….”
그렇게 약 30여 분 간 흑마술과 마법, 성마술에 대한 설명을 추가로 하고 나서야 수업이 끝이 났다.
* * *
같은 날 새벽.
짙게 낀 구름 사이로 내리 쬔 달빛.
지붕 위 그림자가 눈앞에 저택을 응시했다.
“로만. 상황은 어떻지?”
어둠 속에서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주인님.”
자일이 아카데미로 돌아오면서 교인들에게 명령한 것이 있었다.
바로 하르만 백작가의 경비인원과 인근 일대의 지형.
그리고 기레스 하르만의 동향이었다. 저택의 구조는 푸른달 출신인 로만이 알고 있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조금 더 시간을 두어 저택을 치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내일부터 제국은 축제에 들어갔다.
평소 주색잡기에 빠져 사는 기레스 하르만이 이 날을 놓칠 리가 없었고, 자신의 별채로 수많은 여자들을 불러들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자일이 향한 곳은 그의 별채가 아닌 본가였다.
전력이 분산된 틈을 노려 하르만 백작가를 먼저 접수한 이후에 별채를 칠 계획이었다.
인원은 단 두 명.
자일 본인과 그의 사역마인 로만이 전부였다.
“가자.”
그들은 어둠 사이로 몸을 숨겼다.
저택의 뒤쪽으로 향하는 비밀통로.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사병 두 명이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 시간 보초를 선 까닭에 그들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내일부터 축제인데 하필이면 오늘 당직이냐. 도련님은 지금쯤 여자들 품에 둘러 싸여 천국을 맛보고 계시겠지.”
“야. 별채 쪽으로 안 간 걸 다행으로 여겨. 그 인간 성격에 술 마시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아.”
“하긴. 괜히 거기 있다가 어떻게 될…….”
서걱!
살갗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병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료의 머리통이 눈앞에 떨어지는 광경에 사병은 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이내 자신의 가슴팍을 파고든 날붙이를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익숙한 자세로 시체를 수습하는 로만.
그를 바라보던 자일이 물었다.
“아무리 병력이 분산됐다지만 비밀통로를 지키는 인원이 고작 이게 전부라고?”
“아마 안쪽에 더 있을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끼익.
쪽문이 열리며 로만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깔린 어둠으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았다. 허나 로만은 제집을 드나드는 것 마냥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딛었다.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 군.’
눈은 보이지 않아도 냄새를 맡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는 것인지 지독한 혈향(血香)이 코를 찔렀다.
갑자기 로만이 멈춰 섰다.
“지금부터는 제 걸음을 그대로 따라오셔야 합니다.”
자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2보.
좌로 3보.
우측으로 4보.
다시 앞으로 3보.
잠시 후.
딸깍, 소리와 함께 사방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어둠이 걷히고, 눈이 적응하자 자일은 왜 로만이 자신의 걸음을 그대로 따라오라고 하였는지 깨달았다.
길게 이어진 복도.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철문.
복도의 양측에는 수백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정해진 타일을 밟지 않으면 사방에서 온갖 종류의 무기들이 쏟아지는 형태의 함정이었다.
무기도 무기지만, 가장 위협적인 것은 날에 서려있는 독이었다. 살갗에 닿는 것만으로 온몸이 마비되고, 수 초 내에 심장을 멈추게 하는 극독.
그동안 많은 침입자들이 하르만 가문에 침입했지만 대부분 이곳을 넘어가지 못하고 절명했다.
“……살벌하군.”
제국의 밤을 책임지고 있다는 가문답게 환영식 또한 원대하다는 생각을 하는 자일이었다.
거대한 철문 앞에 선 로만이 양손에 검을 쥔 채 숨을 가다듬었다.
푸른빛 오러를 머금은 검.
그가 손을 뻗자, 철문이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가시죠.”